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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란 '장소'이기는 하지만 그건 지리적인 의미가 아니다. '장소'는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계의 '관계'이다.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할 때 그 그리움의 대상은 살뜰하고 아름다웠던 사람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이기도 하다. 하명희 작가는 전작 <섬 한 채>(2011)에서 고향을 등져야 했던 이들이 1968년 폭파되어 버린 밤섬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넉넉하게 안아줄 수 있는 고향을 가지지 않은 삶은 쓸쓸하다. 설령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당도한 고향이 밤섬처럼 폐허라면 그 또한 쓸쓸하다. 

 

'고향'이 '시간'이라면, <나무에게서 온 편지>가 독자들을 데리고 가는 그 1990년대 초입의 풍경이 아마 작가의 고향일 거다. 집채만 한 바위를 뽑아버리는 태풍처럼 민주화의 도정은 시작되고 주인공들은 고등학생 시절 그 태풍 가운데에 섰다. 13명이 죽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낙인을 남긴 채 끝나버린 1991년 5월 투쟁 세대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을까. 

 

내 고향은 작가의 고향과 같다. 그래서 동갑내기 하명희 작가의 이번 전태일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반가웠지만 읽기가 두려웠다. 

 

내가 기억하는 고향은 폐허였다. 그래서였을까. 새벽녘, 책의 삼분지일을 남겨두고 잠들었을 때 꿈자리는 아수라장이었고 전쟁터였고 무간지옥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다시 책을 잡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마음이 따뜻함으로 차올랐다. 작가는 내게 밤섬이 폭파된 건 네 탓이 아니라고, 고향을 등졌지만 우린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고, 그리워 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작가는 자신도 심장에 옹이를 갖고 있으면서 비바람으로부터 가지를 내려주는 나무를 닮았다. 폐허였던 내 고향을 폐허로만 그려 주지 않아서, 그 시절을 뚫고 살아낸 친구들에게 따뜻한 손길로 위무해줘서, 고마웠다. 진심으로.

 

세상의 버려지고 사라지고 외면당하는 것들을 붙잡고 온 작가의 시선이 곱다. 겨울에서 가을을 지나 봄을 향해 함께 걷게 해준다. 그래서 하명희 작가의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응원한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 - 제22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나무에게서 온 편지 - 제22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하명희
사회평론아카데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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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8 13:50 2014/11/28 13:50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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