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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현, [벌거벗은 생명 - 신자유주의 시대의 생명정치와 페미니즘] 3,4장 요약

3. 생명정치, 벌거벗은 생명, 페미니스트 윤리

 

1. 문제제기

국가 권력의 성격을 분석한 아감벤에 따르면, 국가의 주권은 폭력과 법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지점, 즉 폭력이 법 안으로 들어가고 법이 폭력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다. 국가 권력의 본질이 법과 규칙의 실천보다는 법과 규칙이 적용될 수 없는 예외 조항을 만들고 그 예외 조항에서부터 다시 법칙을 만들어 내는 것일 때, 우리 모두는 잠재적으로 법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에 속하는, 이른바 주권에서 배제된 벌거벗은 생명일 수 있다.

지구화 과정에서 폭력의 새로운 징후는 바로 사회적 생명(비오스)과 벌거벗은 생명(조에)이 분리됨으로써 일어난다. 페미니스트 윤리는 개인 안에 그리고 사회 집단들 간에 분리된 사회적 생명과 벌거벗은 생명을 통합하려는 데 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벌거벗은 생명의 잔여적 생명을 직시하고 사회적 생명과 벌거벗은 생명이 통합된 나를 인정하는 것,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사회 집단 간의 관계에서 사회적 생명과 벌거벗은 생명의 구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사회적 생명과 벌거벗은 생명의 통합을 위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생명정치시대에 페미니스트 윤리의 지향점이다.

 

2. 생명정치와 벌거벗은 생명

아감벤은 푸코의 생명정치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켜 국가권력이 예외의 공간을 갈수록 확장함으로써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으로 환원될까 봐 두려워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예외적인 공간에 놓일 수 있고, 벌거벗은 생명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불안을 갖는다는 것이다.

아감벤은 오늘날 국가 권력과 대칭되는 위치에 있으면서 절대적인 기본권으로 간주되는 생명의 신성함이란 것이 사실상 생명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버림받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명정치는 규범적 시민과 벌거벗은 생명으로 생명을 구획한 후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포함적 배제에 근거해 권력을 행사한다. 벌거벗은 생명의 존재는 규범적 시민이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국가 폭력의 대상으로 국가 안에 포섭된다. 촛불 시위는 국가 주권의 생명정치에 대항하여 규범적 시민(비오스)과 벌거벗은 생명(조에)의 통합을 실현하는 운동이었다.

정부가 촛불 시위 기간에 통치권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대부분의 규범적 시민들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범주화하는 정책을 보였기 때문. 미국산 쇠고기를 안 사 먹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시민들은 규범적 시민의 범주에서도 소수 집단에 불과함.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스스로가 벌거벗은 생명의 범주에 들어갈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됨.

 

3. 벌거벗은 생명과 여성

지구화 과정에서 젠더 배열은 국민 국가 내의 생명정치와 상호 교차해 벌거벗은 생명의 여성화를 가져온다. 국가의 예외적 공간의 설정이 젠더와 인종 배열에 따라 진행될 뿐 아니라, 지역 내 위계적인 사회 체계들과의 상호 교차를 통한 확산 역시 젠더 배열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다.

 

1) 포함적 배제 공간의 확산

2004년 밀양 고교생 집단 강간 사건의 상홍은 한국 사회의 위계 체계들이 어떻게 상호 교차하면서 배제적 포함의 영역을 설정하고 그 영역에 속한 개인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환원하는지를 잘 보여 줌. 이 때 적용 범주의 기준은 지역, 계급, 가족, 젠더, 섹슈얼리티 체계 등이다.

①지역체계: 밀양지역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집단 강간당한 여중생의 섹슈얼리티가 비정상적인 것임을 부각해야하고, 그런 비정상적인 섹슈얼리티를 지닌 여학생이 밀양 출신아 아니라는 것을 강조. 한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밀양 촌동네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서울과 지역의 구분을 강조. ②섹슈얼리티 체계: 정상적인 성의 범주를 ‘순결’한 이성애로 규정하고 피해 여학생의 성을 비정상적 성으로 배제할 때, 이 섹슈얼리티 체계는 밀양을 도덕과 예의 고장으로 타 지역과 차별화하려는 구도를 지원하는 형태로 작용. ③계급 체계: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41명의 남학생을 세워 놓고 이름을 말하면 손가락으로 누군지를 가리키라고 하고, 한 명 한 명을 마주하면서 “넣었냐, 안 넣었냐”를 묻기도 함. 언론과 경찰이 피해자에게 이렇게 폭력적이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저소득 계층의 인권과 사생활은 보호의 대상이기보다 개입의 대상으로 간주되기 때문. 기타 등등....

