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신입 7만8241명 건보료 분석해보니

등록 : 2015.02.01 22:02수정 : 2015.02.02 10:01

툴바메뉴

기사공유하기

보내기
 

[월요 리포트]신입 7만8241명 건보료 분석해보니
취직 전보다 더 자주 병원에 가
진료비 지출 평균 10%가량 늘어

자주 속이 쓰리고 소화가 안된다. 전에 없던 일이다. 어깨와 목은 갈수록 뻣뻣해지고 뒷목을 잡는 날이 많다. 감기는 왜 이리 자주 걸리는지….

 

신입사원이 아프다.

 

최악의 취업난을 뚫었으니 ‘불행 끝 행복 시작?’ 아니었다. ‘지옥’을 빠져나왔다고 좋아했는데, 정작 기다리고 있던 건 새로운 ‘전쟁터’다. 낯선 전장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상흔을 남긴다. 악전고투다. 지금도 입사지원서를 고쳐 쓰는 후배나 동료들은 ‘행복한 아우성’이라 핀잔할지 모른다. 그러나 신입사원들이 꿈에 부푼 직장에서 확인하는 건 “여전히 미생”이라는 사실이다.

 

<한겨레>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갓 직장에 들어간 신입사원의 입사 전후 1년간의 병원 이용 행태를 추적해 보니, 취직 전에 비해 입사 뒤에 더 자주 병원을 찾았고 그만큼 진료비 지출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6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자격을 취득한 1977~1987년생(2012년 현재 25~35살) 7만8241명의 병원 이용 행태를 분석했다. 이들이 입사 뒤 1년(2012년 7월~2013년 6월) 동안 쓴 1인당 평균 진료비(건보공단 지급+개인 부담금)는 29만원이다. 입사 직전 1년(2011년 7월~2012년 6월) 동안 지출한 진료비 26만2000원보다 10%가량(2만8000원) 많았다. 입사 전엔 77%(6만429명)가 병원을 찾았지만 입사 뒤엔 그 비율이 82%(6만4626명)로 높아졌다. 취직 전에는 병원을 찾지 않은 신입사원 100명에 5명꼴로 입사 뒤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뜻이다.

 

입사 전후를 가리지 않고 진료 빈도 상위 1~3위를 차지한 질병은 급성기관지염, 편도염, 급성상기도감염이다. 모두 감기와 관련된 증상들로 볼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취직 뒤 이런 질병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3.4% 늘었다는 사실이다. 직장생활 뒤 스트레스가 쌓여 발병 빈도를 높이거나 새로 병을 유발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는 흔히 복통·설사 증상으로 나타나는 위장염이 신입사원이 된 뒤 무려 31.6%나 증가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속쓰림 증상인 위염 및 십이지장염을 앓는 직장인도 11.5%가 증가했다.

 

추정은 건보공단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위장 등 소화 분야 장기는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신입 직원들이 새로운 일을 하느라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업무가 바빠 생활이 불규칙해지면 위염이나 소화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잦은 회식과 과음·폭식·흡연도 위염 등의 원인이 된다”고 짚었다. 김형렬 가톨릭대 교수(직업환경의학)는 “신입사원들이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어난 건 취직 뒤 경제적 여유가 생겨 이전엔 참고 넘기던 질병도 병원 치료를 받게 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신입사원들이 취직 전에 견줘 더 자주 병원을 찾고 진료비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겨레>는 몇몇 새내기 직장인들을 만나 병을 부르는 그들의 업무 환경, 생활 방식, 고충을 들어봤다. 야근과 과로, 업무상 음주, 인간관계와 조직 적응 과정에서 비롯된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몸에 투영된 결과로 요약된다.

 

 

부서 회식에 술접대까지
일주일에 사나흘은 만취

 

 

바쁠땐 며칠씩 제대로 못자
눈치 보여 아파도 휴가 못내

 

 

진상 민원인에도 고분고분
인사불이익 당할라 꾹 참아

 

 

아프다 말해도 대책 안세워
회사서 소모품 취급당해 절망

 

 

1년씩 계약 연장해야 돼 불안
‘월급이 아깝다’ 무시 당하기도

 

 

 

①대기업 사원(27·남)/과음/2014년 9월~

 

총무팀에서 근무한다. 인허가나 규제를 맡은 공무원에게 술자리 접대를 하는 일이 잦다. 일주일에 한번은 부서 회식에 참가해야 한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업무상 술자리는 고역이다. 마음이 편치 않고 술 마시는 양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없어서다. 무엇보다 긴장해야 한다. ‘갑’을 앞에 두고 먼저 흐트러져는 안 된다. 그렇게 일주일에 나흘 정도 술을 마신다. 그 가운데 사흘은 만취할 때까지 마신다.

 

지난해 말 건강검진을 받기 전 선배들의 조언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문진표 음주 습관 항목에 음주 횟수나 주량을 사실대로 적지 말라는 거였다. 나중에 몸에 이상이 생기면 일 때문이 아니라 원래 술을 좋아해 많이 마신 탓이라며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조언에 격하게 공감한다. 하지만 자괴감이 스멀스멀 온몸을 벌레처럼 기어다닌다. 이렇게 살려고 취업하려 안달복달했나 싶다.

