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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내란음모’ 공안탄압, 머뭇거릴 수 없는 문제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3/11/15 16:30
  • 수정일
    2013/11/15 16:32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사진출처 : 참세상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를 통과시켰다. 법무부는 지난 2개월 동안 위헌정당단체관련대책 태스크포스를 가동시켜 통합진보당의 해산 가능성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이 태스크포스는 "위헌 정당뿐 아니라 반국가·이적 단체 등 위헌 단체 문제까지 함께 연구해 종합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팀"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누리당 또한 ‘종북’을 잣대로 한 ‘반국가단체 강제해산법’을 발의하겠다며 장단을 맞추고 있다. 이석기의 ‘RO’→ 통합진보당 → 전체 진보ㆍ좌파진영으로 ‘종북’의 범위, 제거대상의 범위를 확장해나가려는 것이다.

출처 불명의 ‘녹취록’으로 시작된 구속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내란음모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있는 통합진보당 인사는 이석기, 홍순석, 이상호 등 총 7명이다. 11월 13일 첫 공판이 예정되어 있고 이에 앞서 녹취록 증거인정 여부,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적용 여부를 둘러싸고 공방이 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정원이 지칭한 ‘RO’에 대한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건이 있은 후 각계에서 다양한 입장을 표명하였다.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까지 나온 이 마당에도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청구가 종북세력의 척결을 위한 정부의 정당한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마녀사냥식 정치공작의 소산이었는지를 헌법재판소가 그 어떠한 정치적 편견도 없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줄 것을 기대하며 지켜볼 것"이라고 하고 있다. 공안탄압이 짜놓은 종북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문제는 처음 이 사건이 시작됐을 당시부터 정의당을 포함한 일부 진보ㆍ좌파진영 또한 이와 유사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의 자유에 대한 방어보다 진보진영 내 친북적ㆍ민족주의적 경향에 대한 폭로가 더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방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출하더라도 실제로 적극적으로 방어 전선을 형성했다고 보기 힘들다.

 

낡지 않은 종북 프레임


그동안 종북 프레임은 낡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 사건이 터졌을 당시에도 국정원이 케케묵은 공안사건을 터트리고 있다는 표현을 흔히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다시피 이번 사건을 통해 얻어낸 것은 기존에 벌어졌던 공안탄압을 넘어서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의 공안사건들은 국정원의 조작 여부를 떠나 시민들에게 구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몇 차례 남북의 군사적 마찰이 있었고 상당한 수준의 긴장국면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이와는 달리 국민들 사이에서 전쟁은 눈앞에 닥친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종북 운동권’들이 북한 정권을 위해 활동을 한다는 혐의는 구체적인 군사적 대립과 연결되지 않았다. 이해 못할 시대착오적인 사람들로 인식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그림은 달랐다. 이석기를 포함한 통합진보당 인사들을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세력’으로 느끼게 했다. 조선일보의 헤드라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석기 의원,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8/29), “RO, 습격 목표인 통신ㆍ유류시설 답사”(8/30), “이석기, 전작권ㆍ미군기밀 빼내려했다”(8/31)라는 헤드라인을 보면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떠나 이들이 구체적인 국가기간시설에 대한 파괴계획을 추진하려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종북 운동권’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종북 테러리스트’의 이미지에 가깝다. 게다가 그 주도자가 주요 국가정보에 접근 가능한 입법기관, 즉 국회의원인 것이다. 더 이상 단순한 정치사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국정원의 공안정국 형성은 성공했다.


이렇게 ‘녹취록’에 대한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모든 것은 국정원이 짜놓은 프레임으로 기정사실화되었다. 실제로 어떤 수준의 논의였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됐다. 국정원과 언론이 그리는 그림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고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정치사찰에 대한 비판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통합진보당은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정원의 불법유출과 언론의 보도로 녹취록은 세상에 모두 알려졌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상황에서 관련자의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과 사실관계의 공정한 확인을 위한 조치로, 국정원에 왜곡 편집되지 않은 동영상 전체의 공개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정작 녹취록의 원본인 동영상은 공개하지 않는 상태에서 무분별한 여론재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위법수집증거를 공개한 것은, 사법부의 판단 영역을 완전히 침범했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법절차에서 사건 관계자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극히 부당합니다. 오늘 제가 녹취록에 관하여 말씀드리는 것과 별개로, 재판 과정에서는 관련자 각자의 방어권이 완전하게 행사되도록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비상사태인양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탄압을 강행하는 것에 대한 통합진보당의 문제제기는 정당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우려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통합진보당 측 변호인단은 녹취록의 내용이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수사기관원이 아닌 민간인에게 녹음·청취를 맡긴 점과 감청허가서에 명시된 사람은 그 모임에 일부일 뿐인 점 등 현행법을 위반한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 사실이 받아들여진다면 녹취록은 법적효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여론몰이’ 먼저 수용한 일부 진보ㆍ좌파

