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국가폭력 시효'비극…'7번방의 비밀' 실제 주인공도 피해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

다른 기사 보기

  • 청와대

  • 입력 2026.03.31 08:00

  • 수정 2026.03.31 08:19

  • 댓글 0

고 정원섭 목사 26억 배상 판결, 시효 지나 못받아

이재명 대통령 "시효 배제, 이른 시일 내 현실로"

"제주 4·3, 광주 5·18, 12·3 사태 다시 없게" 강조

영화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성폭행범 몰려

15년 옥살이 끝, 36년 만에 "무죄"받고 배상 판결

양승태·박근혜 정권, 시효 당겨 열흘 지났다고 "무효"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제주 4·3 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에서 작성한 방명록. 이재명 대통령은 "제주 4·3을 기억하며 국가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해, 민형사 시효제도를 폐기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2026.3.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30일 국가폭력의 형사 공소시효·민사 소멸시효 배제 추진과 관련해 "아주 이른 시일 내에 그 약속을 현실로 만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제주 한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제가 제주 4·3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해 그때마다 약속했지만, 아직 그 약속을 못 지키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날 4·3 평화공원 참배 및 희생자 유족 오찬 간담회에 이어 이날 타운홀 미팅에서도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을 조속히 재추진하겠다고 거듭 강조한 것이다.

해당 법안은 2024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이 대통령은 "아주 오래된 생각이었는데 당 대표를 하면서 구체화해 입법으로 통과됐지만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며 "이제 대통령이 됐고 국회가 다수 의석(을 가졌으니) 이제는 가능하겠죠"라고 언급했다. 법안 취지를 두고는 "4·3과 광주 5·18, 12·3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형사 공소시효 폐지에 대해서는 "나치 전범처럼 죽을 때까지 반드시 책임을 묻고, 평생 쫓아다니며 추적 조사·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며 "공직자들이 역사와 국민과 국가에 두려움을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사 소멸시효 배제와 관련해서는 "자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할 수 있지만, 가해자의 재산을 상속받아서 그것을 누릴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상속 자산의 범위 내에서는 자손도 연대 책임을 지게 하자"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4·3 사건에 대해 "대규모 국가폭력의 첫 출발점 같은 사건"이라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도 국가로부터 보호받기는커녕 오히려 가해를 당했다"고 규정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야만적 사회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그러려면 헌법이 명시하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나라', 민주주의라는 게 확고하게 정착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아울러 "4·3 사건과 같은 국가 폭력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첫째로 그 적나라한 실상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소위 진상규명"이라며 "또 그에 대한 보상과 책임이 분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가폭력 범죄 시효 배제법 재발의 필요한 이유

많은 언론매체들이 이 대통령이 국가폭력 범죄 시효 배제법 재발의를 거듭 강조했다는 사실만 전달했지, 그 의미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아 아쉬웠다. 암울한 시절이 한두 해가 아니어서 억울한 사례가 숱하게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개봉해 큰 웃음과 감동을 안긴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제 주인공인 고 정원섭 목사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정씨는 1972년 9월 27일 강원도 춘천의 한 논둑에서 성폭행 당해 숨진 채로 발견된 파출소장의 아홉 살 딸 살해범으로 몰렸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며 경찰에 열흘 안에 범인을 검거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기한 마감 전날 춘천경찰서는 근처 만화가게 주인이던 정씨를 검거했다.

그는 영화 주인공 용구(류승룡)처럼 지적 장애인은 아니었으나 서슬 퍼런 공권력의 고문과 협박을 이기지 못해 허위 자백을 했다. 사건 당일 명백한 알리바이가 있었지만, 거꾸로 매달려 물고문을 당하니 거짓으로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듬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모범수로 복역해 1987년 12월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한신대를 1960년 졸업한 그는 가정이 풍비박산나는 와중에도 다시 신학 공부에 열중해 1991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2007년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권고로 재심이 열려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핵심 물증 날조, 증인 조작 등의 진상이 드러났다. 영화 개봉을 2년 앞둔 2011년에 드디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2011년 무죄 판결을 받고 누명을 벗은 고 정원섭 목사. 당시 벌써 77세였다. 연합뉴스