 

②구청 공무원(27·여)/감정노동/2013년 12월~

 

일반직 8급으로 서울의 한 구청에서 일한다. 첫 보직으로 10개월 동안 민원 처리 업무를 맡았다.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민원인 탓에 곤란할 때가 많다. 함께 화를 내지도 못한다. ‘불친절’ 공무원으로 찍혀 인사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서다. 행동 하나하나가 (구청 공무원의) 대표성을 띤다고 생각하니 행여 말실수라도 할까봐 긴장을 떨치지 못한다. 법과 절차를 따라야 하는데다 업무마저 익숙지 않아 대기 줄이 길어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가 낸 세금으로 이런 식으로 굼뜨고 불친절하게 민원을 처리하느냐”며 호통을 치는 사람이 꼭 있다. 어김없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긴 한데, 직접 당해보니 달랐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민원인이 욕을 하거나 언성을 높이면 긴장 탓에 소화가 안되고 오후 서너시면 편두통이 심해진다. 찬 공기를 쐬어도 효과가 없어 약을 먹을 때가 많다. 그런 날은 퇴근 뒤 집에 돌아와서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귀가 계속 아파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③티브이(TV) 드라마 프로듀서(28·남)/밤샘노동·과로/2013년 12월~

 

촬영에 들어가면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까지 쉬는 날이 없다. 일과가 아침 6시께 시작해 일러도 다음날 새벽 1시는 돼야 끝난다. 잠은 두세시간밖에 못 잔다. 그마저도 입사 초기에는 중간에 서너번씩 잠에서 깼다. 현장에 늦게 도착하는 악몽에 시달려서다. 일이 새벽 서너시까지 이어지는 날도 흔하다. 그런 날은 잠은커녕 찜질방에 들러 몸만 씻고 출근해야 한다.

 

학생 땐 규칙적으로 지냈다. 그러다 취직 뒤 하루 두세시간밖에 잘 수 없는 현장에 내던져지니 적응이 어렵다. 입사한 지 서너달 됐을 땐 촬영 나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주저앉기도 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안정이 필요하단다. 선배들도 좀 쉬라고 권한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내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이 없다. 제때 하지 않으면 일이 자꾸 쌓이게 된다. 구멍이 나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눈치를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요즘에도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많다. 갈수록 머리가 몽롱하고 몸은 나른해진다. 추운 날씨에도 종일 서서 버텨야 하니 온몸이 욱신거린다.

 

④중소기업 사원(30·남)/인간관계 스트레스/2012년 8월~2013년 7월

 

대전의 한 의료기기 중소기업 기획실에서 1년가량 일하다 건강이 나빠져 결국 퇴사했다. 지금은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입사할 때 받은 건강진단에선 아무 이상이 없었다.

 

늘 아침 8시 전에 출근했고, 밤 9시 전엔 퇴근해 본 적이 없다. 하루 13시간씩 일했다. 퇴사 두달 전쯤 혈압이 160까지 올라갔다. 2층에서 5층까지도 걸어서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심한 호흡곤란 증상이 왔다. 의사는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며 무조건 쉬라고 했다. 일을 그만두라는 선고나 다름없었다. 고혈압 치료를 받느라 병원비와 약값으로 두달간 20만원을 썼다.

 

회사에 사정을 설명했는데도 대책을 세워주지 않았다. 사람을 늘리지도, 업무를 다른 사람한테 나눠주지도 않았다. 엔지니어 위주의 회사라 홍보 담당인 나는 업무 배정이나 연봉 협상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그만큼 반감도 컸다. 내 일에 대한 주변의 평가도 피상적이었고 종종 시기와 질투도 받았다. 몸도 몸이지만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를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회사와 상사들의 태도에 절망했다. 그래서 사직서를 냈다.

 

⑤국립대 기간제 비서(26·여)/모멸감과 고용 불안/2013년 10월~

 

국립대학 산하기관에서 비서로 일한다. 1년 계약을 했고 지난해 10월에 다시 1년 연장계약을 했어야 했는데 연봉 협상 문제로 아직 계약서를 새로 쓰지 못하고 있다. 행정실장은 바빠서 그렇다며 계약을 미룬다. 추가근무수당도 3개월째 받지 못하고 있다. 계약을 하지 않은 채로 계속 일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고 하던데, 일이 어찌 될지 몰라 불안하다.

 

상사가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러지 않는데 내 인사는 일부러 받지 않는 거 같다. “하는 일에 비해 돈을 많이 받는다”며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기도 한다. ‘알아서 그만두라’는 거 같기도 하고…. 같은 대학의 다른 기관 비서들은 월급을 180만원까지 받는다는데, 내겐 120만원도 아깝다는 거다.

 

입사하고 두달 만에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몸이 붓더니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심야에 병원 응급실에 가야 했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갑자기 스트레스가 집중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더라. 한달 가까이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나서야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