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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마나부,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요약정리.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 만들어지는 위기와 무시되는 실태

미디어를 통해 ‘이지메’, ‘부등교’, ‘학급붕괴’, ‘소년범죄’ 등의 사안들이 주목받고, 학교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문제들은 극히 일부의 사례에만 집중한 것.

변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들을 보는 어른들의 시선. 고베의 어린이 연쇄살상사건 무렵부터 어르 사회 전체가 아이들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이 없어졌으며, 일본 사회전체가 아이들의 언동에 대해 집단히스테리를 일으키고 있는 중.

그러나 아이들을 적대시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음. 냉엄한 시대일수록 아이들의 하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 위기의 실태 - ‘배움’으로부터의 도주

일본의 아이들이 공부에 쫓겨 여유가 없다는 말은 학원에 다니는 일부 아이들에 국한된 이야기. 통계적으로 보면 일본의 아이들의 방과후 공부시간은 세계 최저 수준. 독서량 급감.

선택과목의 강화가 학생들의 기초 학력을 붕괴시킴. 초,중학교 단계에서 높은 학력이 시민적 교양으로는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어린이 되는 과정에서 몽땅 떨어져 나가 일반시민의 과학적 교양은 최악의 상태.

아이들에게는 지금 ‘무엇을 배워도 소용없다’는 식의 니힐리즘과 냉소주의가 만연해 있음.

 

○ 동아시아형 교육의 종언

동아시아형 교육근대화의 특징 : 압축된 근대화, 경쟁교육, 산업주의 교육, 중앙집권적 관료주의 통제, 강력한 내셔널리즘, 교육 공공성의 미성숙.

이러한 교육시스템은 산업화와 교육의 급속한 근대화가 정체되는 시점에서 파탄을 드러냄. 배움으로부터의 도주도 동아시아형 교육의 ‘압축된 근대화’의 종언과 그 파탄에 의해 생긴 현상. 일본에서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학력수준도 제일이었던 때는 교육에서 압축된 근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던 시기. 그러나 압축된 근대화가 종언을 맞이하자 이제 대다수의 아이들은 학교교육을 통해 부모보다 높은 교육력을 획득할 수도, 부모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수도 없음. 학교는 일부의 ‘성공팀’과 다수의 ‘실패팀’을 가르는 장치로 변모. ‘공부’의 시대 종말.

 

○ 사회변모와 교육개혁의 실패

산업주의 사회는 소수의 지적 엘리트를 정점으로 하고 다수의 단순노동자를 저변으로 하는 피라미드형의 노동시장을 형성. 그러나 포스트산업주의로의 전환은 지적노동자의 수요를 높여 항아리형 노동시장으로 옮겨감.

기업의 구조조정과 IT혁명은 그런 징후의 하나이며, 이로 인해 청년노동시장이 해체되고 있으며 그 급격함. 대량의 프리터 출현. 일본의 경우는 동아시아형 근대화의 파탄과 거품경제의 붕괴, 그리고 아시아 쇼크로 인해 보다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음.

젊은이들은 취직을 통한 사회참가의 기회를 빼앗기고 있고, 고령화사회의 부담을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되었으며, 막대한 국가재정의 적자를 갚아야 할 의무를 짊어지게 됨.

조기교육에 열중인 가정에서 아이들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부모의 이기적인 태도가 드러나고, 이에 아이들의 배움으로부터의 도주가 순식간에 진행.

일본 교육에서 신보수주의 => 내셔널리즘의 강조와 가정교육의 강조 그리고 ‘봉사활동의 의무화’ 제창 / 신자유주의 => 공립학교 기능 줄이고 나머지는민영화하자는 ‘합교론’ 등.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은 교육행정과 학교 책임을 극소화하여 아이들과 부모와 교사의 ‘자기책임’을 극대화하는 무책임한 개혁. ‘마음의 케어’를 강조하며 개인인적인 카운슬링만으로 대처.

‘보건체육’을 제외한 모든 교과의 ‘선택이수를 기본’으로 개편하는 신학습지도요령은 배움으로부터의 도주를 한층 가속화시킴. “매년 교육내용이 어려워져 아이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할 때마다 교육 내용을 삭감하고 수준을 낮추어 점점 아이들이 수업에 따라가지 못함. “수험공부의 폐해로부터 아이들을 구한다”고 하지만, 교과내용 삭감과 수준저하를 단행해 오면서도 대학입시의 수준은 변하지 않음. 21세기는 평생교육 사회. 생애에 걸쳐 배움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라도 고교단계까지 교육내용은 모든 학생에게 기초 교양으로 보장되어야 함.

