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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언어'로 연설한 유승민

 

증세 공론화 치고 나오고 재벌 정조준... 환영 논평낸 야당, 속내는 복잡

15.04.08 17:51l최종 업데이트 15.04.08 17:5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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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친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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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명연설이었다." -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 야당의 찬사가 쏟아졌다. 보통 교섭단체대표 연설이 끝나면 여야를 막론하고 서로에게 혹평을 쏟아냈던 과거를 감안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모습이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도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유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찬사를 보낸다"라고 썼다. 

야당 찬사 받은 유승민의 연설

야당의 반색에는 이유가 있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오랜 정치적 소신이었던 '경제 정책 좌클릭'을 새누리당의 혁신 노선으로 제시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라며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 받는 서민·중산층의 편에 서겠다"라고 밝혔다. 

고통 받는 서민의 범주로 빈곤층·실업자·비정규직·신용불량자·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장애인·무의탁노인·결식아동·다문화가정·북한이탈주민 등을 일일이 언급하면서 "이런 어려운 분들에게 노선과 정책의 새로운 지향을 두고, 그 분들의 통증을 같이 느끼며 그 분들의 행복을 위해 당이 존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원내대표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지키는 것이 보수의 책무이듯이, 심각한 양극화로 인한 내부의 붕괴 위험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것도 보수의 책무"라며 "어제의 새누리당이 경제성장과 자유시장경제에 치우친 정당이었다면 내일의 새누리당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유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은 야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표현들인 '가진 자'. '기득권층', '공동체', '사회적 경제' 등 '야당의 언어'로 채워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134조5000억 원의 공약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과도 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10년 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양극화를 말했다"라며 "양극화 해소를 시대적 과제로 제시했던 그 분의 통찰을 저는 높이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증세 공론화 치고 나오고 재벌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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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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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원내대표는 특히 양극화 해소를 위한 '중부담-중복지'를 지향해야 할 목표로 제시하면서 야당도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머뭇거리고 있었던 증세의 필요성을 과감하게 언급했다. 우선 증세 대상은 대기업과 부자들로 못박았다.  

그는 "가진 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원칙, 법인세도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 소득과 자산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보편적인 원칙까지 고려하면서 세금에 대한 합의에 노력해야 한다"라며 "우리나라의 부자와 대기업은 그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세금을 떳떳하게 더 내고 더 존경받는 선진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조세의 형평성이 확보돼야만 중산층에 대한 증세 논의가 가능해 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벌가들의 도덕적 해이도 정조준했다. 유 원내대표는 "재벌·대기업은 지난날 정부의 특혜와 국민의 희생으로 오늘의 성장을 이뤘다, 일가친척에게 돈벌이가 되는 구내식당까지 내주고 동네 자영업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끄러운 행태는 스스로 거두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천민자본주의의 단계를 벗어나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의 아픔과 2차·3차 하도급 업체의 아픔을 알고 이런 문제의 해결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존경받는 한국의 대기업상으로 거듭나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그는 또 "재벌그룹 총수 일가와 임원들의 횡령·배임·뇌물·탈세 등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들, 보통 기업인들과 똑같이 처벌해야 한다"라며 "그런 점에서 재벌들의 사면·복권·가석방을 일반 시민들과 다르게 취급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뿌리 있는 유승민의 좌클릭... 김무성·최경환과 갈등 우려

집권여당의 원내 사령탑인 유 원내대표의 '좌클릭' 선언은 갑작스런 게 아니라 뿌리가 있다. 

그는 지난 2011년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재벌·대기업은 수십 조 원의 이익을 보는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게 보수냐? 4대강에는 22조 원이나 쏟아 부으면서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비정규직, 쪽방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기초생활보호도 못 받는 분들을 위해서는 예산이 없다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내뱉는 것이 보수냐"라며 중도를 향한 보수의 '좌클릭'을 주장한 바 있다. 

또 "수천 억을 버는 재벌과 100만 원이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들, 이 양극을 두고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도, 국민통합을 이룰 수도 없다"라며 무상급식·무상보육 등 야권이 주장해 왔던 진보 의제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당의 지향점을 부자, 대기업이 아니라 제일 고통 받는 국민들한테 두자"는 '용감한 개혁'을 기치로, 당내 주류인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이주영 의원을 제쳤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의 오랜 소신이 실제 보수 여당의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유 원내대표가 이날 연설에서 밝힌 법인세 인상 등 증세, 복지 확대, 재벌 개혁에 대한 기조는 그동안 새누리당이 견지해온 입장과는 차이가 크다. 

김무성 대표는 물론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끌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와도 생각 차가 적지 않아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유승민의 좌클릭'에 여권 내부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겉으로는 '환영'의 뜻을 밝힌 야당도 속으로는 긴장하는 모습이다. 속내도 복잡하다. 실제 새누리당의 변화가 시작되면 야당이 틀어쥐고 있었던 정책 영역을 새누리당에 잠식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야당이 머뭇머뭇 하고 있을 때 유 원내대표가 증세 공론화 문제까지 먼저 치고 나왔다"라며 "야당이 반색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도 여당의 혁신 움직임에 대응하는 전략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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