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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 지하철에서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엔터테인먼트 자본 블리자드 때문에
회사에 나가게 되었다.

내 방도 아닌 곳에서 고작 4시간 자고 나와
정신은 하나도 없는 와중에
불행중 다행으로 지하철에 자리가 널널했기에 앉아갈 수가 있었다.

한 정거장 지나 열차가 삼각지역에 도착했는데
여긴 환승역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꾸역꾸역 타기 시작해
결국은 객차 안의 자리가 모두 차 버렸다.
비어있던 내 옆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4-5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를 데리고 있는 어떤 아저씨였는데
남은 자리가 그 곳 하나밖에 없어서 꼬마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한참 졸다가 약간 이상한 포스에 눈을 떴는데
아무리 꼬마라지만 내 가방보단 훨씬 무거울 것이 분명한 하중을 견디기가 힘들었는지
옆에 앉은 아저씨의 표정이 상당히 안좋아 보였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였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보고 판단한 것이라
나의 분석이 옳다고는 장담 못하겠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임에도
"내가 저 아저씨라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정말 1mg의 쓸모도 없는 상상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동기에 의해 시작된 상상은
열차가 사당에 도착할 때까지 다음과 같은 결론을 토해냈다.

1. 일단 견뎌본다.
뭔가 액션을 취하기 번거로운 상황이라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그럴 만도 하지만
이 결론을 채택하기 위해 잠보다 상상을 택한 건 분명 아닐 것이다.

2. 아이를 일으켜 세운다.
가장 단순하게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인데
자신의 안락과 평화를 위해 어린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주위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3. 내가 일어서고 아이를 앉힌다.
자신이 희생한다는 액션을 취함으로써 주위를 감동시킨다.
잘하면 옆자리에 앉은 진짜 "나"에게서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나"는 아저씨들에게 잘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서서 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4. 양보를 요구한다.
이것이 내가 꼽은 가장 베스트 솔루션이다.
과정이 중요한데
일단 아이를 앉히고 자신은 일어선다.
몇 정거장 가서 다리가 너무 아파 안되겠으니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요구한다.
여기서 진짜 "내"가 양보를 거절하면
자발적으로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데다
정당한 양보 요구를 거절했다는 주위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므로
자리를 양보받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정말이지
가장 최종적인 결론은
잠을 더 자는 것이 현명했다는 것일테지. (에휴)



♪ Green Day - Wait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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