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길 따라 들리는 탐라의 숨비소리, 제주 성읍마을 돌담

 

 

화산섬, 제주. 제주에서, 화산은 돌을 만들어냈고 돌은 곧 현무암이다. 성산 일출봉도 거대한 현무암 덩어리이고 우도도 그러하며 심지어 제주도 전체도 현무암 덩어리이다. 그리하여 현무암처럼 거칠게 말해보자. 제주의 ‘최소 입자’는 현무암이다. 현무암이 제주 섬 전체를 이룬다. 제주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제주는 현무암을 닮았다.

 

제주 성읍마을 담장


현무암은 구멍이 숭숭 나 있다. 현무암을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화산이 폭발했을 때, 용암이 마주친 건 바다와 바람이었다. 용암은 굳어가면서 거칠게 숨을 쉬었다. 물질을 하다 바다 위로 솟구친 잠녀들의 숨비소리처럼. 만약 그 숨비소리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면 현무암 같은 모양이 아닐까? 용암이 숨을 쉬면서 낸 ‘소리’가 돌에 남았다. 가스가 배출되면서 남긴 그 구멍은 잠녀를 닮았고 제주도를 닮았다. 현무암의 구멍은 잠녀에게는 숨구멍이고 제주에게는 용암동굴이 아니겠는가. 반복해 말하자면 그래서 제주의 ‘최소 입자’는 현무암이다.


현무암은 대표적인 화산암이지만 뭍에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백두산 일대와 연천, 철원 일대와 울릉도, 독도 등지를 제외하고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다. 아니 제주에서는 현무암이 지천이다. 돌하르방, 미륵불, 동자석, 방사탑도 현무암이고 심지어 보도블록도, 차도와 인도의 경계석도 현무암이다. 화산이 뱉어낸 거무틱틱한 현무암이 ‘돌과 바람의 섬’ 제주를 설명할 수 있는 요체다.


제주 전역에 뻗어 있는 돌담을 보라. 돌담은 끝없이 이어진다. 총 길이는 9천 7백 리에 달한다고 한다. 그 모양이 흡사 검은 용과 같다 하여 제주 돌담을 중국 만리장성에 비유해 흑룡만리(黑龍萬里)라고 부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제주 돌담은 우리 문화유산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축조된, 그리고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는 건축물이다.

 

중산간마을의 전형, 성읍마을

 

성읍마을은 제주 동남쪽 중산간지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유무형의 문화재와 성곽, 동헌, 향교, 제주 전통 살림집 등이 많아 중요민속자료 188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제주 패키지 관광의 필수 여정지이기도 하다. 허나 패키지 관광이라는 게 바가지 관광이 되기가 일쑤라 가이드들은 몇 군데 휙 설명하고는 토산품 팔기에 열중하고 관광객들의 뇌리에는 별 인상이 안 남는다 한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의 삶의 모습, 그리고 그 곁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돌담과 살림집을 가장 잘 간직한 곳을 찾으려면 단연 성읍민속마을을 꼽는다.


영주산, 모지오름, 남산봉이 둘러싸고 있고 풍화된 현무암이 흙을 이룬 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매우 오래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빗살무늬토기조각, 무문양토기조각 등 신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주거유적, 패총유적 등이 조사되기도 했다. 이후 탐라시대,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사람들의 취락이 발달되어 있다가 조선시대인 1423년(세종 5년)에 정의현의 읍치(邑治)가 되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정의성(旌義城)은 축석을 시작한지 불과 5일 만에 총 둘레 2,986척, 높이 13척 규모로 완공되었다. 그 외에도 동헌으로 쓴 일관헌(日觀軒), 정의향교에 딸린 명륜당(明倫堂)과 대성전(大成殿)이 남아 있다.


