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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맥낼리, [글로벌 슬럼프] 3,4장 요약

3장. 조울증에 빠진 자본주의: 위기의 재발

 

 

 

 

- “대공황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반복된다”(찰스 킨들버거). 자본주의 경제성장은 늘 그 체제 내부에 큰 고장을 일으킨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마치 사람들이 들숨과 날숨을 쉬듯 호황과 침체를 번갈아 겪는다.

그 모든 대공황들 중에서 1930년대 대공황이 단연 으뜸. 이때야말로 글자 그대로 ‘글로벌 슬럼프’. 그러나 실제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1930년대에도 상당한 경제성장이 있었음. 5%이상의 경제성장을 나타낸 분기가 무려 20차례나 됨. 이때마다 일부 지배층은 “이제 경기침체가 끝났다”는 것을 선전해 댐. 그러나 이런 경제성장의 분기들 사이사이에 13회의 경기위축기가 끼어있었음.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돌파구 없이는 자본주의적 번영이나 경기 회복은 불가능했음.

 

과잉 투자, 투기, 그리고 슬럼프: 1920년대로부터 얻는 교훈

1925년에서 1929년 사이에 미국 등 세계의 여러 나라 경제들은 확실히 호황기를 맞았다. 4년간 제조업 및 광업 생산고는 거의 20%나 증가함. 이런 경제의 성장은 강력한 수요 팽창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함. 그러나 이 호황기 기간에도 미국인의 90%는 소득이 줄어들었음. 그러나 20세기 초 자본주의는 ‘빚을 내는 것’으로 단기적 응급조치를 취함. 소비자 신용의 증가로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형성. 1924~5년 사이에 주가가 무려 80% 이상 상승. 그러나 실물경제의 ‘기초 조건들’, 예컨대 수익성, 평균소득, 고용 등의 지표는 그런 성장을 정당화할 정도로 좋은 것이 전혀 없었음.

사람들은 만약 주가가 떨어질 경우 그 빚을 어떻게 갚을지에 대해선 하나도 걱정하지 않음. 이런 나쁜 상황에 대해선 누구도 생각하기조차 싫었기 때문. 그러나 그 생각하기 싫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남. 1929년 10월 23일부로 주식시장은 그 직전 4개월동안 거두어들인 모든 이익을 물거품으로 만들면서 폭락함.

거품붕괴의 핵심 요인은 ‘과잉 투자’. 대공황 직전 4년간 미국의 제조업체 수는 무려 2만 3,000여개나 증가. 노동생산성도 급격히 상승되어 포드 T-모델 자동차 차대 하나를 만드는 시간이 12시간에서 90분으로 단축. 이러한 과잉투자의 위험은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고용증가와 은행융자 규모의 확장으로 인한 소비시장 확대 때문. 이것이 주식시장의 거품 증대로 이어지고 끝내 그 거품이 붕괴했을 때, 사람들은 거품이 모든 고통의 원인인 것처럼 보지만, 거품조차 과잉 투자가 만들어낸 고전적 순환의 결과물.

 

이윤 체제에 깃든 경제의 불안정성

주류 경제학은 개인의 소비를 자본주의 경제의 추축이라고 고집. 그러나 실제로는 투자 지출이 경기순환을 설명하는 핵심 변수. 케인스의 경우 자본 투자의 순환적 변동을 심리학적으로 설명. 자본가들은 미래에 대한 비합리적인 불안감 때문에, 부를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축장하는 것이라는 설명. 반면 맑스는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에 의해 추동되고 강제되는 경제체제 그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고 설명.

“US스틸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지 철강 자체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다.”(US스틸 전임 최고경영자). 이러한 발언이 소비자 수요가 생산을 추동한다는 주류경제학의 발언보다 더 솔직한 것.

이윤 추구가 목표가 되기 때문에 재화들 간의 사용가치의 차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님. 그것이 화폐로 환산되는 수량적 가치로 전환될 수 있는지의 여부만이 중요함. “당신이 무슨 상품을 사건 우리는 상관하지 않아요. 우리 눈에는 ‘곡물이나 석유나 서로 맞바꿀 수 잇는 칼로리로 보이죠. 어디 옥수수를 한번 봅시다. 그건 이제 난방이나 운송에도 쓰이는 연료가 되었죠. 게다가 석유로 플라스틱도 만들 수 있고 농사용 비료도 만들죠.”(Doug Sanders)

이윤 극대화를 위한 자본가의 열망은 노동강도 심화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발과 생산성 향상과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자본가들간에 벌어지는 신기술 도입 경쟁으로 인해 종종 좌절된다. 그럼에도 이런 무한 경쟁은 기업가들이 자유의지로 선택의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체제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자본주의의 성장 과정은 자본주의의 토대 자체를 허물어뜨리게 되었는가? 맑스의 대답은 자본주의의 팽창 과정이 과잉 축적과 이윤율 하락을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것.