 

문제는 이러한 ‘여론몰이’가 진보ㆍ좌파진영에도 먹혔다는 것이다. 진보ㆍ좌파진영이 취한 태도는 사실상 둘로 나뉘었다. 녹취록 자체가 불법적이기에 국정원의 불법적 사찰과 증거수집을 통한 여론몰이에 대해 비판하는 태도가 한편에 있었다면, 녹취록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를 비판하며 ‘종북’이 아닌 진정한 진보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밝히는 태도가 다른 한편에 있었다. 검찰마저도 “수사중에 진위를 떠나 각종 보도들이 너무나 많이 나왔다”며 우려를 표할 때 일부 진보ㆍ좌파진영이 ‘여론몰이’를 적극 수용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 세력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은 완전히 체제 내로 들어가 정치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는 급진적 자유주의자들보다도 더 움츠러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의당은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찬성 당론을 결정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제 헌법에 의해 그 활동을 보호받고 있는 공당의 국회의원과 그 당의 주요 간부들이, 헌법과 민주주의 그리고 국민상식으로부터 심각하게 일탈한 구상과 논의를 한 것에 대해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이런 입장을 냄으로써 정의당은 국정원이 진보진영에 바란 바를 정확히 수행했다.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의 자유의 방어라는 원칙

 

통합진보당은 실제로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이 언급될 정도로 긴장 국면이 높아졌을 당시 분명하게 ‘전쟁반대’와 ‘평화’를 주장했다. 그리고 이는 10만 명 정도의 당원이 공유하고 있는 원칙이다. 강령에서도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등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체제를 조기에 구축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RO’ 혹은 이와 비슷한 조직이 통합진보당 내에 존재하면서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배치되는 활동을 한다면 이는 당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처리할 문제다. 이들이 자신들의 정치노선을 떳떳하게 제시하지 않은 채 국민들을 속이면서 지지율을 확보하여 공직ㆍ당직에 당선된 것이라면 이를 비판하고 부여된 권력을 빼앗아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다. 그들이 드러내지 않았던 정치의 내용상에 문제가 있다면 당 안팎을 떠나 사회적인 토론을 통해서 비판하면 될 일이다. 다시 말해, 이 문제는 실제로 폭탄을 제조ㆍ설치하여 어떤 시설을 파괴하려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테러범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국가권력의 개입에 의해 허용되어야 할 정치세력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경계해야 한다. 정치노선의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국가권력에 의해 탄압받는다면 함께 맞선다는 것이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지 않았는가. 

헌법을 뜯어 고칠지 뛰어 넘을지,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결정을 할지 말지, 새로운 민주주의를 정립하기 위한 시도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중들이 선택할 문제다. 국가에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 새로운 사회를 위한 행동을 가로막을 권한은 없다.

 


저들의 ‘민주주의’에 힘으로 맞서는 것이 민주주의


지금은 정치의 자유를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스스로 제약할 때가 아니다. 공안탄압과 함께 사용되는 ‘헌법’과 ‘민주주의’라는 단어들은 탄압의 도구일 뿐 진지한 논의를 동반한 것이 아니다. 이런 괴이한 공안탄압용 ‘민주주의’에 힘으로 맞서는 것이 차라리 민주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공안탄압에 대한 투쟁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진영 내에서 공안탄압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면서 촛불집회에서 마저도 통합진보당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를 주저했다. 예민한 문제는 피해가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공격에 반대하는 입장을 제출한 조직들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적극적으로 연대를 조직했는지를 따져본다면 그리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시민사회운동 진영 내에서 ‘체제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계가 심해졌음을 보여주는 사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례로 <데모당>이라는 단체가 자신의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다른 참가자들이 항의하는 사건들이 있었다. 그 조직의 이름이 집회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체제에 저항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자라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은 일부 진보ㆍ좌파 단체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 국가보안법, 내란음모, 내란선동이 적용되거나 통합진보당에 대한 제약이 진전된다면 민주주의가 결정적으로 후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정치사상과 정치활동의 완전한 자유가 필요하다는 기본적 원칙이 시민사회운동 혹은 진보ㆍ좌파진영 내에서 흔들리는 것 또한 민주주의가 결정적으로 후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교조 설립취소,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등은 사회를 전반적으로 극우적으로 재편하려는 시도의 시작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박근혜 정권 스스로가 처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어떤 민주주의가 살아남을지는 결국 힘의 대결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국정원의 공안탄압에 맞선 투쟁, 정치사상과 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위한 투쟁에 지금이라도 적극 나서야한다.

 

-국가보안법, 내란음모, 내란선동 적용 반대한다. 통합진보당 해체 시도를 중단하라.

-국정원의 공안탄압에 맞서 통합진보당을 포함한 진보ㆍ좌파운동을 방어하자.

-국정원 해체, 국가보안법 폐지! 정치사상과 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자!

 

김사자 (saja-kim@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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