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17/04/13 20:01

[쟁점] 다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묻는다

 

[기고]울산저널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폭언 폭행에 맞선 투쟁
 

2012년 7월 20일 창립주주총회를 연 울산저널 [출처] 울산저널 페이스북 [출처: 울산저널 페이스북]


관계는 끊임없이 묻는 것이고 움직이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의 균형을 잡는 일이라고 난 생각한다. 특히 삶-운동에 있어 비판과 논쟁은 관계의 균형을 잡는 핵심적인 수단과 방법이다. 

전 울산저널 윤태우 기자가 지목하여 폭로하고 항의했던 울산저널 경영진들은 나와는 오래된 인연이다. 이 자리에서 이 인연을 다 적을 필요는 없지만 그들은 어느 한 시기 같은 투쟁의 자리에 있었고 함께 했다. 그들은 내게 도움을 주고 나를 지지하고 존중해줬다. 내 마음의 한 자리, 아직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남아 있다. 난 이 오래된 인연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여기 하나의 사건이 있고 입장은 첨예하다. 지금은 오래된 관계를 중지시키고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내가 울산저널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폭언 폭행에 맞선 윤태우 기자의 투쟁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 박일수 열사 기일을 맞아 울산에 내려온 직후, 한 동지가 보여준 윤태우 기자의 글모음이었다. 난 윤태우 기자를 전혀 몰랐지만 울산저널 경영진들과의 오래된 인연에도 불구하고 윤태우 기자의 항의와 요구는 정당해 보였다. 또 한 편에서는 내 오래된 인연의 사람들이 윤태우 기자의 폭로와 항의를 못 견뎌할 것이라고 직감했다. 쟁점들은 드러난 현상이었을 뿐이고, 서로 모욕당하고 상처 받은 마음을 다스려주지 않으면 이 문제는 더 거칠어지고 잔인해질 것이라 예감했다. 서로의 감정을 덧나게 하지 않으면서도 이 문제를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동지가 울산지역에 있으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지만 울산을 떠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시 이 문제가 내 삶에 다가온 건 윤태우 기자의 해고가 일정에 오르고 울산지역에서 항의성명서 연서명을 조직하기 위해 연락이 오면서다. 난 기본 입장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었고 연서명에 참여했다. 그러나 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악화되어 갔고 더욱 거칠어지고 잔인해졌다. 

윤태우 기자의 요구는 지극히 소박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달라는 호소였으나 울산저널 경영진은 솔직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았다. 말을 바꾸고 변명했다. 심지어 숙소문제를 제기하는 윤태우 기자를 숙소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로 모욕하기까지 했다. 이 초기 대응 과정을 보면서 왜 이따위로밖에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좌파꼰대가 따로 없었다. 아마 이즈음에서 울산저널 경영진이 윤태우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줄 힘이 있고 자기 행위를 성찰했다면 문제 해결의 수단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울산저널 경영진은 끝까지 솔직하지 않았고 윤태우 기자의 폭로와 항의를 못 견뎌하면서 그의 요구를 ‘거짓비방’, ‘명예훼손’으로 몰아가기 바빴다. 단체협상 과정에 있는 윤태우 교섭위원을 경찰에 고소하고 징계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업무규정을 신설해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직장 내 따돌림과 집단 괴롭힘, 쌍욕과 폭행을 자행하고 마침내 부당해고 하고 복직한 그를 또 다시 부당정직까지 시켰다. 부산지노위는 울산저널 경영진의 행위가 부동노동행위, 부당정직이라고 판정했지만 이 전체 과정은 울산저널 경영진이 윤태우 기자의 항의를 진압하기 위한 조직된 폭력이자 정서적 학대였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사용자의 지위가 낯설고 또한 서고 싶지 않았지만 사용자의 지위를 분명히 자각하면서부터 드러난 특징들이 있다. 첫 번째는 비판을 못 견뎌하고 직장 내 문제가 울산지역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으며 공격의 가시로 자신을 무장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비판을 억압하고 파괴하기 위한 정치적 무기들을 유능하게 사용하는 법을 안다는 것이다. 윤태우 기자의 폭로와 항의는 “거짓비방”으로 몰아가고 울산지역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모든 비판자들은 “울산저널을 죽이기 위한 배후”로 낙인찍었다. 모든 비판은 울산저널을 죽이기 위한 배후·음모론으로 대체되었고 쌍욕과 집단적이고 물리적인 위력을 발휘해 “침묵”을 강제하려 했다. 

그 절정은 2016년 5월 3일 울산이주민센터에서 조돈희 동지에 쌍욕과 집단적인 위력을 사용한 것이었다. 난 이날 울산저널 경영진들의 말과 행위를 보면서 울산저널 살리기 운동이 종교적 색채를 띠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울산저널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동지적 관계로, 서로 존중하는 선후배로 쌓아 온 우정도 가차 없이 폐기할 수는 광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울산저널을 비판하는 울산이주민센터 조돈희 소장은 동지도, 존중과 우정을 나눈 선배도 아니었다. 다만 울산저널을 망하게 하려는 적이었을 뿐이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그들의 표현대로 “날조된 음해”, “무섭게 번지는 독버섯 같은 음해를 끊고자 했던”, “단호한” 투쟁을 조직한 것이었고 울산저널을 살리기 위한 신념의 집행이었지만 이 신념의 집행은 울산저널 경영진이 살아온 자기 삶을 배반하는 것이었다. 인간관계의 처참한 폐허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울산저널이 사용한 정치적 무기들은 소위 진보 혹은 운동의 이름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정치적 무기들은 위계를 통해서만 작동하고 차별을 제도화함으로써 유지되며 비판을 억압하고 명령을 완성함으로써만 실현되는 부르주아 정치이기 때문이다. 배후·음모론은 부르주아 정치가 자신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정치적 거울이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자신의 숨겨져 있던 뛰어난 재능을 발휘함으로써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윤태우 기자는 깊은 상처를 입고 울산을 떠나갔고 울산지역 운동사회 다수의 침묵을 이끌어냄으로써 진보언론으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산저널 경영진의 모든 행위는 좌파란 이름도, 진보란 이름도 이미 부르주아 정치의 일부분이 됐다는 걸 명징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들이 사용한 모든 정치적 행위는 무엇보다 노동운동가로서의 자기 삶을 배반한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울산저널 살리기 운동에 자기 운명을 건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이들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망해 보인다. 

이 글은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 눕고 싶은 마음 다독이며 돌탑처럼 쌓아 올린 것이다. 울산을 떠난 윤태우 기자가 다른 삶을 시작하는 데 이 글이 지지와 격려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때늦어 미안하다. 


난 글을 시작하면서 윤태우 기자의 인간선언이 나의 “배후”임을 미리 밝혀 두고자 한다. 


“노동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 달라”
이것이 윤태우 기자가 울산저널을 상대로 한 투쟁의 시작이었다


내가 울산저널 윤태우 기자를 처음 본 것은 작년 6월 울산이주민센터에서 진행된 ‘노동, 시민, 사회단체 긴급 좌담회 <울산저널 경영진의 폭언, 폭력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자리였다. 화천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울산으로 내려온 직후였다. 

