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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놈’이 잘되는 세상, 국민은 절망한다

 

‘나쁜놈’이 잘되는 세상, 국민은 절망한다
 
[이기명 칼럼] 절망의 깊이와 희망의 높이는 얼마나 깊고 높을까
 
이기명 | 2013-02-25 23:28:4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절망은 왜 깊이로 말하고 희망은 왜 높이로 표현할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대단히 안 된 말이지만 요금 절망의 깊이가 점점 깊어간다. 그 동안 여러 번 지적을 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은 매우 중요하고 국가도 다를 바가 없기에 더욱 잘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대선이 끝나고 당선자가 결정되고 그는 5년 동안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로 국민과 함께 할 것이다. 정말 잘해야 한다. 국민 모두의 소망이다.

대통령은 그 막강한 권한과 막중한 책임으로서 국민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그가 잘못하면 국민은 불행해진다. 이는 지난 정치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국민들은 지지 여부를 떠나 이제 좋은 정치를 펼쳐주기를 갈망하는 것이며 지극히 당연한 소망이다.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요즘 언론을 보면 몹시 답답한 모양이다. 조중동을 봐도 다를 바가 없다. 삼겹살 소주잔을 주고받는 늙은이들 입에서도 고운 말을 들을 수가 없다. 그들의 갈라진 목소리에서 절망의 깊이를 느낀다. 희망의 높이를 볼 수가 없다.

그들이 절망하는 이유를 늙은이 불평이라고 단순하게 치부할 수도 있다. 늙으면 병들게 마련이고 병들면 병원 찾게 마련이다. 그들 늙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이 바로 박근혜 후보였다. 돈 걱정 없이 병원에 다닐 수는 없다 해도 늙은이들 배려한 복지혜택은 그야말로 하느님 소리가 절로 날 지경이었다.

합죽이가 된 입이 창피해서 마음놓고 웃지도 못하고 이가 부실해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늙은이들에게 임플란트 무료시술은 천사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지지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소줏잔을 입에 털어 넣으면서 늙은이들이 하는 소리는 한결 같았다.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것이다. 그 말에서 끝도 없이 깊은 절망의 어둠을 보인다. 늙은이들에게 복음이었던 박근혜 공약이 사라졌다.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노년유니온 등 복지·노인단체 회원들이 지난 7일 인수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공약을 지키라고 규탄했다.

 

암ㆍ심장ㆍ뇌혈관ㆍ희귀난치성 등 4대 중증질환에 대해 건강보험 비급여를 포함한 진료비 전부를 나라가 부담한다던 핵심 의료 공약을 포기했다. 당나귀 귀 떼고 뭣 떼면 먹을 게 뭐가 남느냐는 자조의 소리가 처참하다.

65세 이상 모든 늙은이들에게 매달 기초연금 20만원 준다던 공약도 수정되었다. 약속과 신뢰를 생명처럼 여긴다는 박근혜 후보의 공약은 당선인이 된 후 이제는 써 먹을 수 없는 공수표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의 공수표가 국민들에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망의 심연으로 침몰시켰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가.

늙은이들 살아 봤자 거기서 거기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잘못 생각했다. 늙은이 죽으면 뒤 따라 늙은이들 생긴다. 순리는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가 풀린다. 그래야 국민들이 희망의 높이를 볼 수 있다.

‘사람이 먼저다’는 빌려가 써도 좋다

‘대한민국에는 장관 해 먹을 인간이 하나도 없다’. 요즘 흔히 듣는 말이다. 솔직히 언론에 보도되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검증기사를 보거나 청문회에 나온 후보자들의 답변을 듣다 보면 어쩌면 하나같이 저런 인물을 골라다 놓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러기도 참 힘 들었겠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판검사 지냈거나 외국 유학 다녀와 돈 잘 벌어 호의호식하고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이 잘도 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좋은 벼슬을 해야 하는 판인데 그만 발목을 잡는 것이 살아 온 '과거'다. 잘못 쓴 글씨야 지우개로 지우면 되지만 살아 온 과거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다.

마치 필수과목이듯이 이수한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자신과 자식들의 병역문제, 탈세와 재산증식 등은 다들 아는 사실이니 더 들먹거릴 필요가 없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양심의 부재다.

