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그렇게 붉게, 그토록 후끈 떠올랐다.
11년 만의 일이다.
개기월식 중엔 달이 붉다.
지구에 의해 태양빛이 가려지지만,
동시에 지구 대기를 통과한 빛 중
파장이 가장 길고 굴절율이 낮은 붉은 빛이 달에 어리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지구인이라면
지구의 그림자는 우리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지구는 그저 파랗기만 한 생명으로 충만한 땅이 아니다.
가끔씩 지구의 그 깊고 먹먹한 그림자가 어떻게 영롱한 이 별에 드리워져 있는지,
달은 우리에게 이따금씩만 보여준다.
우리가 지구인이라면
불끈 붉은 빛을 긴 파장에 실어 보내는 것도 우리다.
우리를 현란하게 만드는 온갖 빛을 다 사상시키고
꺾임이 가장 적은 빛깔, 훼절(毁折)하지 않는 피처럼 붉은 빛만이
가장 멀리, 가장 결정적인 지점에까지 우리를 데려가는 힘이자 잠재성이라고
달은 우리에게 이따금씩만 보여준다.
그래서 달은 우리의 거울이었다.
그 거울은 아주 이따금씩만
고통, 낭떠러지 같이 깊고 어두운 고통의 심연
그곳을 딛고 저 우주까지 다다를 방법, 곧고 울림 긴 용기를
보여줄 뿐이지만
우리의 진면목을 달을 통해 찰나라도 마주했을 때
나도 그렇게 붉게, 그토록 불끈 달아오르는 것이다.
다시 붉은 달이 뜨는 밤은
7년 후라고 한다.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blog.jinbo.net/redgadfly/trackback/149
-
개기월식
from reorganiznig my life2011/12/12 11:33남십자성님의 [이따금씩만, 붉은 달] 에 관련된 글. 누군가 말했지. 모든 걸 놓아버리는 때가 오면, 그 때가 내 생을 다 한 때인지 모른다고 엄살 부리지 말자 하면서도 문득 문득 치밀어 오를 때가 있어. 어디에 있든 무얼 하든 문제의 열쇠는 나에게 있다는 거, 조금씩 알게 되는 기분이야. 몇 십년만에 한번 오는 붉은 달을 보고 싶었어. 하지 못한 많은 말들을 나누고도 싶었고. 잡아삼킬 것 같던 파도의 포말도 지금은 그리워. 잠시라도, 동해 바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