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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뽀스떠

 

붉은사랑님의 [입 아프다!]에 관련된 글

귀연이슬님의 [왕저질 포스터]에 관련된 글

노란리본님의 [민주노총 노동절포스터의 문제]에 관련된 글

 

 

@ 2005년도 3월 비정규직 포스터 - 민주노총,민주노동당 / 공식적으로는 배포중지

 

① 위 포스터는 성차별적이라 하여 당 안팎의 갈등 끝에 당의 비정규직운동본부에서 배포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가 있는 포스터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② 위 포스터는 민주노동당 및 노조가 실제로 있었던, 여러 사람들로부터 증언을 들었던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한 포스터입니다. 현실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배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성차별적이라는 주장에 반하는 논리를 만들어 봅시다.

 

③ 위 포스터가 성차별적이라서 문제라면, 성차별적이기 때문에만 문제인가요? 민주노동당은 정당으로서, 위의 포스터를 공식 배포하였다면 어떤 정치적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었을까요?

 

⑤ 위 포스터를 [1999년도 민주노총 노동절 포스터]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성평등의식이 많이 진전되었다고 할 수 있나요?

 

@ 1999년도 노동절 포스터 - 민주노총

 

⑥ 민주노동당이 홍보물을 제작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하면 좋을까요? 바람직한 홍보물 제작 과정을 생각해 봅시다.


 

<민주노동당 강원도당 성평등 교육 자료 2005. 11. 2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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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동절 뽀스떠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이 구설수라는 게, "너무 나간 거 아냐?", "아직은 사람들이 이해 못할걸?" 따위로 포스트모던하다거나, 상당히 예술적이라거나, 더 나아가 아직은 한국사회의 주류 사고에서는 익숙치 않은 진정 진보한 이미지 때문이라면 환영할 만하다. 근데 현실은, 앞이 아니라 뒤쳐지는 이미지 때문에 말이 많다.

 

1.

 

지난해 3월이겠지, 슬렁슬렁 출근을 하자마자 노동담당 정책연구원 중 하나가, "이 포스터 땜에 김XX씨 화났어. 어떻게 좀 해봐"하는 게 아닌가. 사무실 벽에 붙은 비정규직 뽀스떠를 봤다. 순간 첫번째 떠오르는 생각은, '오! 이 바닥에서 감성에 호소하는 이런 뽀스떠를 만들 생각을 다하다니.' 두번째 든 생각은, '역쒸! 민주노동당은 씩.씩.한.싸.나.이.들.의.정.당.이야'였다.

 

김XX씨는 여성분야 정책연구원이다. 이 양반은 정말 성질을 버럭버럭 내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쪽팔려 죽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럴만도 하지. 문제는 이 뽀스떠 배포를 중지시키는거였는데 김씨의 노동계 인맥과 호소 능력이 상당한지라 알아서 여기저기 선동을 잘했다. 물론, 당홍보실과 비정규운동본부에게도 배포 중지를 요청하고.

 

나는 노동계쪽 인맥이 없으니 뻠뿌질할 곳도 없었다. 그래도 당내에서는 작은 역할 하나했다. 소위 '윗선 타고 찍어누르기' 시도에 대한 방어라고나 할까. 여성분야는 내가 총괄하는 사회문화분야 중 하나였으므로 직제상 여성분야 정책연구원의 활동은 나의 업무 영역이기도 했다. 회사로 치면 내가 직속상관인 셈. 나에게 전화 여러 통 걸려왔다.

 

당시 여성위원장(지금도 그러네)은 처음에는 이 뽀스떠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게 왜 문제인지 몰라서 그랬는데, 여론이 나빠지니 그제서야 나섰다. 어쨌든 많은 여성위원장들(당, 노조의 크고 작은 단위)이 "그게 왜 문제야?"라는 반응을 보였단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여자들도 문제가 없다는 걸 니들은 왜 문제 삼냐?"였다.

 

김XX를 잠재우라는 얘기지. 난 갈등이 시로. 그래서 걸려오는 전화통에 처음엔 좋게좋게 얘기했는데 점점 짜증이 나서 나도 할소리 다 해버렸다. 나름대로 방어 성공.

 

이런 뽀스떠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는 항상 앞이 캄캄하다. 그래도 그땐 '공식적'으로는 배포중지가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2.

 

2005년 비정규직 뽀스떠를 제작했던 제작진 중 한 명과 얘기를 나누었었다. 노동계 뽀스떠가 자주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에 상당히 신중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여러차례 수정도 했단다. 어떤 면에서 보면 제작 과정의 진전은 있어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작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은 당홍보실의 여성동지들이 인쇄 전에 이 뽀스떠는 문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을 했었단다. 그런데 이 지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작 과정은 여전히 문제였던 것이다. 일종의 '검증' 과정이 생략되었던 것이다.

 

노동계 뽀스떠는 제작 과정에 '검증'이라는 절차가 없다. 이를 두고 제작진의 자율성을 언급하며 '검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뜻이다. 내가 환장(난 굶으면 환장한다)할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외쳐본 적이 있어서 아는 척 하는데, 당이나 노조가 뽀스떠 만드는데 내부적으로 검증 절차를 두는 건 검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건 언론사의 기자나 PD가 갖는 자율성 따위하고도 한 참 멀어 있는 얘기다.

