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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이틀째

12월 2일,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이틀째 날이다. 대부분의 사업장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12월 1일에 집중했기 때문에 파업대오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집회 참가 대오 역시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어제의 투쟁과는 달리 집회와 행진에 있어서도, 다소 어수선하고 의기소침한 분위기였다. 대오의 숫자나 쌀쌀해진 날씨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의도다리를 건너 영등포로 넘어오는 길에서는 쓸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행진선동은 비정규법안의 각각의 쟁점을 구호로 만들어 외치고 있었다. 기간제 사유제한, 파견법, 동일노동 동일임금, 특수고용 등 법안쟁점들에 대한 구호를 외친다. 본대회나 각 연사들의 발언도 딱 그 수준이었다.(전농 간부의 연대발언을 제외하면 그렇다.)

 

투쟁의 정치적 요구를 상승시키지 못하는 민주노총



집회의 어수선한 분위기(그것은 아마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총연맹의 실무력의 문제가 작용했을 것이다. 사무총국 15명의 사직을 강행처리한 이후 이미 예상된 일이다.)나 너무 '평화적인' 마무리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투쟁의 쟁점을 어디로 가져가야할 것인가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조직의 상황이 그대로 나타났다는 점이 매우 우울했다. 전용철 열사가 살해되고 농민의 투쟁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촉발되고 있는 상황, 빈곤으로 인한 극단적인 참사가 빈발하는 상황,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망이 '법제화'될 이 상황에서 전체 투쟁을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전선으로 묶어내지 못하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세력의 무능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현재 각 부문 대중의 투쟁 사안은 달라보이지만 모두 공동의 원인을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농산물시장개방, 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심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양상들에 대한 투쟁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묶여야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과제라고 한다면, 지금은 전용철 열사의 죽음 이후, 이러한 투쟁들이 서로 조우할 수 있는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단지 시기적으로 만났을 뿐 아니라 노무현 정권에 대한 공격을 통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집결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사회화와 노동 [12·1 파업을 민생파탄·폭력살인 노무현정권 심판투쟁의 출발점으로! - 현시기 노동자·농민투쟁의 진로]를 통해서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의 호기에도 주체들은 전혀 긴박하게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개인이나 단체들이 농민투쟁과의 결합을 주문하고 있지만, 연대사를 교환하는 데 그치고 있다. 연대집회를 조직하는 것이 여러 조건 상 쉽지 않다면, 최소한 노동자 투쟁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이라도 시작되어야한다. 그러나 2일차 집회에서 보았듯이 구호는 철저하게 법안의 세부적 쟁점에 대한 것으로 그치고 있었고, 정권 퇴진은 커녕 정권 규탄 구호/연설조차 들리지 않았다. 전술적으로도 어제 광화문 농민집회의 완강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어가지 못했다.

 

물론 대중적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그래서 대중적 동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되어야하는 지금, 투쟁의 정치적 수위를 상승시키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그러나 현재는 단위 사업장의 임단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정치파업을 조직하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정치적 분노를 통해 조직되어야한다. 각 법안의 세부적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는 대중을 조직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상승된 요구로는 그럴 수 없다고 보는 것은 노조 간부들의 노조관료다운 판단일 뿐이다. 대부분의 노조간부들이 사고방식으로는 조합원들은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실리적 이해를 계산하는데만 몰입하고 있어서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제시해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중은 그런 계산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움직인다. 정세에 따라 그 이데올로기 형성을 추동하는 것이 활동가들이 할 일이다.

 

주말과 다음주에도 계속 투쟁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정세에 맞게 대중적 분노를 촉발하기 위한 노력이 없이 '조직동원'조차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현시기 투쟁이 중요하니 무작정 할당된 대로 조직을 동원하라고 해서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급단체로부터 단위노조까지 이러한 방식의 조직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결국 조직동원을 요구하는 식으로 집회, 농성, 선전전 등 투쟁 '일정'을 진행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악순환이다. 활동가 개인들이나 작은 조직, 한두개 노조 단위나 연맹 집행부 차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갇혀있다.)

 

새로운 세대의 불안정노동자들

 

한편, 이런 저런 사정으로 대공장노조들의 총파업 돌입, 집회 결합 수준이 크게 떨어지면서 노동운동의 위기라고 불렀던 것이 의미하는 바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파업대오는 대부분 중소영세제조업 사업장인 금속노조 소속 단위였다. 기아차에서는 투표가 부결(사실 단사에서 부결이라도 민주노총 차원의 총파업에는 제한적으로라도 결합했어야했다), 현대차는 선거를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공공에서도 파업사업장은 대부분 지자체 직간접 고용비정규직 노조였다. 심지어 철도노조는 12월 예정되었던 투쟁을 내년으로 연기하기도 했는데, 사업장 내부의 쟁점 외에 정세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버가 [노동의 힘]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본의 이동에 따라서 형성되는 새로운 노동자 대중이 새로운 투쟁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단지 생산이 이루어지는 물리적 장소/업종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의 함수도 존재한다. 남한에서는 시간적 균열에 따라 새로운 세대의 운동주체들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87년은 이제 끝났다.

 

전투성으로 이름을 날렸던 대공장노조들이 자신들이 가진 '구조적 힘'을 사용하지 못할 때(혹은 자신들의 협소한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고자할 때), 더 열악한, 새로운 세대의 불안정노동자들은 '연합적 힘'밖에 기댈 것이 없다. 아직 그것이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전비연의 어쩌면 무모해보이는 헌신적인 투쟁은 '연합적 힘'을 형성하기 위한 새로운 세대의 분투를 보여준다. 비정규노동자들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라도 서로 더 연대하고 더 단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투쟁과정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이러한 균열을 인식하고 있다. 내가 이야기해본 '구세대'의 정규직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이번 투쟁과정에서 너무나 뚜렷하게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구세대'의 정규직 활동가들이, 그나마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엄호해야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35~40%의 조합원들과 함께 어떻게 새로운 세대의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소한 단위노조의 이익을 넘어서는 관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동차 완성차노조들이나 철도노조 등이 움직임을 볼 때 아직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구세대의 정규직 노조운동이 새로운 세대의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과 주체형성을 엄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87년 이후 운동은 신자유주의 세력을 정권에 앉히고 그것에 의해 파괴되는 비극적 상황으로 종결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엄호와 주체형성에 성공한다면, 적어도 87년은 다른 의미에서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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