 

2) 이미지 유통의 정치화 무관심의 확산

이미지 홍수의 시대에 우리는 이미 온갖 혐오물에 익숙해져, 현실 속의 고통의 이미지에 대해 점차 무감감해지고 있다. 타인의 고통의 이미지를 단지 구경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뉴스 소비자의 마음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극한적 고통의 이미지들을 읽을 때의 주된 반응(수전 손택) : ①평화주의자의 태도(‘우리’는 충돌과 직접 관계가 없는, 원거리에 있는 제3자의 위치에 있고, 특정 국가/집단의 역사와 정치를 제거한 추상적 시선으로 평화를 촉구) ②옳고 그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는 ‘우리’(고통의 이미지는 ‘정체성’을 뜻함. ‘우리’는 고통의 이미지를 읽으면서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고 복수와 정의를 실현할 것은 주장) ③무서운 이미지에 ‘넋이 나간 상태’(전쟁/충돌에 대해 순진함과 피상성, 무지를 드러냄)

손택은 이러한 반응이 사실상 전쟁과테러와 충돌을 지속시키는 기제라고 지적. 우리는 주어진 고통의 이미지에서 누구의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지, 누구의 잔인함이 보이지 않는지, 누구의 죽음이 보이지 않는지 질문하는 것이 중요함.

벌거벗은 생명의 고통의 이미지들을 보고 동정심을 느끼는 한 우리는 적어도 고통을 야기한 동조자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그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을 말해 주기도 한다.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지겨워지고, 빈정대고, 무감각해지기 시작한다. 손택은 벌거벗은 생명의 이미지에 대해 그 고통과 상상적 유사성을 느끼면서 타자와 연결되려는 것은 현실의 권력관계를 단지 신비화할 뿐이라고 말한다. 벌거벗은 생명의 이미지가 진정으로 우리를 자극하는 경우는 그들의 고통과 우리의 특권이 같은 국면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다.

한편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의 포로 고문 사진은 벌거벗은 생명의 고통의 모습을 무제한으로 드러낸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고문의 내용은 여성의 몸을 가리는 것을 규범으로 하고 있는 이슬람 여성에게는 나체로 있게 하는 고문을, 이슬람 남성에게는 여성의 팬티를 머리에 씌우고 동성 간의 성교를 강요하는 고문을 한 것이다. 이들은 이미 개인의 정체성이 지워진 ‘벌거벗은 생명’으로 환원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고문은 포르노적 성격을 띠고 있다.

버틀러는 이를 지구화 과정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새로운 방식에 성 정치가 복무하게 된 것으로 분석한다. 그동안 성 정치는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강압적 이성애성을 비판함으로써 진보 정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여기서 ‘진보’란 근대성의 역사, 즉 진보와 합리, 이성의 역사성에 위치한 것으로 상징되었다. 그러나 버틀러는 최근의 지구화 과정에서 성정치의 진보성이 근대적 시간대를 상징하는 위치에 놓이면서 근대적 시간대 밖에 놓여 있는 대부분의 공간을 미성숙한 전근대의 시간대에 놓는 데 전유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지면 여성의 사회 진출과 동성애의 인정을 진보와 근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그 상징을 무기로 하여 타 시간대를 타자화 한다는 것이다.

 

4. 벌거벗은 생명과 페미니스트 윤리

근대 국가는 생명정치의 구도에서 생명에 형식을 부여해 사회적 생명과 벌거벗은 생명으로 구분한 후 전자를 시민의 자격으로 국가의 기획에 포함하고 후자를 벌거벗은 생명으로 배제적 포함의 영역에 포획한다. 이 때 우리에게는 완전한 시민으로 국가의 보호 아래 놓이거나, 벌거벗은 생명으로 환원되거나, 생명정치의 구도 자체에서 탈주하는 세 가지 길이 주어진다.