상황은 처참한 폐허였다. 

이날 자리에서는 상황을 공유하고 몇 가지 계획이 합의됐지만 내 문제의식은 <울산저널 경영진의 폭언, 폭력 어떻게 할 것인가>의 출발지였던 윤태우 기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난 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윤태우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인터뷰를 명목 삼아 윤태우 기자와 만날 수 있었다.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술을 먹었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난 이 자리에서 윤태우 기자의 자기 투쟁의 뿌리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희생해 온 노동자들은 경영진의 ‘한마디’ 듣고 싶어서 싸움에 나섰다. 불가피하게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때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한 마디 어찌저찌한 이유로 주거를 보장하기 어려울 것 같다 미안하다. 그 한마디가 간절하게 듣고 싶어서 이 악물고 싸우고 있다” (윤태우 기자, [울산 노동계 단상], 2016년 2월 8일) 

“알아서 희생해 온 노동자들이 고민 끝에 기어이 요구한다. ‘약속을 약속으로 인정하기’/ ‘못 지킬 때 이해를 구하기’/ ‘사과하기’/ 이걸 받아들이기가 뭐가 그렇게 힘든가. … 이 사람들에게 노동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기를 요구하기가 뭐가 이렇게 힘겨운 지” (윤태우 기자, [울산 노동계 단상], 2016년2월8일)


그랬다. 울산저널 내에 숙소문제가 발생했을 때 윤태우 기자가 울산저널 경영진에게 듣고 싶었던 한마디는 양해를 구하는 것, “사과”였다. 인간에 대한 예의였던 것이다. 이것을 들어주는 것이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가? 

윤태우 기자는 울산저널 전 편집장과 2014년 8월 12일 면접을 봤다. 이 자리에서 울산저널 전 편집장은 “주거 관련해서 걱정할 필요 없다. 회사 숙소가 있다 거기서 지내면 된다고 약속 했고 울산저널 경영진에게도 보고했던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는 4개월 동안 실제 집행됐다. 

 

○ 울산저널 경영진에게 전 편집장이 이야기한 것도 같은 내용. 
① 노동부 인턴제가 적용되면 저널의 임금부담을 줄이면서도 최저임금 이상 지급가능하다
② 이00 기자의 공백 기간 동안 채용하면 된다. 
③ 숙소는 이00 기자가 쓰던 염포동 아파트(백00 대표의 지인 소유로 매도 때까지 사용 가능)를 제공하자.
(울산저널 경영기획위원회, [울산저널 12면 파행 발행과 지난 1년의 논란 상황 경과] 중에서)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울산저널 경영진은 윤태우 기자에게 방을 빼라고 통보했다. 전후 사정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도 하지 않았고 윤태우 기자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급작스런 통보에 어쩔 수 없이 방을 빼야 했고 주거지 불명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윤태우 기자는 회사의 어떤 대책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하지만 울산저널은 답이 없었다. 윤태우 기자는 울산저널 편집장에게 “집 문제는 회사가 해결할 의지가 없느냐”고 물었을 때 편집장은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근로계약도 아닌데 내가 왜 지켜야 되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윤태우 기자가 숙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울산저널 경영진의 태도는 먼저 말을 바꾸고 숙소 문제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 “숙소 제공은 회사의 약속이 아니라 편의다”, “왜 회사가 주거지를 지원해줘야 하느냐? 왜 나간 사람(전 편집장) 얘기를 꺼 내냐”, “전 편집국장의 개인적 약속이지 회사의 약속이 아니다”― 이었고 구차한 변명으로 자신을 둘러치는 것 ― 윤태우 기자에게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임금을 올리고 나서 나중에 가서야 숙소 월세 부담이 커질 것을 감안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회사의 약속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월세를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제기하고 복지차원에서 배려할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 ―이었고 숙소 문제와는 상관없는 걸 가지고 윤태우 기자를 모욕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9월 본인은 이00 이사에게 7월말부터 제기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울산저널 운영위원들을 만나 내부 문제를 설명하고 관심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 그는 옥상에서 최근 일어난 사내문제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에 본인은 문제들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취재기자 3인이 앞서 작성한 미발표 성명서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배00 운영위원은 대화 도중 맥락과 상관없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네가 4월에 사내 폭행 폭언 문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을 때 경영진에게 너를 내보내라고 말했었다’, ‘나는 네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너는 사진도 제대로 못 찍더라’. 멸시하는 듯 한 시선이었고 냉소적인 표정이었습니다. 너를 내쫒으려고 했는데 봐줬으니 조용히 있으라는 말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당시 본인은 크게 당황했고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본인이 ‘폭행 폭언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내쫒으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수차례 문제를 제기하자, ‘지금 생각해보니 미안하다’고 했지만 표정과 말투에서 전혀 미안함이 묻어나지 않았습니다. 본인은 이날 만남 뒤 조합 활동에 있어 적잖게 위축됐습니다. 원래 다른 경영진도 직접 만나 문제 해결을 호소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만남 뒤 더 이상 다른 경영진을 만나기가 꺼려졌습니다(윤태우 기자, [울산저널 경영진이 왜곡하는 사실을 바로잡습니다] 중에서)
 

믿었던 선배들과의 개인적인 문제 해결 방식은 여기서 끝이 났다. 신뢰는 깨졌다. 공동체적 성격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은폐되어 있었던 노사관계가 전면에 등장했다. 울산저널 경영진들의 말과 행동은 윤태우 기자에게 비수가 되어 갔다. 특히 그들의 냉소적인 말투와 멸시하는 듯한 시선에서 숨이 멎는 듯한 모멸감을 느꼈다. 윤태우 기자는 경영진의 무책임한 말과 행동에 희망을 잃고 울산을 떠나려 했으나 그의 발걸음을 잡아 끈 것은 단 한 가지. “사람으로 대해 달라는 것”, 상처 받고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 싶다는 욕구였다. 그래서 모든 투쟁은 “인간선언이었다” 나는 존엄한 인간이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을 생산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울산저널 경영진은 윤태우 기자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았고 끝까지 들어줄 힘도 없었다. 결국 울산저널 경영진은 엉터리 처방전을 들이민다. “회사의 약속은 근로계약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고 복지차원에서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울산저널이 “약속” 혹은 “근로계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숙소 문제를 “무조건 책임져야 한다”는 근거 없는 부담감, 악화되고 있는 재정상황을 고려한다면 책임질 수 없는 사용주로써의 현실적 고려 이외엔 다른 의미를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만약 숙소문제를 근로계약으로 체결하면 경영진이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윤태우 기자가 하게 될 것이라는 의심과 지독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사용주로서의 자각을 더욱 명료하게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울산저널 경영진이 윤태우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줄 힘이 있었다면, 윤태우 기자와 취재기자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고 심사숙고 했다면 “숙소 문제를 무조건 책임져야 한다”는 근거 없는 부담을 지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울산저널의 명예를 스스로 지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윤태우 기자를 비롯한 울산저널 취재기자들은 회사의 약속임을 인정한다면 숙소제공 방식에 대해서는 회사의 어려움을 고려해 해결책을 찾자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약속”과 “배려”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윤태우 기자를 지독하게 불신함으로써 울산저널 경영진이 스스로 건너지 않았을 뿐이다. 자신의 명예는 스스로가 아니라면 누구도 훼손할 수 없다. 울산저널의 명예훼손의 주범은 울산저널 경영진 자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명예훼손인가? 정당한 노동조합활동인가?

