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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6/28
    태엽감는 새와..(4)
    노란리본
  2. 2006/06/27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2)
    노란리본
  3. 2006/06/22
    프랑스적인 삶(11)
    노란리본
  4. 2006/06/21
    새로운 곳에 대한 찬사(2)
    노란리본
  5. 2006/06/14
    느닷없는 것들(4)
    노란리본
  6. 2006/06/13
    평택 사진(2)
    노란리본
  7. 2006/06/08
    산행예찬 2(13)
    노란리본
  8. 2006/06/08
    비 오는 날은(4)
    노란리본
  9. 2006/06/01
    열정(6)
    노란리본

태엽감는 새와..

 

"10분만 얘기하고 싶어요" 하고 당돌하게 전화 저편의 여자가 말했다.

"실례지만...,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고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10분만 얘기하고 싶다고 했어요" 하고 여자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것은 한번도 들은 기억이 없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실례지만 어디에 거셨습니까" 하고 나는 끝까지 예의바르게 물어보았다.

"그런건 관계없어요. 어쨌든 10분만 얘기를 하면 돼요. 그러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하고 여자는 빠른 어조로 말했다.

"서로 이해한다구요?"

"기분을요"

 

 

.

.

저 대목에서 가슴이 쿵.

밤의 어둠은 2006년 6월 27일의 결말을 향해 치닫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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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

 

<도널드덕을 어떻게 읽어야하나>를 얼핏 읽었던 기억에 아리엘 도르프만을 그저 칠레의 반미 작가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책을 보면 그가 칠레 내에서 꽤 영향력있고 아옌데 시절에도 많은 역할을 해온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회고록이다.

그런데, 보통의 회고록이 자신의 일대기를 시간순으로 돌이켜 적은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이 책은 전혀 통상적이지 않다.

 

일단, 아리엘 도르프만은 자신의 역사'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즉 칠레와 그 주변국들과 미국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는데에 충실하다.

제목 그대로, "나를 돌아보다"가 아니라, "남(south)을 향하며 북(north)을 바라"본다.

그는 남(칠레)과 북(미국) 사이에서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다가 종국에는 남에서의 삶과 투쟁을 택하게 된다. 끝없이 제기되는 남을 둘러싼 환경과 북에 의해 강제되는 상황들이 선택의 주요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가 기록하는 방식은 또한 통상적 회고록과 달리 매우 친절하지 못하다.

과거의 일정한 시간을 건너뛰어 현재(글쓰는 시점에서의 현재)에 대입시키는 등 시공간이 무시되어 하나의 서사 속에 공존하게 되는데,

1973. 9. 11. 칠레의 모네다 궁에서 아옌데가 죽음을 맞으며 역사속으로 물러났던 것과

2001. 9. 11. 뉴욕 무역센터가 미제국주의의 현실 속에 무너져내린 것의 교집합을 작가의 유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는 식이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서사방식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

아내인 안헬리까가 피노체트의 끄나풀들에게 붙잡혀 일종의 고문이 일어날 것을 상상하는 대목은, 마치 짧은 단편 하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자, 이쯤에서 읽으며 껄끄러웠던 사소한 몇 가지.

미국의 히피에 대해, 가난을 선택해 역겨운 호사따위를 부리는 작자라고 말하는 대목은, 문화와 개인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작가의 자세라기 보다는 철저한 반미정신으로 무장한 칠레의 운동가라고 보는 편이 나을듯. 사실, 작가 조차 엘리트 부모 밑에서 등따시고 배부른 진로에 등돌리고 '칠레의 운동가'가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자신의 가족사를 설명하는 지리한 과정과 자신의 유년시절 회고의 몇몇 대목은 '뼛속부터 잘난척 거부주의자'인 내게는 조금 역겨웠던게 사실.

 

70년대 칠레의 상황을 잘 모르거나 나처럼 이해력이 약간 모자란(-_-) 독자라면 맨 뒤 옮긴이의 말 부터 시작하는 것도 팁.

