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17/04/04 10:15

촛불 속 우리가 주목하는 목소리 (2)

광장정치의 시대, 페미니즘 의제 고민하기

<페미니즘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하라 - 박근혜 퇴진정국과 그 이후> 토론회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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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2016년 12월 23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 활발히 참여했던 <강남역 10번출구>, <박.하.女.행(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 <불꽃페미액션>,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의 주최로 “페미니즘,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하라” 토론회가 열렸다. 주최 측의 발제와 함께 토론자로는 페미니스트 정치덕후라고 자신을 소개한 권김현영, 이현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토론으로 함께 했다. 좁은 토론장에도 불구하고 약 70여 명의 청중들이 토론회에 참가했다.


2015년 여름, 소위 메르스 갤러리를 시작으로 소라넷 폐지를 위한 활동, 2016년 5월의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 대한 온오프라인에서의 활동들, 낙태죄 폐지 시위 등 지난 2년간의 일련의 흐름 속에서 촛불집회 내 페미존이 탄생할 수 있었다. 페미존은 정권비판에 있어 성차별적 방식들을 비판하는 페미니스트 개인/그룹이 함께 움직이는 하나의 구역이다. 페미존은 11월 12일 ‘페미당당’에서 게시한 혐오없는 집회를 제안하는 웹자보에 ‘강남역 10번출구’,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가 호응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여러 페미니스트 개인/그룹이 함께하게 되었다. 12월 23일의 토론회는 페미존의 활동에서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성차별적 콘텐츠를 비판하는 활동을 넘어, 페미니즘 정치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대한 논의를 여는 자리였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의 발제문은 ‘여성 대통령’이라는 상징을 둘러싼 여야 간의 대결 속에서 박근혜 스스로 구축한 카르텔이 어떻게 은폐되는지에 대해 지적했다. ‘여성대통령’의 상징 뒤에 숨은 카르텔의 성격과 동력을 제대로 분석, 비판하고 단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2년 대선에는 박근혜를 둘러싼 ‘여성대통령’이라는 상징이 난무했음에도 정작 페미니즘 정치는 의제화되지 못했다는 점 역시 중요하게 지적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역시 이전 개발, 성장주의는 지속되었고, ‘스스로의 시민자격 유지’가 생존과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적 리더십에 대한 향수와 비(非)시민에 대한 혐오 강화로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개발, 성장주의와 다른 패러다임의 페미니즘 정치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 대선에서 페미니즘 의제는 대두되지 못했다. 단지, ‘노동자’라는 계급적 위치 앞에서 ‘여성’의 위치는 삭제되거나, 박근혜 대선캠프의 경우처럼 정치적 위기 돌파의 도구로서만 존재했다. 나영은 발제문에서 2012년 대선과정을 톺아보며, 페미니즘 정치의 패러다임과 의제가 새롭게 설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남역 10번 출구>의 이지원은 촛불집회 내에서 박근혜와 최순실에 대한 비판이 여성에 대한 비하로 이뤄지고 있는 점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광장이 여성 비하를 통한 희화화와 조롱을 하는 동안 정작 시민들의 공론장에서 다뤄졌어야 할 내용들은 특검이나 헌법재판소 같은 곳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또한 ‘여성혐오’적 비판에 대한 분노와 민주당을 포괄하는 소위 “운동권” 혐오의 정서가 현재 워마드에서 보이는 박근혜 퇴진정국에 비판적인 태도를 낳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지원은 한 편으로는 페미존과 같이 촛불집회에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고, 다른 편으로는 워마드로 대표되는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정치에서 이들 간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박.하.女.행>의 조이다혜는 페미존의 그간 활동과 성과를 중심으로 발제하였다. 정권비판이 박근혜와 부역자들을 ‘여성’으로 격하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촛불집회의 성차별적 발언은 페미존이 촉발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페미존으로 모인 사람들은 ‘여성의 실패가 아니라 박근혜의 실패다’,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함께 갈 수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또한 집회 도중 성차별적 발언이나 피켓을 보면 다 같이 항의하는 구호를 외쳤다. 시비와 폭력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페미자경단을 꾸리고 집회 내 성폭력 매뉴얼도 만들었다. 무대에서의 성차별적 발언에 대해서는 발언 정정이나 사과를 요청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페미존은 1)박근혜 퇴진, 2)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공론장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 성폭력에 항의, 3)서로의 안전 보장이라는 목표 하에 31개의 단체가 적어도 한 번 이상 페미존에 함께 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페미존에 참여한 사람들 스스로 성차별적 상황과 경험을 발언하고, 정치적 요구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자신들의 주 활동 공간에서의 성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공론화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또한 촛불집회 내에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가시화되었고, 성평등한 집회 문화의 기준선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친박 대 민주주의자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문제제기하는 페미니스트들을 ‘친박페미’라고 매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정치적 올바름의 공론화가 페미니스트들의 집단화, 세력화를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하며 발제는 마무리 되었다.