정의성에는 남, 서, 동문이 있는데 남문이 가장 크며 중심을 이룬다. 각 문의 입구에는 돌하르방이 서 있는데 제주 여느 돌하르방과는 달리 그 표정이 무뚝뚝하다. 남문을 지나 마을을 관통하는 제법 큰 도로로 나아가면 마을 한 가운데쯤 일관헌 곁에 느티나무 한 그루, 팽나무 일곱 그루가 있다. 옛적부터 이 마을에서는 봄이 되면 이 느티나무에서 순이 먼저 나는 방향을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전해진다. 제일 먼저 순이 나는 방향의 마을에 풍년이 들고, 나무 가운데부터 싹이 돋으면 성읍마을 전체가 풍년을 맞는다고 믿었다. 이 나무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이다. 또 일관헌 서쪽 팽나무 한 그루는 특별히 신목으로 받들고 기도처도 있는데 ‘관청할망(안할망)’을 모시는 안할망당도 남아 있다. 나무마다 그 수령은 다른데 느티나무는 1,000여 년, 팽나무는 600여 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나무들은 천연기념물 161호로 지정되어 있다.

 

600~1000년에 걸쳐 마을을 지켜온 제주 성읍마을 느티나무와 팽나무


나무들을 지나쳐 마을 서편에 위치한 정의향교에 들어서다 보면 이채로운 광경을 만난다. 향교 입구인 대성문 오른편에는 야자수 와싱토니아가 웃자라 있는데, 전국 어디 문화유적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또 향교를 짓는데 사용된 석재도 모두 현무암인데 그래서 기와집이 여타 지역의 문화유적지와 주는 느낌이 다르다. 식생과 건축 자재 모두 반도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섬에 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전국 어디에서 이런 모습의 향교를 만날 수 있을까


마을에는 제주 동쪽 지역 중산간지역의 전형적인 민가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조일훈, 고평오, 이영숙, 한봉일, 고상은 가옥이 중요민속자료 68~7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외에도 제주민속자료로 지정된 민가들이 있다. 제주 문화재 관리 당국은 이외의 일반가옥에 대해서는 건물 보수시 지붕은 초가로, 벽은 돌담으로 하는 등 외형은 민속마을 분위기에 맞추고 생활 편의를 위해 내부는 현대식으로 개조한 것을 묵인한다고 한다.


마을은 민가, 관청 건물, 향교 할 것 없이 돌담으로 이어져 있다. 이 돌담은 마을을 넘어 다른 마을까지, 밭과 밭 사이, 구릉을 넘어 해안가까지 이어지기도 할 것이다. 제주 돌담의 검은 빛깔 사이에 파랗게 싹을 틔우고 살찌우는 파, 노랗게 꽃을 피운 유채, 에메랄드 빛깔 바다, 눈부신 하늘, 붉은 노을, 그 어떤 것이 아름답지 않으랴.


기록에 의하면 제주 돌담은 1234년(고려 고종 21년)에 제주판관으로 부임한 김구(金坵, 1211~1278)로부터 비롯된다고 전해진다. 그는 “약한 자들의 토지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밭담을 쌓게 하여 토지 소유의 경계를 나눴다 한다. 그 후부터 토지경계의 분쟁이 사라지고 방목했던 소와 말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줄어들었다 하니 그가 제주의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푼 대표적인 이로 꼽히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돌담을 쌓기 시작한 건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제주 땅 어디에나 널려 있던 돌은 집을 지을 때도, 밭을 일굴 때도 골치를 썩였을 것이고 돌 치우는 일은 가업이 되었을 것이다. 그 돌이 밭과 집 주위에 쌓여가자 점차 그걸로 담을 쌓았을 것이다. 건물을 바람으로부터 보호해야 했을 것이고, 밭에 뿌린 씨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보호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제주 돌담의 종류에는 축담, 올랫담, 밭담, 잣담, 산담, 원담 등이 있다. 축담은 초가의 외벽에 쌓은 담을 말하는데 집 건물 벽면에 두른 담을 말하는데 벽에 가깝다 하겠다. 올랫담은 큰길에서 집으로 출입하기 위한 골목을 따라 쌓은 담을 말한다. 그리고 제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밭과 밭의 경계를 짓는 밭담이 있다. 또 가축 방목을 위해 성처럼 길게 쌓은 잣담 역시 흔히 볼 수 있다. 한편 오름 같은 곳에 무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담도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이를 산담이라 한다. 산담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 할 수 있는데, 귀신이 드나들 수 있도록 여자 무덤은 왼쪽, 남자 무덤은 오른쪽으로 입구를 내기도 했다. 원담은 조석에 들고 나는 바닷길에 쌓아 물고기를 잡는 돌담이다.


