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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100여명이 닷새나 길바닥에서 자야했던 이유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8/19 12:40
  • 수정일
    2017/08/19 12:4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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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청 ‘보행편의’ 내세운 아현 노점상 강제철거 시도에 항의 노숙농성

18일 새벽 4시20분께. 어둠은 여전한데 습도가 80%를 넘어선지 섭씨 24도인데도 더운 느낌이었다.

지하철2호선 아현역 3번과 4번 출구에서 마포구 아현시장 입구쪽 굴레방로 좌우 인도에 ‘단결투쟁’, ‘승리의 확신’ 등의 글귀가 적힌 조끼차림의 사람들이 단열재 깔개 위에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여기저기 적게 잡아도 150명은 넘어 보였다.

무슨 일 때문에 길바닥에서 고생일까?

“어휴~ 피곤하다, 벌써 오늘로 닷새째네요.”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김모씨(49)는 기자를 보자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을 건넸다. 홍대 지하철역 인근에서 노점을 하는 김씨. 집을 놔두고 그가 아스팔트 위에서 밤샘을 한 이유는 마포구청(구청장 박홍섭)의 아현역 인근 노점상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서다. 김씨뿐 아니라 마포‧서대문구에서 노점으로 생계를 꾸리는 서부지역노점상연합(서부노련. 지역장 이경민)의 100여 회원들이 지난 13일 밤부터 닷새째 아현역 인근 노점상들이 강제철거 당하지 않게 하려고 노점 주변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던 것이다.

마포구청이 굴레방로 노점들을 철거하겠다고 나선 것은 지난해 9월. 마포구청은 바로 그 전달 서울 서부권 주당들에겐 명소로 알려진 아현초등학교 인근 포장마차 30여동을 철거했다. 이유는 ‘도시미관’과 ‘보행편의’였다. 지금도 떠나간 노점 자리에 붙여 놓은 경고문엔 ‘도로확대 및 정비’와 ‘쾌적한 보행환경’을 위해 불법 노점을 금지한다고 돼있다.

▲마포구청이 철거하려는 아현 노점들이 늘어선 굴레방로. 농성을 마친 노점상들이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또 하루새벽을 무사히(?) 보낸 아현 노점상 등 서부노련 회원들이 조회를 하고 있다.

문제는 철거 대상인 아현 노점상들이 길게는 30년 가까이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는 것이다. 강제철거를 당할 경우 생계대책이 없어진다. 애초 아현 노점은 10여개였는데 구청의 경고 등 등쌀에 못 이겨 떠나고 이제 8개만 남았다. 모두가 여성인데 6~70대이고 80대 고령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단으로 도로를 점거해 장사를 해온 것도 아니다. 마포구청에 사실상 자릿세인 ‘도로변상금’을 1년에 100만원 넘게 납부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서부노련 회원들이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힘없는 고령의 여성 노점상들을 도우려고 나선 것이다. 더욱이 지난 11일쯤 마포구청이 강제집행을 위해 400명 규모의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강제철거가 임박한 것이다.

또 하루새벽을 무사히(?) 보낸 아현 노점상 등 서부노련 회원들은 컵라면 등으로 아침을 때우고 7시40분께 마포구청으로 향했다. 박홍섭 구청장을 면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마포구청 입구는 벌써 의경들이 가로막고 서있었다.

이경민 서부노련 지역장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분하고 원통해 이 자리에 왔다. 경찰하고 싸우러 온 게 아니다. 집회하러 온 게 아니라 민원을 넣으러 왔다. 구청이 용역깡패들을 앞세워 우리의 생계 터전을 빼앗으려고 해 그것을 지키러 왔다”면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힘 없고 가난한 노점상들 생활에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서부노련 회원 노점상들이 마포구청 앞에서 구청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시간이 좀 흘러 서부노련 회원들의 투쟁 소식을 듣고 연대하러 다른 자치구 노점상들이 왔다. 그렇게 늘어난 300여명은 박 구청장 면담을 계속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과 구청측은 녹음기마냥 ‘불법집회’ 운운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철거 대상인 아현 노점상 이종희씨(75)는 “어제 잠 한숨 못자고 여기까지 왔다. 구청장이 가난한 서민이라고 우리를 너무 우습게 안다. 민원을 넣으러 왔으면 물 한잔이라고 줘야하는 것 아니냐”면서 “불법 노점이라고 몰아붙이고 경찰이 길을 가로막아도, 우리는 죽는 한이 있어도 투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교롭게도 18일은 지난해 아현초등학교 인근 포장마차 30여동이 강제철거 당한 바로 그날이다. 아현역 노점 강제철거가 시작된 지 1년째 되는 날인 셈. 그래서 당시 포장마차 강제철거에 반대하며 연대했던 마포지역의 진보정당‧단체들이 이날 10시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아현초등학교 인근 포장마차 강제철거에 반대하며 연대했던 마포지역의 진보정당‧단체들이 강제철거 1년을 맞은 18일 오전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마포구청은 작년 8월18일 새벽, 아현포차를 강제철거했습니다. 30년 넘게 지속해온 삶의 터전을 몇 개의 화분으로 대체했습니다. 70살 안팎의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포차 7대를 철거하기 위해 3천만원의 세금을 썼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마포구청은 아현역 3번 출구, 10가구 남짓한 노점상을 다시 강제철거하려고 합니다. 400명의 사설용역을 고용하기 위해 1억원 남짓의 세금을 사용했습니다. 마포구청은 ‘전광석화’처럼 노점상을 쓸어버리겠다고 했습니다. 마포구청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편,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이날 노점상들의 면담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 앞서 박 구청장은 지난달 말 정화조 처리업체 선정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진정이 경찰에 접수돼 현재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상태다. 물론 박 구청장은 특혜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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