 

페미니즘과 광장의 정치


발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현재 페미니즘 정치의 성격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김현미 토론자는 과거 이명박 정권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한 페미니스트들의 대응과 현재의 상황을 대비하면서 페미니즘의 정치적 장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 지적했다. 지금까지 여성 정치의 상(像)과 발전 측정 지표는 주요 자리에의 여성 진출로 간주되었다. 예를 들어 과거, 여성가족부는 성주류화의 통로이자 그러한 여성가족부의 폐지는 여성정책의 후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가족부나 여성정책이 페미니즘 의제를 풀 수 있는 통로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또한 여성단체 대표의 국회진출, 여성의 정부진출과 같은 대리정치에 대한 기대 역시 별로 없다. 과거에는 국회의원 중 여성비율 등 대표자의 여성비율이 주요한 여성의 역량성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나, 그런 위치는 중요한 변화를 이뤄내기 어려운 남성들이 끼워준 자리에 그치기 쉬웠다. 따라서 기존의 여성가족부, 주요한 자리에의 여성 진출은 더 이상 주요한 페미니즘 정치의 비전이라고 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토론에서 여러 번 제기되었듯이 페미니즘 정치의 공간은 대리정치가 아닌 직접정치이자 온/오프라인의 광장 정치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년 여 간의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페미니스트들의 직접행동들(소라넷 폐지를 위한 온,오프라인의 활동들, 강남역 10번 출구의 추모와 촛불집회,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활동 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벌어졌다. 페미니즘이 다시 시동을 거는 시기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기다. 역설적으로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시기에 페미니즘 정치는 온/오프라인과 광장에서 직접 행동하는 사람들로부터 다시 동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촛불집회의 ‘페미존’은 위와 같은 직접정치, 광장정치로의 이동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광장의 정치, 누구의 목소리로 대표되고 있는가?


탄핵정국에서 페미니스트들은 광장으로 나왔으나 촛불 속에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는 가시화되기 어려웠다. 이는 결국 현재 탄핵 정국에서의 논의가 ‘누구’의 목소리로 이야기되고 있는가의 문제와 맞닿아있다. 권김현영 토론자의 만민공동회의 사례는 이와 관관련해 흥미로운 지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권김현영 토론자는 1898년 독립협회가 주도한 만민공동회의 예를 통해 현재 탄핵 정국에서 광장정치의 의미에 대해 지적했다. 1898년의 만민공동회를 통해 열린 4월부터 10월까지의 광장은 매우 다양한 참여자와 의제가 분출하는 장이었다. 기생과 백정들도 ‘우리도 시민이다’라고 시민권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1899년 덕수궁 앞에서는 양반 여성들을 중심으로 “축첩제도를 폐지하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만민공동회의 경우와 같이 광장정치는 다양한 의제를 제기하며 기존의 정치 체제를 흔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장의 다양한 의제가 협소해질 때 그 가능성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점도 논의되었다. 현재 광장의 논의는 ‘국민’의 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것으로 단일화되고 있다. 김현미 토론자는 박근혜 퇴진 정국에서 집단적 대동단결을 외치며 민생과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단일화되었을 때, 향후 중요한 정치 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할 재벌, 대형교회와 깡패집단, 여러 엘리트 계급의 권력이 해체될 수 없음을 우려했다. 소위 좌파나 진보진영 역시 ‘시민혁명’, ‘시민불복종’이라며 현재 퇴진 정국을 환영하고는 있으나, 새로운 의제,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을 지적했다. 즉, 광장의 의제가 단일한 ‘국민’의 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으로 축소되었을 때, 광장은 기존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다양한 의제의 가능성을 상실한 채, 정권에 대한 반대로만 앙상해지는 것이다.


