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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능투쟁,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환구단에서 투쟁하고 있는 전국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유명자 동지

출처 : 유명자 동지 페이스북
 

재능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최근 보건복지개발원 투쟁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고 있는 것처럼 장기투쟁에 지친 주체들 간의 갈등을 이용하여 상급단체가 합의를 종용하고, 소위 절차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투쟁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모습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몇몇 기사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소수의 조합원들과 연대단위들에 의해 투쟁이 이어지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현실에서 의사결정 방식이나 투쟁의 목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노신은 투쟁을 계속하는 주체들이 있는 한 재능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투쟁사업장의 목소리가 묻혀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생각에서 지난 11월 6일 환구단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유명자 동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유명자 동지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편집자]


현재 투쟁을 하고 있는 핵심적인 쟁점은 무엇인가요?

 

2007년 4월, 이현숙 집행부가 현장교사들의 임금이 대폭 삭감되는 수수료제도를 회사와 잠정합의하면서 투쟁을 시작했어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대교를 필두로 다른 학습지회사들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다가 모두 실패하거나 유보해야 했어요. 당시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동지들이 투쟁에 나선 것도 있지만 현장교사들의 반발이 엄청났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재능교육은 노동조합이 합의를 해주는 바람에 말도 안 되는 수수료제도를 쉽게 도입하게 된 거죠. 결국 노동조합이 현장 교사들을 사지로 내몬 꼴이 됐고, 이에 맞서 조합원들과 현장교사들이 수수료제도 개악에 반대하며 회사에 보충협약을 요구했어요.

 

회사는 유효기간이 2년인 단체협약을 노동조합과 합의했다는 이유를 들이대며 새 수수료제도를 밀어붙이고 위탁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지 않는 교사들은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 즉 해고하겠다고 협박을 했죠. 이 때 조합원은 물론 많은 현장교사들이 회사를 떠났어요. 똑같이 일을 하는데 임금이 수십만 원씩 삭감되자 버티지 못한 거죠. 그런데도 회사는 수수료제도 개선을 위한 보충협약을 요구하는 우리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2008년 11월,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당시 지부장이었던 저와 사무국장을 해고했죠. 2010년 8월부터는 불매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를 들어 조합간부들을 하나둘씩 해고하더니 그 해 말까지 노조탈퇴를 하지 않은 모든 조합원들을 해고했어요.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이 두 가지가 주요 투쟁요구가 됐어요. 쌍차의 5대 요구안이나 현대차 비정규직 8대 요구를 세세히 외우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우리 투쟁에 연대하는 동지들은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이라고 바로 이야기 할 정도로 우리의 요구안은 분명했죠. 우리는 요구안 어느 하나를 양보하면서 다른 것을 따내지 않겠다고 수도 없이 공언했고, 내부적으로도 '선(先)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유예기간 없는 동시 일괄복직'을 하나로 묶어 반드시 관철한다는 결의를 모든 회의 결정사항으로 명시했어요. 그래서 '단체협약 불가, 해고자 선별 유예복직' 안이 뼈대였던 2011년 3월 안은 말 할 것도 없고, '해고자 전원 동시 일괄복직, 후(後) 단체협약 체결' 안을 내세운 2012년 4월, 2012년 8월 안들을 모두 거부했어요.

 

하여튼 2012년 4월부터는 회사가 해고자 전원 동시 일괄복직 안을 제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선 단체협약 원상회복이 핵심쟁점이 됐고, 투쟁 전개과정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싸움의 시작이 잘못된 단체협약이었고,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지점 역시 단체협약 원상회복인 거죠.

 

그런데 노동조합 투쟁, 특히 최근의 비정규직 투쟁이 다들 현장에서 계약해지 되고, 계약직이 현장에서 밀려나서 복직투쟁 하는 것이 태반이잖아요. 우리 싸움은 이와 달리 해고가 된 상태에서 투쟁이 시작된 것이 아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고자 복직투쟁으로 일반화 시켜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더욱이 재능교육지부 투쟁에서 단체협약 원상회복의 의미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쟁취하는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인데도 지금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이를 절실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내팽개치고 2012년 4월 안보다도 못한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종탑 쪽의 행동이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따라서 재능교육 시청사옥 앞에서 농성투쟁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다시 원점에서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핵심쟁점으로 하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거지요.