울산저널의 구조는 참 특이하다. 사용주들은 노동운동의 구력이 있는 사람들이고 윤태우 기자를 비롯한 기자들은 울산저널의 단체협약도 모르고 근로기준법도 모르며 운동의 경력이 대부분 없는 사람들이다. 숙소 문제로 불화가 발생하게 되자 윤태우 기자와 취재기자들은 사용주들이 이미 마련해놓은 모범단체협약을 수단으로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참 기형적이었지만 현실이었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자신에게 유리한 단체협약 조항은 탄압을 위해 사용하고 또한 불리한 조항은 탄압을 위해 스스럼없이 위반했다. 그러나 윤태우 기자와 울산저널 분회의 투쟁은 단체협약에 근거를 둔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이었다. 


울산저널 경영진이 마련해 놓은 모범단체협약, 제2장(조합활동)의 제6조(조합활동보장), 7조(조합의 정치활동 보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회사는 조합원의 자유로운 조합 활동을 보장하고 어떠한 이유로도 조합운영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조합 활동을 이유로 어떠한 불이익처우도 하지 않는다”, “회사는 조합 간부와 조합원의 홍보선전물 배포 및 부착 등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하여야 하며, 어떠한 이유로도 그 활동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그 활동을 이유로 조합원에게 일체의 불이익 처우도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울산저널 경영진은 윤태우 기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적으로 회사의 대표와 경영진을 음해하고 근거 없이 비방하는 등 울산저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윤태우 기자를 울산남부경찰서에 고소했다. 노사 협상 과정이었다는 걸 기억하라. 조합원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해야 할 울산저널 경영진은 탄압을 위해 자신이 직접 만든 단체협약을 의도적으로 위반한 것이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윤태우 기자의 글이 자신들을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소의 근거가 된 <울산노동계 단상>은 교섭위원인 윤태우 기자가 노사협상 과정에서 벌어진 경영진들의 말과 행위를 폭로하고 항의하는 글이었다. 

윤태우 기자는 울산저널 경영진의 무책임한 말과 행동들 속에서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정말 힘이 없는 입장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하루하루 일하는 게 힘들고 살아가는 것이 힘든 상황”에서 글을 쓴 것이었고 자기가 경영진에게 당한 것 보다 훨씬 적은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너무 점잖은 글이었다. 그런데도 이 글은 울산저널 경영진에게는 “칼을 꽂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윤태우 기자의 문체가 울산저널 경영진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진 것(1)이다. 모욕감을 느낀 울산저널 경영진은 거칠어지고 잔인해져갔다. 거침없는 부당노동행위가 기획됐다. 노사 협상 과정에서 울산저널 경영진의 말과 행위를 폭로하고 항의했던 윤태우 기자의 활동을 “거짓 비방”, “음해”로 몰아갔다. 

그러나 ‘살인자의 손에 피가 마르기전에’ 정치적 폭로를 진행하는 것은 노동조합 활동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활동의 기본이다. 윤태우 기자는 교섭위원이다. 당연히 그의 주요한 활동은 교섭 과정에서 사용주의 말과 행위를 폭로하는 것이다. 특히나 SNS의 영향력이 커진 지금, 페이스북에 폭로와 항의의 글을 쓰는 것은 노동조합 활동의 연장인 것이다. 폭로는 사용주의 말과 행위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주체적 관점(계급적 관점)이 반영된다. 맥락상 사용주의 핵심적인 문장을 추출해 강조하기도 하고, 문장 전체를 비틀 수도 있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이러한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해야 하며 그 활동을 이유로 조합원에게 일체의 불이익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이 직접 만들지 않았는가? 취재기자들이 단체협약도 모른다고 무시하고 비꼬지 않았는가? 그렇게 자부심 강한 단체협약이라면 윤태우 기자의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부동노동행위를 저지를 것이 아니라 조합원의 권리를 보장했어야 했다. 또한 울산저널 경영진이 자신의 주장대로 윤태우 기자의 폭로와 항의가 “거짓 비방”으로 생각한다면 자신들의 오랜 활동 경험처럼 “공개적인 논쟁을 조직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윤태우 기자의 폭로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었다. 아래는 2015년 9월 16일 윤태우 기자를 비롯한 취재기자들과 울산저널 핵심 경영진과의 대화 내용을 녹취하고 푼 것이다. 
 

“배○○ : 기자님들, 자신의 권리가 뭔지도 모르면서 계속 어떻게 여기 페이스북에 우롱해놨는지 알아요? 노동운동 해본 자들이 노동운동했다는 사람들이 운동권들이 이따 구라고 써놨잖아요. 그렇게 안 적었어요? 

윤태우 : 그렇게 썼죠.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배○○ : 노동자 권리 얘기하면서 자기가 일하는 노동조합의 단체협약도 모르면서 단체협약에 수준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단체협약과 근로계약의 기준에서 얘기하자고 해도 그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전 편집장이 약속했던 것이 다 맞는 거라고 얘기하고. 
윤태우 : 단체협약을 알아야 자기가, 본인이 약속받은 걸 책임져달라는 말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배○○ : 예. 기본입니다. 
윤태우 : 단체협약도 모르는 사람은 자기 권리 찾으면 안 되는 거예요? 
배○○ : 근로기준법과 단체협약부터 알아야지 진짜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어요. 

(중략)

배○○ : 이 문제가 계속 고착화되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니라면 
윤태우 : 이 상황을 즐길 사람이 있을까요? 
배○○ : 난 윤기자가 즐기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요 
윤태우 : 제가 어떻게 즐깁니까? 이 상황을 

(중략)

배○○ : ○기자도 잘 생각하세요. 내가 어디까지 얼마만큼 있을지 고민할 거예요. 여기 계속 있어야 되나. 잘리는 게 고민이 아니라 내 앞길이 고민될 거라고. 평생직장이 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기 때문에. 난 길게 오랫동안 같이 있길 바래요. 그런데 지금처럼 이라면, 신뢰가 깨지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통스러울 거예요. 쥐 잡듯 잡을 수 있어. 일하다 안 맞는 사람 있으면. 반대로 잡혀요. 인생이 그렇거든. 갈등 있는 얘기를 들어요. 다 듣고 있거든. 그러면 누구든 선택해요. ○기자가 어느 신문사 다른 데로 옮기게 되더라도 여기서도 좋은 기자로 있다가 일 년이든 십년이든. 하지만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좋은 기자가 되기 힘드실 거예요”(울산저널 대책위원회, [울산저널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폭언·폭행 사건 경과] 중에서)


윤태우 기자는 이 녹취록에 근거 해 <울산노동계 단상>에 “단체협약이란 게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회사에 요구를 하면 안 된다”고 썼다. 녹취록에도 나와 있듯이 경영진 자신이 직접 한 이야기 그대로 썼는데 이것이 뭐가 “거짓 비방”이고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한 것인가?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보라. 셀프 명예훼손, 셀프 인격권 침해를 윤태우 기자에게 전가하지 마라 

