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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종파주의 비판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종파주의 비판

민주당ㆍ개혁주의자들과는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는가

전지윤 기자 ratm71@left21.com

 

올해 상반기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ㆍ반노동 공격에 맞선 투쟁에서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삼가지 않으면서 특정 사안을 놓고 민주당과 전술적으로 제휴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예컨대 1917년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우익 장군 코르닐로프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볼셰비키 혁명가들은 부르주아 정부의 수장인 케렌스키와 함께 코르닐로프에 맞섰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이 과정에서 케렌스키를 지지하지 않[] 민중에게 케렌스키의 약점과 동요를 지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로츠키도 케렌스키를 코르닐로프를 맞출 총의 조종대로 사용하자. 케렌스키는 나중에 처리하자는 입장이었다. 

이처럼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민주당의 동요와 약점을 지적하면서, 민주당을 이명박을 맞출 총의 조종대로 이용하는 전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면서 정치적으로 민주당을 추수하는 인민전선적 동맹을 추구했다. 

<레프트21>다함께는 이런 인민전선적 동맹 추구가 이명박의 공격을 막아낼 진정한 동력인 노동자ㆍ민중의 힘과 사기를 떨어뜨리며 이명박 정부가 언론법 날치기 등을 강행할 수 있는 틈을 제공했다고 비판해 왔다. 

그런데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은 이런 인민전선적 동맹뿐 아니라 민주당과의 전술적 제휴를 포함한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을 전술 수준에서까지 일관되게 반대한다.(효식, <가자! 노동해방> 37) 

나아가 사노련은 개혁주의 단체들 NGO, 한국진보연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과의 연대마저 사실상 거부한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자본가당과 어울리며 이중대 노릇이나 하는 가짜 노동자당(양준석, <가자! 노동해방> 29)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노련은, 민주당과 전략적 동맹은 안 되지만 불가피할 때 전술적 제휴는 가능하다다함께도 비판한다. [다함께는] 민주주의 요구와 반자본주의 요구의 결합을 이야기하지만, 민주당과의 동맹 일시적이든 상설적이든 요구는 이러한 이야기를 모두 공문구로 만든다. 실제로 다함께는 노동자 생산 통제, 정방대 구성, 노동자 정부와 같은 어떠한 반자본주의적 이행 요구도 제출하지 않 고 있다(양효식, <가자! 노동해방> 34)

최대강령(전략적 과제)과 당면 투쟁을 분리시키는 기회주의가 바로 민주당과의 전술적 제휴론에 깔려 있는 본질(양효식, <가자! 노동해방> 37)인데, 다함께“‘4당 연합노선에 대한 굴종[을 통해] 현실에서는 인민전선 세력의 힘을 북돋아주는 역할(오연홍, <가자! 노동해방> 37)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과는 어떠한 타협도 안 되며, 노동자 정부 구성 등 최대강령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개혁주의자들과도 절대 타협할 수 없고, 개혁주의자와 연대하는 다함께는 기회주의라는 게 사노련의 주장이다.  

정치적 무능력  

혁명적이면서도 누구보다 현실적이었던 레닌은 이처럼 어떤 것이든 타협 일반의 허용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 그것은 진지하게 고려하기조차 어려운 어리석은 짓(≪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레닌은 볼셰비즘의 온 역사가 유연한 대응, 협조, 부르주아 정당을 포함한 다른 정당들과의 타협의 사례로 가득차 있음을 강조하며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는 것은 산을 올라가면서 때로는 지그재그로 올라가고, 때로는 되돌아가고, 때로는 일단 선택한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구하고 하는 일들을 미리 포기해 버리는 것과 완전히 똑같[]고 비판한다. 

물론 민주당은 자본가 계급에게서 돈ㆍ인력ㆍ자원을 충원하고 따라서 이명박과 근본에서 다르지 않은 정책을 추구하는 자본가 정당이다. 민주당을 추수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근본적 변혁이 아니라 자본주의 내에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한다는 한계가 있다. 레닌은 그러나 이로부터, 이 사람들을 지지하는 것은 혁명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혁명가들은 혁명을 위해서 이러한 신사양반들에게 어느 정도 의회적인 지지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우리에게 폐물이 된 것을 계급에게 폐물이 된 것으로, 대중들에게 폐물이 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오늘날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이 민주당이 이명박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가? NGO, 한국진보연대, 진보정당 등도 결국은 자본주의 내에서 개혁을 추구하기 때문에 민주당과 똑같다고 보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민주당은 이명박과는 다른 개혁정당으로 알려져 있고 진보진영의 단체들은 모종의 좌파로 알려져 있다. 

