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무간도

2006/11/07 14:04

[메모] 무간도  


 
양돌규

 
 
1.

홍콩, 힘 꽉 준 영화, 근육 팽팽, 인상 열나게 쓴, 명암대비 확실하고 콘트라스트 이빠이 준, 홍콩 느와르 새 버전, 무간도 1, 2, 3을 연짱으로 봤다. 무간도에 열광하고 난리 치는 사람은 세 경우 중 하나, 혹은 세 경우 모두에 해당하는 자다. (1) 마초, (2) 과거에 연연하는 자, (3) 자신을 책망하는 자.

 

2.

 

무간도는 팔열지옥(八熱地獄)의 하나로, 사바세계(娑婆世界) 아래, 2만 유순(由旬)되는 곳에 있다고 한다. 1유순은 대략 15Km라고 하니 우리가 있는 이 곳으로부터 30만 Km 떨어져 있는 곳에 무간지옥이 있다. 감이 잘 안 잡힌다. 참고로 지구 반지름은 6,370Km라고 한다. 30만Km면, 빛이 진공 속에서 1초 동안 가는 거리를 뜻하는 1광년에 해당한다. 지구에서 달까지가 38만Km 정도다. 무간도는 달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셈이다. 믿거나 말거나.

암튼, 그 먼 곳에 있는 무간도는 18층 지옥의 가장 낮은 층에 있다.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찾아봤더니만 보안사 대공분실, 이문동 옛 안기부청사 지하실의 몇 수억 배인 것 같다. 뭐 불로 지지고 찢고 별 난리 생쑈다.

 

무간지옥은 오역죄(五逆罪)를 범한 자들이 떨어지는 곳이라 한다. 즉 부모를 살해한 자, 부처님 몸에 피를 낸 자, 삼보(보물·법물·승보)를 훼방한 자, 사찰의 물건을 훔친 자, 비구니를 범한 자 등이다.

 

무간도 3편의 마지막 자막에 소개된 지장보살본원경권상의 문장은 이러하다. “이러한 무리들은 마땅히 무간지옥에 떨어져, 천만억 겁으로도 벗어날 기약이 없다.” 세상에, 천만억 겁이라니. 1겁을 또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잡아함경(雜阿含經)》이라는 책에서는 1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방과 상하로 1유순(由旬:약 15 km)이나 되는 철성(鐵城)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마다 겨자씨 한 알씩을 꺼낸다. 이렇게 겨자씨 전부를 다 꺼내어도 겁은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식으로 설명하면 1겁이란 이런 정도의 기간이란다. 사방이 1유순이나 되는 큰 반석(盤石)을 100년마다 한 번씩 흰 천으로 닦는다.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다 마멸되어도 겁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결국 무간도란, 한 번 가면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옥 중의 지옥, 지옥의 으뜸, 베스트 오브 지옥, 왕 지옥, 울트라 지옥이다.

 

3.

 

홍콩 영화는 내 취향도 아니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난 누가 뭐래도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즉 87년 이후 세대고, 이른바 ‘대중운동의 시대’ 세대다. 그래서 혼자 장렬하게 싸우다가 죽는 소위 ‘홍콩 느와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 싸우다 죽으면 무슨 소용인겨’ 하는 세대다. 그래서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가 인기 폭발 난리 칠 때도, 주윤발이 ‘싸랑하던’ 그 밀키스를 마시면서도 정작 그가 나온 영화는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소위 홍콩 느와르의 계보를 훑지 못한다. <영웅본색> 조차 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무간도>가 어떤 전작들에서 모티브를 따왔는지, 혹은 어떤 영화와 유사한지, 왜 ‘신 홍콩느와르’라고 불리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그런 <무간도>의 영화사적 해설을 보려면 씨네21의 김봉석과 심영섭의 글을 찾아 읽으면 된다.

 

4.

 

처음에는 쟤네들이 무슨 나쁜 짓을 해서 무간지옥에 빠져 버리는 줄 알았다. 조금 보다 보니 양조위가 착한 놈이고 유덕화가 나쁜 놈이길래, 게다가 옥상에서 머리통에 총 겨누는 장면이 있길래, 선악대결의 그 닳고 닳은 중국판 성경, 중국판 불경인 줄 알았다. 착한 놈은 천당 가고 나쁜 놈은 지옥 가는 그런 막연한 믿음 있잖은가. 근데, 1편에서 2편, 2편에서 3편으로 가면 갈수록 선명해지는 건, 시골 장터 좌판 할머니의 넋두리 같은 ‘사는 게 지옥’이라는 일갈이었다. 무간지옥은 죽으면 가는 그 30만 킬로 떨어진, 천만억 겁 지나도 벗어날 수 없는 그 미래의 어떤 시공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인 것이었다.

 

지옥은 멀지 않다. 이곳이 지옥이다. 그 까닭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찰의 탈을 쓴 삼합회 일당과 삼합회의 탈을 쓴 경찰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탈을 쓴다. 그 탈을 썼기 때문에 이 세상이 지옥이라면, 출구는 없다. 오히려 그 가면극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지옥이다. 속고 속이는 현장임을 게임의 참가자 모두가 알기 때문에 지옥이다. 출구는 없고 지옥은 순환한다. 무간도는 네버엔딩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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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14:04 2006/11/0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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