그렇게 단체협약을 잘 아는 척 했던 한 경영진은 정작 단체협약에 대해 무지했다. 그는 말한다. “단협상의 명시된 부분도 아니고 … 근로계약서 윤태우 기자 거 봤는데 어디에도 주거문제를 해결한다는 부분이 명시되어 있지 않구요”라며 울산저널 전 편집국장의 약속이 회사의 약속이 아니라는 근거로 삼고 있지만 단체협약 제 3조<기존이 노동조건과 조합활동 권리 저하 금지>엔 “회사는 이 협약에 규정되어 있지 않거나 누락됨을 이유로 조합이 기존에 확보하였거나 관행으로 실시해온 조합활동 권리 및 기존의 노동조건을 저하시킬 수 없다”고 한 규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는 윤태우 기자의 투쟁을 울산저널을 망하게 하는 프락치 행위(“난 윤기자가 즐기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요”)로 유추할 수 있는 발언을 하고 한 취재기자에게는 “쥐 잡듯 잡을 수 있어 일하다 안 맞는 사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좋은 기자가 되기 힘드실 거예요”라며 아주 친절한(?) 협박도 마다하지 않았다. 녹취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윤태우 기자가 아니라 노동운동가의 삶을 산 경영진 자신이다. 취재기자들과 울산저널 경영진과의 대화 녹취록엔 이후 처참한 인간관계의 폐허로 가기 위한 징후가 이미 발화하고 있었다. 

취재기자들에게 이날의 경험은 그를 “조합활동을 위축시키는” 경영진으로 각인되게 했다. 그리고 단체협약안에 “배00 사업국장은 단협 26조(조합은 조합 활동을 현저히 해롭게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력자의 채용을 거부할 수 있다) 2항에 해당할 우려가 있으므로, 회사는 직책 배당을 제고하고 정확한 직제개편 계획을 밝혀 주기 바랍니다. 배00 사업국장이 회사에 문제제기 하는 기자들을 위축시킨 데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한다”로 반영 됐고 “구두 및 서면 사과”가 합의됨으로써 2016년 1월 7일, 울산저널 노사는 단체협상안에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부당노동행위의 당사자들이었던 울산저널 핵심 경영진들은 이 요구를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하는 악의적인 잠정합의”라며 울산저널 분회에서 잠정합의 찬반투표를 통해 가결한 안을 뒤집어엎는다. 만약 울산저널 핵심 경영진들이 자신의 말과 행위를 성찰하고 잠정합의안을 받아들였다면 울산저널은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반대의 길을 갔다. 

이 전체 과정을 보면 울산저널 경영진이 윤태우 기자의 폭로와 항의를 “거짓 비방”으로 몰아가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은 윤태우 기자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 분명해 보이고 더불어 자신의 단체협약 위반, 부당노동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울산저널의 부당노동행위 
윤태우 기자의 부당해고, 부당정직 과정은 인간의 존엄을 짓밟은 조직된 폭력이자 정서적 학대였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난 윤태우 기자의 절망의 깊이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내겐 이 숨 막히는 절벽 앞에 끝내 좌절하고 울산저널을 자진 퇴사하여 울산을 떠나는 그를 잡을 수 있는 용기도, 수단도 없었다. 난 울산 운동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개인이기도 했지만 울산저널 경영진의 말과 행동은 내게도 절망이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비수에 꽂힌 윤태우 기자의 내상을 꼼꼼하게 살피는 일이었다. 도대체 울산저널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 

울산저널 분회는 2015년 12월 10일부터 2016년 1월 6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교섭을 진행하고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1차 교섭부터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핵심 경영진들은 교섭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측 교섭위원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했듯이 의도적으로 교섭 자리를 피한 것이다. 울산저널 분회는 “실질적 권한이 있는 사람이 참석하지 않으면 합의안이 나오더라도 지켜지지 않을 우려를 표명”했지만 실질적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끝내 교섭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울산저널 분회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울산저널 분회는 2016년 1월 12일 총회를 열어 잠정합의안을 가결시켰지만 사측 교섭위원 대표는 회사가 잠정합의안을 수용하지 않는다며 교섭위원 사퇴 의사를 노조에 알려왔다. 울산저널 핵심 경영진들이 노사 잠정합의안을 일방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실질적 권한을 가진 핵심 경영진 중 한 명인 편집국장은 기자들에게 신문발행과 관련한 어떤 업무 지시도 없이 한 달간 휴가를 떠나버렸다. 사실상의 업무 거부를 통해 울산저널 분회 조합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신문발행은 고스란히 울산저널 분회 조합원들의 몫이 됐다. 윤태우 기자를 비롯한 울산저널 분회 조합원들은 편집장 없이 자정 넘어 새벽까지 일하면서 신문을 정상으로 발행했다. 그들은 회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울산저널 편집국장과 경영진들은 울산저널 분회 조합원들이 밤잠 설치면서 신문을 정상 발행하는 동안 깊은 산속에 들어가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절세 무공을 수련한 것일까? 울산저널 경영진들은 2월초부터 윤태우 기자에 대한 표적탄압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일사천리로 이뤄진 표적탄압 
1월 13일 ~ 2월 10일 편집장 잠적 ⇒ 2월 2일 사측 수정교섭 요구(잠정합의안 파기)
2월 11일 편집회의 ⇒ 2월 15일 편집장 전화, 당일 1차 징계 처분 예비통보
2월 17일 노조 쟁의행위발생 결의를 위한 총회 및 수정교섭
2월 19일 2차 징계처분 예비통보
2월 22일 3차 징계처분 예비통보
2월 23일 ‘업무 규정 신설’ 노측에 통보
3월 3일 4차 징계처분 예비통보
3월 8일 배00이 고소했다며 경찰서에서 연락 옴 
3월 11일 경찰에서 편집장이 고소했다며 연락 받음
3월 17일 해고 통보
(윤태우 기자, [울산저널 경영진이 왜곡하는 사실을 바로잡습니다] 중에서)


울산저널은 노조가 쟁의행위 발생 결의 총회 소집 공고를 하자 재빠르게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목록은 교섭위원인 윤태우 기자를 징계위에 회부하고 이도 모자라 그의 징계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업무 규정 신설’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고 그 두 번째는 단체 교섭 자리에서 울산저널 사측 교섭위원이 노조 교섭위원인 윤태우 기자와 교섭위원들에게 쌍욕과 폭력을 휘두른 것이며 그 세 번째는 단체 교섭 과정에 있는 교섭위원인 윤태우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한 것이며 그 네 번째는 경영진의 최종목표인 윤태우 기자를 부당 해고한 것이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2016년 2월 11일 편집회의에서 편집장이 임의로 업무규정을 바꾸려고 하자 이에 항의한 윤태우 기자를 2월 15일 징계위에 회부했다. ‘똥 밟은 놈이 성질낸다’는 문구가 떠오르는 행위이다. 울산저널 단체협약에는 “기존의 노동조건과 조합활동 권리 저하 금지” 조항이 있고 또한 “회사는 취업규칙을 비롯해 조합원과 관련된 회사의 제 규정, 규칙을 제정 또는 개폐하고자 할 때는 사전에 조합과 합의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울산저널은 노사 합의로 ‘자율적인 시간 분배 노동’을 해왔다. 즉 취재기자들은 3년 동안 자율적으로 취재처에 출근하고 각 취재처 등 일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연장근무와 휴일근무를 해왔다. 그런데 편집국장이 임의로 업무규정을 바꾸려 했던 것이고 윤태우 기자는 단체협약에 보장되어 있는 권리를 행사한 것인데 징계라니!


