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파업은 언제?
노동자, 역사를 기억하라

토리노 파업 파피루스
세계 최초의 노동자 단체행동, 즉 파업을 벌인 건 파라오의 무덤을 짓던 이집트 노동자들이었다고 합니다. 파라오 무덤의 건설과 단장을 담당하던 건축가, 석공, 목수, 금속 세공사 등 전문 장인이 주인공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지금으로부터 3000여 년 전인 람세스 3세 때, 밀린 급료, 즉 체불임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습니다.

그들의 급료는 18일이나 밀려 있었습니다. 그냥 일을 멈추고 놀았던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은 감시탑을 지나며 행진했고 신전 안으로 들어와 연좌농성을 벌였습니다.

“굶주림과 목마름 때문입니다. 입을 옷도 없습니다. 기름도 없습니다. 생선도 없습니다. 야채도 없습니다.”

곽민수 번역, 고대 이집트의 파업, 「한국전통문화연구」 14호, 2014,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노동자들의 파업에 현장 감독들은 당황했습니다. ‘윗선’에도 보고하면서 파업 노동자들을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가는 동안 무덤은 조금도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사용자’는 급여 일부를 내주었습니다.

우린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걸까요? 당시 파업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토리노 파업 파피루스’라고 불리는 이 기록은 이탈리아 토리노의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집트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데이르 엘-메디나 유적. Ⓒ 곽민수

이렇게 ‘기록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몇 천 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여전히 압도적인 기록은 파라오에 관한 것이겠지요. 역사는 ‘힘 있는 자들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권력과 돈, 명예와 부를 가진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 훨씬 많이 생산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는 쓰입니다.

노동자처럼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여성, 아동, 비주류 민족, 제3세계… 어쩌면 역사는 아직도 ‘승리한 자들의 역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각국의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자와 함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조금씩 권리를 쟁취해 가면서 동시에 그것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책이 쓰였고 구술과 영상 기록이 남았습니다. 일부는 전시를 통해 또 자료실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었고 열렸습니다.

아시아 최초 노동박물관, 태국
태국 수도 방콕의 마카싼 철도역 근처에는 단층짜리 태국 노동박물관이 있습니다. 1993년 10월 문을 연 이 노동박물관은 아시아 최초의 노동박물관이기도 합니다. 태국의 노동계에서 세운 이 박물관은 역사 속에 묻히고 실종된 노동자의 역사를 복원하고, 기록과 자료의 수집․정리․보존, 노동자 교육 등을 하기 위한 종합 공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박물관의 전시물 중에는 콰이강의 다리 등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추진한 이른바 ‘죽음의 철도’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고난과 고통에 대한 사진과 디오라마도 있습니다. 또 1993년 발생한 케이더 인형공장 화재참사 사건 전시물도 있습니다. 매우 참혹한 사건이었습니다. 심슨 가족 인형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어난 이 화재로 188명이 사망하고 469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기업주가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가는 것을 방지한다며 문을 밖에서 잠그는 바람에 더욱 희생이 컸습니다. 이 사건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의 유래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1932년의 절대군주제의 폐지, 이후 빈발한 군사쿠데타와 독재 체제, 1973년의 민주화 투쟁, 초기 산업화 시대의 혹독한 노동조건과 인권 유린, 그리고 이에 저항했던 노동운동 태동기의 사진, 신문, 유인물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태국노동박물관 전경. Ⓒ 석치순

태국노동박물관 전경. Ⓒ 석치순

태국노동박물관 실내 모습. Ⓒ 석치순

태국노동박물관 내 '죽음의 철도'를 깔던 노동자들을 재현한 디오라마. Ⓒ 석치순

태국노동박물관 내 '죽음의 철도'를 깔던 노동자들을 재현한 디오라마. Ⓒ 석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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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노동박물관 전경. Ⓒ 석치순
100년을 바라보는
일본 오하라사회문제연구소
일본 도쿄에는 호세이 대학 부설 오하라사회문제연구소가 있습니다. 구라시키방적을 경영하던 대부호 오하라 마고사부로(1880~1943)의 후원으로 1919년 설립되었으니 이제 곧 100년이 됩니다. 오하라사회문제연구소는 열정적으로 자료를 모았습니다. 창립 이래 반세기 동안 18만 책을 수집했고 1920년대 런던, 베를린 등지에서 유럽의 도서를 수집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1920년대부터 매년 일본노동연감, 일본사회사업연감을 편찬했는데, 이를 위해 당시 노동조합, 농민조합, 정당, 사회단체의 기관지를 빠지지 않고 수집했습니다. 또 노동조합이나 단체 또는 개인이 소장한 자료를 일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이들 단체의 주요 회의록 뿐만 아니라 회원명부, 회계부, 심지어 영수증철이나 개인 서한까지도 확보하고 있습니다.

오하라연구소는 또한 재일 조선인 독립운동 자료 역시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노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던 조선인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황가 암살을 기획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변호하기도 했던 후세 다쓰지(1880~1953)는 이 오하라연구소의 자료수집위원이었는데, 그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노동운동 관련한 자료를 수집했고 또 직접 관련한 사건에 변호사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오하라 사회문제연구소 입구의 모습.
태국과 일본 사례를 보았습니다만, 사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노동자 역사 기록을 수집, 보관하는 아카이브와 박물관, 기관 등이 많이 있습니다. 유럽 각국의 노동운동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네덜란드 국제사회사연구소(1935), 노동 관련 기록물을 수집·보존하는 프랑스 노동기록보존센터(1993), 텍사스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텍사스 노동기록관, 미국 남부 노동 아카이브(1971) 등이 그것들입니다.

노동자 역사 한내,
독립 노동 아카이브
한국에도 노동 자료를 모으고 또 간행물을 편찬하는 등의 활동을 했던 기관이 존재했습니다. 1980년대의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나 전태일노동자료연구실도 그런 기관들이었습니다. 2000년대가 넘어오면서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200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2001), 그리고 노동자역사 한내(2008) 등의 기관이 등장했습니다.

노동자역사 한내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1995년 해산하면서 전노협의 활동 백서를 만들었던 노동운동역사자료실을 확장하면서 만들어진 민간 노동 아카이브로서 700여 명의 회원의 힘으로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독립’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한내는 여러 노동조합의 자료를 전산화하고, 또 노동조합 투쟁백서나 노동조합사를 펴냈습니다. 민주노조운동과 그 투쟁에 참여한 수많은 조합원들을 만나 인터뷰했고 자료를 모았으며 그것을 기반으로 노동자 역사를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또 이번 <1987 노동자대투쟁 30주년 기념 전시, 노동자 인간선언>과 같은 전시를 기획하고 열고 있기도 합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사실 그리 빛나지 않는 일입니다. 겉으로 드러나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기 보다는 어쩌면 조금 고독한 작업입니다. 한내와 함께하는 회원들과 상근자들은 올해로 10년 동안 묵묵히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는데, 노동자들도 역사를 잊으면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유실되어 가는 노동운동의 기록을 모으고 노동자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에 노동자역사 한내는 함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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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23:05 2019/01/16 23:05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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