물론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차악 논리 속에 다시 민주당에 대한 환상이 살아나고 있다. 촛불 이후 급진화한 청년들도 곧바로 무슨 혁명적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로 옮아온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대체로 민주당 좌파나 급진적 개혁주의 정도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올해 언론악법 등 MB악법에 맞선 투쟁에서 다수 대중은 민주당이 미덥진 않지만 이명박에 맞서 민주당까지 포함한 광범한 연대가 이뤄지길 기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들은 대중 속에서 활동할 줄 알아야 하고 불가피하다면 이를 위해 부르주아 정당과도 일시적으로 타협할 수 있다는 게 레닌의 강조점이었다.  

[부르주아 자유주의나 개혁주의] 지도자들 로부터 오는 어려움들, 곧 고통, 속임수, 모욕, 박해 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대중이 있는 곳에서 작업해야만 한다. 공산주의자들의 참된 과제는 후진 분자들을 설득하고, 후진 분자들 사이에서 작업할 줄 아는 것이지, 억지로 고안해 낸 유치한 좌익슬로건들로 그들을 둘러막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마치, 민주당과 일시적ㆍ전술적 제휴조차 할 수 없다며 대중과 자신들 사이를 둘러막은 후 노동자 생산 통제, 노동자 정부 구성을 외쳐대는 사노련을 겨냥하고 한 말처럼 들릴 정도다. 이런 종파적 태도는 역설적으로 민주당에게 반이명박 투쟁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낳는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가 주도한다는 이유로 어떤 투쟁에 관여하기를 꺼리는 자들은 사실상 자유주의자들로 하여금 지도적 지위를 점하게 하고 정치투쟁의 헤게모니를 넘겨주고 있는 것(≪레닌저작선≫)이다.   

헤게모니 

실제로 올해 상반기 정치 투쟁의 정점이었던 6.10 대회가 그것을 보여 줬다. 당시 노무현 사망 이후 뜨겁게 달아오르던 정세 속에서 좌파는 이명박의 반민주적 개악에 맞선 투쟁과 쌍용차 등 노동자 투쟁을 결합시키며 반이명박 정치투쟁을 발전시켜야 했다. 6만여 명이 결집한 6.10 대회는 그 가능성을 보여 줬다. 

그런데 사노련 등 종파적 좌파들은 민주당이 공동 주최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6.10 대회에 개입하는 것과 쌍용차 노동자들이 이 집회에 참가해 연대를 호소하는 것 모두를 마뜩찮아 했다. 반면 민주당을 추수하던 개혁주의 지도자들 또한 6.10 대회에 급진좌파들이 개입하거나 쌍용차 투쟁의 요구들이 결합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개혁주의자들의 민주당 추수와 종파적 급진좌파들의 정치적 무능력 덕분에 민주당은 6.10 대회 후 투쟁의 열기를 식히며 별 저항 없이 국회로 복귀했고, 이어서 이명박 정부는 언론악법 날치기와 쌍용차 살인진압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레닌은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는 좌파들에게 이런 따끔한 지적을 한다. 

당신들은 스스로를 겁나게 혁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당신들은 노동운동 내의 부르조아지의 영향력에 맞선 투쟁에서 비롯하는 비교적 사소한 어려움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당장 9 26일에도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야4(민주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용산범대위가 공동 주최하는 집회가 있을 예정이다. 용산범대위 소속 단체인 사노련은 이 집회에도 불참할 것인가? 이 집회 개최를 합의한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준비모임 등 다른 좌파 단체들도 기회주의라고 비난할 것인가? 

ⓒ사진출처 민주노동당

물론 민주당은 나름의 정략적 계산 때문에 이 집회를 공동 주최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는 민주당이 이 집회를 주도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이 집회에 개입해 용산참사에 분노하는 대중 속에서 이 투쟁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사회주의자의 분석과 전술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노련에게는 이처럼 공동 행동을 통해 대중운동을 건설하고 운동의 전진에 기여한다는 마인드 자체가 없는 것 같다.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정당들조차 민주당과 똑같이 취급하며 어떠한 지지도 없이 비판만 하는 것, 공동 투쟁의 건설에는 관심 없고 진보정당들을 폭로하며 노동자 정부 구성, 혁명적 당 건설 등 자신들의 의제만을 선전하려 하는 것은 사노련의 구제불능의 종파성만 보여 준다. 이런 종파주의 때문에 사노련은 지난해 촛불항쟁 때도 아주 뒤늦게야 운동에 뛰어들어 별다른 구실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개혁주의적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운동에 개입해 대중들과 접촉하려는 활동과 노력을 평가절하하면서 사노련의 오연홍 동지는 신문 팔고 피켓 시위하고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8 27쌍용자동차 투쟁과 한국 사회 변혁운동의 과제 토론회에서)