울산저널이 일방적으로 ‘업무 규정 신설’을 도입하고 윤태우 기자를 표적 탄압하는 과정을 보면 정말 치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울산저널 경영진이 ‘윤00씨를 징계할 수밖에 없었던 사유들’에 나와 있듯이 “윤00씨는 24살이다. 편집국장은 54살이다. 30살 차이가 난다. … 타이를 만큼 타일렀고 포용할 만큼 포용했지만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치자. 그런데 이 ‘싸가지 없는 놈’을 어쩌지 못하고 겨우 생각해낸 것이 윤태우 기자의 징계 근거를 만들기 위해 편집국장의 지위를, 위계관계를, 그 제도화된 차별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밖에는 없었는가? 평생을 싸워 왔던 “관료적 명령”을 도입하고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었는가? 이렇게 적과 싸우다 적을 닮아 가야하는가? 

“제 2조 2항 취재기자는 오전 9시 사무실로 출근해 출근부를 작성한다. 오전 10시까지 취재계획서를 작성해 편집국장에게 보고한다. 오후 5-6시 당일 취재한 내용과 출입처 관련 정보를 취합 해 편집국장에게 보고한다. 
제4조 2항 정당한 사유 없이 기사 송고가 지연되거나, 기사 송고 누락과 지연이 되풀이 될 경우 징계 처분할 수 있다”(울산저널 경영기획위원회, [울산저널 사원 업무규정 신설에 관한 통보 및 의견 정취] 중에서)

 

취재기자에 대한 편집장의 통제는 어떤 제한이 없어 보이고 징계처분 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게 됐다. 업무 규정 신설은 조합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편집국장의 통제에 순응하도록 하는 탄압의 칼이었다. 울산저널 편집국장은 탄압의 칼을 자유롭게 휘둘렀다. 

2016년 2월 15일과 16일, 원래 업무상 이유로 전화를 하지도 않았고 숙소문제가 발생하고 나서는 더욱 업무에 대한 전화를 걸지 않았던 울산저널 편집국장은 윤태우 기자에게 수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었다.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윤태우 기자는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징계를 받을 것 같아 취재 중이라 통화가 어렵고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한 뒤 취재를 이어갔다. 그런데 이것이 “신문 제작과정에서 편집국장이 수차례에 연락을 했으나 무단 불응”했다는 이유로 징계의 사유가 됐다. 물론 이 날 이후로 윤태우 기자에게 걸려 온 편집국장의 전화는 없었다. 또한 울산저널 편집국은 적은 인력으로 16면을 채우기 힘들어 마감 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지면을 완성하곤 했다. 그런데 2016년 2월 16일 편집국장은 일방적으로 오후 5시 43분에 “기사 최종 마감했습니다. 늦어도 7시까지 교정보고 마무리 짓습니다”라고 편집국 텔레그램방에 올렸다. 지면이 다 채워지지 않았는데 마감을 강행한 것이다. 윤태우 기자는 기사를 완성하지 못했고 이것이 “분담 책임진 기획 기사 등 미송고로 16면 지면 발행이 비정상적으로 12면으로 축소발행”하게 만든 죄를 물어 징계사유로 삼았다. 울산저널 분회와 윤태우 기자는 관행대로 마감을 했다면 기사를 완성 해 지면을 채울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편집국장은 윤태우 기자가 2월 29일과 3월 2일에 걸쳐 원고지 44매에 달하는 기획기사 및 단신기사를 편집국장에게 보냈으나 단 한 꼭지도 싣지 않았다. 울산저널은 2016년 3월 3일 176호를 축소 발행했다. 윤태우 기자가 기사를 작성 해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싣지 않고 176호를 축소 발행했으면서 그 책임을 윤태우 기자 에게 묻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참 찌질하고 저열하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업무 규정 신설을 통해 윤태우 기자를 징계위에 회부하고 나서도 징계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탄압을 지속했다. 그 중 하나가 무단결근이다. 울산저널은 창간 때부터 3년 이상 화, 수요일 사무실 출근, 나머지 요일은 취재 처로 출근하는 업무방식을 따라 왔다. 울산저널 분회는 경영진의 업무규정 신설에 반대하며 ‘노사 합의 전까지 상시적이고 관행적으로 해오던 업무 방식을 유지 하겠다’고 밝혔으나 울산저널 편집국장은 2016년 3월 4일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서에 명시한 출근시간 출근 거부에 대해서는 결근처리”하고 “결근 처리된 사원이 임의로 행한 업무는 회사 업무로 인정할 수 없다”고 일방적인 통보 문자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이는 실제 집행됐다. 노동조합의 “합의” 없는 업무 규정 신설은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이었다. 윤태우 기자는 노동조합의 방침대로 2월 25일, 26일, 29일, 3월 4일 관행대로 근무를 했지만 울산저널 경영진은 이를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고 징계의 사유로 삼았다. 

 

울산저널 경영진의 윤태우 기자에 대한 적대적 혐오는 극을 향해 나아갔다. 쌍욕과 폭력이 자행됐다. 직장 내 따돌림과 집단적 괴롭힘이 일상화됐다. 울산저널 경영진에 의해 자행된 윤태우 기자의 부당해고 과정, 그리고 해고 철회 후 다시 부당정직의 과정은 윤태우 기자의 인간 존엄을 짓밟은 조직된 폭력이자 정서적 학대였다. 

사건 개요 
① 2016년 2월 17일 오후 6시 40분께 울산저널 사무실에서 김모 교섭위원은 노측 윤모 교섭위원에게 “야 이 새끼야”, “개새끼”, “양아치자식아”, “양아치 같은 새끼야”, “개자식아” 등과 같은 욕설을 10여 차례 반복했고, 종이를 돌돌 말아 노측 교섭위원 목을 한 차례 찌르고, 다시 교섭위원 신체에 위해를 가하려는 행위를 했다. 김모 교섭위원은 노조 분회장이 이를 말리면서 영상을 찍자 분회장을 향해 “당신도 마찬가지야, 대표 등에다 칼을 꽂아”, “너도 책임져야 해”, “너도 똑같아” 등과 같은 말을 했다. 
② 김모 교섭위원 외에도 사측 교섭대표와 사측 배모 교섭위원, 편집국장까지 가세해 4명이 취재기자 한 명을 공격했다. 이러한 행위는 30분가량 계속됐다. 
③ 당시 상황은 사측 교섭대표가 노사 단체교섭을 마친다고 말한 직후였으며, 노사 양측 교섭위원 총 7명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은 상태에서 발생했다
(전국언론노조 풀뿌리신문지부 울산저널분회, 직장 내 폭력행위에 관한 건, 2016.2.22.)