구체적으로 단체협약 원상회복의 내용을 말씀해주세요.

 

단체협약 체결 직후인 2007년에는 이현숙 집행부와 회사가 합의한 개악된 수수료제도에 대한 보충협약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거부했죠, 그런데 대다수 교사들의 임금이 회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삭감되면서 교사와 회원이 모두 급속하게 줄어들었고 전혀 회복이 안 되자 1년 만에 수수료제도를 다시 일방적으로 바꿨어요. 기존 제도의 틀을 완전히 바꾸긴 했는데 지독한 독소조항이 3개 있었어요. 그래서 이때부터는 3대 독소조항 폐지를 요구했어요. 그 중 하나는 회사도 도저히 안 되겠는지 얼마 안 가서 슬쩍 없앴는데 나머지 두 개의 독소조항은 아직까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어요.

 

하나는 미수회비 자동충당제도라는 건데 말 그대로 회원으로부터 회비를 받지 못했는데도 회사가 임의로 교사들의 임금에서 그 액수만큼 자동으로 공제해서 가져가는 제도예요. 다른 하나는 마이너스 월별정산 이예요. 매달 새로 시작하는 회원보다 그만 둔 회원이 많을 경우 1과목당 7천 원씩 임금에서 차감하는 제도로 그만두는 회원에 대한 책임을 교사에게 일방적으로 즉시 전가하는 제도예요. 이 두 조항은 재능교육에만 있거나 가장 악랄한 내용으로 적용되는 것이고 교사들에게 매달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폐지시켜야 하는 핵심중의 핵심이죠. 그래서 2008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이었어요.

 

다른 임금성 주요 요구사항으로는 현장교사들에게 복리후생조로 현금으로 지급했던 휴가비가 있어요. 다른 학습지회사에는 없는 것으로, 1999년 33일간의 총파업 투쟁을 통해 2000년부터 단체협약으로 쟁취한 것이죠. 이것 역시 회사가 2008년에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2009년부터 지급하지 않고 있어요. 이밖에도 그때 없어진 게 엄청 많아요. 어린이날 선물, 회원서비스, 장기근속년수에 따른 현물 지급 등등.

 

노동조합 운영과 노동조건 관련해서도 핵심조항이 여럿 있어요. 위탁계약서에 우선해 단체협약이 적용된다는 조항, 노동조합원에 대한 불이익처우 금지, 조합 전임자 배정, 노조사무실 제공 및 관리유지비 지급, 그만두는 회원에 대해 회사와 교사가 공평하게 책임지는 제도, 원거리 교실 관리교사에 대한 교통비 지급, 경조금 지급, 조합원 교육시간 및 신임교사에 대한 노동조합 소개시간 배정, 노동조합 홍보활동 보장 및 현장지국 사무실 내 노동조합 게시판 설치 등등.
 

출처 : 유명자 동지 페이스북


많은 이들이 단체협약이 원상회복 된 것 아니냐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회사와 종탑 쪽이 지난 8월 26일 서명한 합의문에는 ‘(주)재능교육과 재능교육지부는 2008.10.31.자로 해지한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한다.’라는 문구가 있지만 지금 재능교육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단체협약 조항은 단 하나도 없어요. 이것만 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게다가 핵심사항인 미수회비 자동충당제도는 '합의서 체결일 기준으로 3개월 이내에 개선한다.', '마이너스 월별정산과 휴가비는 우선 논의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만 봐도 뭐 하나 원상회복된 게 없다는 것이 도리어 분명하잖아요. 이것이 어떻게 ‘단체협약 원상회복’일 수 있겠어요?

