카카오뱅크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DDS)팀 직원이 헤드셋을 착용한 채 업무를 하고 있다. 카카오뱅크 제공
■“일부 부작용 있어도 통일된 매뉴얼 필요”
보이스피싱과 투자사기 등이 점점 고도화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은행의 ‘임시조치’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고객들의 송금을 막을 수 있는 금융사의 이상거래 대응이 ‘최후의 방어선’이지만 계좌를 막으면 민원이 제기되고 고객 요청에 따라 거래 제한을 풀면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최근 은행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 현장에선 금융당국 차원의 명확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금융사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모든 이용자 계좌의 이상 거래를 탐지하고 피해 의심 계좌는 거래를 제한하는 등 임시조치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본인 확인 조치 결과, 피해 의심 계좌에 해당하지 않으면 임시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금융사의 자율성을 보장한 것이지만 어디까지 대응해야 하는지 기준이 모호하다. 임시조치 기준은 말 그대로 ‘임시’조치이고, 상당 부분 은행 자율에 맡겨져 각 금융사와 직원의 판단에 따라 피해 예방 수준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로 실제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재판장 주진암)는 지난 1월 보이스피싱 피해자 C씨가 D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은행의 책임을 일부(30%) 인정해 약 4억6100만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C씨가 사기범에 속아 송금하는 과정에서 D은행이 임시조치 등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C씨는 2024년 7월29일 예금 16억원을 해지한 뒤 사기범이 알려준 계좌로 송금했다. 이를 이상 거래로 판단한 D은행은 1차 임시조치를 한 뒤 C씨에게 거래가 제한됐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C씨는 전화를 걸어 “주식 투자금을 보내려고 하는 데 안 된다”며 임시조치 해제를 요구했고, D은행은 최근 가족이나 지인이 신분증 촬영이나 계좌번호 등을 요구했는지 확인 절차를 거친 뒤 임시조치를 풀어줬다. 같은 날 C씨는 사기범 측 계좌에 총 4억600만원을 이체했다.
이를 다시 이상 거래로 판단한 D은행은 재차 임시조치를 취했으나 1차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거래 제한을 풀어줬다. 다음 날인 30일 C씨가 전날 돈을 보낸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계좌라는 것이 다른 피해자 신고로 확인됐다. 이후 D은행은 C씨와 통화하면서 “사기꾼들이니 해당 계좌로 절대 송금하지 말라”고 안내했다.
문제는 C씨가 이미 사기범에게 속아 D은행 직원을 오히려 사기범으로 의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C씨는 통화에서 “내가 주식으로 돈 버는데 왜 안 된다고 그러는 거예요?” “제 돈 가지고 제 마음대로 하는건데”라고 말했고, D은행 직원은 “아 그러면 좋을 대로 하세요. 알았어요. 끊을게요”라며 통화를 종료했다. 이후 C씨의 피해액은 15억여원까지 불어났다.
재판부는 “29일 임시조치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30일 원고의 계좌에 추가 임시조치를 하지 않은 점과 임시조치 대신 이뤄진 세 차례 통화에서도 의심스러운 사정들에 대해 추가적으로 점검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임시조치 관련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양측은 모두 항소한 상태다.
피해를 키운 직접적인 불씨는 고객의 요청으로 은행이 임시조치를 풀어준 데 있다. 쟁점은 금융사가 임시조치를 풀 때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는가이다. 은행 측은 고객의 의사와 무관하게 임시조치를 무한정 유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임시조치를 풀어달라는 민원이 제기되는 것뿐만 아니라 혹여라도 정상거래일 경우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한 은행권 FDS팀 관계자는 “맷집으로 버텨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금융당국 차원에서 임시조치 적용과 해제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사기 수법이 교묘해지면서 피해자가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금융사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 등 금융사의 피해 예방책임도 커지는 상황이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 “보이스피싱이나 투자 사기 등의 사례가 워낙 다양해 일괄된 기준을 적용하긴 어려울 수 있지만 부작용보다 이익이 크다면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며 “은행이 고객의 재산을 보호하려다 발생하는 불만이나 문제는 제도화를 통해 수용하는 문화가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대한 여러 직원이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위해 당국 차원의 통일된 매뉴얼을 제공하는 방안은 충분히 고민해볼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체계적으로 지속해 나가야 한다”며 “금융사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대응 매뉴얼을 고도화해 가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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