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의 아들이 지난 2021년 7월 서울 도심에서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 추돌 사고를 냈다는 기사가 근래 무더기로 삭제되거나 수정된 사실이 속속 확인되면서 재벌 광고주의 입김에 쉽게 휘둘리는 한국 언론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관련 기사 ☞ 언론 또…'현대차 회장 장남 만취 운전' 기사 무더기 삭제
정 회장의 장남 정창철 씨가 현대 모빌리티 재팬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는 내용이 지난해 9월 보도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씨가 해군 장교로 입대한 뉴스와 함께 정 씨의 행보도 부각되자 '흑역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현대차 임원들이 조직적으로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측으로부터 기사 삭제 또는 제목 수정을 해달라는 '민원'을 받고 해당 기사에 손을 댄 언론사가 부지기수인데, 진보 성향이라는 한겨레와 MBC도 예외는 아니었다.
9일 미디어 전문 매체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MBC에서 2021년 10월 5일 게재했던 <정의선 현대차 회장 장남에 '음주운전' 벌금 900만 원> 기사가 지난해 9월 온라인에서 삭제됐다. 현대차 측 홍보담당자가 취재기자에게 전화해 자신의 지병을 얘기하며 '회사에서 잘리게 생겼다'고 호소해서 기자가 데스크와 상의한 뒤 기사를 내렸다는 것이다. MBC는 9일 오후 해당 기사 복구와 동시에 사과문을 첨부해 "이 기사는 2021년 10월 5일 작성된 것으로, 2025년 9월 23일 부적절한 사유로 삭제됐던 사실이 확인돼 재게재한 것"이라며 "시청자 여러분께 혼란을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했다.
앞서 한겨레에서는 '현대차 홍보 담당 최고위급 임원'의 연락을 받고 정 회장 장남에 관한 검찰 송치와 벌금형 선고를 다룬 기사 두 건의 제목에서 '정의선' 이름을 빼고 '장남'을 '자녀'로 수정해준 사실이 지난달 28일 밝혀졌다. '주요 광고주'인 현대차의 '광고비 삭감 상황'을 고려한 끝에 편집국장 결정으로 이뤄졌으며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 및 데스크와의 협의는 없었다고 한다. 이 일로 이주현 뉴스룸국장, 김수헌 디지털부국장, 김영희 편집인 겸 미디어본부장, 안재승 광고·사업본부장이 줄줄이 보직 사퇴한 데 이어 최우성 사장(대표이사)도 "당장이라도 물러나겠다는 뜻이 확고하다"며 사의를 표명하는 등 사내에서 후폭풍이 거세게 진행 중이다.
2021년 7월부터 10월까지 각 일간지와 방송사, 통신사, 각종 인터넷 매체들은 정 씨의 음주운전 추돌 사건 발생, 경찰 송치, 검찰 수사 및 기소, 법원의 벌금 부과 등 단계별로 상당량의 기사를 앞다퉈 낸 바 있다. 뉴스 가치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차 측의 요청에 따라 기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한 언론사는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언론노조 소속 지부·본부를 통해 확인한 곳만 뉴스1, 뉴시스, 연합뉴스,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CBS, MBC, SBS, YTN 등 최소 11곳이다. 내부적으로 쉬쉬하고 있거나 언론노조 지부가 없는 매체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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