제주 돌담은 이렇게 오름, 중산간, 해안가, 심지어는 바다에 걸쳐서 사람, 사람이 이룬 마을, 밭에 지천으로 널린 식물, 소와 말 같은 뭍짐승, 그리고 물짐승인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제주 전역 어디에서나 이곳이 제주임을 증거한다.

 

제주 용두암에서 용연 가는 길가의 무덤, 그리고 산담

 

 

담 너머 돌담은 바람처럼 흐르고

 

바람 타는 담, 바람 타는 섬

 

담은 경계를 구획하기 위해 쌓아 안과 밖을 나눈다. 밖의 무언가로부터 안을 지키는 것, 그것이 담이다. 그래서 담은 본디 폐쇄적이다. 하지만 제주 돌담은 약간 다르다. 경계를 구획하고 안을 보호한다는 점에서는 같겠으나 두드러진 목적이 다르다 할 수 있다. 제주의 돌담과 가장 밀접한 기후 요소는 바람이다. 제주의 연평균 풍속은 초당 3.8m로 한국에서 제일 바람이 강한 지역 중 하나로 이는 서울의 연평균 풍속이 초당 2.4m라는 사실과 비교해 봐도 잘 드러난다. 특히 여름에는 태풍의 길목이고 겨울에도 일평균 초당 풍속 5m 이상 바람이 빈번하게 분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와 같은 바람이 제주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육지의 담은 흙을 주재료로 하여 돌, 기와, 짚을 섞어 세워 빈틈이 없다. 그래서 담이 바람을 전면적으로 막는다. 하지만 제주 돌담은 다듬지 않은 자연 상태의 현무암만을 사용한다. 그래서 돌과 돌 사이에는 무수한 빈틈이 있다. 제주 돌담은 바람을 막기 위해 쌓았지만 그 바람을 다 막아내고자 하는 오만함이 없다. 돌담은 바람을 막고 빈틈은 바람을 통과시킨다. 이로써 아무리 강한 태풍이 불어도 제주 돌담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천 중간 중간 구멍을 뚫어 찢어짐을 방지하는 현수막처럼 말이다. 그 빈틈이 제주를 살아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현무암도 제주를 닮았지만 돌담도 제주를 닮은 셈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숨비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화산 용암이 굳어가며 숨을 쉬듯이 돌담도 숨을 뱉고 또 들이마신다. 이로써 안팎의 경계는 바람에게 모호해진다. 흐름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제 몸에 바람길을 내어 숨을 쉬는 담이 제주 돌담이다. 돌담의 구멍은 우리의 숨구멍과 같다.


돌담을 타고 넘어온 바람은 육지의 초가보다 완만하고 낮은 제주 초가의 지붕을 타고 스쳐 넘어간다. 돌담에 어울리는 제주 초가의 생김 탓이다. 성읍마을을 걷다 보면 바람의 힘과 맞서기보다 앉은 채로 그 바람을 타는 제주를 만난다. 

 

제주 사람들의 살림집에서 큰길까지 난 올레

 

돌담에 난 바람길

 

현무암을 닮은 돌담, 돌담을 닮은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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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5 03:03 2010/07/05 03:03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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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6/08/28 02:5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dbqls
    2016/08/28 03: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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