수준별 학습도 학력격차를 확대하는 이상의 성과를 올리지 못함. 기초를 모르는 학생에게는 그런 학습의 환경에 더 많이 노출시킴으로써 빨리 내용을 습득할 수 있음. 수준별 학습지도는 저학력인 아이를 저학력인 채로 묶어둘 위험성이 있음.

 

○ ‘공부’에서 ‘배움’으로

공부를 거부하고 싫어하는 아이들도 배움에는 굶주리고 있음. 필요한 것은 ‘공부’에서 ‘배움’으로의 전환.

공부와 배움의 차이는 ‘만남과 대화’의 유무에 따름. ‘배움’이란 사물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한 <세계만들기>, 타자와의 만남과 대화에 의한 <친구만들기>, 그리고 자기자신과의 만남과 대화에 의한 <자기만들기>가 삼위일체되어 수행되는 ‘의미와 관계를 엮어가는’ 영속적인 과정.

‘공부’는 교과서와 칠판에 비쳐진 지식의 그림자를 정보로 습득하고 있는 것에 그치는, 일종의 ‘동굴 신화’. 이 벽을 극복하기 위해 도구나 소재나 사람으로 매개된 ‘활동적인 배움’을 교실에 실현할 필요 있음. 또한 공부’에서 가정하는 자립과 의존의 이항대립을 넘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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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력을 묻는다 – 배움의 교육과정

 

○ 학력문제의 혼란

대학생의 학력저하 배경으로는 대학입시과목의 다양화와 축소화, 고등학교의 선택중심 교육과정, 대학의 교양교육 해체에 거품경제 붕괴 후의 취업난으로 이한 고등교육 진학률의 상승이라는 직접적, 복합적 요인이 얽혀 있음.

이러한 대학생의 학력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초/중학생의 학력저하는 실제와 거리가 멀다. 이러한 학력저하 논쟁은 입시산업 쪽에서 보면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을 이용하여 고객을 늘릴 수 있는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들어온’ 기회라 할 수 있을 것.

학력저하라는 여론이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부과학성 등은 이런 여론을 바탕으로 다른 목적을 이루고자 함. 즉 복선형 학교제도를 만들고자 하는 것. 기초학력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수준별 학습지도’와 ‘소집단지도’도입을 결정하고 학교선택의 자유화를 추진.

과연 ‘읽고 쓰고 셈하기’라는 기초학력 강화는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할 수 있을까? 수준별 학습지도는 낙제생들에게 효과가 있을 수 있는가? 미국과 유럽의 교육개혁은 산업사회로부터 지식사회로의 전환을 예상하여 교육내용의 레벨업을 중심과제로 삼고 있는데, 일본은 거꾸로 교육내용의 레벨다운을 시도하고 있음.

 

○ 학력의 실태 – 무엇이 문제인가

①일본의 초/중학생의 학력은 아직까지 세계최고 수준이다. ②초/중학생 학력수준에 비해서 일반시민의 과학적 교양이나 과학에 대한 관심은 최하위. 성인의 교양쇠퇴현상이 훨씬 심각. ③초/중학생 학력에 있어서 기초내용에 관해서는 고득점이지만, 창조적인 사고를 반영하는 능력에서는 평균 이하. 21세기형 창조적 사고에 있어서는 취약. ④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를 싫어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 배움으로부터의 도주가 심각. ⑤배움으로부터의 도주와 학력저하는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 계층일수록 심각. 학력의 위기는 문화자본의 측면에서 계급간 양분화를 촉진(수준별 수업, 교육내용 삭감은 이를 부추김). ⑥대학생의 학력저하는 직접적으로는 대학입시과목의 삭감과 교양과목의 해체 및 고등학교 선택과목의 확대에 따른 결과에 지나지 않음.

 

○ 위기의 배경 – 학력신화의 붕괴

학력을 힘(power)으로 여긴다는 것은 학력의 사회적 기능을 표현하고 있는 것. 학력의 기능은 화폐와 세 가지 측면에서 같은 것. ①화폐가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을 수량적으로 비교하여 값을 매기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처럼, 학력도 다양하고 이질적인 학습 경험을 일정하고 균질적인 척도로 값을 매기고 가치를 부여. ②교환수단으로 기능. 학력은 누구나 원하는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입시시장이나 노동시장의 교환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음. ③저축수단. 학습활동에 계획성과 계속성을 부여하고, 낭가서는 저축 욕망이 ㅜ자로 작용하여 교육활동의 기반이 되고 있음.

일본의 학력위기는 학력신화가 붕괴함으로써 통화폭락에 비유할 수 있는 학력폭락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음.

싱가포르, 한국, 홍콩, 타이온, 일본 모두 학력성적은 1~5위를 독점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학교 외 학습시간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배움으로부터 도주현상이 일어나고 있음. 이것은 동아시아형 교육위기 현상.

