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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 노조 파업투쟁 1895일째... 비정규직 최장기 농성 기록

종탑 생활 3주째... "부모님은 남미여행 간 줄 알아요"

재능교육 노조 파업투쟁 1895일째... 비정규직 최장기 농성 기록

13.02.26 18:34l최종 업데이트 13.02.26 18:34l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소속 해고노동자인 여민희(41)씨와 오수영(40)씨가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가 해고자 전원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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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9시. 재능교육 노조(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오수영(40)·여민희(41)씨가 성당 종탑에서 아침을 맞은 지 정확히 21일째가 됐다. 지난 6일 오씨와 여씨는 약 25m 높이의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 꼭대기에 올랐다.

오씨는 26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거의 매일 칼바람에 노출되다 보니 얼굴과 손발이 처음 올라갔을 때보다 부었다"고 하소연했다. 여씨의 발가락에는 가벼운 동상이 생겼다고 한다.

성당 종탑 생활이 하루씩 늘어갈 때마다 가족들의 걱정도 커져간다. 지난 주말 엄마를 만나러 성당 앞까지 찾아온 오씨의 아들은 집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오씨는 "아들이 속이 상한 것 같다"며 "설 연휴 안에는 이 생활이 끝날 거라 기대했는데, 상황이 장기화될 여지가 보이니 다들 마음고생을 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설에는 남편 혼자 친정에 다녀왔는데, 두 분이 제 생활을 알고서 충격 받으실까봐 거짓말을 했대요. 제가 회사에서 상을 받게 돼 남미로 여행 갔다고요. 그런데 걱정이에요.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라 공중파 방송 뉴스에 제 모습이 나올 수도 있어서…. 부모님이 아시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재능교육 노조는 이날 '특별'하지만 '반갑지 않은' 기록을 세우게 됐다. 노조의 농성이 1895일째에 접어들었기 때문. 이로써 재능교육 노조는 비정규직 최장기 농성 사업장으로 기록된 기륭전자와 '타이 기록'을 세우게 됐다.

사실 여성노동자인 오씨와 여씨가 종탑에 오른 이유는 '최장기'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노조가 비정규직 최장기 농성기록에 오르게 되는 상황만큼은 막겠다"며 종탑에 올랐지만, 결국 이들의 고공농성은 기록 경신을 막지 못하게 됐다.

'최장기' 꼬리표 막기 위해 성당 종탑에 올랐지만...

재능교육 노조의 농성은 지난 2007년 12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노조는 재능교육의 임금삭감안에 반발하면서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회사는 '학습지 교사는 법적으로 노조를 결성할 수 없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며 단체협약을 거부, 사실상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노조활동을 한 조합원 12명이 해고됐다. 노조의 농성이 본격화된 시점이다. 노사 양측은 조합원 구속,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손해배상 소송 등을 거치며 갈등의 골이 깊어져갔다. 이 가운데 조합원 이지현씨가 암으로 숨졌다.

농성이 5년째 접어든 2012년 8월, 노사는 교섭을 재개했다. 그러나 고 이지현 조합원의 명예복직과 단체협약 체결 여부 등을 두고 타협점을 찾지 못해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현재 노조는 혜화동성당 건너편 재능교육 사옥 앞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며 출·퇴근 및 점심시간에 맞춰 집회를 한다. 종탑 위의 두 조합원은 무선 마이크 등으로 집회에 참여하거나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일상을 알린다.

이들이 고공농성에 돌입한 후 회사에서는 노조에 교섭 재개 공문을 보냈다. 재능교육 노조도 지난주 교섭단 구성을 마쳤다. 오씨는 "이번주 안으로 회사와 교섭이 진행될 수도 있다"며 "해고자 12명 전원복직(고 이지현 조합원 포함)과 단체협약 체결이 관철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내일(27일)부터 재능교육 노조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비정규직 최장기 농성 사업장으로서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날마다 늘어나는 농성일수가 멈추는 때는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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