 

노동계 뽀스떠의 성차별 시비가 오래오래 반복되어 왔는데 진지한 검증의 과정이 아직까지 없다는 것만으로도 노동계는 정신 못차리고 있는 게 확실하다.

 

3.

 

붉은사랑님의 [입 아프다!]의 덧글에 올해 노동절 뽀스떠 사진을 찍은 분의 글이 올라와 있다. 뽀스떠 사진의 모델이 되었던 노동자를 희화하는 듯하여 마음 아프다는 얘기.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이 뽀스떠가 되었다면 그 작가으로서는 뽀스떠가 씹히는 것도 자존심 상할 것이다. 나라도 그렇겠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분은 작가로서, 특히 사회문제를 다루는 작가로서 철학이 얉다.

 

모든 이미지는 그 이미지가 어느 맥락에 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2006 노동절 뽀스떠의 그 사진이 덤프연대 파업 사진전에 걸려 있다면 훌륭한 사진이 될 것이다(물론, 왜 하필 덤프연대 파업 사진전일까에 대한 질문은 제쳐두고). 그러나 이 사진이 노동절 뽀스떠에 선택된 순간 최악의 사진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내가 이와 비슷한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을 뽀스떠 제작에 사용하겠다고 한다면 거절할 것이다. 그래도 막 써버리면 가장 악.랄.한.수.단.으로 민주노총-민주노동당 물먹일거다. 그 수단이 뭐냐고? 내가 진짜 악.랄.하.다.고 생각하는 저작권 침해. 돈 왕창 뜯어내서 제대로 된 포스터 만들거다.

 

4.

 

소위 운동권들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언제냐며, 순 내부정치하고 앉아 있을 때다. 홍보물도 운동권들이나 돌려보라는 식의 내부정치. 귀연이슬님의 [왕저질 포스터]에 달린 덧글에 노동운동사나 공부하라는 글이 달렸다. 내가 볼때는 노동운동의 사건들을 잘 알고 있고 나름대로 열심히인 사람이 달아놓은 듯하다. 대체로 유심히 보는 건 운동권들이긴 하지만 노동절 뽀스떠는 운동권보다 아닌 사람들이 더 많이 본다. 아무리 유명한 투쟁 사진인들 뽀스떠에 넣어봐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인상을 받겠는가? 운동권들 몰려 있는 단체, 노조 사무실, 그리고 대학 학생회실에 있는 데서나 '이게 무슨 사진이냐면... 주절주절...'할 텐데. 노동운동 공부 많이 했다면 내부정치나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배움을 얻어야지.

 

2005년도 비정규직 뽀스떠의 특징은 긴 이야기의 한 컷을 잡아냄으로써 뽀스떠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이야기의 당사자나 깊은 관계의 주변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감정이입을 노린다. 이 뽀스떠가 무슨 의미인지는 누구나 이해한다. 그러나 이해한다고 해서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뽀스떠는 실패했다. 비정규직의 2/3 이상이 여성인데, 여성들의 감성에는 별호소력이 없다. 오히려, '남자이야기'가 됨으로써 소외를 느낀다. 비정규직 투쟁은 남성비정규직 투쟁이라는 이미지를 남긴다.

 

내 생각에 노동계는 여성노동자들이 조직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이 조직되면 귀찮은 일도 많아지고 무엇보다도 가진 권력 일부를 떼어줘야 하니 싫다.

 

5.

 

<민주노동당 강원도당 성평등 교육 자료 2005. 11. 26.> 중에서 뽑은 질문에 ④번이 없다. 그게 뭐냐면,

 

"④ 그림 한 장을 두고 볼 때와 서로 다른 그림 두 장을 나란히 두고 볼 때는 맥락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위 포스터와 함께 나란히 붙여놓으면 좋을 법한 포스터를 그림이나 글로 표현해 봅시다."

 

이다. 이 뽀스떠가 문제가 되었을 때 나의 주장은 뽀스떠 하나 더 찍자였다. 돈없다며 한칼에 씹혔다. 맥락이 달라지도록 하면 이왕 찍은 뽀스떠 버릴 일도 없잖은가.

 

만약, 내가 성차별적이지 않은, 혹은 남성보다는 여성들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포스터 이미지를 머릿속에 형상화할 수 있다면 내가 그 포스터 만든다. 그런데 내 머릿 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협업의 공간이 있다면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인쇄에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디자인까지의 협업이라면 그렇게 품과 비용을 들이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민주노총더러 '받아라'해보는 것은 어떨지. 아마 10년 동안 받으라고 해야 받을까 말까 하겠지만 안받으면 돈 모아서 되는 만큼 포스터 찍어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매년, 매번 반복되는 노동계 뽀스떠의 성차별 시비가 이제는 조금 달라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내 생각에는 '대안 노동절 포스터'의 제작에 있는 듯하다. 나도 그렇지만 노동계는 '무성적'이라기보다는 '초성적' 포스터 이미지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즉, 형상을 본 적이 없으니 달라지는 것도 없다. 그냥 '이게 왜 문제야?'만 반복한다. 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이런 게 있단다'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