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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장기투쟁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3/05/23 19:37
  • 수정일
    2013/05/23 19:37
  • 글쓴이
    사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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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들에게도 힐링이 필요해



(* 이 기사는 5월1일 사노신이 발행한 격월간지 <포커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편집자])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나 해고노동자들은 투쟁이 길어짐에 따라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주체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하면서 투쟁의 전망을 계속 잡아나가야 하는데 싸움이 진행될수록 주관적객관적 상황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사측이나 공권력과 대치하며 항상 긴장상태에 있어야 하고 각종 징계나 고소고발·가압류벌금과 구속·수배 등의 위협에 시달린다모든 일상이 투쟁일정으로 꽉차있기 때문에 정서적인 여유를 가지기 힘들다신분보장기금 등 노조나 산별연맹의 제도적인 지원금이 없다면 생계문제도 닥친다.


이러한 다양한 압박은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적인 문제가 되면서 주체의 의지와 무관하게 투쟁력과 조직력을 약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준다이로부터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가족이나 동료 등 가까운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충돌하거나 관계가 단절되는 일을 겪기도 한다.


투사에게도 힐링이 필요해


그러나 지금까지의 운동문화 속에는 투쟁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들을 마땅히 감내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싸움을 그만두거나 쉬고 싶은 마음을 주위 동지들에게 표현하는 것은 나약한 모습이기 때문에 더욱 철저하고 강고한 투쟁을 통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때문에 자신이 겪는 문제들을 표출하지 못한 채 쌓이다가 운동을 그만두거나 돌파구를 찾기 위한 극단적인 선도투쟁을 선택하고 투쟁을 마무리 짓고자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언젠가부터 투쟁이 시작되면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만큼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도 더욱 커졌다이러한 문제를 더 이상 개인에게 맡겨둘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노동자가 노동하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투쟁하는 기계도 아니다체력과 감정을 소모하면 쉼도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2011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개소했다. <와락>을 전후로 오랫동안 투쟁하거나 자본과 공권력의 폭력에 노출된 노동자들에게 심리적·정서적·의료 지원을 하기 위한 단위들이 생기고 있다유성기업지회 노동자 등 용역깡패에게 시달렸던 노동자들과 가족들 역시 이러한 프로그램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영등포 산업선교회에서 운영하는 <노동자의품>, <인드라망 공동체>, 조계종 노동위원회에서 운영하는<템플스테이등이 투쟁하는 노동자 및 저항하는 다양한 주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인프라를 넓히고 있다.


작은 연대들이 모인다

한편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단위도 있다과거에도 투쟁사업장에 투쟁연대기금을 모아주는 경우는 많이 있었지만 일회성에 그쳤다면 최근에 나타나는 움직임은 일상적이고 생활에 좀 더 밀착된 방식으로 기획되고 있다. <진보마켓>의 경우 물건을 사면서 적립되는 금액을 소비자가 지정한 투쟁사업장 노동자나 가족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현대차 아산 성희롱 피해자 농성장이나 대한문 쌍용자동차 농성장에 정기적으로 음식을 제공한 밥셔틀’, 집회현장에 등장하는 진보신당 밥차’ 등이 그것이다.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은 후원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연대는 투쟁하는 현장에 찾아오는 것과 함께 그들의 삶을 나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물적 지원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문화연대>, 조직인 아닌 개인들이 모여 투쟁현장에 연대하는 <작은연대>도 있다.


 

지난 3월29일 해고자의 날을 맞아 열린 
<해고에 맞선 투쟁의 역사와 전망> 토론회

 

 

지원 프로그램의 네트워크 형성이 시급해


자발적 혹은 단체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여기에도 아쉬움은 있다우선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모아지는 관심도 수도권 투쟁사업장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때문에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주로 민주노총 등의 산별연맹 차원의 지원에 의존해야 하고 그마저도 없으면 고립되기 일쑤이다.

또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단체들의 활동이 서로 연계되지 않거나 개별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막상 참여하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별로주제별로 어떠한 단체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지 정보를 구축하고 연계시켜줄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이러한 체계를 전국적으로 형성하고 투쟁사업장과 소통할 수 있는 인력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당장 어느 곳에서 이러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 지는 정할 수 없지만 총연맹이 실질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체계와 계획이 부족한 상황에서 네트워크를 어디서 어떻게 총괄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운동문화에 대한 인식 전환이 우선해야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투쟁하는 것도 하나의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투쟁이 길어져도 절망하거나 피폐해지지 않고 숨을 고르며 전망을 찾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한다서로에게 보다 전투적인 모습을 요구하며 더욱 수위 높고 치밀한 일정만 기획한다면 결국 지치고 말 것이다.

단시간에 승부가 나는 싸움이 아니라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주변의 장치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재정적·정서적 지원은 이러한 방향에서 사고해야 한다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딱하고 불쌍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투쟁하는 동안 다치지 않고 투쟁이 일단락 된 이후에 후유증을 줄이고 일상적인 삶을 살기 위한 준비이다.

지원 프로그램이 접근하기도 쉬워야 하지만 투쟁하는 주체나 활동가들 역시 투사에게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필요 없다는 거부감이나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만이 휴식과 치유가 필요하다는 오해로부터 탈피할 필요가 있다우리의 투쟁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의 상황이 어떠한지 돌아보고 자본을 타격하는 만큼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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