 

울산저널 분회 교섭위원들은 이 날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성인 남성이 위협적으로 소리 지르니까 무섭고 심장이 뛰고 그랬다”, “회사 간부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비인간적이다”, “출근하고 싶지 않다”, “사측 교섭위원이 책상을 막 흔들고 하는데 책상을 뒤집어엎거나 할까 봐 공포스러웠다”((전국언론노조 풀뿌리신문지부 울산저널분회, 직장 내 폭력행위에 관한 건, 2016.2.22.)


윤태우 기자는 “퇴근하는데 회사쪽 사람이 쫒아 와서 죽일 것 같은 공포감을 느껴서 주위를 돌아봤고 버스 탈 때도 주위를 살피게 되더라”고 증언하고 있다. 
 

- 4월 20일 윤태우 기자 복직. 그러나 기존에 취재하던 모든 취재처가 없어지고 편집국 텔레그램 방에도 초대되지 않음

- 4월 21일 이사 김00이 윤태우 기자에게 “너는 미끼야. 너를 풀어준(해고철회) 이유가 뭔지 아냐? 걔들 잡으려는 미끼야. 조만간에 양준석이 최병승이 너 다 아웃될 거야 울산에서”, 건방진 놈의 새끼”, 깐죽대고 하면 죽는다. 등의 폭언을 퍼부음 3시간 후 이모 편집국장은 업무 중이던 윤 기자에게 다가와 “사무실에서 나가. 나가서 해!”라고 소리 지르며 윤 기자를 끌어내고, 작성 중이던 문서를 저장 안 함’버튼을 누르고 닫아버리고 컴퓨터 본체 전원 버튼을 수차례 누르고, 가방을 빼앗아 현관에 던지고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고함을 치며 윤태우 기자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할 수 없도록 방해함 

- 4월 22일 이사 김00이 윤태우 기자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함. 윤태우 기자가 취재 일정 때문에 바쁘다고 하자 고성을 지르며 의자를 박차고 윤태우 기자에게 다가와 이 새끼 이거 뭐 이런 새끼가 있어”라면서 윤태우 기자의 뒷목을 잡고 눌러 상체를 숙이게 만든 뒤 탁자 쪽으로 밀침. 윤태우 기자가 "지금 사람 쳐놓고 앉으라고 하는 게 말입니까”라고 항의하자 편집국장이 다가와 오른손 주먹을 윤 기자 얼굴 앞까지 두 차례 휘두르며 “이렇게 확 친 게 친 거지”라고 말함

(울산저널 대책위, [울산저널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폭언 폭행 사건 경과] 중에서

 

여기 존엄한 한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으면서 함부로 대하는 자들의 기록이 있다. 나이 많은 것이 무슨 정서적 학대 특허권이라도 된단 말인가? 사용주의 지위라는 것이 폭력 면허증이라고 된단 말인가? 적에게도 인권은 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거리인가? 

윤태우 기자에게는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악몽은 깨어나면 사라지는 것이지만 윤태우 기자에게는 매일매일 부딪히는 일상이었다. 윤태우 기자의 부당해고, 복직 뒤 부당징계 과정을 보면 울산저널 경영진에 의한 윤태우 기자에게 자행된 집단적 폭언, 폭행, 괴롭힘은 하나의 습관적 놀이처럼 보인다. 회사를 망하게 하려는 프락치,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이 모든 행위는 울산저널을 살리기 위한 신념에 의해 집행되었다. 진보의 이름은 이처럼 타락했다. 그러나 윤태우 기자는 이 악몽과 같은 시간을 견디며 투쟁을 지속했고 나에게까지 접속됐다. 이 투쟁에 참가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 윤태우 기자에게 고맙다. 



울산저널의 배후·음모론은 모든 비판을 억압하고 파괴하기 위한 무기였다

모든 투쟁은 주체적인 사유와 결단 속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소위 배후·음모론은 투쟁 주체를 독립적으로 사유하지 못하며 행동할 수 없는 존재로 낙인찍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투쟁 주체에 대한 이 같은 모욕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또한 배후·음모론은 활력 있는 비판의 심장을 정조준 하여 침묵을 강제하며 질서에 순응하도록 하는 정치적 무기이다. 배후·음모론(조직보위론)이 판치는 곳에서는 비판과 토론이 억압되고 위로부터의 명령과 아래로부터의 수동성이 결합된다. 부르주아 정치(관료주의)는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다. 

배후·음모론이 울산저널 경영진을 온통 사로잡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울산저널을 망하게 하려는 자들의 입을 봉할 필요가 있었고 비판을 가장 효과적으로 잠재울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다. ‘진보언론’ 울산저널의 부당노동행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 사람들은 대부분 울산저널에 의해 “배후”로 낙인찍혀야 했다. 울산저널 살리기 운동은 배후·음모론 없이는 가능하지도 지속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울산저널의 배후·음모론의 첫 번째 희생자는 울산저널 전 편집국장이었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000 전 편집장은 울산저널이 곧 망할 것이라고 얘기했고 울산저널에서 일하는 기자를 자신이 빼내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고 하면서 “단순한 노사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울산저널을 악의적으로 파괴하려는 시도들이 확인됐다. 000 전 편집장은 윤태우 기자와 숙소 문제는 근로조건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했다고 했지만 2월 17일 노사교섭 당시 윤 기자와 통화하면서 숙소 문제에 대한 구두 약속이 회사의 약속이고 8월 이후 숙소가 없어진 것은 근로조건 저하라고 윤 기자에게 확인해줘 최종 합의를 무산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윤태우 기자는 독립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누구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직접 행동할 수 있는 투쟁하는 노동자라는 것이다. 숙소 문제가 발생하고 2월17일 노사 교섭까지 6개월 동안 윤태우 기자는 숙소 문제가 회사의 약속이자 자신
이 노동조건이었고 숙소가 사라진 것은 노동조건의 저하라고 말해오지 않았는가? 약속을 약속으로 인정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불가피하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양해를 구하고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는가? 울산저널 경영진에게는 왜 그의 호소가 유독 들리지 않았는가? 

윤태우 기자는 이 날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경영진이 숙소관련 약속을 회사의 약속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숙소 제공 약속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알았다고 주장하다가 제가 전 편집장 증언까지 들이밀자 끝까지 책임 회피하려고 애꿎은 전 편집장한테 뒤집어씌운 거죠”


그래, 진실이 드러나자 그토록 화가 났는가? 그 화풀이로 노사 단체 교섭이 진행됐던 자리에서 울산저널 분회 조합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자행했는가? “두려움과 공포”를 의식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또 다시 진실을 은폐하고자 했는가? 최종합의가 무산된 것은 진실에 귀 닫고 눈 감은 울산저널 경영진 자신에게 있다. 그 책임을 울산저널 전 편집국장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은 참 비겁한 짓거리이다. 어느 누구도 울산저널을 악의적으로 파괴하려는 의도가 없다. 진실에 대한 정치적 태도가 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윤태우 기자의 투쟁은 인간 존엄에 대한 자각, 울산저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분노, 주체적 판단과 결단, 울산저널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직접행동으로 일어선 인간선언이다. 이 인간선언에 화답하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이었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배후” 운운하며 윤태우 기자를 더 이상 모욕하지 마라. 울산저널을 망하게 하려는 배후는 없다. 

