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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차이나'? 사실은 북한 사람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0/19 11:10
  • 수정일
    2015/10/19 11: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강주원의 '국경 읽기'] 단둥, 또 하나의 개성 공단
강주원 인류학자 2015.10.19 09:08:55
 
 
조정래의 <정글만리>에 표현된 단둥과 개성공단

2010년 5.24 조치 이후, 출판된 조정래의 <정글만리>(해냄출판사 펴냄, 2013년) 3권의 한 대목이다.

"저 만주 쪽에서 우리 회사 일을 맡고 있는 조선족이 한 명 있는데, 최근에 연락이 왔어요. 압록강변 단둥 시 인근의 여러 공장에 북한 여성들이 와서 일하고 있다는 것예요. 임금도 싸고 같은 동포이고 하니 우리 일을 맡기는 게 어떻겠냐고요." (296쪽)

사업가로서 구미는 당기지만, 남북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소설의 주인공은 반대를 한다.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북한과의 관계가 거의 파탄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도 중단되고, 민간 차원의 지원도 전혀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게 개성공단뿐입니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괜히 북쪽 여성들에게 일거리 맡겼다간 크게 덤터기 쓸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트집 잡으려 들면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기업인은 기업만 해야 합니다." (296~297쪽)

조정래는 2010년 전후부터 단둥의 중국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소설이지만 정확한 현실 반영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의견은 나의 단둥 참여 관찰 내용과 사뭇 다르다. 한국의 기업가 중에는 남북의 막힌 현실 앞에서 두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중국 단동에서 북한 노동자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고 추진해 왔다. 그 결과 5.24 조치 이후에도, 단둥은 남북 모두에게 "또 하나의 개성공단"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과 북한이 함께 살아가는 그림
 

▲ 단둥의 북한 노동자들이 작업한 의류. 일본으로 수출되었다(2013년). ⓒ강주원

2006~2007년 단둥에 거주하면서 참여 관찰을 할 당시, 나의 주연구 대상인 북한 사람의 범주는 소위 "무역 일꾼", 북한 식당에 근무하는 "북한 여성 복무원", 도강증을 통해서 국경을 넘나드는 신의주 출신의 "단기 체류자" 등이었다. 하지만 2010년 전후부터, 이들을 포함해서 단둥에 갈 때마다 관심을 갖게 된 대상은 중국 공장에 일하는 "북한 노동자"이다. 2015년 그들의 규모는 약 2만여 명이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북한 사람을 만나면 안 된다. 5.24 조치를 위반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5.24 조치 이후, 북한 노동자와 관련된 참여 관찰 내용과 찍은 사진들이 있다고 해도, 이 글에서 있는 그대로 전부를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기록하는 것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가능하다. 다른 방식으로 단둥의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사례는 많다. 단둥에서 남북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한 것처럼.

단둥의 중국 공장을 이용하는 한국 사업가들의 경제 행위에는 북한 노동자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글만리> 소설 속 사업가의 판단과는 달리, 현실에서 한국의 사업가들은 단둥에서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2014년 겨울, 나는 단둥의 북한 노동자를 통해서 의류 생산을 모색하는 재미 동포 사업가와 동행을 했다. 선양에 마중 나온 지인은 자신의 공장에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조선족 B"였다. 단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와 <정글만리> 주인공의 의견과 비교를 해보자.

"며칠 전에도 한국에서 사업가들이 제 공장에 왔다 갔습니다. 제 공장에는 50명의 조선(북한)기능공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공장 그러니까 3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몇 개 공장을 더 소개해주었습니다. 저기 고속도로 너머에 보이는 저 공장도 몇 년 전부터 조선 기능공이 일을 하고 있는데, 한국의 유명한 대기업의 000 브랜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과 관련된 봉제 그리고 수산물 공장들이 단둥 시내 곳곳에 있습니다."

"한국 사업가들이 많이 질문을 해요. 북한 노동자들이 일을 하는데, 한국에 수출을 할 때 아무 문제가 없는지! 저는 간단히 말을 합니다. 한국 사람이 중국 공장을 운영하는 중국 사람과 계약을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저도 조선족이지만 중국 사람입니다. 단둥의 중국 공장에서 조선 기능공들이 만든 옷들이 한국, 미국, 일본으로 다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이죠. 단둥의 상황을 잘 모르는 한국 사람들의 막힌 생각하고 다르죠. 제가 알고 지내는 한국 사업가들은 이 구조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그 분들 가운데는 여전히 평양에서도 한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도 문제가 없고 방법이 다 있습니다. 5.24 조치가 걱정이 되시는 어떤 분은 한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을 하더군요. 그러면 얼마든지 평양에서 의류 생산을 할 수 있다고!"

그의 말을 들여다보면, 한국 사업가들도 단둥의 중국 공장을 활용해서 사업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지만 중국 공장이다. 즉, 최종적으로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 사이의 경제 행위이다. 생산 현황 체크에 한국 기업가는 북한 노동자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 조선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5.24 조치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영역으로 알고 있다.