 

과잉 축적 및 이윤 하락

기계화라는 것이 자동적이고 단선적인 방식으로 이윤율을 저하시킨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상대적인 의미에서 노동을 신기술로 대체해 나가면서 이윤에 하향 압박이 가해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기업가들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마침내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경제적 슬럼프에 빠진다. 그런데 상당한 기업들이 파산하는 현실 자체가 전체적으로 새로운 경기 회복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체제 전반의 경제적 위축이라는 고통과 역경을 수반한다.

 

금융, 신용, 그리고 위기

기업들이 경쟁에서 버티기 위해 필요한 투자를 제대로 하려면 은행 등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현대 자본주의는 고도로 발전된 신용 체제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런데 기업이 돈을 빌리려면 당장 필요한 투자 자금을 빌려 가는 대신 장래 벌어들일 이윤의 일부를 주겠노라 약속을 해야 함. 은행과 같은 채권자가 돈을 빌려 주면서 받는 건 기업이 나중에 돈을 주겠다는 약속 뿐. 일종의 가공자본.

우리의 현실은 가공자본의 거래가 왕성하게 성장한 상황. 실제로 2000년 초 시스코시스템즈의 주가는 그 회사가 정작 벌어들이는 수준에 비해 160배나 높게 팔렸음. 이는 즉 이 회사의 주식을 구입한 뒤 그 기업의 실제 배당금을 받아 애초 투자한 본전을 찾으려면 무려 160년이나 걸린다는 뜻. 그런데 주식시장에 거품이 많이 끼어 ‘비합리적인 과열’이 발생하면 이런 투자가 만연하게 됨.

엔론의 경우 : 이 회사 주식의 거품이 한창일 때 주당 90달러였으나 거품이 터지자 주당 36센트로 폭락. 2001년 그 회사가 무너져 내리는 동안, 주주들이 소유했던 가공자본 600억 달러가 순식간에 사라짐.

체제의 전반적인 위기가 얼핏 보면 단순히 금융 및 화폐 공황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이윤율 하락의 위기. 그러나 어느 자본주의의 위기도 영원하지는 않음. 우리의 시급한 학습과제는 자본주의가 공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어떤 메커니즘을 동원하는가를 설명하는 것.

 

‘창조적 파괴’: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빠뜨려 배를 바로 세우는 방식

자본주의의 위기는 공장, 사무실, 광산, 제철소 같은 것을 폐쇄함으로써 과잉자본을 청소함. 금융위기는 그런 자본의 파괴가 일어나도록 돕는 데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함. 어떤 기업의 주가가 극단적으로 폭락하면 그 기업은 오히려 쉽게 망하거나 팔릴 가능성이 높아짐.

기업이나 은행이 더욱 대형화될수록 자신의 죽음을 예방하기 위한 수단을 더 많이 동원함. 사업의 확장을 통해 적자를 모면하기 위한 시간을 버는 것, 경쟁업체와의 인수합병, 은행 빚 돌려막기 등. 이에 더해 파산 직전의 기업과 은행을 국가가 구제하기도 함. 이들이 망하면 전체 경제에 대파국이 올 것이라는 논리. 그러나 이런 개입의 결과 전체 체제가 다시금 팽창하는 데 필요한 ‘창조적 파괴’를 못하게 가로막음. 이것은 “위기로부터 불경기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혈전증을 유발”(프레오브라젠스키). 자본의 파괴를 방지함으로써 불경기가 덜 잔인해진 대신, 파괴를 통해 새로운 자본 증식의 조건을 재창조 할 수 없게 됨. 결과적으로 제2차대전을 불러오게 됨. 2차대전을 통해 새로운 자본축적의 조건을 형성할 수 있게 됨.

