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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노동절포스터의 문제

 

"정규직되면 결혼하자"던 포스터의 황당함.

소위 진보입네 하는 사람들 사이에조차 만연해있는 미시파시즘에 늘상 노출되어 있어 왠만한 사안에는 무덤덤했던 나조차 보는 순간 뜨악하게 했던 그 포스터.

다행히 그 포스터 제작을 작당했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폐기를 결정하였고, 단순한 나는 그냥 해프닝이라고 규정짓고 있었다.

아니, 지금에야 고백하건데,

그때 나는 '내가 속한 조직도 아닌데 뭘'하며 포스터 폐기의 과정은 무시한채 결과에만 만족했을 수도.

그때, 내가 미처 기억해내지 못했던 것 하나. 작년 민주노총의 그 포스터 사건은 이미 99년 부터 시작되었고 그 후에도 쭈욱 되풀이되거나 혹은 그럴 여지를 내포하고 있었단 사실.

 

그러다 어제 나는 중앙일보에 게재된 민주노총의 포스터를 보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물론, 그 기사는 다른선진국에 비해 민주노총의 포스터가 과격성과 폭력성을 띄고 있다는 내용.

일단, 그 기사의 씨알도 안먹힐 얘기는 차치하고, 민주노총의 그 포스터는 비판받아 마땅하긴했다. 허나 비판의 지점은 '과격성'이 아닌 '반여성성'이어야 했으며, 진보진영에서조차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 우리 사회 성인지적관점의 부재를 개탄하는 내용이었어야 했다.

 

이 포스터를 보고 당신은 무엇을 연상하는가?

흔들림없는 눈빛, 구릿빛 피부와 그 위로 흐르는 땀방울, 굳센 팔뚝.

맞다, 누구나 그것을 연상한다.

 

그렇다면 이 포스터를 보고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시시각각 몰아치는 신자유주의의 광폭에 맞서 빈곤과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민중들의 투쟁의 열기를 느끼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매우 안타깝지만 반여성적이거나 최소한 신자유주의의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고? 신자유주의는 가부장주의, 성차별의 논리와 결탁하는 방식으로 그 권력을 강화해나가고 있으며, 그 근간에는 여성차별과 소수자배제의 원칙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르고 있는 것이므로.

바로 이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완벽히' 재생해내고 있는 이 포스터는 그래서 '완벽히' 문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므로.

 

남성=노동자의 도식은 이미 공공연하고

그 속에서, 여성은 남성이 '아니'거나 '눈물'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대비되어 왔다.

쭈욱 그래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구나 쭈욱 그렇게 보아왔다.

수많은 진보매체의 노동기사들 속에서도 여성의 팔할은 눈물흘리는 눈동자와 울먹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렇다고 그녀들이 노동자가 아닌가.

익숙한 것이 항상 바른 것은 아니다.

 

주름 콱 박힌 아주머니 서넛이 트롯을 개사해부르고

어떤 경우 아예 뒷구호를 외우지 못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기존 '투쟁현장'의 시각으로 보건대 확실히 '뽀대'안나는 그림일게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노동자가 아닌가.

불편하다고 외면해서는 안된다.

 

전체 노동자중 5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그 중 70% 이상이 '여성'비정규직으로 살고 있다는데도 왜 '여성'노동자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가.

비정규직의 반노동자성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신자유주의가 태생적으로 동반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에 늘상 직면해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녀들인데도 왜 모르는체 하는가.

60일 가까이 농성중인 KTX 여성비정규직과 기륭전자의 여성비정규직, 최저임금쟁취를 목터지게 외치는 철도용역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지 못하는 것인가.

 

포스터 한장에 감놔라 배놔라 한다고 욕하지 마시라.

행사 포스터는, 해당시기 핵심적 과제와 이슈를 극단적으로 부각시켜 그에 대한 선전을 대중에게 가장 강력히 전달하는 노동자들의 무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 누구나 그것을 자랑스레 대중들에게 또 동지들에게 내놓고 선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일게다.

그럴수 없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무기일 뿐이다.

 

세상을 만들어가는 절반

아니, 그렇게 뭉뚱그리지 않더라도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가장 광폭한 신자유주의의 폭력을 온몸으로 감내하고 있는 그녀들에게 '노동자'의 이름을 허하라.

그녀들이 없는 포스터는 폐기되어야 마땅하고

그렇지못하다면 포스터에 떡 하니 박혀있는 '비정규개악안폐기/비정규권리보장입법쟁취'의 구호는 명백히 민주노총의 거짓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래야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축제인 노동절투쟁이 의미를 얻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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