2015년 현재, 단둥의 현주소는 정치외교적인 효과와는 별도로 최소한 경제적 측면에서 5.24조치의 실효성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단둥은 북한 지역이 아닌 중국에서 한국 사람들이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해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토대가 있는 곳이다. 5.24 조치와 상관없이, 단둥은 4~5년 사이에 남북 모두에게 "또 하나의 개성공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사람을 포함한 사업가들의 눈에 북한 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단둥의 중국 공장은 경제적인 면에서 매력적인 공간이다.
 

▲ 중국 공장의 사무실에 걸려있는 북한 달력이다(2015년). ⓒ강주원

 

▲ 북한 노동자의 계약서 일부분이다(2015년). ⓒ강주원

 

▲ 북한 노동자를 채용할 목적으로 리모델링 중인 중국 공장 내부(2014년). ⓒ강주원


단둥, 북한 노동자가 담근 김치를 맛볼 수 있는 곳 또…

다음날, 조선족 B는 우리를 단둥 시내 외곽에 위치한 자신의 공장으로 안내를 했다. 가는 도중에 단둥에 10년 넘게 거주하는 한국 사람 C도 동행을 했다. 그는 조선족 B가 공식적으로 대행을 해주는 덕분에, 5년 전과 마찬가지로 현재(2015년)에도 평양에서 소량의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이번에는 한국 사람 C가 끊임없이, 잠재적인 사업 파트너인 재미 동포에게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공장들의 위치와 상황을 설명해준다.

"길 건너 공장은 300명의 북한 노동자가 있고 주로 미국에 판매되는 의류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저 공장은 북한 노동자들이 1500명이 넘는데, 한국과 가까운 나라로 수출되는 고급 양복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가는 공장은 제가 매일 가는 공장이죠. 생산 현황 체크 때문에."

공장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들 가운데, 나와 한국 사람 C는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곳에는 북한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창밖 너머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북한 여성 노동자 몇 명이 지나가는 사이에, 미국 국적인 재미 동포와 조선족만이 중국 공장으로 들어갔다.

공장 견학을 마친 재미 동포는 "평양뿐만 아니라 중국 단둥에서도 북한 노동자의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고 나에게 조용히 이야기 하면서 나 대신에 나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카메라 화면에는 북한노동자들이 "별들만이 안다"라는 문구 아래에서 옷들을 만들고 있었다.

조선족 C는 내 마음을 알았던 것 같다. 공식적으로 내가 들어가지 않은 공장의 북한 노동자들이 만든 "북한식 김치" 한포기를 포장해왔다. 나는 그들이 담근 김치 맛만 보았지만, 그들은 한국에서 판매될 옷을 만들고 있었다. 한편, 한국의 연구자들은 현장에서 뛰고 있는 기업가들과는 다른 진단을 한다.

"북한 노무 인력의 월급은 약 월 1900~2000위안인 데 비해 중국 동북 지역 노무자의 월급은 2000~2500위안이어서 인건비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나, 월급 외 숙박 시설, 식당 등 부대 시설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기업 입장에서 노동 비용 절감효과는 크지 않음" (<중국 뉴노멀 시대 북중 경협의 구조적 변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5년 9월 2일)

'과연 그럴까? 사업가들이 이익이 남지 않는 일에 투자를 할까? 2010년 전후부터, 북한 노동자를 지속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절감 효과가 크지 않는데, 매년 고용 규모가 왜 늘어날까?'라는 의문을 품어본다. 단둥 사람들은 "중국 노동력 부족"만으로 말하지 않는다.

"요즘 올라서 북한 노동자의 봉급은 300~400달러에 형성되고 있다. 기타 비용(식비와 기숙사 운영비) 등을 포함하면 중국 노동자의 1인 고용에 드는 비용의 약 80% 전후이다. 중국 노동자와 달리 고용 인원의 안정성이 확보된다. 중국 노동자들의 4대 보험 비용 약 600위안이 절감된다. 그리고 손재주가 좋아서 작업 능률이 좋고 야근이 보장된다. 경제적으로 따져보면 중국 노동자들보다 최소한 약 1.5배에서 1.7배 효과가 있다."

이러한 이득을 아는 한국 기업가 혹은 한국과 연결된 중국 기업가들은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서 의류, 수산물, 전자제품을 생산, 수출하고 있다. 소설과 현실이 다르고 연구자와 경제 현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판단이 다르다.

남북 교류의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개성공단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선입견과 다른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는 지역이 단둥이다. <정글만리>의 주인공이 풍문으로만 북한 노동자를 듣지 않고, 단둥을 찾았다면 소설에 다른 이야기가 추가되지 않았을까? 다음 글에 '단둥에 북한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풀어보겠다.
 

▲ 조선족은 한국 사업가와 북한 노동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곤 한다(2014년). ⓒ강주원

 

▲ 단둥의 중국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담근 김치(2014년). ⓒ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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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원 박사는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 사람 그리고 탈북자를 동시에 연구하는 인류학자다.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5개월 동안 단둥에서 살면서 현장 연구를 한 것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단둥을 수없이 방문하며 수백 명의 단둥 사람과 인간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국내외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의 국경 취재 및 관광을 자문하는 일도 병행 중이다.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펴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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