 

대체로 흥미롭고 신선한 기운까지 덤으로 얹어주는 책이다.

물론 나의 읽기 방식과 해석 방식에 한해서이다.

작가의 말대로 '가장 단순한 이야기라도 독자의 수만큼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에 자신있게 적어놓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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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적인 삶

 

집단은 개인과 개인이 만들어내는 온갖 불협화음들의 집합소다.

사회는 그 집단으로 꽉 들어찬 물리적 공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이 단순한 사실을 잊어버리고는

'사회'에게 순결과 유의미라는 단단하고 고결한 메타포를 덧씌운다.

그래서 고유한 '개인'은 그 의미에 기댄채

마치 그것이 지구의 탄생과 동시에 시작된 의무라도 되는양 붙들고 마냥 힘들어한다.

 

아, 이 안타까운 상황은

결국 우리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은

그래서 선반 위 손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마는 것이다.

 

책 속에는 남자 주인공의 일상적 고민이 들어있다.

비록, 평범하지 않은(세상 그 어디에도 '평범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겠지마는) 재주와 별다른 어려움없이 중산층으로 편입해왔던 행로 위에서 펼쳐지는 고민들이겠으나

그 누가, 사랑과 욕망, 정체성과 늙어가는 것에 대한 보편적 고민에 초연하겠는가!

어떠한 존재도 비껴갈 수 없는 평범한 고민들을 이 책은 간결하고 딱 부러지는 문장으로 보여준다. 잘된 번역이라는 생각과 기자 출신 작가라는 점도 한몫했을거라는 추측;;

 

주인공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머뭇거린다.

그러다 달리는 기관차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해 계속 질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더라도 그는 당황하지 않는다.

그럴땐 눈을 번쩍 떠 꿈 속을 빠져 나오면 간단하므로.

그렇게 삶은 단순하고 개인은 영원하다.

 

그는 자신을 이해시키려 또 타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는데

아마도 '사회'와 '집단'이라는 마법의 주술은  선반 위 진실에 손이 닿는 순간 풀리게 된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챘을 것임에 분명하다.

 

대신 그는 프랑스 50년대 말 드골의 시대로부터 현재 시라크의 시대까지, 일어났던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다방면의 사건들과 정치, 문화적 가쉽들에 손을 뻗어 자기 이야기에 은근슬쩍 녹여낸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80년대 전원일기와 유전무죄무전유죄 사건을 거쳐, 90년대 연세대사태, 거기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2000년 들어서의 노무현탄핵사태가 주인공의 심경속에 끼어들고 묘사되는 식인거다.

 

하지만 이야기는 고작 이게 다이다.

한 남자가 있었고, 그는 질풍노도의 유년시절을 거쳐 가정을 이루었으며 그러다 나이가 들어 아이들도 곁을 떠나고 그래서 외로웠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루한 일상..

그러나 주인공 가족의 잇단 죽음과 병고로 인해 집합소의 인생이 정녕 이렇게 끝장나고 마는 것인가..... 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는 다시 낮이면 정원사의 일상에서 관목들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끝없는 대화를 나눌 것이며

상투적 이해관계가 맞는 로르를 만나 어두컴컴한 사진작업실에서 섹스를 할 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정신병원에서 눈뜬채 잠든 마리를 찾아갈 것이다.

 

해피엔딩은 끝나지만

그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책 속 표현을 한 대목만 인용하자.

그는 거기 있고 우리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와 우리는 그 거리를 존중해주면 된다.

 

주제는 간명하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c'est tout mais c'est p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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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곳에 대한 찬사

새로운 곳에는 신선한 공기가 있다.

신선한 공간에서는 활력과 묘한 설레임이 교차한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불분명한채

하릴없이 앉아있는 것조차도 더없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여기가 새로운 곳이기 때문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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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것들

삶은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온다.

 

비오는날 잘못 밟아 튀는 물처럼.

전철계단에서 부딪친 앞사람 핸드백처럼.