2016년 3월 2일 울산노동자공동행동 및 지역 노동 시민 사회 단체 활동가 성명서가 발표되고, 3월25일 울해협에서 윤태우 기자 부당해고 규탄 성명을 발표하자 울산저널 경영진의 배후·음모론은 지역으로 확대됐다. 그 첫 번째 대상은 3월 2일 성명서에 기명한 노동당(구 사회당) 당원들이었고 그 두 번째 대상은 울산노동자공동행동 최병승, 양준석 동지였으며 그 마지막 절정은 울산이주민센터 소장인 조돈희 동지였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윤태우 기자 해고 사태를 장기화 시키고 악의적으로 울산저널을 파괴하려는” 배후를 끊임없이 찾아 다녔고 일주일 간격으로 배후를 변경하기도 했다. 윤태우 기자의 부당노동행위 맞선 투쟁이 지역으로 확대되자 똥줄이 타고 마음이 급해졌던 것이다. 울산저널에 의해 배후로 지목된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공개적으로 울산저널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고 윤태우 기자의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는 입장을 밝힌 사람들이다. 

 

2016년 3월 21일 저와 조돈희 선배는 울산저널 대표를 만났다. 조돈희 선배의 울산저널 입장 글 이후 대표가 연락이 와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 울산저널 대표는 ‘울산저널을 망하게 하려는 두 세력이 있다. 하나는 전 편집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심스럽기 때문에 누구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최병승, [울산저널 경영기획위원회 위원의 “배후세력 규정”에 대한 나의 입장] 중에서)


노동조합 분회장 대신 다른 지역의 활동가(구 사회당 당원)의 조언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노동계에서 처음 나왔던 알바노조 울산지부의 성명서 역시 노동조합 분회장과 일체의 사실 확인이나 협의 없이 나왔다. 알고 보니 윤00씨가 알바노조에 가입한 이중 조합원이었다고 한다. 신문사는 정규직으로 근로계약을 맺은 윤00씨가 알바노조의 조합원의 자격이 되는지는 뒤로 한다 해도 구 사회당 계열이 주도한 알바노조와 관련자들이 지금의 분란을 촉발시킨 것이라 짐작케 한다. 그들은 정당원과 총선 선거운동원, 노동조합 활동가, 지역단체 활동가라는 여러 이름으로 자신들의 배후 행위를 감추고 있다(울산저널 경영기획위원회, [윤00씨를 징계할 수밖에 없었던 사유들] 중에서)

“울산저널 김00 이사는 4월 4일 현대차지부 김○식 동지에게 “어제 회의에서 양준석과 최병승이 울산저널을 음해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 울산저널 김00 이사는 4월 21일 해고 철회로 복직한 윤태우 기자에게 폭언·폭행을 행사 하는 과정에서 “너는 미끼야 미끼. 양준석이 최병승이한테 내가 3주전에 얘기했다. 내 반드시 양준석이하고 최병승이 둘이 울산바닥에 떠난다고 경고했어. 3주 전부터 납작 엎드려 있지? 지금 너를 풀어준 이유가 뭔지 알아? 걔들 잡으려는 미끼야. 조만간에 양준석이 최병승이 너 다 아웃될 거야, 울산에서”라고 말했다(울산저널 대책위, [울산저널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폭언 폭행 사건 경과] 중에서)


최병승 동지는 자신의 입장 글에서 “울산저널의 ‘배후 규정’은 마치 자본의 외부세력 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다. 아니 진보적 가치를 앞세워 현 상황을 비판하는 지역 동지들을 ‘마녀사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맞는 말이다. 울산저널의 배후·음모론은 비판을 ‘마녀사냥’하는 것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울산저널 내부와 울산지역의 토론과 논쟁을 파괴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것, 회사를 망하게 하려고 프락치 행위를 하고 있는 윤태우 기자를 고립시켜 축출하고 진보의 이름으로 울산저널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울산저널 경영기획위원회는 2016년 3월26일 <울해협 하창민 의장 명의의 글에 대하여>란 글에서 “울산저널을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기업과 동일하게 취급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기업과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윤태우 기자의 부당해고에 대해서 비판하고 항의하는 것이며 또한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부르주아 정치의 수단인 배후·음모론을 비판하는 것이다. 

울산저널이 직접 마련하고 또한 자부심이 있었던 모범 단체협약을 스스로가 위반하며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부당정직을 자행했으며 직장 내 따돌림과 괴롭힘, 쌍욕과 집단적인 폭력을 사용 해 투쟁하는 주체인 윤태우 기자의 존엄을 파괴한 울산저널의 행위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기업”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수단과 방법에 있어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윤태우 기자의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부당정직에 맞선 투쟁을 오로지 배후·음모론으로 보는 울산저널의 관점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기업”이 노동자 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유포하는 “외부세력” 혹은 “배후세력” 이데올로기와 무엇이 다른지 답해야 할 것이다. 난 울산저널 경영진의 배후·음모론의 “배후”가 부르주아 정치가 아니길 바란다. 

 

김00은 다음과 같이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조돈희 동지에게 퍼부으며 주먹으로 칠 듯이 협박했다. “야이 개자식아”, “십새끼야 야이 개새끼야”, “개자식아 십새끼야 아이고 요 걸 진짜”, “씨발놈이 한 대 터지고 …”, “임마 이 미친놈아 이 새끼 이거 씨발놈 좆까고 자 빠졌네”, “이 씨발 놈이 진짜”, “니들은 하나 같이 지가 해놓고 말 안했다고 한데이 니 치 매 걸렸냐?”, “이 씨발놈들아 이 더러운 개새끼야”, “니가 양아치야 야이 개새끼야 나이 처먹었으면 어른이 돼야지 늙은이가 되고 자빠졌냐 이 미친놈아 개자식 씨발놈이 아이고 확 죽일 수도 없고”, “씨발놈 좆같은 새끼가 니들 수백 명이 와봐 내 눈 깜작하나 미친놈아 아 이고 나이 처먹었으면 나이 값을 해”, “이 새끼 미친놈 아이가? 또라이 아이가 지 정신 아니가?”, “어 씨발놈이 진짜 좆같네”, “이 개새끼가 진짜 좆같네”, “나이 처먹었으면 나이 값 해 나이 값 인마 이 개자식은 진짜”, “앞으로 니 조심해 진짜 죽는 수가 있어 개새끼”, “개자식 좆같은 소리 하고 있네” … 조돈희 동지는 직접 몰매를 맞지 않았을 뿐 김00, 배00, 이00 세 명으로부터 온갖 욕설을 동원한 간접몰매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배00은 조돈희 동지에게 “왜 울산저널이 입찰비리를 저질렀다는 말을 김**에게 했다고 대답하지 못하냐?”며 다그쳤고, 김00이 욕질과 함께 조돈희 동지를 치려는 듯이 소리치며 날뛰고 있는데도 이00은 명상 폼을 잡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배00과 이00은 참다못한 조돈희 동지가 김00과 충돌하기 직전에야 김00을 말렸다.(울산저널 대책위, [울산저널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폭언 폭행 사건 경과] 중에서)