 

재능교육지부 투쟁에 연대했거나 관심을 갖고 지켜본 동지들 대다수는 이러한 사정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만하면 됐다거나 아쉽지만 현장에서 다시 노조를 일으켜 세우자고 해요. 최근 몇 년 동안 요구사항 전부를 관철하고 이긴 사업장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해고자 전원 유예기간 없는 동시 일괄복직만 해도 그게 어디냐라고 쉽게 생각하는 거죠. 어느새 양보와 후퇴가 타성이 되어버린 거죠. 더 좋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러한 입장이 투쟁을 회피하고 양보안을 강요하는 세력들의 기반을 다져주는 데 있어요.

 

앞에서도 밝혔지만 재능교육지부 투쟁 요구 가운데 보다 근본적인 것은 단체협약 원상회복이에요. 또 우리가 양보하지 않았으면 충분히 선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유예기간 없는 동시 일괄복직을 모두 쟁취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종탑 쪽에 분노할 수밖에 없어요. 종탑 쪽은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안이었기 때문에 합의하고 내려왔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전혀 생각이 달라요. 종탑농성이 한계에 다다르자 내려오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던 거예요. 종탑 쪽도 종탑농성을 하면서 줄곧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주장했거든요. 수많은 회의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함께 많은 논의를 했고 노동조합의 핵심요구가 뭔지 가장 잘 아는 자들이 우리가 회사에 요구했던 내용의 핵심이 단 하나도 없는 합의문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잖아요. 그들은 직접 회사와 교섭을 하면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똑똑히 봤을 것이고 그들 역시 회사에 다 보여줬을 텐데 회사와 종탑 쪽이 그 합의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담고 무엇을 뺐는지 몰랐겠어요? 종탑농성이 힘들었으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내려와서 다시 싸우면 됐어요.

 

더 황당한 것은 종탑 쪽이 낸 입장서예요. 입장서를 보면 2008년 10월 재능교육사측의 단체협약 일방파기 후 2012년까지 농성투쟁을 5년 넘게 진행하면서 삭발, 단식 등의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단체협약은 교섭석상에서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고 하고 있어요. 완벽한 거짓말이에요. 종탑 쪽이 자신들의 입장서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2012년 4월, 재능교육이 먼저 '복귀 후 단체협약 체결' 안을 제시했어요. 믿지 못하겠다면 공증도 받을 수 있고, 늦어도 2012년 안에 반드시 체결한다고도 했죠. 또 2012년 5월부터 진행된 교섭에 노동조합이 응했던 것도 기존의 회사 입장, 즉 '단체협약 불가, 선별복직' 안에 대한 입장변화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노동조합 교섭간사였던 유득규가 회사 측 교섭간사에게 노동조합의 이러한 교섭개시의 전제조건을 전달한 후 회사의 입장변화가 있음을 노조 중앙위에 정식으로 보고했고 중앙위 결의를 거쳐 교섭이 시작됐어요. 그때 이미 회사는 모든 교섭위원들의 노동조합 직책을 명시해서 공문을 보내왔고, 1차 교섭에서 회사 대표교섭위원이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이야기 하자는 지부장 발언을 100% 인정한다. 노측보다 더 적극적으로 문제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어요. 11차례의 공식교섭을 진행하는 동안 교섭위원이었던 유명자, 유득규, 오수영 모두 단체협약을 수도 없이 이야기했고 교섭회의록을 상호회람하며 수정까지 했으며, 노동조합 회의를 거쳐 단체협약 원상회복과 단체협약 갱신체결이 포함된 노동조합 공식요구 안을 회사에 제시하기까지 했는데 단체협약은 교섭석상에서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라고 하는 종탑 쪽의 주장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기만이자 사기예요.


사노신에서 쓰기도 했지만 이번 재능투쟁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도 있었다는 점인데요. 이에 대한 말씀도 듣고 싶네요.


우선 종탑 쪽에서 지적하는 '노조 민주주의'는 종탑에 올라간 시점의 전과 후가 있어요. 사노신 기사를 보면 ‘오만과 독단’이라는 표현이 있던데요. 그 내용은 제가 2012년 9월부터 재능지부 회의를 해소시킨 것이더라고요. “지부장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조합원과 소통을 해야 하나 재능지부 회의를 하지 않았다.”라는 비판이죠.
 

