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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되살리며

집안 일 중에 가장 정이 가는 일 중 하나는

쓰레기 치우는 일입니다.

 

미루가 쏟아내는 기저귀 때문에

매일 매일 쓰레기 봉투 10리터 짜리가 하나씩 나갑니다.

 

이왕이면 쓰레기 봉투에 쓰레기를 꽉꽉 채워서 내놓으려고

저는 아주 드물게 제 두꺼운 다리의 덕을 봅니다.

 

쓰레기를 다리로 꽉꽉 누르면

방 하나 가득 늘어놓아도 남을 기저귀가 그 작은 봉투에 다 들어갑니다.

 

요즘엔 봉투에 쓰레기를 좀 더 담아볼까 하는 욕심에

쓰레기 봉투 중 빈곳에 쓰레기를 몰아넣는 정교한 작업은

비닐 장갑을 끼고 손으로 합니다.

 

그러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구로구청 청소과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생활을 대신하던

그 가슴시리던 시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이른바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디 몰래 숨어 있다가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느닷없이 나타나서 목에 힘주고 잡아내는 그런 게 아니라

 

규격봉투에 안 넣고 쓰레기를 버린 사람을 찾아내서

과태료를 물리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규격봉투에 안 넣고 버린 쓰레기는 대부분

골목 구석에 검은 비닐 봉지에 싸인 채 버려져 있었고

우리는 '증거'를 찾기 위해

바로 그 비닐장갑을 양손에 끼고 쓰레기를 뒤졌습니다.

 

주소, 이름 같은 게 적힌 편지 봉투, 각종 고지서 같은 걸 찾아내기 위해서였죠.

 

혹시 지금도 길 가다가

짙은 초록색의 제복을 입고

쪼그리고 앉아서 쓰레기 뒤지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쓰레기 공익'입니다.

 

옷도 꼭 소방관 아저씨들 옷하고 똑같아서

한번은 역시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쓰레기 뒤지는 데

길가던 꼬마애가 엄마한테 이렇게 물어보는 걸 들었었습니다.

 

"엄마, 왜 소방관 아저씨가 쓰레기를 뒤져?"

"응, 재네들은 공익이야.."

 

그때 같이 있던 동료 공익들 모두 한데 부둥켜 안고 울뻔 했습니다.

 

엄마가 '너는 저렇게 되면 안된다'는 식으로

애한테 말했기 때문입니다.

많이 당해본 사람은 압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는 구로구 일대의 쓰레기를 뒤지면서 다녔습니다.

 

때로는 서초구 쓰레기 공익은 월급이 18만원인데

우리는 가난해서 10만원이라더라는 소식을 듣고

더 비참해하면서

 

때로는 우리를 주차단속 공익으로 오해하고

불법주차했던 아저씨들이 급히 차를 빼면

 

그 옆에 버려져 있던 쓰레기를 뒤졌습니다.

 

그 때 맡았던 쓰레기 냄새는

특이하게도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치우는 일이 집안 일 중에서도

특히 정이 갑니다. 기분은 찝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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