이 세가지 길을 넘어서는 대안적 전망. 첫째로는 애국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세계 시민주의를 추구하는 것(너스범). 둘째로는 문화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시작과 끝을 폭력적으로 설정하는 목적론 바깥에 있는 시간대를 사유할 수 있어야 함(버틀러). 즉 글로벌 주체로 ‘소수자’범주를 제안하면서 시민과 비시민을 가로지르고자 함. 셋째로는 권리 개념을 수정하여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맞서는 기획을 하고(사적 소유권을 부수적인 권리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 및 공유물과 식량 안보에 대한 권리를 우선적인 것으로), 소수자들의 연대만이 아니라 기존 체제 내의 비판적 분석도 이와 결합하는 것(하비).

이 세가지 전략은 입장의 충돌을 보여주기보다는 대응 전략의 순서의 문제. 생명정치의 억압성에 대한 미시적 분석(버틀러) -> 체제 내에서의 보편적 인권개념에 기반을 두고 국민국가의 억압성 견제(너스범) -> 체제 내외의 모든 저항 운동간의 연대를 통한 체제 자체의 재구성(하비).

페미니스트 정치학에 걸맞는 페미니스트 윤리는 어떤 특징을 갖는가? ①푸코의 윤리적 주체성: 화자와 청자 사이에 위계적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오히려 청자가 화자를 선정하며, 청자는 화자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청자와 화자가 어떤 규범이나 정상화의 권위를 통해서가아니라 서로 함께 진실함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권위를 만들어 가는 것. ②버틀러의 윤리적 주체성: 언어화 되지 않은 타자의 ‘얼굴’을 통해 타자가 놓인 극도의 위태로움을 알아차리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은 이러한 ‘얼굴’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거나 아예 삭제함으로써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 규범적 권력을 바꾸어 내는 일.

버틀러는 우리가 폭력을 경험했을 때 즉각적인 보복의 자세를 취하는 대신 우선 그 폭력에 애도를 표함으로써 인간성을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제안한다. 즉각적인 보복은 폭력에 따른 상실을 비현실화함으로써 오히려 이간의 고통과 죽음에 무감각하게 하며, 그를 통해 비인간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5. 맺음말

생명정치가 젠더와 인종 배열에 따라 재편되고 있는 지구화 회로와 만날 때 벌거벗은 생명의 여성화가 일어난다. 국가의 예외 공간의 설정이 젠더와 인종 배열에 따라 진행될 뿐 아니라, 위계적인 사회 체계들과의 상호 교차를 통한 확산 역시 젠더 배열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과제는 일상의 삶에서 규범으로 규정되지 않은 벌거벗은 생명의 경험 세계를 드러내고 드러나지 않은 ‘얼굴’을 보고 들을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시민권과 인권의 긴장 관계를 통해 ‘시민’의 자기 성찰을 고양시킴으로써 시민과 벌거벗은 생명의 경계를 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되는 것, 마지막으로 체제의 안과 밖을 가로지르는 연대의 구성을 모색하는 것임.

 

 

 

4. 지구화와 공공성의 변화

 

 

1. 문제제기

우리는 지구화 과정에서 폭력성의 새로운 징후를 목격한다. 9.11사태 이후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 고문 사건, 김선일 씨의 죽음,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새로운 정치적공간의 확산과 거기서 파생되는 폭력은 우리에게 지구화 과정에서 근대 국가와 폭력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여성은 이폭력성과 어떻게 직면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의문을 갖게 함.

공공성 변화의 주요한 두 측면: ①국민 국가 단위의 근대적 공/사 구분이 약화되고 젠더, 계급, 인종, 국가가 상호 교차하는 상황에서 계급 정체성을 형성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반면, 여성 경제인구 증가와 함께 부상한 여성 비정규직화의 문제 ②정치적으로 국가 권력은 국가의 주권이 적용되지 않는 배제의 공간을 확장함으로써 배제의 공간을 지배하는 생명정치가 확산.