 

 

 

4장. 금융 대혼란: 후기 자본주의에서의 화폐, 신용, 불안정성

 

 

금융 부문, 특히 이윤 획득을 위한 부채의 창조는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돈벌이 되는 사업으로 떠올랐다. 1973년 당시 미국 경제에서 금융 수익은 전체 이윤의 16%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 41%로 증가함. 그 때문에 이윤 급상승이란 경제 전반에 걸쳐 오히려 총부채가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 일례로 앨런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으로 재직하던 동안(1987~2005), 미국의 부채 총액은 10조 달러 수준에서 43조 달러로 증가. 이를 두고 주류 학자들은 소비자들의 과소비를 탓하지만, 같은 기간 소비자 부채는 두 배가 증가한 반면, 금융 부문 부채는 5배 증가. 채무에 기반한 경제가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이라는 생각이 차용 경쟁에 불을 붙인 것.

이를 두고 ‘금융화’가 진전되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이 중대한 경제구조 변화를 설명할 때 금속, 철강, 석유화학과 같은 전통적인 경성 상품들보다는 지식, 정보, 상징적 자산 등에 기반한 신경제의 탄생이라는 측면만 부각시킴. “파이프라인이나 전선, 발전 설비 같은 것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지적 자본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제프리 스킬링, 엔론 회장). 그러면서 엔론은 다른 사업자들이 깔아 놓은 통신망에 대한 접근권만 구매함으로써 실제 인프라 구축의 진전을 가로막음.

뒤메닐, 레비 등은 1970년대 말 ‘금융 쿠데타’가 발생하여 은행가들이 정부나 사회보다 우위에 서게 되어 금융 규칙들을 다시 작성했다고 평가. 그러나 자본주의는 마치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 낸 괴물처럼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해진 하나의 소외된 체제. 어느 누구도 자본주의를 실제로 통제할 수 없음. 공황이 한 번 닥치면 은행이나 증권시장은 순식간에 수십조를 날리는데 그런 위기를 유발하는 체제를 은행가들이라고 일부러 불러들일 이유는 무엇인가?

후기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것이 은행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면, 진보 진영의 경제적 시야는 금융을 길들이고 통제하는 데로 좁혀질 것. (기생계급과 생산계급 사이의 투쟁?) 반대로 금융화를 여전히 일터에서 노동력의 착취에 의존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 안에서 발생한 하나의 변형된 형태라고 묘사한다면, 은행에 대한 저항 투쟁은 자본주의적인 착취 공간을 문제 삼고 비판하는 정치 활동의 한 부분. 우리는 금융이라는 회로와 노동 착취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설득력있게 설명해야 함.

 

세계 금융이 영원히 변화한 날

화폐의 안정성은 투자가들이 장래의 투자를 경정하는 데 있어 가격 변동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중요. 1870년대에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영국의 선례를 따라 금 본위제를 채택. 이후 대공황과 2차대전을 겪으면서 주요 강대국들은 새로운 달러-금 본위제를 만드는데 합의. 2차 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아 다른 강대국에 비해 막강한 경제력을 확보. 다른 나라들은 미국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달러가 필요했고, 이것이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보장.

수십년 만에 북반구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는 미국에 대적할 만큼 성장. 독일과 일본의 성장이 두드러짐. 미국의 해외직접투자의 급증과 해외 미군기지 및 무기 구입 등 국방비 지출의 증가로 인한 미 달러의 지속적이 유출은 구조적인 국제수지 불균형 초래.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점을 이용해 달러 발행을 늘림으로써 무역적자를 해소하려 했으나 역부족.

이제 각국으로 유입되어 넘쳐흐르게 된 미 달러는 유러달러 시장의 탄생을 촉발시킴. 유러달러 시장은 미국 혹은 다른 어떤 국가의 규제도 받지 않고 미 달러를 대출하고 빌릴 수 있는 공간. 이런 역외 금융거래의 팽창으로 미국은 금융시장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력 상실.

이런 역외 금융시장과 탈규제화된 통화시장의 성장이 선행한 후, 정부의 금융 탈규제가 뒤이어짐. 정부의 규제 철폐는 당국의 관할 바깥으로 도피해 버린 금융회사들의 자금을 다시 관할지로 끌어들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일 뿐.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중지선언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을 뿐.

 

불안정한 화폐, 휘발성이 높은 금융

금-태환 중지선언으로 인해 통화 불안정성 심화. 여러 나라 통화를 사용해야 하는 사업가들 입장에서는 투자비용 또는 영업수익의 규모를 예측하는 것이 더 어려워짐.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양한 ‘위험 관리’ 기법이 등장. 한 국가의 통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수포로 돌릴 수 있는 것이기에, 이런 통화 변동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할 울타리, 즉 헤지hedge가 등장.