사회주의자들에게 정치 신문을 제작하고 판매한다는 것과 피켓팅을 한다는 것은 대중운동에 개입하며 정치적 주장과 선전ㆍ선동을 한다는 의미다. 혁명적 원칙에 기반해서 당면 정세를 분석하고 필요한 방향과 전술을 제시하는 정치 신문은 사회주의자들이 운동에 개입하고 조직을 건설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무기이다.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전국적 정치 신문을 통한 당 건설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도, 지배자들이 국가보안법에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 판매를 특별히 규정해서 탄압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신문 판매야말로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활동인 것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혁명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노동자당을 조직(사노련, 우리의 입장)하겠다는 사람이 이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다니 이런 모순도 없다. 그것은 혁명적 정치와 주장을 통해 운동에 개입하고 조직을 건설하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실제로 사노련 동지들은 자신들의 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집회 등에서 자신감있게 판매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고 언제나 무료로 배포할 뿐이다.       

혁명적 원칙만 되뇌는 

레닌은 이런 정치적 무능력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었다. 레닌은 다양하고 모순적인 배경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투쟁들에 개입해서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서 혁명적 원칙만 되뇌는 혁명가들을 경멸했다.   

식민지와 유럽에서 소수민족들의 반란이 없이도, 온갖 편견을 가진 프티부르주아지의 혁명적 분출 없이도, 정치의식이 없는 프롤레타리아와 반()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지주ㆍ교회ㆍ왕정의 억압과 민족 억압 등에 저항하는 운동 없이도 사회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혁명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군대가 한 장소에 죽 늘어서서 우리는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외치고 맞은편에서 다른 군대가 우리는 제국주의를 지지한다고 외치는 것이 사회혁명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순수한 사회혁명을 기대하는 사람은 살아서 혁명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혁명이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말로만 혁명을 떠드는 사람이다.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정부의 탄압과 용산참사 항의 투쟁에서 경찰 소환에 대한 태도를 보면 사노련이 말로만 혁명을 얘기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사노련 활동가들을 탄압하는 것에 맞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이들을 방어해야 한다. 

실제로 다함께는 지난해부터 사노련 탄압에 반대하는 공동 대책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고 <레프트21>도 사노련을 방어하는 기사를 여러차례 실었다. 그런데 사노련 활동가들은 국가의 탄압에 맞서 철저하고 일관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경찰의 컴퓨터 등에 대한 압수 수색에 사실상 협조했으며 조사 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하며 묵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대책위 내에서도 사노련 활동가들이 국가보안법 이용 탄압에 대해 가장 기본적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와 지적이 거듭 나왔고,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에서도 사회주의 혁명가라는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에 대한 투쟁의 기본 원칙도 지키지 않느냐는 실망의 목소리가 나왔다.  

올해 초 용산참사 항의 투쟁에 대한 경찰 소환에 대해서도 사노련의 파견자는 소환에 응해서 조사를 받았고 적당히 말하고 나왔다며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했다. 당시 다함께투쟁의 정당성을 알리며 소환에 불응해야 하고 연행되더라도 철저히 묵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떳떳하니까 숨기거나 도망다닐 필요가 없다, 나와서 열심히 활동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자본가 권력을 철폐하고 노동자 권력을 수립(사노련, 우리의 입장)하자면서 자본주의 국가의 탄압에 이처럼 실용주의적이고 무원칙한 태도로 응하는 것은 완전한 모순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들은 무엇보다 자본주의 국가에 대해서 단호하고 원칙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정말 타협하지 말아야 할 자본주의 국가의 탄압에 대해서는 실용주의적으로 타협하면서, 운동의 단결과 전진을 위해 불가피하게 필요한 전술적 타협은 한사코 거부하는 사노련은 레닌의 다음과 같은 충고를 곱씹어 봐야 한다. “‘어떠한 타협도 없고, 어떠한 유연한 대응도 없다!는 성급한 판단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세력을 강화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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