여성운동은 국지적 장에서 공/사 구분을 넘어선 여성들의 삶의 방식을 반영하는 공공성의 새로운 기준을 주장하는 한편으로, 공공성의 영역을 잠식하는 배제의 공간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해야 함.

 

2. 공공성 변화 논의의 배경과 의미

페미니즘은 공/사 구분의 논리가 젠더 체계를 고착화한다고 비판함. 이에 대한 대안으로 페미니스트들은 사적 영역과 여성이 짝을 이루는 것을 해체하고자 함(여성의 정치적 시민권 강화 운동). 그러나 이것은 공/사 영역 구분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더 많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음. 대다수 여성들의 공적 영역 진출은 충분한 사회권과 시민권 획득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이들의 공적 영역 진출은 여성 대다수의 삶에서 사적 영역과 단절된 형태의 공적 영역 체험이 아니다.

두 번째 페미니스트적 대안은 여성들의 체험을 반영해 공/사 영역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들이 그간 사적 영역에서 수행한 돌봄노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이 대안은 주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지구화와 함께 ‘생존의 여성화’가 가속화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구화는 금융, 생산, 무역, 통신이 통합된 세계를 구축하는 ‘기술 근육 자본주의’와 대부분 여성 이주 노동자가 제공하는 돌봄 노동의 ‘노동 친밀성 체제’라는 두 과정으로 구분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기술 근육 자본주의화에 대해서는 국가의 역할을 축소할지 모르나, 노동 친밀성 체제화 과정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강화한다. 노동 친밀성 체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통해 생물학적 생명을 감시, 관리하는 역할이 국가의 목적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아감벤은 현대에 들어올수록 예외 상황은 점점 더 전면으로 부상해 예외 상황이 근본적인 정치 구조가 되고 궁극적으로 예외 상황이 법칙이 되기 시작했다고 주장. 이렇게 예외상황의 특수성이 상실된 조건에서 법칙은 특수성을 상실하지만, 국가는 이 ‘의미 없는 법률’을 여전히 강요하는데, 이에 대응하는 개념이 바로 ‘벌거벗은 생명’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개념상 ‘자연 그대로’의 정체성 혹은 ‘동물적’ 정체성으로 격하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초월적 의미는 사상되고 인간이 가진 것이라곤 오직 생명뿐인 존재로 환원되는 것을 말한다.

 

3. 공공성 변화의 두 방향

지구화는 전 지구적으로 ‘핵심 지역’을 연결하면서 이들 지역 간의 공통점이 각 국가 내부의 지역 간 공통점보다 더 많아지는 현상을 초래한다. 이 핵심 지역 연결망에 포함되지 않은 ‘죽은 땅’은 제3세계뿐 아니라 서구 세계에도 등장하며, 따라서 영토에 근거한 국가 단위 주도의 냉전 정치는 무력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1) 기술 근육 자본주의와 노동 친밀성 체제

제3세계 여성의 시선으로 봤을 때 지구화에는 세계적 거점 도시들 안에서 백인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는 기술 근육 자본주의과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짝을 이루는 것으로 지구적 차원에서 돌봄 노동을 담당하는 노동 친밀성 체제의 과정이 상존한다. 노동 친밀성 체제는 아시아 여성들을 ‘서비스를 체현한’ 사람들로 인식하게 하고 있지만, 글로벌 계급과는 달리 이들 여성들의 주체성은 표현할 언어, 수사, 담론 목소리까지 없어지면서 침묵된다.

필리핀의 경우 1992년도에 전체 외화 획득의 25%를 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이주노동자들로부터 거두어들이고 있다. 이들은 필리핀의 필수적인 수출상품이다. 한편 이주 여성을 받아들이는 국가 역시 노동 친밀성 체제의 유지, 강화에 공모하는데, 홍콩 정부는 외국인 가정부가 최소 2년간 한 고용주에게 고용되어야 하며 상시 재택근무할 것을 의무화한다.

