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청계천을 보며, 전태일 동판을 고민하다.

어제(10월7일 금요일) "노동자·장애인·서민 외면 서울시 규탄 및 민생 국감 촉구 기자회견"을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 민주노총 공공연맹,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공무원노동조합 서울본부, 장애인이동권연대, 노숙인 인권과 복지를 실천하는 사람들, 은평뉴타운 한양주택공동대책위 등의 단체가 참가했다.
 
* 관련 내용은 링크 참조 :
 
이명박 피해자들이 모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명박의 불도저식 개발정책이 서울의 노동자, 빈민, 장애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지 보여주는 압축적인 자리였다. 이명박은 거대한 청계천 테마파크 행사 속에서 '보이지 않는 자들'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탄압하고 있다. 정명훈을 초빙하기 위해서 서울시향을 해체하고 단원들을 해고하고, 예술단체를 민영화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청계천 공사를 위해서 노점상은 폭력적으로 철거된다. 이미 친환경적인 '한양주택'은 뉴타운 아파트 건설을 위해서 철거 위기다. 주민들의 공동체는 파괴될 것이다. 
 
최근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 공공연맹 등이 함께 진행한 서울시 산하기관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의 처지는 열악하기 짝이없다. 수천억, 수조원이 드는 공사들을 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이 강요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 피땀을 착취해서 테마파크를 '시민'의 이름으로 만들고 있다. 노동자는 시민이 아닌가?, 상황이 이렇게 부당할 수가 있는가! 분통이 터진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이 마침 청계천 길목이었다. 공사가 끝난 청계천 길을 지나가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주변 광경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졌다. 당장 기자회견에서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장애인 동지들이 이야기한 좁거나 군데군데 끊어진 인도(휠체어는 커녕 목발도 짚고 갈 수가 없을 정도다 '청계천 새물맞이' 그들만의 축제 ),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노점상과 또 한번의 노점상 철거가 예정된 동대문운동장 등이 눈에 들어왔다. 청계천은 시멘트 덩어리였고, 주변의 상가들은 새로 맞춘 '일관된' 간판을 달고 있었다. 새간판을 달았더라도 구식 상가들은 곧 철거되고 이런 저런 '타워'들이 들어서겠지.
 
이명박의 청계천 복원 정책은 강북 구 도심을 재개발하고 금융세계화에 조응하는 '세계도시'를 만들기 위한 시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스키아 사센은 금융세계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세가지 지역 유형으로 수출자유지역, 역외금융센터, 세계도시를 들고 있다. 세계도시는 세계 경제활동에 필요한 운영과 관리, 금융이 집중되는 장소다. <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위기>/사스키아 사센 )
 
그런 목적에서 진행되는 만큼 청계천 복원이 생태적이거나 문화적이거나, 약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리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청계천 복원에 대한 비판들은 정당하지만,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해온 실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한계적이기도 하다.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전태일 기념사업회의 노력으로 '전태일 거리'가 조성되었다. 전태일 동상과 함께 전태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글을 담은 동판이 모금으로 제작되었다.
 
전태일을 기억하고 이것을 공간에 남기는 문제는 무척 중요하다. 그런데 고민은, 그것이 이명박의 이벤트 속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전태일이 지키고자했던 사람들을 희생하면서 만든 공간에 전태일의 공간이 조성된다는 역설.
 
전태일 거리 조성을 위한 동판 모금이 9월22일 마감 이후 이달 30일까지 추가로 진행된다. 애초에, 10만원 하는 동판을 여자친구와 함께 신청할까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나 역시도 청계천 복원의 의미에 대해서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지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청계천을 지나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사라져버렸다. 공간에 물질적으로 기념물을 남기고 이것을 통해서 기억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태일 다리, 거리 조성은 여전히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뜻 '나도 하겠소'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가슴쓰릴 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