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17/04/18 19:08

[붉은글씨 5호][서평] 추방된 자들의 신세계

어슐러 K. 르귄, <빼앗긴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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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인|가사노동자

 

<빼앗긴 자들>은 커트 보네거트나 필립 K. 딕의 소설들과 달리 의심할 여지가 없는 SF 소설이며, 또한 많은 이 장르의 소설들과 달리 의심할 여지가 없는 걸작이다. 이 소설은 어슐러 K. 르귄의 헤인(Hein)연대기들 중 하나다. 오랜 옛날 헤인이라는 문명은 우주 곳곳으로 흩어져 식민지를 개척하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헤인 문명은 멸망하고 인류는 자신들이 정착한 행성에서 각기 (정치·사회·경제적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서로 다르게 발전한다. 헤인 연대기는 오랜 세월이 지나 은하계 사이를 여행할 정도로 문명을 회복한 인류가 우주 곳곳에 고립되어 발전하고 있는 다른 인류들을 찾아 교류하는 것을 중심 이야기 줄기로 가져간다.
 

<빼앗긴 자들>은 행성 우라스와 그 위성 아나레스를 배경으로 한다. 행성 우라스의 사회체제는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와 유사하다. 이 사회는 차이와 차별(부자와 빈자, 자본가와 노동자, 남성과 여성, 그리고 기타  등등)을 기초로 세워진 사회이다. 수 백 년 전 행성 우라스에는 오도라는 여성 사상가가 나타나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사상을 퍼트린다. 오도니언이라고 불리는 오도주의자들은 박해를 피해 척박한 위성 아나레스로 떠나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새로운 사회체제를 수립한다.


아나레스에서 태어난 물리학자 쉐벡은 동시성 이론이란 새로운 이론을 수립하지만, 먹고살기도 힘든 아나레스 사회에서 그의 이론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쉐벡은 오히려 우라스에서 자신의 이론이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뼛속까지 오도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의 교류를 위해 우라스로 떠날 결심을 한다. 소설은 쉐벡이 우라스에서 겪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빼앗긴 자들>의 원제는 “The Dispossessed”이다. 이 제목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첫째는 추방된 자들이라는 의미이고, 두 번째는 소유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세 번째는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의 영어제목 “the possessed”의 패러디로 보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바쿠닌의 제자인 무정부주의 혁명가 네차예프가 조직의 배신자를 살해한 유명한 사건을 보고 <악령>을 썼다. 그에게 당시 러시아 청년들을 사로잡고 있던 혁명사상은 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possessed”라는 것은 귀신들린 자들, 악령에 사로잡힌 자들이라는 뜻이고 그래서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악령>으로 번역되었다. <악령>은 귀신들린 돼지들이 미쳐 내달리다가 강물에 빠져죽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되고, 혁명사상에 경도된 젊은이들이 서로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죽이다가 모두 파멸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the dispossessed”라는 원제는 혁명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귀신에 들린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자들, 깨어있는 자들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사실 <빼앗긴 자들>이라는 한국어 번역은 그다지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오도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은유로 생각되지만, 사실 마르크스주의라기보다는 19세기의 유토피아 사회주의나 프루동, 바쿠닌 류의 아나키즘과 더 유사해 보이며, 르귄도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나레스와 우라스의 관계가 미국과 소련의 비유로도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자본주의 사회와 어디 먼 오지에서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와 더 유사하다. 우라스가 사실 아나레스를 별로 위협적으로 느끼지도 않는다는 것을 볼 때 더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훌륭한 점은 1960~70년대 급진주의가 제기한 새로운 문제들을 받아들인 사회주의 사회의 비전을 보여주었다는 면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등장한 정치적 급진주의 운동과 유토피아주의를 계승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전반적 틀은 1848년 혁명 직전 <공산주의자 당 선언>으로 처음 구체화되었는데, 이는 자신이 빚지고 있는 전통들과 여전히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략 1880년대 말에서 90년대 마르크스주의가 실제로 현실 노동운동과 결합해 들어가면서 그러한 급진적 이상주의의 상당부분은 삭감되었다.
 

마르크스주의를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이며 대중정당이 된 독일 사민당은 가족, 여성문제 있어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들의 당면 실천과제는 무엇보다도 보통선거제와 8시간 노동제의 쟁취였다. 독일 사민당의 에어푸르트 강령의 해설에서 강령 전문의 작성자이자 당시 제2 인터내셔널을 주도하는 이론가였던 카우츠키는 국가 사회주의적 색채를 분명히 했고, 가족의 유지, 여성노동 금지 등을 정당화했다. 또한 보통선거제에서도 독일 사민당과 제2 인터내셔널은 남성들만의 보통선거제 확대를 받아들였다. 이는 초기부터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운동을 분리시키는 주요한 쟁점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가족은 점차 사멸할 것이며 그 기초는 자본주의의 기계제 공업의 발전으로 여성/아동과 남성 성인의 육체능력의 간극이 좁혀짐에 따라 사회성원 전체의 노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원칙적으로 여성/아동의 노동참여를 반대하지 않았다. 국가에 대해서도 단지 과도적 형태의 준국가를 인정했을 뿐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사멸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무정부주의와 다르지 않았다.
 