이주여성의 행위성의 차별화 : 조선족 기혼 여성들은 유입국인 한국 사회와 고향인 조선족 사회 양쪽에서 느끼는 차별과 편견에 저항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 자신들을 전근대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으로 돌아가면 자신들이 소속될 부유 계층으로 스스로를 규정함으로써 행위성을 확보. 또한 모성과 아내로서의 섹슈얼리티를 지키기 위해 자녀의 모든 교육비와 장래에 대한 투자를 전담. 홍콩에서 상주 가정부직에종사하는 필리핀 여성들도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성당에 다니며 도덕적 정체성을 확보하고, 여성 간의 동성애를 발전시킴으로써 오랜 외국 체류에 따른 외로움을 해소하면서 동시에 홍콩 사회와 필리핀 사회 양쪽이 갖고 있는 자신들에 대한 성적 의심을 벗어나려고 함. 차이점이라면 필리핀 여성이 조국에서 애국자로 의미화하는데 비해 조선족 여성은 중국 내에서도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해체로 여겨지는 차이점이 있음.

(기타 다양한 이주 여성의 사례 소개)

이러한 지구적 재편에 따라 이주 여성들은 노동자 정체성이 구성되기보다는 자신과 가족, 이웃의 생존을 위해 기존의 생산과 재생산 노동의 경계를 넘나들 뿐 아니라 노동/성/가족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형태의 여성 주체의 탄생을 보여준다. 여기서 여성운동의 과제는 지구적 차원의 젠더 배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한편으로, 지구적 젠더 배열과 지역에서 여성들의 삶의 조건을 연결할 수 있는 문화 번역의 책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2) 국가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2007년 2월 여수 화재 참사 사건에서 나타난 이주노동자들의 실태는 이들이 전적으로 벌거벗은 생명, 오로지 생물학적 생명만을 유지한 비시민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줌.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발생한 고문 사건은 한편으로 성 정치를 내포하고 있었음. 미국 여군이 나체의 아랍 남성 포로의 목을 묶은 가죽끈을 잡고 웃고 잇는 이미지는 이 사건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음. 이 사건의 형상화에 여성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이 사건의 주범이 ‘여성’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식으로 몰아갔으며, 이로 인해 미국 정부의 행동을 사사로운 것으로 만드는 효과를 낳았음.

국가의 본질이 이와 같은 법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 집단을 상정하는 것이라고 할 때 국가에게 이들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됨. 이에 따라 국제적 수준에서 수용소 내 체류민의 보호는 시민이 아닌 인간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렇게 인식이 전환되려면 국민 국가와 전 지구적 공동체 사이의 갈등과 충돌을 직시하고 공존 방식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구긴 국가의 폭력성에 대한 여성운동의 접근은 지역적 차원과 지구적 차원을 연결할 수 있는 ‘인권’개념의 번역 가능성에 있으며 이 번역 과제에 젠더 배열을 반영시키는 데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4. 지구/지역 번역으로서의 여성운동

생명정치의 폭력성을 인식하는 여성운동의 틀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구화 과정에서 서구 중심의 단일한 규범 체계로 재편되기를 거부하고 문화적, 지역적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규범과 윤리의 설정을 모색해야 함. 여기서 지역의 여성운동을 지구적 질서와 소통시키는데 층위가 다른 두 차원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 즉 번역의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문화 번역은 “타자의 언어, 행동 양식, 가치관 등에 내재화된 문화적 의미를 파악하여, ‘맥락’에 맞게 의미를 만들어 내는 행위‘를 말함. 이 과정에서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언어들 간의 권력 차이를 좁힐 수도 넓힐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권력행위가 됨.

인권은 종교와 민족성에 근거한 지역의 의미망 안으로 번역되어야 하며 합법적이고 호소력있게 설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운동가들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권 용어들을 차용함으로써 후원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딜레마가 존재. 그럼에도 여성운동이 지구/지역 번역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인권이 그 기원과 암시라는 면에서 유럽 중심적인 개념이지만, 동시에 인권은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

 

5. 맺음말

여성운동은 이 같은 정치 경제적 상황에서 지역적 경험과 지구적 질서를 연결하는 지역/지구 문화 번역의 과제를 향해 나아가야 함. 지구적 차원의 젠더 배열의 중요성을 인식해 지구적 젠더 배열과 지역 여성들의 삶의 조건을 연결하고, 국가의 주권 개념과 무관한 보호의 개념을 제안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역적 경험과 지구적 질서의 상호 소통이 필수적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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