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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원전 백지화’ 이뤄낸 삼척시민들

[르포] ‘두 번째 원전 백지화’ 이뤄낸 삼척시민들

‘탈핵의 성지’ 삼척시 근덕면을 가다

옥기원 기자 ok@vop.co.kr
발행 2017-06-21 18:36:53
수정 2017-06-21 18: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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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도 웃음이 나옵니다”

20일 오후 삼척시 근덕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주민 심재운 씨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백지화’ 발표에 대한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심씨는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좋은 환경에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며 “마을 주민들은 문재인 정부 결정에 두손 두발 들고 환영한다”고 말했다. 근덕면은 박근혜 정부가 고시한 신규원전 예정지로 현재 6000여명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삼척시 근덕면 덕산항에서 바라본 신규 원전 예정부지. 문재인 정부는 해당 부지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삼척시 근덕면 덕산항에서 바라본 신규 원전 예정부지. 문재인 정부는 해당 부지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옥기원 기자

‘고리원전 퇴역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신규원전 백지화’ 선언 후 근덕면 주민들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7년간의 싸움을 끝낸 근덕면 주민들은 “이제 편하게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근덕면 주민들의 ‘두 번째’ 원전 반대 투쟁은 2011년 말 시작됐다. 당시 김대수 전 삼척시장이 ‘주민 대다수가 찬성한다’며 정부에 원전 유치 신청을 강행했고, 삼척시민들은 곧바로 대책위원회 등을 만들어 반발했다. 보수성향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던 삼척시민들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원전 반대’ 공약을 내건 무소속 김양호 시장 후보를 당선시켰다. 이후 시는 정부 반대를 무릅쓰고 시민들에게 원전 유치에 대한 찬반의사를 묻기 위한 주민투표를 했다. 주민 85%가 원전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원전 같은 국가정책은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며 원전 건설 계획을 밀어붙였다. 결국 정권이 교체됐고, 새 정부는 예상보다 빨리 ‘신규원전 백지화’를 선언했다.

‘두 번의 원전·한 번의 방폐장 백지화’ 
“주민들 똘똘 뭉치면 무조건 이긴다”

지난 7년간의 원전 반대 투쟁의 흔적을 마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마을 노인회관 앞 ‘원전반대투쟁위원회’라는 간판이 달리 컨테이너는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가 됐다. 컨테이너 입구에는 ‘핵발전소결사반대’라는 글귀가 적힌 혈서가 붙어 있었다.

근덕·노곡원전반대투쟁위 사무실에서 만난 근덕면 주민들. 왼쪽부터 박병달 근덕면번영회장, 최봉수 근덕노곡반투위 상임위원장, 김대호 공동위원장, 임순한 고문.
근덕·노곡원전반대투쟁위 사무실에서 만난 근덕면 주민들. 왼쪽부터 박병달 근덕면번영회장, 최봉수 근덕노곡반투위 상임위원장, 김대호 공동위원장, 임순한 고문.ⓒ옥기원 기자

이곳에서 만난 임순환(79)씨는 “원전이 들어올 바에 죽겠다는 각오로 싸웠다. 주민들이 똘똘 뭉쳤다. 마을에서 낳고 자란 사람들의 고향 애(愛)가 대단하다. 원전이 들어오면 받을 수 있다는 보상금 같은 게 중요하지 않았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마을 주민들은 삼척 시내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원전 문제를 알렸고,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두번째 원전 백지화’라는 선물(?)을 받았다.

이보다 앞서 삼척 주민들은 방사능폐기물처리장과 신규원전 건설을 막아낸 경험이 있었다. 1993년 당시 근덕면 주민 1만2000명 중 8000명이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원전 반대 집회를 벌였던 순간은 지금도 주민들의 자랑으로 입에 오르내린다. 그 어떤 정부도 똘똘 뭉친 주민들을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원전을 막아낸 삼척주민들은 1999년 근덕면 덕산리 입구에 ‘원전백지화기념탑’을 세웠다. 이곳은 원전 반대 운동을 벌이는 이들에게 성지로 자리 잡았다.

최봉수 근덕·노곡원전반대투쟁위 상임위원장은 “정부에 맞서 삼척 주민들이 30년간 참 잘 싸웠다. 투쟁하며 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을 잘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주민 의견을 잘 듣고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 다신 우리나라에서 삼척시민과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평화 되찾은 마을
“삼척시가 국내 최고 관광지 됐으면”

원전 예정지와 맞닿아 있는 덕산, 맹방해수욕장 인근 주민들은 피서철 휴가객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아직 개장 전이었지만 이른 피서를 즐기는 시민들도 많았다. 금빛 모래사장 건너편 덕산항에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주변에는 새로 지어지고 있는 펜션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근덕면 인근은 원전건설이 발표된 2011년 이후 신규 건축물 등이 잘 지어지지 않았다.

삼척시 근덕면 덕산항 인근에 신규 펜션들이 지어지고 있다.
삼척시 근덕면 덕산항 인근에 신규 펜션들이 지어지고 있다.ⓒ옥기원 기자

덕산해수욕장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대선이 끝나고 주변에 펜션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원전 문제가 해결된 게 실감이 난다”며 “앞으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좋은 환경을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년간 원전 갈등으로 얼룩진 근덕면은 관광객과 주민이 어우러져 예전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김대호 원전반대투쟁위 공동위원장은 “정부와 시는 오래전부터 근덕면 일대에 원전을 유치하려고 아무 지원도 하지 않았다. 원전 예정지에 시민들의 유입을 막으려는 조치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어느 지역보다 주민들의 피해의식이 크다. 이제 정부와 시가 함께 이 지역을 관광단지 등으로 잘 개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의 신규원전 백지화 발표 후에도 삼척시민들의 매주 수요일 촛불집회는 계속되고 있다. 원전 건설 예정지 지정 고시가 해제되기 전까지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근덕면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근덕·노곡원전반투위는 아직 정례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투쟁위 사람들은 고시가 해제되는 날 소를 잡아 마을 잔치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을 주민들은 기존 원전백지화기념탑 옆에 ‘두 번째 원전 백지화’를 기념하는 기념탑 건립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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