 

아무런 예고없이 쏟아져버린 상황에 대해

우리는 

길게 생각할 겨를없이

지금. 당장.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을 지껄이고

이를 행동으로 펼쳐내야 하는 상황에 닥치게 되는거다.

 

평소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고민을 키워나가고 있느냐는

그러므로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자주, 그리고 깊이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머릿속 고정란을 마련해두고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느닷없이 닥친 상황을

아주 자연스럽고

나름의 경향성대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므로.

그리고 우리 인생의 아주 중요한 챤스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늘 우리를 괴롭히고 있으므로.

 

뭐, 누구말대로 사춘기적 고민을

그럴듯 면피하려는

나의 경망스런 상상일 수 있겠으나

 

이런 날씨라면

따뜻한 카푸치노 한잔에

그 어떤 발칙함도 구원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bienvenue à 느닷없는 여름 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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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사진

날이 덥다.

사진을 보니 숨까지 턱턱 막힌다.

세수하고 들어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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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예찬 2

 

언젠가 한번 이 비스무레한 포스팅에도 썼듯

아직 나는 산에 다니는 일에 싫증 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당분간은 그럴듯.

(지금와 생각해보니 나같은 나일롱이 무언가를 '예찬'했다는것 자체가 좀 낯부끄럽지만서두;;)

 

회의가 하나 깨진 덕에

간만에 사무실에서 시간이 나 사진폴더를 정리하다.

 



 

# 북한산

: 사실 북한산은 여러번 가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건 단연코 작년 겨울 그 날.

눈 쌓인 벼랑끝 좁은길을 골라(!!) 다녔던 안좋은 기억도 기억이지만, 인간들이 모두 시내중심가로 모여드는 것을 피해 산으로 도망나왔던 날.

그런데 결국 마지막 뒷풀이를 사람들 바글거리는 인사동으로 갔던 기억이 ㅎㅎ 

 

 

 

# 남한산성

: 남한산성은 아름답다. 성곽으로 굽이굽이 둘러쌓인 조용한 오솔길을 걷다 보면 기분까지 차분해진다. 사진배경으로도 계속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단, 꼭대기까지 올라가주는 버스는 피하는게 상책 -_-

 

 

 

# 도봉산

: 많은 산이 그렇듯 도봉산 또한 산행 코스가 무척 많다. 샛길마다 새로운 코스가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할듯. 물론, 코스마다 레베루도 당연히 달라질 터, 나같은 쌩초보들은 '위험등산로'는 피해가는 센스. '길이 아니면 가지 마세요'

아, 그리고 팁 하나! 우이동방향으로 내려오면 몽양선생 추모비등 묘소를 볼 수 있는데, 여기 관리 아저씨들이 잘 안들여보내줌. 게다가 '개'까지 풀어놓았다는 '뻥'을 치시는데 싹싹하게 잘 말씀드리면 구경 가능. 몽양 선생에 대한 얘기는 드라마 <서울 1945>를 참고하시라.

 

 

 

# 청계산

: 우워어어- 자, 이제 이효리, 전지현이 자주 찾는다는 청계산 되겠다. 운 좋으면 그녀들을 만날 수도 있겠으니 일단 기대만빵으로 등산을 시작.

얼마전 아주 날씨 좋은 날에 갔더랬는데 녹음이 푸르른 것이, 하늘 아래 이보다 더 싱그러운 것이 있겠냐 싶다. 덩달아 기분도 초록으로.

게다가 '황토맨발길'이 있으니 발에 질병(즉, 무좀되겠다) 계신 분들 효과를 체험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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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은

비가 왔다. 공기에서 단맛이 난다. 오늘밤은 그 속에 흠뻑 취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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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열정은 탄산음료와 같다.

처음 컵에 음료를 따를때면 천천히 부풀어오르다

결국 주체하지 못하고 넘쳐버리고 만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거품은 조금씩 없어지고

나중에는 언제 그런적이 있기는 했었냐는듯

아예 말라버려 그 향기만 남게 된다. 

 

이럴땐 아버지 말씀이 최고다.

지금도 째깍째깍 가고 있는

이 시간이 약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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