무려 39년 만에 누명을 벗었으나, 국가로부터 한 푼의 배상도 받지 못했다. 정 목사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는데 2014년 1월 23일 서울고법 민사8부는 소멸시효 기간이 열흘 지났다며 그와 가족에게 손해배상금 26억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판결이 뒤집힌 이유는 전해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12일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과거사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전까지 민법에 따라 3년으로 통용되던 소멸시효 기간을 뜬금없이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로 못박아 버렸다. 정씨는 1심 때 문제가 되지 않았던 소멸시효가 적용되면서 결국 한 푼의 배상금도 받지 못하게 됐다. 상고까지 했으나 같은 해 5월 29일 상고심도 마찬가지였다.

정씨 측은 2014년 8월 국가배상 관련 판결 취소를 요구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으나 2020년 11월 26일 기각됐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뒤에야 박근혜 정권과 교감 끝에 벌어진 일임이 밝혀졌다. 2015년에 작성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협상추진 전략'과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이 폭로돼 '합리적 범위 내에서 과거사 정립'이란 명분으로 국가배상을 가로막으려는 의도에서 실행된 일임이 드러났다.

자서전 수필에 "그 사건만 생각하면 창자가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고 원통해 하던 정씨는 2021년 3월 28일, 87세를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뜨고 말았다. 국가가 폭력을 가하고 그 배상 책임마저 외면해 평범했던 남자의 일생과 가족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린 셈이었다.

 

한겨레신문 2021년 3월 31일 기사

4·3 완전한 명예 회복 위한 제도 개선 방향 제시

진압 공로자 서훈 취소 근거 마련, 유족 지원 등

이 대통령은 4·3의 완전한 명예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개선 방향도 제시했다. 주요 과제로 4·3 진압 공로 서훈 취소 근거 마련, 희생자 유해 신원 확인 강화, 유족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 등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참배에 앞서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서도 국가폭력 가해자에 대한 서훈 취소 추진 의지를 밝혔다. 앞서 제주4·3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한 인물로 기록된 고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 논란과 관련해 국가보훈부에 서훈 취소 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그는 “고문과 사건 조작, 사법살인 등 최악의 국가폭력 범죄자들에게 수여된 훈·포장을 박탈하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당연한 조치”라며 “국가폭력 범죄의 형사 공소시효와 민사 소멸시효 배제 법안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문도 모른 채 죽창에 찔리고 카빈총에 맞고 생매장당해 숨진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독재정권 아래 고문과 간첩 조작의 공로로 포상을 받은 수사 관계자들의 서훈을 취소하기 위해 첫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청은 이달 초부터 1945년 창설 이래 경찰관들에게 수여된 정부 포상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 7만여 개의 공적 사유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국가 공권력을 불합리하게 행사한 사례들이 취소 대상"이라며 "그동안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신군부 협력자에 대한 조사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공권력 남용과 관련해서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제주한라대학교 한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타운홀미팅 '제주의 마음을 듣다'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3.30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또 4·3의 완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왜곡과 폄훼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국회와 협의해 제도를 정비하고, 9차 희생자·유족 신고 기간과 가족관계 작성·정정, 혼인·입양 특례, 보상 신청 기간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출생 신고 전 가족 사망 등으로 왜곡된 가족관계로 살아온 유족들이 호적 정정을 통해 본래 가족을 되찾게 된 사례를 언급하며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가족관계 정정의 확대 적용에도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4·3 기록물의 체계적 관리와 평화 상징화를 위한 아카이브 기록관 건립 추진 의지도 밝혔다. 그는 “4월이 되면 우리는 추모와 애도를 이야기하지만, 제주도민이 보여준 것은 극복과 회복의 역사”라며 “마을이 불타고 식량이 고갈된 극한 상황에서도 제주 공동체는 끝내 다시 일어섰다”고 말했다. 이어 “4·3의 가치인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이 우리 사회와 세계로 확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오랜 세월 아픔을 안고 살아온 유족들을 대통령이 직접 찾아 위로해 준 것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4·3 왜곡·폄훼 처벌을 위한 특별법 개정, 공소시효 폐지, 신고 기간 연장 등 유족들이 기다려 온 과제가 제시된 만큼 중앙정부, 국회와 협력해 조속히 현실화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