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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노돌발’ ‘윤택남’ 되찾기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9/02 10:41
  • 수정일
    2017/09/02 10: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입력 : 2017.09.01 21:57:00 수정 : 2017.09.01 23:50:35

 

 

ㆍ9년 만에 복직한 노종면 YTN 앵커

YTN 간판 앵커였던 노종면은 ‘공정방송’을 외치다 회사에서 쫓겨났다. 3249일 만에 돌아왔지만 그가 다시 앵커석에 앉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버티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YTN 간판 앵커였던 노종면은 ‘공정방송’을 외치다 회사에서 쫓겨났다. 3249일 만에 돌아왔지만 그가 다시 앵커석에 앉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버티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이제 우리 회사에 비디오테이프는 없어요.” 

복직 이틀째였던 지난달 29일, 재입사 교육을 맡은 기술팀 직원의 설명에 YTN 기자 노종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엔 방송 시간이 임박하면 누군가 뉴스 리포트가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모습이 흔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전자파일로 오간다. 방송시스템이 급격히 디지털화하며 바뀐 풍경이다. 비로소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을까.

“앵커 뒤쪽 ‘비디오 월’에 들어가는 그래픽은 누가 조정해요?” “자막은 FD가 직접 쳐요?” “그 중계 장비는 시차가 얼마나 돼요?” 노종면은 계속 질문을 쏟아냈다. 과거엔 기자가 맡던 뉴스진행 PD 역할을 비정규직 직원이 맡으면서 부조정실(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뉴스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컨트롤룸)의 자율성이 사라졌고 위에서 시킨 대로 정해진 방송만 해야 한다고 하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담당자의 권한을 인정해주지 않고 그렇게 수직적으로 관리·통제하는 보도시스템은 위험해요.” 그의 마음은 이미 뉴스룸 안 앵커석에 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해직기자로 보낸 세월이 무려 9년이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적응이 생각만큼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도 안다. 

 
돌아온 ‘노돌발’ ‘윤택남’ 되찾기

서울역 앞에 있던 회사는 상암동의 최신식 건물로 이사했다. 얼굴을 잘 모르는 후배도 여럿이다. 새로 도입된 장비와 뉴스진행 시스템도 아직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함께 교육을 받는 조승호·현덕수 기자의 표정에도 묘한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묻어났다. 얼마나 돌아오고 싶은 일터였던가.

세 기자는 지난달 28일부터 복직해 회사에 나왔다. 2008년 10월6일 해고 징계를 받은 지 3249일 만의 출근이었다. 그날 노종면은 아침 6시에 집이 있는 경기도 양평에서 전철을 탔다. 처가에서 사줬다는 새 양복 차림이었다. 긴장한 탓인지 새벽 3시에 잠이 깼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잠을 제대로 못 자 목이 잠긴 것부터 걱정했다. 앵커 출신다웠다. 후배들은 그가 도착한 지하철역부터 회사까지 1㎞가 넘는 거리에 색종이를 오리고 환영문구를 직접 쓴 ‘꽃길’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옥 앞에서 열린 성대한 환영행사에서 노종면은 결국 눈물을 쏟았다. 그는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정권의 ‘낙하산 사장’에 맞서다 해직된 YTN 기자들의 복직은 멀고 험난한 길을 돌고 돌아 힘겹게 이뤄졌다. 

■ 9년 만에 돌아온 YTN, 모든 게 낯설다 

처음엔 이렇게 긴 싸움이 될지 몰랐다.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이 내정되면서 YTN은 격랑에 휩쓸렸다. 방송 공정성이 무너진다는 판단에 대다수 구성원들이 사장 퇴진 운동에 나섰다. 

저녁 뉴스를 진행하던 간판 앵커 노종면은 노조위원장을 맡아 싸움에 앞장섰다. 그는 YTN의 대표적 킬러콘텐츠인 ‘돌발영상’을 기획해 성공시킨 회사의 ‘에이스’였다. 경영진은 노종면을 포함한 기자 6명을 해고하며 맞섰다. 

정작 구본홍은 1년 만에 자진 사퇴했다. 후임 배석규 사장은 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에 더 충실했다. 훗날 공개된 언론사찰 문건에서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돋보인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홍상표·윤두현 보도국장은 후배들의 특종을 막으면서까지 정권을 비호했다. 이들은 차례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진수 YTN 노조위원장은 “지난 9년간 권력에 아부하고 정치권에 줄 대기 바쁜 인사들이 조직의 주류를 장악한 채 회사를 개인 영달의 도구로 이용해왔다”고 비판했다. 

정권 편향 보도의 결과는 시청률 하락으로 나타났다. 각 기관의 공정성과 신뢰도 평가도 크게 떨어졌다. 젊은 기자들 사이에선 ‘해봤자 안 된다’는 무기력과 자기검열이 팽배해졌다.