인간이라는 게 참으로 묘한 동물이어서 다른 동물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양심이라는 것은 매우 소중하게 여겨지고 그래서 양심이 없다고 하면 짐승이나 다름이 없다고 한다. 헌데 인간은 때로 양심이 아주 거북스러운 때가 있다. 바로 가책을 받을 때다.

흔히 말하는 게 도둑놈도 양심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양심이 없으면 도둑만도 못하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양심이 없다면 가책을 받을 것도 없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인간만 편하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는 인간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어딘지 다른데가 있다. 가책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밖으로 보이는 것이다.

요즘 국민들이 느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청문회에 나온 고위공직자 후보들의 답변에서 국민들은 거짓을 느끼는 것이다. 총리 후보로 지명됐다가 자진사퇴한 인사나 헌재소장으로 지명되고 청문회에서 그토록 질기게 버티던 이동흡도 결국 자진사퇴를 했다. 마지막으로 소생한 양심의 덕이라고 생각하자.
 

정홍원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도중에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경제부총리나 국방장관, 법무장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국가의 중요한 자리다. 그러기에 이 자리에 후보로 오른 인물들이 청문회에서 더욱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왜 더 흠결이 많은가.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이수해야 할 부끄러운 필수과목은 다 치렀지만 거기에 더해서 리베이트와 전관예우라는 것도 추가됐다. '전관예우'라는 것이 말은 참 점잖고 좋다. 전직 상관을 예의 바르게 대우한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예우 받는 전관이라고 해서 몇 년 사이에 몇 십억의 돈이 생긴다는 것은 옳지 않다. 바로 청문회에 나온 법조인 출신들에게 따라 붙는 '부끄러운 딱지'다. 법무장관이 될 사람이 이 모양이니 이건 말이 안된다.

'나쁜 놈'이 잘되는 세상, 절망은 깊다

또 국방장관이 될 사람이 무기상의 로비스트가 되어 엄청난 부를 쌓고 사단장 시절에는 위문금을 자기 개인통장에 넣고 썼다고 한다. 나타난 것이 이 정도라면 숨어 있는 진실은 얼마나 될까.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이 있으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의 정보기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사람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되려고 한다. 돈이 많은 것은 알지만 강남과 용산에 수백억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법무장관 후보자는 한 달에 1억원이란 수임료를 받았다. 조순형이 말한다. 이런 전관예우를 받은 사람은 법무장관 자격이 없다고.

경제부총리가 되려는 사람의 부친은 일제 경찰출신으로 3.15부정선거 항의 시위자들에게 발포명령을 내렸던 경찰 수뇌부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그건 아버지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감정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촌이 땅 사는 것이 배가 아파서가 아니다. 이들의 부귀영화가 국민을 더욱 더 절망의 심연으로 빠져 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왜 나쁜 놈이 잘되느냐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열린 취임식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국민들의 생각으로는 벌을 받아야 할 인간들이 어떻게 국민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청문회 의자에 앉아 초라하게 자기변명에 급급한 고위공직 후보자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이것이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권의 참모습인가 하여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다.

 

오늘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그런데 새 정부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몇몇 장관은 자리도 없다. 그런데도 장관 후보자들은 이미 내정이 됐다. 이건 마치 출산도 하지 않았는데 애 이름부터 지은 꼴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미 ‘깜깜이 불통’이란 별명을 얻었다. 민주정치는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 여론을 모아 각료들과 함께 최선의 정치를 해야 한다. 내가 결정한 것이니까 따라오라고 하면 따라갈 국민은 아무도 없다. 왜 51.6%의 지지율로 당선이 됐는데 지금 지지율은 44%로 추락했는가. 국민이 야속한가. 어느 경우에도 정치지도자는 국민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려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민을 위하는 결단은 결코 수치스러운 것도 아니며 권위에 손상을 입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민에게 존경을 받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이 실종되었듯이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도 실종됐다. 공약 1순위었던 경제민주화는 반드시 다시 살려내야 한다.

희망이 점점 실종되어 간다. 왜 절망은 깊다고 하고 희망은 높다고 하는가. 당선인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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