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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고대 나온 남자야” / 김의겸

난 고대도 나오지 않았고, 남자도 아니지만...

같이 읽어볼만한 것 같아서 (근데 누구랑???)

 

그렇다. 영화 <타짜>의 김혜수가 이대에 대해 가졌던 만큼이나,나도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촌놈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답게 질박하고 우직한 게 좋았다. 쩨쩨하게 따지지 않고 통 크게 감싸주는 선후배 사이의 정이 푸근했다.

 

전두환 때다. 말하기 겸연쩍지만, 데모를 하고 감옥을 간 적이 있다. 해가 두 번쯤 바뀌니,공주교도소로 이감을 가란다. “징역살이 어디나 똑같지, 귀찮게….” 투덜거리며 가보니 웬걸, 고대 출신들을 몽땅 모아놓은 게 아닌가. 교도소 당국은 사동 하나를 통째로 비워놓고 방문도 다 따주며 활개치고 살란다. 건달 조직의 두목 조양은씨가 우리들 ‘편의’를 봐주도록 눈감아주기도 했다. 공주지청의 고대 선배 검사는 청요리에 배갈을 잔뜩 먹여, 만취 상태로 교도소에 돌아온 적도 있다. 징역식 과장법을 쓰자면, 비행기 만들어 탈옥하는 것 말고는 다 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당시 고대 출신 검찰총장이 고대 총장으로부터 “후배들 신경 좀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화끈하게 선심을 쓴 것이었다. 남들은 비웃겠지만, 그래도 그 살벌한 시기에 정치적 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후배들을 챙겨준 것은 아무래도 ‘미덕’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고대 선후배 관계가 갈수록 자리를 노린 계산속으로만 흐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권 초기 이 대통령 친구 천신일 고대교우회장이 서초동의 고대 출신 검사들을 한자리에 모았단다. “어려운 일 있으면 얘기하라”는 덕담도 빠뜨리지 않았는데, 그게 예삿말로 들리지 않아 참석자들의 표정이 묘했단다. 다들 “줄 한번 타 봐?”라는 유혹을 느꼈을 법하다. 물론 그 대가는 충성이다.

 

최근 <문화방송> 사태는 그런 ‘주고받기’의 결정판으로 보인다. 엄기영 사장을 쫓아낸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도 고대 출신이고, 빈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김재철 신임 사장도 고대 출신이다. 이 대통령의 뜻이 반영되었을 터이니 ‘고대의, 고대에 의한, 고대를 위한’ 삼위일체가 완성된 셈이다. 구경꾼들까지 야단법석이다. 고대 문과대교우회가 그 와중에 김우룡 이사장에게 ‘자랑스러운 문과대인상’을 준 것이다.“방송 발전에 앞장섬으로써… 자유·정의·진리의 고대 교시를 온누리에 떨침으로써… 고대의 명예를 드높이셨”다는 게 이유다.

 

구설은 앞으로도 계속될 모양이다. 당장, 고대 총장을 지낸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이 곧 한국은행 총재나 케이비(KB)금융 회장으로 갈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특히 최근 한국은행 총재를 인사청문회에 세우는 법안이 무산됐는데, 재산 문제가 께름칙한 어 위원장을 위한 길닦기 성격이 강하단다. 이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고위관계자 또한 고대 출신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노래 3절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로 시작한다. 고대만큼 이 노래의 정신을 잘 구현하는 곳이 어디 있으랴 싶다.

 

전 총장의 행보가 이러하니, 이기수 현 총장을 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이 총장이 “대학 등록금이 아주 싼 편”이라고 말했을 때도, 각종 행사장에서 “우리 대통령”을 찾을 때도 그 발언 배경이 파헤쳐진다. 게다가 이 총장 교수실에는 한때 이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이 함께 찍은 낡은 신문 사진이 액자로까지 만들어져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맏사위, 박 의원의 올케가 모두 이 총장의 제자라는 걸 은근히 과시하기 위한 ‘장치’라고 해석들을 한다.

 

고대의 상징은 호랑이다. 입학식 때부터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는 얘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런데 요즘 세태를 보니 호랑이 식성도 많이 변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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