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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친구들 만나면,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 할 수 있길”

“먼저 간 친구들 만나면,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 할 수 있길”

 
등록 :2017-01-07 19:46수정 :2017-01-08 10:08
 
세월호 생존학생들 촛불집회서 첫 공개 발언
“7시간 동안 제대로 보고받고 지시했다면…”
“비난받을까 두려워 숨어있었지만 용기낼 것”
새해 첫 촛불집회 주최쪽 추산 전국 64만명 참여
세월호 1000일을 이틀 앞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집회에서 참사 이후 처음 대중 앞에 나타난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이제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월호 1000일을 이틀 앞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집회에서 참사 이후 처음 대중 앞에 나타난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이제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발언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들이 새해 첫 집회 무대에 올라 지난 1000일을 말했다. 생존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시민들 앞에서 발언을 한 건 참사 이후 처음이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생존학생들은 “우리는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게”라는 말을 남겼다.

 

7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1차 촛불 집회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가라’에서 당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9명(김진태, 김준호, 이종범, 박준혁, 설수빈, 양정원, 박도연, 이인서, 장애진)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 대표로 발언을 한 장애진(20)씨는 “시민 여러분 앞에서 온전히 입장을 말씀드리기까지 3년이 걸렸다”며 “많은 시민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이야기를 열었다.

 

장씨는 “저희는 모두 구조된 것이 아니다. 저희는 저희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한다”며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 구하러 온다고해서 그런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게 됐고 평생 볼 수 없게 됐다. 저희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저희가 잘못한 거라면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저희가 나온 것 죄송하고 죄지은 것 같아 유가족 뵙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상징하는 구명조끼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상징하는 구명조끼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월호 참사가 3년 지난 지금 생존학생들의 상처는 무뎌지지 않았다. 장씨는 “단호히 말씀드릴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괜찮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친구 페이스북엔 잔뜩 글이 올라옵니다.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괜히 전화도 해봅니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싶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밤을 새기도 하고 꿈에 나와달라고 간절히 빌면서 잠이 들기도 합니다”고 말한 뒤 울음을 참지 못했다.

 

생존학생들은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규명에 대해서도 강력히 의지를 보였다. 장씨는 “저희는 대통령 사생활 알고 싶은 게 아니다. 그 7시간 제대로 보고받고 지시했더라면, 가만히 있으란 말 대신 당장 나오라는 말만 해줬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희생자 낳지 않았을 것”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어 “저희는 그동안 당사자이지만 용기 없어서 비난받을까 두려워 숨어있기만했다. 저희도 용기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장씨는 친구들을 향해 말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나중에 친구들 다시 만났을 때 너희 보기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책임자한테 제대로 죗값 물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저희 뜻 함께 해주시는 많은 시민분들 우리 가족들,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조속히 규명되길 바랍니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게. 우리가 나중에 너희들을 만나는 날이 올 때 우리들을 잊지말고 열여덟 그 시절 모습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감사합니다.”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참사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 세월호 생존학생들과 유가족들이 포옹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참사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 세월호 생존학생들과 유가족들이 포옹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발언을 마치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올라와 눈물을 흘리며 생존학생들을 한 명씩 껴안았고, 지켜보던 시민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날 오후 5시45분께 시작된 본집회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추산으로 서울에만 시민 60만명(전국 64만)이 모였다. 경찰은 저녁 7시45분 기준 광화문광장에 2만4천명의 시민이 모였다고 추산했다. 가수 이상은씨는 <어기어디어라>, <언젠가는> 등의 노래로 시민들을 위로했다. 7시35분께 주최 쪽은 아직 검은 바닷 속에 있는 미수습자 9명을 위한 소등 행사를 진행한 뒤 노란 풍선 1000개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이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노래에 맞춰 시민들은 다같이 일어나 율동을 함께하며 추위를 녹이고 청운동과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열린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11차 촛불집회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유가족과 시민들은 단원고 학생들의 단체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을 들고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로 행진했다. 이 행진에는 고 김관홍 잠수사의 어머니, 박원순 서울시장,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이 함께했다. 박원순 시장은 청운동 앞 연단에 올라 “제가 대통령이었다면 세월호 참사 당일 지체 없이 헬리콥터 타고 팽목항에 가 한 명도 남김없이 구조하고 또 성역없이 진상 조사해서 책임자를 처벌했을 것”이라며 “이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상상하는 바”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어 “세월호 인양되고 모든 진실 공개될 때까지 유가족·시민들과 함께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노란색 종이에 ‘3주기를 넘기지 말고 세월호를 인양하라’, ‘거짓 없는 대한민국’ 등의 문구를 적어 청운동에 설치된 차벽과 폴리스라인에 붙이는 활동을 벌였다.

 

박수지 고한솔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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