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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송년 모임 술자리에서 화제가 됐던 얘기 중 하나는 역시 <응답하라 1988>이었다. 압도적인 어남류 분위기는 어남택을 침묵케 했고 '웬열', '웬열' 소리가 난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야기의 뱃머리는 1989년 전교조로 흘러들었다. 16회까지 마치고 4회만 남은 상황인데 줄거리가 이제 얼추 1989년 4월 가까이까지 왔기 때문에 그런 기대는 자연스럽다. 전교조는 1989년 5월 28일에 출범했다. 며칠 전 N이 와서 '전교조가 나올 것 같지 않느냐' 하고 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취객들은 쌍문고와 쌍문여고 어느 선생님이 전교조가 되겠느냐 점치기도 했다. 쌍문고 학주는 아마 학교측에 설 거고, 그러면서도 교사로서의 고뇌, 아버지로서의 부끄러움 뭐 그런 모습을 연출하며 아들 동룡에게 진심의 한 자락을 보여줄 거다, 전교조 교사로는 세심한 담임 캐릭터인 쌍문여고 덕선이 담임이 아니겠느냐, 덕선이와 장만옥, 왕조현이 창문에 매달려 종이비행기를 날리게 되겠냐, 뭐 그런 얘기들이었다.

어떤 세대를 세대로 만드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공통경험이다. 흔히 대중문화가, 특히 영화와 노래가 그 상징으로 자리잡는 것도 그래서일 거다. 같은 음악과 영화를 듣고 보며 가수와 배우에 열광하게 되는 경험. 하지만 1989년을 경유한 당시 중고등학생(주로 공립)에게 전교조 사태만큼 강하게 각인된 기억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전교조 세대'의 공통경험에도 불구하고 '신세대', 'X세대'로 다시금 겹쳐써짐(overwrite)으로써 사회운동의 영향력은 지워지고 삭제된다.)

<응팔>에 전교조가 나와도 좋고, 안 나와도 좋다. 내가 감동받았던 장면은 덕선의 반장이 간질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던 14회 에피소드였다. 침착하게 할 일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반장의 숟가락을 뺏어 들던 덕선이도 덕선이지만, 양호실에서 돌아온 반장이 교실에 들어섰을 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무심했던 같은 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의리라고 해도 좋고 우정이라고 해도 좋다. 침묵함으로써 지지하는 그 시대의 어떤 정서가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1989년 전교조가 휩쓸고 지나간 2학기가 되면서 해직교사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신규 채용된 교사들에 대해 당시 친구들이 보여줬던 태도는 싸늘한 침묵이었다. 그건 그 교사 개인에 대한 거부와 공격은 아니었다. 전교조에 대한 소극적인 '침묵의 연대감'이었고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전교조 조합원들에 대한 학생들의 의리였다. 교단에서 학살된 1500여 선생들을 기억한다는 무형의 노란 리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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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14:59 2016/01/05 14:59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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