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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영화 <도가니>를 보고나서 페이스 북에 쓴 글. 201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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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회의를 통해 '도가니' 이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투쟁을 하는 데 있어서 활동가들의 교육을 위해 필요한 교양자료를 만드는 일을 맡게 되었다. 늦은 밤 집에 들어와 선배들이 보내 준 예전 토론회 자료집을 훑어보다 잠이 들었고, 오늘 드디어 그 영화를 보았다.

토론회 자료집은 무미건조했다.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발제를 맡고, 이러저런 전문가가 토론문을 더했고, 실제 시설 생활 경험자의 의견까지 더한 토론회 자료집은 교양자료를 대체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하는 막막함만 더 해주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나아지겠지... 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더 답답해 졌다. 영화가 끝나고 일어서자마자 머리가 너무 아팠고, 영화를 보고 난 소감 같은 걸 말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여주인공이 생각보다 연기를 못하...네... 같은 영양가 없는 말이나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 남들 다 그렇게 느끼듯이, 끔찍했다. 한편으로는, 안보는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도가니'가 daum에 연재될 당시 읽었을 땐 이정도 느낌은 아니었는데....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끔찍한 장면들을 '영상'으로 접하고 나서야 분노하는 지금 이 상황이 불편하다. 도가니가 연재소설 일 때도, 책으로 나왔을 때도, 나름대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는데, 사회적 공분으로 옮겨지는 것은 왜 그 끔찍한 장면을 눈으로 보고 나서야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오히려 이 끔찍한 장면들보다 영화의 말미에서 공유가 죽은 민수의 영정 사진을 들고 경찰의 물대포를 맞으며 하는 마지막 대사, "이 아이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민수라고 합니다."가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결핍의 상태인 이 아이를 위해 대신 싸워주기를 호소하는 이 정의의 외침은 그러나, 민수를 여전히 정의의 '수혜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른들이 물대포 맞아가며 싸우는 동안, 연두와 유리는 그저 울며 물대포 세례를 힘없이 지켜만 보고 있다.

끔찍한 장면의 자극을 통해 만들어지는 분노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이런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해결해 나갈 노력을 만들어갈 길은 없는 것일까? 장애인의 신체적 '결핍'을 대신해 싸워주겠다는 '가상의 정의감'을 공유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들이 몸으로 내는 목소리에 귀기울여가며 그들의 싸움에 '동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지영의 말처럼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심지어 게으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화를 통해 느낀 폭발하는 감정들이 이 진실의 '게으름'을 앞서 나가려다 보면 분명 진실에 상처를 주고 말 것이다. 진실만큼 느리게 가자. 진실보다 뒤쳐져선 안되겠지만, 단 두시간 동안 느낀 감정으로 진실을 인도하려 하지 말자. 우리는 아직 모르는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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