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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쓰는 연차, 못 쓰는 차별 철폐부터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연차유급휴가, 구체제 적폐 1호
 
 

근로기준법 제60조는 연차유급휴가에 관한 것이다. 1항은 '사용자는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항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1년 일하면 15일의 유급휴가가 생긴다고 이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1년 미만 일한 근로자는 어떻게 될까? 2항은 '사용자는 계속하여 근로한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또는 1년간 80퍼센트 미만 출근한 근로자에게 1개월 개근 시 1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한 달에 한 번 유급 휴가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근로기준법 제60조의 1항과 2항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입사 첫해에는 최소 한 달에 하루 모두 12일의 유급휴가를 누릴 수 있고 이듬해부터는 15일의 유급휴가, 그래서 첫해와 두해를 모두 합치면 총 27일의 연차유급휴가가 있다!' 

그런데 현실은? 물론 그렇지 않다. 입사 첫해 12일의 유급휴가를 썼다면, 둘째 해에 쓸 수 있는 연차유급휴가는 15일이 아니라 3일뿐이다.  

3항에서 '사용자는 근로자의 최초 1년간의 근로에 대하여 유급휴가를 주는 경우에는 제2항에 따른 휴가를 포함하여 15일로 하고, 근로자가 제2항에 따른 휴가를 이미 사용한 경우에는 그 사용한 휴가 일수를 15일에서 뺀다'고 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입사 3년 차가 되어야 한 해 15일 이상의 연차유급휴가를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으로는 입사 첫해와 둘째 해에 누릴 수 있는 연차유급휴가는 한 해 평균 7.5일에 불과하다. 입사 3년 차 이상의 고참은 15일 이상을 누릴 수 있는데 반해, 1,2년짜리 신참은 반쪽만 누리는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이들의 근속연수가 2년을 넘기 힘들다는 점과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합법적으로 제외된 노동자층이 다수 존재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법의 취지에 맞게 연차유급휴가 15일 이상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2000만 노동자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21일 경남 양산 사저에서 하루짜리 첫 휴가를 보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 전용기 안에서 "올해 연차휴가 다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그리고 국회의원을 지낸 문 대통령은 공무원으로서 재직 기간이 6년을 넘어 21일의 연차휴가를 갈 수 있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덕분이라고 한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민간부문 기업에 새로 직장을 얻은 노동자 신분이었다면, 그가 누릴 수 있는 유급연차휴가는 2017년과 2018년 두해를 합쳐 총 15일, 한해 평균 7.5일에 불과하다. 공무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21일과 비교하여 세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휴식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며 "여름휴가 12일 이상을 의무화하고 기본 연차유급휴가일 수를 20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자의 충전과 안전을 위해 15일의 연차유급휴가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겠다. 연차유급휴가를 연속 사용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휴가를 장려하려는 대통령의 선의와는 달리 현행 근로기준법 틀 안에서 15일의 연차유급휴가를 누릴 수 있는 노동자는 많지 않다. 청년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 등 더 많은 보호와 지원, 휴식이 필요한 노동자들에겐 연차유급휴가 15일이 그림의 떡이다. 

대통령의 선의가 정책과 제도로 뒷받침되지 않을 때 그 선의는 립 서비스나 위선으로 치부되면서 정치적 냉소주의를 초래하는 문제를 노무현 정권 때 경험했다. 그 정치적 후과가 이명박-박근혜 극우 정권의 출현이었다.  

연차유급휴가 관련 법규가 만들어낸 비정규직과 청년, 신입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이야말로 시급히 청산할 구체제의 적폐 1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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