외환거래자들은 어떤 통화가 약세이고, 어떤 통화가 강세인지를 정확히 예측만 할 수 있다면 실질 투자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게 됨. 통화시장이란 말 그대로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유토피아를 구현.

파생상품 거래는 본래 미국 농업분야에서 먼저 시작된 것. 곡물상이 곡물수요 증가를 예측하여 농부에게 내년도 특정 시점에 곡물거래를 하겠다는 약정을 미리 하는 것. 이러한 선물계약을 통해 농부 입장에서는 미리 안정된 소득을 확보할 수 있고, 곡물상 입장에서는 추수 이후 곡물가가 상승한다면 그만큼 이득을 볼 수 있는 것. 이를 통해 농부는 재해에 따르는 농사의 위험성, 곡물상은 일정한 가격선 확보라는 면에서 서로의 위험을 상쇄한 것. 금융불안정의 심화는 이런 시스템을 금융시장에도 적용시킴. 미국에 들어온 다국적기업이 달러가치 급락에 대비한 파생상품을 미리 구입해 놓으면, 달러가치가 하락해도 미리 정해놓은 환율로 달러를 자국 화폐로 교환이 가능해지는 것. 달러가치가 오른다고 해도 계약 비용만 지불하고 오른 가치대로 팔 수 있어 어차피 이득이 되는 셈.

은행 금리 변동에 대비한 스왑 상품도 등장. 이런 파생상품 시장의 규모는 순식간에 주식시장, 채권시장의 규모를 초과해버림. 주요 은행가들이나 경제학자들은 이 모든 것이 세계시장의 효율성이 증대한 것이라고 평가.

 

부채, 증권화, 그리고 금융 공황

금융 폭발의 두 가지 결정적 국면: ①미국 바깥에서 유통되는 달러량의 지속적인 증가 ②주기적으로 경기침체에 빠진 경제를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취한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전세계적 통화 공급 증가. 이 증대된 통화의 대부분은 은행으로 흘러들었는데, 경기후퇴로 인해 대출 수요는 통화 증대에 미치지 못함.

오일 쇼크로 인해 제3세계 국가들이 급하게 돈을 빌리려 함. 이에 서방 은행들은 제3세계를 향해 대출잔치를 벌임. 그런데 미 연준의 폴 볼커가 1979년 인플레를 잡겠다는 명목으로 금리를 20%로 인상시켜 제3세계 ‘부채위기’를 유발. 이에 IMF, 세계은행 등이 구제금융을 앞세워 이들 나라에 구조조정 프로그램 강제. 볼커 충격을 통해 인플레가 진정되자 점자 금리도 하락하게 됨. 이에 글로벌 부자들은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투자를 통해 새로운 수익 창출에 뛰어 듦.

이제 은행들은 대출이자와 예금이자의 차액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전통적 기법에서 탈피하여 대출을 담보로 한 증권을 만들어 파는 것을 통해 수익을 창출. 이를테면, 주택융자를 판매한 즉시 그 대출 기록을 회계장부에서 뻬버리고, 이를 다른 투자은행 등에 판매.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에 따르는 위험은 이 투자은행에 넘기고 단지 수수료만 챙기게 됨. 이런 방식은 주택 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부채, 자동차 등으로 번져감. 은행들이 채무불이행 위험을 떠맡지 않는다는 것은 은행들이 자기들이 판매한 융자대출채권을 다시 구매하지 않을 때에는 그렇겠지만, 어리석게도 꽤 많은 은행들이 그러한 실수를 범함.

이전 같았으면 금융위기의 징후가 강하게 드러날 때에는 중앙은행등이 나서 이를 수리하지만, 금융 팽창의 시기에는 이런 통제가 작동하지 못함. 전산화된 통화 거래체계는 정기적으로 자산 거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위기에 대응.

2000년대 초반 닷컴 기업의 거품 붕괴에 대응하겠다고 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수 차례 이자율을 낮춰 부동산 분야의 거품을 키움. 2003년에는 이자율이 1%대로 낮아졌고, 이에 힘입어 주택융자 증권화의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증대. 이를 통한 수익 증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흑인, 남미 출신 등에게까지 주택융자를 팔게 됨. 이후 이자율이 솟구치면서 위기 도래. 그러나 대다수의 은행들은 근거 없는 수학적 모델에 현혹되어 자신들이 팔고 있는 악성 채권을 맹신함. 주류 논평가들은 빈곤층이 자신들의 자산능력을 넘어선 대출을 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매도했지만, 오히려 문제는 은행들의 공격적인 대출판매. 이 과정의 태반이 속임수와 조작.

