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삶과 인권 이야기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삶과 인권 이야기
박래군
클, 2014

내가 만일 출판사를 만든다면 꼭 책을 내고 싶었던 분들이 있었다. 한 분은 부산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이다. 몇 년이 지난 후 후마니타스 편집자 분이 김 지도의 책을 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꾸했었다. "아, 그거 내 건데 왜!!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갔어요?!" 또 한분이 밀양 송전탑 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이었고, 이분의 글들도 대부분 책으로 묶여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독자들이 이분들의 책을 찾아 읽었고 이젠 스테디셀러가 되어 가는 듯하다.

그런데 내가 책을 내고 싶었던 다른 한 분의 책이 생각보다는 그리 많이 팔리지 않아 안타깝다. 박래군 선배의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클, 2014)이다. 단독 저서로는 첫 책이다.

성함이야 익히 알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이렇게 저렇게 마주치기도 했지만 인사를 드린 적은 없었다. 뭐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저 나 혼자 여기저기 잡지, 데이터베이스, 언론 기고문, 인터뷰 등을 뒤져서 아래한글로 편집도 해본 적이 있었는데, 책 꼴이 나오기에는 군데 군데 빈 부분이 있어서, '아, 이 분 책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 하는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출판사 사장도, 직원도 아니면서 이런 뻘짓을 가끔 한다.) 

올해 이 책이 나온 걸 보고서, '내가 생각하는 건 다른 사람들도 다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야'라면서, 그저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기대하던 저자의 책이 나왔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기대보다 팔리지는 않고, 급기야 클 출판사 마케터는 지난 대선 때 나왔던 박래군 선생-김미화 씨가 함께 여러 전문가들 인터뷰를 했던 책, <대선 독해 매뉴얼>과 1+1 행사를 추진한다고 알려 왔다. 심지어 광화문 씨네큐브 영화 티켓도 주기로 했다. 책값 15000원을 내면 책 2권에 영화 티켓 1개가 딸려 온다는 거다. 그런데도 아쉽게 잘 판매되지는 않는다. 

 

박래군 선생은 당신 책이 나왔는데도, 내내 뛰어다니면서 쌍용차 투쟁을 다룬 <당신의 슬픔과 기쁨>(정혜윤, 후마니타스, 2014)와 <밀양을 살다>(오월의봄, 2014)를 팔고 다닌다. 당신 책은 내팽개치고. 착하디 착한 클 출판사 마케터는 "박래군 선생은 그런 분..."이라고만 한다. 내가 마케터라면 두 손 걷어부치고 박래군 선생을 잡았을 거다. 말 못하는 '책'의 입장에서 얘기할 거다. "나를 세상에 이렇게 내던져 놓고 자기 혼자 뽈뽈 대고 어디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거냐"라고. 자기 책을 유기한 것과 다름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라도 읽어야겠다 싶어 며칠 전부터 읽고 있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박래군 선배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한국 인권운동의 역사, 그 이면의 속사정을 양파 까듯 훔쳐 볼 수 있다. 박래군 선배의 친동생인 박래전 열사가 분신하셨던 88년, 숭실대 바로 옆 중학교를 다녔던 나는 분향을 하러 숭실대에 갔던 적이 있다. 그때 숭실대 SCA 형으로부터 '박래전 열사 형님도 운동을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만 알고 쭉 살아왔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박래군 선배의 형제, 가족, 친구, 그리고 살아온 이력 같은 걸 좀 더 내밀한 목소리로 만난다. 소설가를 꿈꿨던 사회운동가답게 이야기가 재밌다. 

 

며칠 전 이석기와 통진당 재판 담당 검사들이 증인으로 나온 박래군 선배를 모욕했다는 경향 기사를 읽었다. 그네들이야말로 이 책을 제일 먼저 읽어야 할 자들이 아닌가 생각했다. 

동부전선 GOP 총기 사고와 관련한 책 속 한 대목을 소개하련다. 박래군 선배는 학내 시위 관련해 체포돼 강제징집 당했다.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은 강원도 양구의 최전방 철책에서 근무하는 GOP였다. GOP 철책 근무에 처음으로 투입되던 날 고참은 나를 세워놓고 사회에서 뭘 하다 왔냐고 물었다. 군기가 바짝 들었던 이등병인 나는 대학 다니다 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고참은 거짓말한다고 두들겨 팼다. 어느 대학 다니다 왔냐고 물어서 솔직하게 얘기했더니 또 거짓말한다고 맞았다. 당시 최전방 철책에는 대학생이 거의 없었다. 학벌 좋고 '빽 좋은' 이들은 이미 후방의 편한 곳으로 배치받아 갔기 때문에 최전방의 험한 철책까지 온 사람들은 대체로 중졸이었다. 그런 곳에서 새까만 얼굴에 촌티가 풀풀 나는 이등병이 명문대를 다니다 왔다니 거짓말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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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다. GOP 뺑이 치는 사병들은 힘 없고 학벌 없는 병사들인 것도 그렇고. 박래군 선배가 새까만 얼굴에 촌티가 풀풀 나는 것도 그렇다. 그리고 우리 운동의 최전방에 서 계신 것도 그렇다.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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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8 16:35 2014/06/28 16:35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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