19세기 말의 제2 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적 보수화는 1840년대와 1890년대 노동자계급의 상황의 차이에서 기인했다. 실제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0년대 영국의 공업단지에서 보았던 것은 프롤레타리아 가족 성원의 전반적인 노동참여와 그에 따른 가족의 해체였다. 그들이 본 당시 영국 노동자계급의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일가족은 쪽방에서 집단 거주를 했으며 아이, 여성, 남성 가리지 않고 모두 공장에서 노동을 해야 했다. 부르주아 역시 생활형태가  점차 귀족화되며 초기 부르주아의 도덕적·가정적 건실함은 점차 사라지고 부르주아 혁명 전야의 귀족들처럼 성윤리가 해체되고 있었다.
 

<당 선언>은 공산주의자가 성윤리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비판에 대해 부인공유제를 이미 실행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부르주아들이라고 비판의 칼날을 거꾸로 돌렸다. 비록 엥겔스가 남성 1인과 여성 1인의 배타적 관계를 이상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그것을 독단화한 적은 없으며, 과연 마르크스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기존 가족의 해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분명 자본주의 발전의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경향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1890년대 독일 노동자들은 1840년대 영국 노동자들 같은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진 않았다. 그것은 동시대 영국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엥겔스는 1891년에 이미 영국의 대공장 노동자들이 장기적인 노동조건의 개선에 의해 귀족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빅토리아 시대말 영국 노동자들과 동시대 독일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적 가정적 견실함에 젖어들고 있었다. 이는 흔히 ‘가족임금’이라고 불리는 것의 형성과 무관하지 않았다. 19세기 말에 면방직을 중심으로 한 경공업에서 기계, 철강 등 중공업으로 자본주의 산업재편이 이루어지면서 여성과 아동은 대거 가정으로 축출되었다. 이는 성인 남성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조직적 투쟁을 통해 가족을 부양할 만큼 고임금을 확보 받은 것과, 공장법과 보통교육  같은 제도의 도입과 궤를 같이 했다. 이 속에서 성인 남성 노동자들의 의식은 급속히 부르주아화/보수화되었다. 결국 보수화된 사민주의는 혁명을 지향하는 정당이라기보다 체제 내의 개량주의 정당으로 발전했다. 1차 대전으로 빚어진 유럽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국면 속에서 초기 마르크스주의의 급진적 이상주의는 치머발트 좌파에 의해 다시 부활했다. 판네쿡,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등은 제2 인터내셔널의 국가주의, 의회주의에 의해 억눌린 코뮨주의를 복원시키고자 했다. 콜론타이는 부르주아 페미니즘에 맞선 혁명적인 페미니즘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런 이상주의의 부활은 1921년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의 후퇴와 자본주의화에 의해 다시 압살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스탈린주의라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윤색되었다. 2차 대전 이후 장기호황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보수화는 더욱 강화되었고, 이와 함께 기존 사회주의 정당들의 관료화·보수화도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대 후반 위기에서 다시 대중운동으로 등장한 급진주의적 이상은 결국 마르크스주의의 틀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여성, 가족, 동성애, 인종에 대한 문제제기를 기존의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운동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68년의 대중운동에 대한 기존 사회주의 정당의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는 노동자계급에 기반 하지 않고 경제적 분배의 문제보다 사회적 소수의 민주적 권리 확보를 중심 과제로 삼는 새로운 좌파, 즉 신좌파 운동을 등장시켰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나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를 자신들의 이론적 기초로 받아들였다. 모든 문제를 일상에서 개인의 저항으로 환원하는 신좌파의 경향도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신좌파가 제기한 문제들을 배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주로 조직된 노동자계급에 기반 하고자 하는 구좌파 세력들은 점점 더 조합주의·국가주의적 성격으로 빠져 들어갔다.
 

<빼앗긴 자들>은 초기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가 가졌던 급진적 이상주의의 비전을 구체적 상상력을 통해 풍부하게 보여준다. <빼앗긴 자들>이 제시하는 가족과 국가가 없는 사회운영의 가능성과 자유로운 성윤리는 많은 영감을 준다. 이것은 분명히 르귄 자신이 경험했던 60년대 후반과 70년대 대중운동의 이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이러한 사회를 이상화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이러한 사회가 폐쇄적이 되지 않고 발전적이 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쉐벡은 오도주의의 이상을 믿지만 외부와의 교류를 거부하는 아나레스 사회의 경직된 구조 속에서 관료주의와 사회적 퇴행이 이미 나타나고 있음을 직시한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결국 쉐벡은 아나레스 사회체제 자체가 위협받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교류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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