채권 투자에 대한 위험을 상쇄시키기 위해 신용부도스왑CDS 등장. CDS를 판매한 금융 회사는 고객이 투자한 회사가 부도가 나는 경우 투자한 돈에서 하나도 손해를 보지 않게 모두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 이는 회사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나 가능. 은행들은 이런 금융상품을 자격심사도 하지 않고 대량으로 판매. 사람들은 끊임없이 투자한 회사 또는 채무자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내기를 하게 되는 상황. CDS는 이 내기에 대한 일종의 보험.

1995년 이전까지 미국 주택가격은 물가 상승률과 비례. 그러나 그 이후로는 소비자물가지수보다 주택가격이 70%나 빨리 상승. 이는 기존의 역사적 패턴과도 다를 뿐만 아니라 명백히 지속 불가능한 것. 그럼에도 투자 회사는 신용도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강요하다시피 주택융자를 판매함.

은행들의 고전적인 딜레마는 이윤율의 저하. 수많은 은행들이 똑같은 상품들을 많이 만들어 내다 보니 이윤 마진도 낮아지는 것. 이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은 재무 레버리지 비율(자기자본에 대한 대부자본의 비율)을 높이는 것. 2001년 메릴린치의 레버리지 비율은 16대 1이었으나 2007년에는 32대 1로 증가. 모건스탠리와 베어스턴스도 33대 1. 이는 만약 채권자들이 대부 자금의 3%만 되돌려 달라고 요구해도 그 기업은 금방 망한다는 것. 이런 일은 2008년에 실제 일어났음. 문제는 금융권 전체의 이윤 마진을 줄이도록 압박하는 체제 전반의 문제.

 

“사기꾼보다 멍텅구리가 더 많아”: 위험, 숫자 물신주의, 범지구적 대폭락

시티은행 등은 그들이 판매하는 주택담보부증권을 맹신한 나머지 상품 계약 내용 속에 ‘유동성 판매 조항’까지 포함시켰다. 이것은 주택담보부증권 시장이 얼어붙는 등 비상 상황이 닥치는 경우, 판매한 은행이 그 증권을 도로 사주겠다는 약속이다. 결국 시티은행은 자기 덫에 걸려 결국 250억 달러에 이르는 쓰레기 악성 증권을 되사야 했다. 이렇게 시장 상황이 악화되는 것이 뻔한데도 파생금융상품에 목을 메는 은행들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파생금융상품에 활용된 현대적인 수학적 위험 관리 기법은 투자 위험을 줄이는 데만 사용된 게 아니라 아주 공격적인 투기 전략을 구사하는데도 활용. 이러한 투기 전략은 오히려 위험을 극도로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음. 현대 재무금융 이론은 효율적 시장 가설을 바탕으로 작고 임의적인 가격 운동은 그 중심을 향해 운동하여 실제 가치를 합리적으로 반영한다고 본다. 즉 이들은 자연 세계에 기초한 모델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주류 경제학은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는 경우를 설명한 이론적 능력이 없다. 실제로 1987년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때, 금융기법 전문가 두 명은 그 폭락은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증언. 이 것이 주류 학자들이 할 수 있는 설명의 전부.

파생금융상품은 질적으로 서로 다른 현실의 모든 위험을 단일한 측정 단위를 사용하여 가격을 표시하고자 한다. 기후변화가 플로리다 오렌지 수확에 미치는 영향, 볼리비아 모랄레스 정부가 탄화수소 산업을 국유화할 가능성, 미국의 주택경기 추락 가능성은 모두 질적으로 다르지만 금융권은 이를 모두 동일한 숫자로 압축한다. 또한 모든 시점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데, 즉 내일은 어제나 오늘과 동일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위험 가치 측정은 길어야 몇 주를 넘기지 못한다. 이들의 ‘장기적 시각’에 의한 평가조차 1~2년 전부터의 데이터를 사용할 뿐.

그러나 주류 경제학 이론의 붕괴는 실상 그 이상의 것이 붕괴했음을 의미.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 동안 평생 저축한 것, 일자리, 희망, 꿈 등이 모두 같이 붕괴했기 때문. 금융 도표 및 그래프의 등락 속에는 사람들이 실제로 느끼는 고통이 잠복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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