학력경쟁을 통한 사회이동의 활성화는 압축된 근대화가 진행될 때는 순조롭게 기능. 그 때는 학력이라는 통화가 실제 이상으로 가치를 지님. 그러나 경제가 저성장시대로 돌입하면서 학력신화는 붕괴. 압축된 근대화가 종료되자 학교교육을 통해 높은 교육수준과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수 없게 됨. 학력이라는 통화가치가 폭락한 것.

포스트 산업주의 사회로 이행하면서 동아시아형 교육은 계속 어긋남. 일본 정부는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적 대응으로 일관. 신보수주의는 글로벌화에 대항하여 국가도덕과 가부장제를 고수, 신자유주의는 글로벌화에 영합하여 국가의 책임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책임을 극대화하는 구조개혁 단행.

지식, 기능보다는 관심, 의욕, 태도를 중시한 새로운 학력관이 창조되고 있는 중. 후자가 강조되고 있는 배경에는 동아시아 교육이 식민지주의 교육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 과학과 생활, 과학과 도덕, 지식과 경험, 지성과 감성 등을 끊임없이 대립시키는 교육방식에서 기존의 교육을 개혁시키겠다는 미명하에 후자로의 이동이 신자유주의 교육개혁과 맞물려 이뤄지고 있는 중.

 

 

○ 기초학력의 복고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학력저하를 우려하는 논의는 언제나 교육의 혁신적 실천을억압하는 보수세력의 담론. 영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노동당이 추진하는 아동중심 교육에 대한 공격으로 기초학력저하론 출현. 미국에서는 1980년대 오픈스쿨과 다문화교육을 억압할 목적으로 보수세력의 back to the basics 운동이 일어남.

리터러시literacy는 식자능력이라고 번역되고, 일리터러시illiteracy는 비식자 또는 문맹이라고 번역하는데 이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 리터러시라는 말의 용법은 본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였음. 기초학력을 정의하고자 한다면 리터러시 개념으로 해야 함. 고등학교 졸업자가 다수인 사회에서 리터러시는 고등학교 정도의 교양을 갖추는 것이어야 함.

기초적인 지식이나 기능일수록 반복적이 연습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기능적으로 습득됨. 그래서 복고주의 교육운동은 변화된 시대의 노동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집단만을 양성하여 실업률만 높이는 결과를 낳음. 학력은 기초에서부터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에서부터 끌어올려 형성되는 것. 비고츠키의 발달근접영역과 내화이론에 따른다면 학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수준으로 돌아가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수준의 내용을 교사나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모방하고 이를 스스로 내화할 필요가 있음. 배움에는 점프가 필요함.

 

○ 수준별 학습지도, 소집단지도는 유효한가

왜 학원에서는 수준별 학습지도를 기본으로 하고 학교에서는 도입하지 않았을까? ①수준별 학습지도는 공립학교가 입각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차별 교육 ②지도에 곤란을 초래함(이해도가 떨어지는 학생들만 모아놓으면 교사의 혼란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증가) ③학교의 커리큘럼이나 수업은 소정의 지식과 기능을 단계적으로 배우는 학원과 같은 조직이 아님(학교의 수업은 교육내용의 주제를 중심으로 조직됨).

학급당 40명이라는 악조건보다는 소집단지도가 효과가 있을 것이란 점은 명확한 것. 그러나 문부과학성이 추진하는 소집단지도는 이에 맞는 교사수를 확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 대신 전임교사를 채용하던 정원을 시간강사로 대체하여 실현하려 함. 이런 방식으로 소집단지도를 하면 학교에서 교사 정원의 반이 시간강사가 됨. 학력저하와 학교해체 초래.

 

○ 아이들의 ‘배움’을 위하여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야 함. 교과서와 칠판을 중심으로 일제수업을 하는 방식을 바꿔야. 교과서도 풍부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환(학교에 비치하고 대출하는 식으로). 나아가 아이들에 대한 평가를 폐지. 배움에 대한 평가는 배움의 경험 자체에 대한 충실감과 배움의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친구, 교사와 부모의 승인과 격려로 충분함. 학력저하의 극복은 교사의 지도력으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 서로가 배워가는 협력 속에서 가능.

고등학교 입시를 폐지해야함. 대학인의 입장에서는 학력저하의 희생이 된 학생의 입장에서 교양교육의 충실을 꾀할 필요가 있음. 학교 교사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기회를 대폭적으로 확충해야 함. 아이들의 배움을 촉진할 교사의 역량이 매우 중요. 또한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평생에 걸쳐 몇 번이라도 재출발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 제공해야 함. 지식사회에서는 평생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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