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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과 답글

비판과 답글

제가 쓴 네그리와 자율주의 비판이란 글에 S, P, 두분 교수님이 참으로 애정어린 소중한 비판과 지적을 해주셨는데, 그 지적을 공유하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일 것 같아서 간단히 답하고자 합니다.

 

첫째 네그리는 이주가 자유롭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는 지적에 대하여,

네그리가 명시적으로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으므로 수긍합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네그리가 생산적인 기간요원들의 도주와 고도로 훈련된 기간요원들의 탈주가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에 실질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제국』 p286)는 지적과, 도주와 탈출은 제국적 탈근대 안에서 대항하는 강력한 계급투쟁의 한 형태이다. (『제국』 p285)라는 주장에 있다고 봅니다.

 

동구에서의 탈주가 동구 붕괴의 결과가 아닌 원인 나아가 실질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자본이 전일적으로 지배하여 다른 체제나 도망갈 곳도 없는 제국에서 탈주를 얘기하는 것도 황당하고, 봉건적 수탈을 피해 도주하는 화전민처럼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생산공동체로 도주할 수도 있겠지만, 네그리의 주장은 자본의 세계에서 혹은 생산의 현장에서 자본에 전면적으로 저항하는 투쟁의지를 발목잡는다는 점에서 반동적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더구나 본문에 든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계화에 의해 강요된 이주노동 즉 도주와 탈출을, 마치 은연중에 자발적인 의지로 감행할 수 있는 것처럼 상정하고, 반자본과 대항제국의 중요한 투쟁형태로 칭송하고 있는 것은 황당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둘째, 제국이 국민국가를 대체했다(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의 형태가, 그 특성이 달라졌고 주장하고. 지금까지 주권 관념은 초월성론에 기반한 것인데, 네그리는 ‘내재적’ 주권이라는 관념을 내세워 새로운 주권론을 전개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하여, 수긍합니다.

 

그럼에도 일국적 (즉 국민국가에 대한) 투쟁이나 국지적 기획을 해롭다는(『제국』) pp. 81-84.) 네그리의 주장은 여전히 반동적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다중과 제국적 주권(즉 권력과 착취의 전 지구적 질서)사이의 갈등(『다중』p 378), 제국적 질서의 다자주의적 귀족들,(『다중』p380), 미국은 귀족(국가)들에게 자금지원을 호소해야만 하는 군주의 입장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인다.(『다중』p95), 개별국가적 통치에서 제국적 협치로, 고정된 개별국가적 권력들의 위계에서 전지구적 조직들과 네트워크들의 다차원적인 관계들로 이동해 왔다(『다중』p 386) 등등의 언설이나, 맨위에 신자유주의 군주국인 단순한 국민국가가 아닌 미국이 있고, (조정환지배의 피라미드와 촛불) 등등의 표현을 보면,

 

꼭 제국이 내재적인 주권형태만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질서가 군주국인 미국과 제후국들의 네트워크적인 협치로 관철된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자본과 상품이 국민국가의 장벽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세계화로 관철되는 초국적 질서의 본질을, 네그리처럼 국민국가를 뛰어넘는 초국적 질서의 성립으로 보고 곧바로 대항제국으로 나아갈 것이냐, 아니면 초국적 질서라는 게 자본의 대리인인 국민국가를 매개로 하여 관철되기 때문에, 2003년 전세계적인 반전데모에서처럼 각국 정부와 의회를 압박할 것이냐의 실천상의 문제가 된다고 할 것입니다.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던 시절이 있었다면, 세계화로 강요된 질서는 자본과 초국적 자본의 전세계민중에 대한 공동전선 즉 강대국들의 협력적 질서로 볼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협력적 질서를 깨뜨리는 것은 국민국가를 매개로 한 투쟁에서 관철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셋째, 네트워크는 구조이며, 구조는 도구와는 다른 차원의 범주라는 지적에 대하여 수긍합니다.

 

그럼에도 위계제 혹은 중앙집중적 조직과는 다른, 자율성을 존중하는 중심이 없는 혹은 다중심적이란 의미에서 네크워크 조직론은, 단결과 연대를 통한 강고한 투쟁을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반동적이다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네트워크적인 구조 즉 자율적인 단위들이 공동의 적에 대하여 소통하는 방법이 또한 네트워크적인 도구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고 이점에서도 조직론과 투쟁론에서 취약하다는 점 역시 변함이 없습니다.

 

넷째, P교수님이 비물질 노동과 정서노동 즉 노동양태의 변화를 좀더 의미있게 봐야 한다는 지적에 대하여는, 육체노동 혹은 산업노동에 비하여 지식기반 노동과 서비스노동이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자본에 대항하는 정체성인 임노동과 프롤레타리아라는 큰 틀을 재구성해야 할 만큼 실천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이외에도 많은 소중한 지적이 있었지만 그 취지가 좀더 다른 각도에서 세련된 비판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므로 생략합니다.

 

다시 한번 두분 교수님의 소중한 지적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비판은 연구자의 몫으로 돌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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