현재 광장 의제에 대한 평가는 페미니스트 정치가 제기해야 하는 의제와 문제의식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이현재 토론자는 지금까지 페미존의 운영을 돌아보며, 그렇다면 지금 페미존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즉 어떤 의제를 제시할 것인지가 더욱 심도 깊게 논의되어야 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지금까지 페미존은 주로 ‘여성혐오’에 기반한 정권 비판에 문제제기하는 활동들을 해왔고 이는 SNS에서 나타난 페미니즘 전략을 잇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촛불 광장에서의 페미니즘 전략이 SNS라는 공간에서의 전략과 동일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 고민해볼 것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촛불집회 사회와 발언에서의 성차별적 측면에 대한 SNS 상의 비판이 있었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 당시 온라인 상의 비판이 이어지자 박근혜정권퇴진행동이라는 조직적 주최 단위에서는 사과했으나 그러한 사과가 광장에서 문제의식이 효과적으로 확장되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 이후 SNS에서의 역풍은 이를 방증했다. 즉 아무리 현재 정국에서 정권비판 과정에서의 여성비하적 측면을 지적하더라도, 박근혜 정권 비판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환원된는 것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이슈를 제기하고, 어떻게 ‘여성혐오’를 이야기해야 할지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현재 토론자는 이에 덧붙여 ‘낙태죄’ 폐지를 하나의 의제로 제안하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간의 차이


차이에 대응하는 것은 촛불광장에서만은 아니다. 소위 ‘여성’들 간의 차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역시 토론회에서 중요 논의지점 중 하나였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활동하는 이지원씨는 발제에서 워마드라는 커뮤니티의 ‘여성’들과 어떤 관계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제시했다. 워마드에서 추천수가 높은 게시글 중에는 박근혜를 ‘햇님’으로 부르며, ‘사실 남자 대통령에 비해 못한 것도 없다’, ‘현재 상황도 박근혜의 잘못이라기보다 자기 이익만 챙긴 남성 보좌진 때문이다’, ‘그래도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추진했다’등의 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이지원씨는 이를 “여성성에 대한 비하로 구성된 비판담론에 대한 거부감”, “민주당을 포괄하는 진보운동권 혐오”가 강력하게 작동한 현상이라고 본다.


위와 같은 방식의 대응은 젠더 근본주의적 태도에 기반한 것으로 읽힌다. 여성이라는 범주는 단일하지 않고, 계급과 인종 등과 맞물려서 작동한다. 그러나 성별이라는 기준만으로 대응할 때, 여성들 간의 계급적 차이, 인종적 차이 등은 간과되기 쉽다. 따라서 촛불집회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워마드와 촛불집회 내의 페미존 간의 차이는 한 편으로는 성별과 계급, 인종 등과 같은 다양한 범주가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억압에 대한 동의 여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현미 토론자는 워마드의 대응 역시 페미니즘 정치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하나로서, 일종의 미러링처럼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질문한다. 즉, 페미니즘 진영 역시 장소, 층위, 이데올로기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치 카드를 여러 개 가지고 있어야 혐오와 반동의 흐름에 한 번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비해 권김현영 토론자는 ‘정치적 입장 차이를 두고 논쟁할 수 있는 것이 진보’임을 지적하며 더욱 적극적인 논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젠더 근본주의적 관점이 두드러지는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면서 위와 같은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양한 범주가 맞물려서 작동하는 억압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억압의 교차성에 대한 토론의 확대가 페미니즘 정치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닫히는 광장에서 또 다른 길을 내다


2016년 11월부터 이어진 박근혜 퇴진 촛불은 압도적인 규모를 통해 박근혜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가 가진 의제의 확장성은 그다지 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퇴진 촛불을 통해서 열린 광장은 다양한 목소리와 의제가 공유되고 논쟁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점차 정권퇴진, 탄핵 인용을 중심으로 닫히고 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의 눈과 귀는 헌법재판소라는 사법적 기관으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대선 후보 간의 경쟁력을 중심으로 논의가 더욱 협소해지고 있다.


이러한 광장에서 끊임없이 박근혜 비판의 성차별적, ‘여성혐오’적 요소에 문제제기했던 페미존의 활동은 정권퇴진으로 협소해지는 광장에 다른 결의 논의의 장을 열었다. 그리고 참가자 각자의 공간에서 성차별에 목소리를 내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이 날 토론회는 이러한 광장정치의 힘이 앞으로 페미니즘 정치의 비전이 될 수 있다는 방향성을 공유하는 자리로서 의미있는 자리였다. 기존 집회의 ‘여성혐오적’ 문화에 문제제기하는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과 페미니즘 정치 의제가 필요함을 공유한 자리였다. 논의의 장을 연 첫 번째 토론회는 끝났지만 이후 이어질 새로운 페미니즘 정치의 가능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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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4 10:15 2017/04/0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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