 

적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난 울산저널 경영진과 조돈희 울산이주민센터 소장이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동지적 관계로, 서로 존중하는 선후배로 우정을 쌓아왔다는 걸 알고 있다. 울산저널을 망하게 하려는 배후세력에 맞서 울산저널 살리기 운동은 20년 동안 쌓아온 우정조차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며 즉각 폐기처분할 정도로 광기에 가깝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조돈희 소장을 모욕하고 또 모욕했다. 조돈희 소장은 가장 먼저 울산저널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에 항의하고 윤태우 기자의 투쟁에 연대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현대중공업 해고자로 정년을 맞은 조돈희 소장은 울산저널 경영진과의 20년 우정을 넘어 해고자 윤태우 기자의 손을 잡아줬다. 해고자는 해고자의 마음을 가장 먼저 아는 법이다. 

동지가 오류를 범하고 또한 오류를 반복하고 있을 때 그에 대한 가장 깊은 신뢰는 침묵하거나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동지적 비판과 동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조돈희 소장은 동지적 비판과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20년 우정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울산저널 경영진은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삼았고 인정사정이 없었다. 그렇게 울산저널 살리기 운동은 종교적 색채를 띠어 갔다. 이 광기 속에 조돈희 울산이주민센터 소장조차 개입할 여지는 없었고 그도 쌍욕과 집단적 위력을 사용해 침묵을 강제해야 할 대상이었을 뿐이다. 인간관계의 폐허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것이 울산저널 경영진이 징징 되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진보 코스프레의 민낯”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방법이 정치다


“울산저널 투쟁이 길어질수록 울산지역 노동계와 시민사회계는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울산 노동 시민 사회계는 울산저널 경영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울산저널의 경영진이 벌이는 횡포를 멈출 수 있다. 애초 울산 시민사회계가 시민주주신문 울산저널을 만들었고, 그들이 수백 명에 달하는 주주다. 울산저널 투쟁은 울산 노동계와 시민사회계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나타내는 지표다(윤태우 기자, [울산 노동계 단상] 중에서)


윤태우 기자의 위 질문은 대공장 정규직 남성 중심의 민주노총 운동, 울산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이자 뼈아픈 성찰의 대상이어야 한다. 속 시끄러운 일에 침묵하면서 조금씩 비겁함을 나눠가진 나를 비롯한 울산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지 않는가? 운동의 건강한 지표를 보여 달라고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부끄러움을 안다는 건 아직 심장이 서류뭉치처럼 딱딱하게 굳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낮은 곳에서의 비판적 호소에 귀 기울일 수 있는 힘이 남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심장이 사막화되어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들, 왕년에 민주노총에서 한 자리가 차지했던 자들이 부르주아 정당으로 기어들어갔다는 소식을 일하다 휴게시간에 접했다. 난 민조노총 운동의 상층부에 자갈밭처럼 깔려 있는 이 자들보다 윤태우 기자의 호소에 화답하는 것이 백배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쟁은 젊은 세대의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젊은 세대의 것이었고 그들에게 낡고 부패한 한국노총은 타도의 대상이었다. 낡고 부패한 한국노총에 맞서 그들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었고 스스로를 민주주의로 조직했으며 전 계급적인 요구를 중심으로 전투적으로 투쟁했다. 그러나 한 때 노동운동의 성지라 불렸던 울산은 지금 거대한 반혁명의 진지로 굳어진지 오래다. 민주노조운동의 흔적만이 낡은 형식으로 굳어져 있다. 투쟁의 젊은 세대들에게 민주노총이 과거 한국노총처럼 타도의 대상으로 기울어져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윤태우 기자의 질문에 화답할 필요가 있다. 다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 민주주의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었고 노동자 민주주의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활력 있는 비판과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울산 노동운동 내부에서는 공개적인 비판과 논쟁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에는 회피와 침묵이 최선이 되었다. 비판은 비난으로 받아들여지고 고슴도치처럼 적대감정만 키웠다. 그렇게 비판과 토론, 실천과 검증, 권위의 구성은 사라진지 오래고 오직 자본가계급과 협력하는 자들의 권력의 배분을 위한 협잡과 거래가 있을 뿐이다. 토론이 사라진 조직은 이미 죽은 조직이다. 비판과 토론이 억압되고 위계적 질서와 관료적 명령이 결합 된 울산노동운동은 오늘, 자본가계급의 지배질서가 유지되는 가장 강력한 이유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언론 울산저널의 부당노동행위, 배후·음모론은 특별할 것도, 충격적일 것도 없는 타락하고 부패한 울산노동운동의 일부분이며 그 자양분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울산저널 경영진은 독자와 주주들에게는 진보 코스프레로 징징되고 한 편에서는 배후·음모론과 물리적인 위력을 사용해 울산지역의 비판을 잠재우고 침묵을 강제하려 했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며 싸우고 있다. 그들은 해고자고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알며 혁명적 전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운동의 위계는 없다. 윤태우 기자의 인간선언에 화답하고 울산저널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배후·음모론에 맞서 싸우는 일은 우선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될 것이며 관료적 명령과 사람 취급하지 않겠다는 폭력의 언어를 우정과 연대의 언어, 노래와 춤과 웃음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에 최적화 된 정치적 언어로 구성되는 것이 노동자민주주의였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우정과 연대의 언어, 노래와 춤과 웃음의 언어로 구성되는 혁명적 전망이며 오직 이 긍정적인 정치적 힘만이 이 운동의 지속성을 강화할 수 있다. 

관료적 명령이 통제하는 울산의 부르주아 노동운동을 노동자민주주의로 대체하기 위한 투쟁은 윤태우 기자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울산노동운동의 건강한 지표를 다시 세워내는 일일 것이다. 인간관계의 폐허로부터 단절하자! 다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묻자! “진실”은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검증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요구다. 
부당노동행위·폭언·폭행에 대해 울산저널 경영진은 공개 사과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각주1] 난 울산저널 경영진의 모욕감을 이해할 수 있다. 윤태우 기자와는 다른 입장이다. 난 울산저널 경영진이 살아온 인생 전체가 조롱거리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도 존중받아야 할 빛나는 시기가 있었다. 난 지금 울산저널 경영진의 말과 행위에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이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인생 전체가 조롱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윤태우 기자만큼이나 울산저널 경영진도 상처가 깊다고 생각한다. 다만 난 울산저널 경영진이 모욕감을 느꼈다면 분노의 화신이 되도록 자신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비춰 지금의 말과 행위를 되돌아보는 것, 행위를 잠시 멈추고 성찰하며 사과할 일이 있다면 사과할 수 있는 자기 힘을 갖는 것,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오류로부터 배우는 운동가로서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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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3 20:01 2017/04/1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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