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일 교수님의 정년퇴임 고별사
(2009년 2월 19일)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님의 퇴임 고별사임-

제가 성년에 이르러, 대한민국에 태어난 축복을 부여받은 한 인간으로서 나름대로 이룩할 수 있는 궁극적인 소명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지 어언 40여 성상, 저는 이제 저의 지나간 세월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삶을 새로이 꾸며 볼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결코 저 자신만의 노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저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어줍잖은 재주를 어여삐 여겨 현재의 제가 있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 지금은 다 유명을 달리 하셨으나 그 분들이 저에게 던져 주셨던 기대의 눈길들을 생각하면, 지나간 날들의 나태와 자기 도취의 삶이 한 없이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여러 선생님들께서 말씀을 하셔야 하는고로 저는 그동안 생각만하여 오고 여러 선생님들께 미처 말씀드릴 기회가 없었던 사안 하나를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언급코자하는 문제는 근년에 이르러 만연되어 있는 아주 잘못된 생각, 즉 영어로 강의를 진행하여야 학문의 세계화며 국제화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편협되고 오도된 생각입니다. 모름지기 모든 학문은 자국어로 아루어질 때에만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외국어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도구일 뿐이지 목적이 될 수 없읍니다. 자국어에 대한 긍지와 사랑이 없이 학문과 예술이 꽃핀 예를 저는 기억치 못합니다. 이태리의 씨에나 대학에서는 이태리 말로, 독일의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는 독일어로, 프랑스의 쏘르본느 대학에서는 프랑스어로 심도있는 연구와 사변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우리 만큼은 영어라는 한 외국어에 의존하여야만 학문의 국제화며 세계화가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 천박하고 부박한 생각은 단연코 척결되어야 합니다.

한 학기에 개설되는 과목의 몇할이 영어로 진행되느냐가 학교 평가에 반영되고, 신진 교수가 임용되면 의무적으로 영어로 강의를 강행하도록 요구함으로써 그 신예교수가 이룩한 학문의 경지를 마음, 후배들에게 보여주는 데에 걸림돌이 되도록 하는 것, 이는 결코 학문의 발전에 도움되는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프랑스에서, 이태리에서, 일본에서, 중국에서, 외국의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영어로 강의를 하여준다는 이야기를 저는 들은 바 없읍니다. 한국에 유학 온 외국 학생들은 당연히 한국어를 공부하여 한국어로 강의 듣고 한국어로 과제물을 제출하고 하는 것이 한국에 유학 온 보람이자 정도일 것입니다.

심지어는 국학마저도 세계화를 위해 영어로 논문을 쓰고 강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천박하고 부박한 생각을 거침없이 개진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서글픈 현실입니다.

우리는 과거 일제의 식민지로 고난을 겪을 때 우리 말과 글을 사용할 권리를 빼았겼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읍니다. 우리 말과 글을 존중하고 그에 대한 훈련을 게을리 하였을 때, 모든 학문은 그 뿌리가 흔들리고 학문의 정체성마저 상실케 될 것입니다. 미국을 한 예로 들면, 대학과정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큽니다. 학부 1학년에서는 작문을 6학점이상 하고, 2학년에 올라가면 영미문학 고전을 읽고 토론하고 과제물로 제출하는, 영어 사용의 정도를 위한 강훈련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심지어는 국문학도 영어로 강의하고 토론하는 것이 국문학의 세계화라 믿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초급 불어를 공부할 때 읽은 단편 하나가 생각 납니다. 외국의 침략에 의해 더 이상 프랑스어를 공부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는 상황에서 한 프랑스어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며 그의 마지막 수업을 끝냅니다. “C’est fini. Allez vous en.” [“다 끝났다. 돌아들 가거라.”] 모국어에 대한 사랑과 긍지가 있을 때에만 진정한 학문의 발전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국어를 가볍게 여기고 영어라는 외국어를 강의와 토론의 수단으로 삼을 때에 찾아 들 정신적 황폐화는 실로 가공한 것입니다. 자국어를 젖혀놓고 어설픈 외국어로 원숭이 노릇을 하고 있는 동안, 진정한 학문 탐구가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은 물론, 젊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게 마련인 자국어 경시의 의식 그것은 곧바로 학문의 정체성 상실과 외국어를 자국어의 상위에 놓는 사고의 식민화로 직결되고, 이는 자아 상실과 정신적 불모 내지는 황폐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혹자는 영어가 갖는 효용성을 언급할지 모릅니다. 도구에 대한 연마는 필요합니다. 제가 세번에 걸쳐 연구년을 가졌을 때, 그때마다 저는 혹은 카나다에서 혹은 미국에서 강의를 할 때 영어에 의존 할 수 밖에 없었읍니다. 그리고 그 때 저는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었습니다. 왜냐면 대상 학생들이 영어 밖에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버젓이 한국어가 모국어인 학생들을 앞에 놓고 어설픈 영어로 겨우 겨우 강의를 해 나가는 교수들의 초라한 모습 앞에서 학생들이 그의 학문에 대한 외경심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 것이며, 또 지식 전달이나마 제대로 되겠읍니까?

저의 전공이 영문학이니만치 가끔은 학생들에게 영어로 강의를 하여 그네들이 갖는 호기심도 충족시켜 주고 또 자극도 주고 싶어 몇 차례 시도하여 본 바 있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전공이 영문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도 이를 계속하지 않은 이유는, 영어로 강의를 하면 주어진다고 하는 인쎈티브니 뭐니 하는 학교 시책도 낯 간지러워 줄기차게 영어로 영문학 강의를 하기가 거북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자국어에 대한 긍지와 존숭심이 결여된 모든 학문 활동은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부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시고 진정한 교수와 연구 활동은 어떠하여야 하는지 천착하여 주시기를 바라면서, 저는 연세대학교를 떠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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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11:14 2010/08/14 11:14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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