“권력 비판 아이템을 내도 윗선에서 계속 막히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수동적으로 변하게 돼요. 보도자료나 타사 기사를 베끼라는 지시가 공공연하게 내려오다 보니까 현장에선 기자가 기자로서 역할을 못 한다는 자괴감이 클 수밖에 없죠.” 입사하자마자 해직 사태를 겪은, 올해 10년차 양일혁 기자의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시위 때는 성난 시민들에 의해 YTN 취재기자들이 여러 차례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너희가 한 게 뭐냐” “중계차 빼라”. 성난 시민들의 힐난에 기자들은 답하지 못하고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마봉춘’(MBC), ‘고봉순’(KBS)처럼 ‘윤택남’(YTN)이라는 애칭을 지어주고, ‘지켜주자’며 촛불을 들었던 게 언제였나 싶었다. 그러나 해직 사태를 해결해준 것도 결국은 촛불이었다. 우장균·권석재·정유신 기자는 2014년 11월 대법원의 ‘해고 무효’ 판결로 먼저 복직했다. 나머지 세 기자는 촛불로 정권이 바뀐 뒤 사측이 ‘태세 전환’을 하며 지난달 초 복직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 해직된 그를 지켜준 건 시청자였다 

“촛불 안 붙었으면 지금도 마음 졸이고 있었겠지.” 

겸손하게 말했지만 노종면은 해직 이후 한 번도 언론인으로서의 실천을 쉬지 않았다. 2011년 YTN 이니셜을 딴 ‘용가리통뼈뉴스’라는 이름으로 트위터 1인 미디어 실험을 했고, 다음해엔 인터넷 탐사보도매체 ‘뉴스타파’의 설립에 참여해 초대 앵커를 맡았다. 2014년엔 시민들이 설립한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앵커로 활동했고, 지난해엔 시민 참여형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일파만파’를 선보였다. “해직되기 전엔 시청자가 중요하다고 말로만 그랬지 솔직히 실질적인 개념이 없었어요. 지금은 그걸 너무 잘 알죠. YTN을 지탱하는 바탕과 뿌리는 바로 시민사회이고 시청자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기자는 누구인가. 어떤 기사를 써야 하는가. 회사 밖에서 풍찬노숙하며 그의 고민은 더 단단해졌고, 권력 비판과 약자 옹호라는 본래의 기자정신은 더 투철해졌다. 그런 노종면의 복귀에 회사 후배들의 기대도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언제부터 뉴스 진행하세요’ ‘이번 추석 연휴에 앵커실 근무표 어떻게 짤까요’ 묻는 후배들이 여럿이다. YTN 기자들은 해직자들의 복직을 계기로 그간의 ‘정권 홍보 방송’ 이미지를 씻어내고 보도전문채널로서 정체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의지가 절박하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시작됐다. 2014년 복직 후 심의실과 자회사 등 한직으로 돌던 우장균 기자는 지난달 8일 취재부국장으로 발령이 나며 9년 만에 보도국에 돌아왔다. 그는 최근 “오페라 공연을 뉴스에 다루겠다”는 문화부장에게 “지금 오페라보다 MBC와 KBS 두 공영방송의 파업과 제작 거부가 더 중요하니 그걸 보도하라”고 지시했다. 보도국 회의에선 정치·경제 권력을 비판하는 기사를 적극 발제하라고 주문했다. “뒷일은 내가 다 책임지겠다”는 말도 곁들였다. 상식적인 언론사 풍경이지만 지난 9년간은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었다. 사내에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우 기자는 “제대로 일해보겠다는 젊은 기자들의 의지와 열정을 북돋아 주는 게 선배들의 역할”이라며 “당연한 일이 회자되는 것 자체가 그동안 조직이 비정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노돌발’ 노종면,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스튜디오에서 노종면이 동료로부터 달라진 방송 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상암동 YTN 사옥 스튜디오에서 노종면이 동료로부터 달라진 방송 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해직기자 복직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YTN 구성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지난 9년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야 하지만 냉정히 보면 아직 아무것도 제대로 시작된 것이 없다. 은행장 출신의 조준희 사장이 지난 5월 사퇴한 뒤로 사장은 여전히 공석이다. 보도국장도 최근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구성원들이 두루 인정할 정통성 있는 차기 사장이 선임돼야 새 출발이 가능한 상황이다. 기자들은 그간의 분열을 치유하고 조직을 이끌 리더로 내부 출신의 사장을 원하고 있다. 그동안 외풍에 휘둘린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전망은 녹록지 않다. 사장 대행인 김호성 상무는 지난달 30일 부장급 이상 65명을 대상으로 한 이례적인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곧 선임될 새 사장과 보도국장이 행사할 인사권을 가로챈 것이다. 노조는 즉각 반발했고 인사 대상자 중 절반가량이 집단 불복종 성명을 냈다. 노사 대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노종면은 현업에 바로 복귀하는 대신 당분간 회사 차원의 ‘혁신 태스크포스(TF)’팀에서 YTN의 미래 전략을 만드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미디어 환경이 워낙 빠르게 변하고 있잖아요. YTN도 일하는 방식과 결과물에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하루빨리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면 언론사로서 경쟁력 회복이 영영 힘들어질 수 있어요. 제작 자율성과 보도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죠.” 


노종면은 9년 만에 회사 컴퓨터를 처음 다시 만져봤다. 기사 작성·송고를 위한 프로그램인 ‘보도정보시스템’에서 사용할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새로 만들었다. 그는 노트북 자판을 천천히 두드렸다. ‘nodolbal’(노돌발). 앞으로 매일같이 사용하게 될 이름으로 노종면은 자신이 만들고 키운 돌발영상을 다시 가져왔다. “저의 다른 e메일도 다 주소가 ‘노돌발’이에요. 돌발영상은 제 평생의 자랑이죠.” 그는 다시 한번 그렇게 세상에 자랑거리가 될 만한 뉴스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9년 만에 돌아온 노종면은 이제 막 로그인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012157005&code=940705#csidxd9853b4b113dba7b7513e6b8b6bd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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