저는 이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지만 왜 유명자가 회의를 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그들이 솔직하게 말했으면 해요. 학습지노조는 정말 종탑 올라가기 전까지, 투쟁하는 5년 동안 노조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를 지키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어요. 그 중심이 강종숙 위원장이었고요. 위원장은 워낙 사소한 것 하나도 신경을 썼고, 사람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들도록 신경을 써왔어요. 일반적으로 투쟁사업장, 특히 장기투쟁사업장에서 투쟁 중에 선거를 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보궐선거까지 수차례의 선거를 진행했어요. 우리 사업장은 총파업 사업장도 아니고 해고자만 조합원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각기 회사도 다른 현장 조합원들이 있는 노조예요. 재능교육지부 투쟁이 소수 간부들 위주의 투쟁이었고, 재능교육의 끊임없는 도발 때문에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선거 총회를 무시할 수 없었던 거죠.
 

첫 번째 임기를 마칠 때가 되었는데도 투쟁이 끝날 기미가 없었어요. 오히려 조합원 전원 해고 등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었죠. 그 즈음 솔직히 두려웠고 도망갈 생각을 많이 했어요. 투쟁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하겠지만 지부장은 더 못하겠다는 입장이었거든요. 그때 저는 투쟁이 어려웠던 것보다 지부장의 이름으로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계속 투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어요. 이미 당시 재능교육지부 투쟁의 상태가 최악이었거든요. 우리의 요구는 제 첫 번째 임기 막바지에 해고된 이들까지 해고자 12명 전원 유예기간 없는 동시 일괄복직이었는데 정작 투쟁에 전면적으로, 전임으로 결합하는 이들은 서너 명 뿐이었죠. 솔직히 저는 지부장으로서 과외 등 알바하는 것을 조직적으로 하지 말 것을 제안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듣지 않았죠. 위원장도 해고자회의를 소집해서 당시 재정이 모두 소진되더라도 해고자 전원에게 1/n로 지급할테니 해고자 전원이 전면적으로 투쟁에 결합할 것을 제안했지만 역시 거부됐고요. 지부회의 할 때 역할 분담도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근근이 1주일에 1번 야간 농성하는 정도였죠. 주간, 주말농성도 수시로 이런저런 이유로 바꿔달라거나 할 수 없게 됐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그만이었어요. 그나마 천막농성 할 때 철농 한 번 안했던 해고자가 3명이나 돼요. 매주 금요일 진행했던 정기집회에도 언제나 해고자 일부만 참여했지요.
 

재능교육이 용역깡패들을 고용해서 본사 앞 집회신고를 하는 바람에 노동조합이 본사 앞 집회를 하려면 집회신고 대기 장소에서 대소변 보고 밥 먹어가면서 며칠씩 노숙을 해야 가능했죠. 그래서 집회신고는 남성들만 가능했어요. 남성 조합원들만으로는 모자라서 연대동지들까지 집회신고를 위해 혜화경찰서 앞에서 노숙을 한 적이 있어요. 마침 그 때 오수영은 급성패혈증으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고요. 농성장 지킴이 한 명, 혜화서 집회신고 대기자들 오줌통 비워주고 밥 갖다 주는 사람 한 명, 농성장 교대자 한 명이 필요했는데 이현숙이 문자로 농성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2007년 단체협약을 체결해서 이번 투쟁의 원인을 제공하고도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지만 해고자라는 이유로 그냥 넘어갔는데 당시 상황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문자로 앞으로 농성에서 빼줄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요. 그러자 다시 농성하겠다고 농성장에 나타났고 저는 가라고 했어요. 그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고 그 때부터 지부장이 폭언폭행을 했다며 모든 회의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회의 진행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 도저히 제대로 된 회의를 할 수 없었어요. 그 와중에 오수영은 7월, 유득규는 8월에 각각 지부 사무국장과 본조 사무처장 직을 사퇴했어요. 교섭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죠. 자신들의 책임은 다 내려놓은 상태에서 저만 무슨 광대도 아니고 결의사항조차 지켜지지 않고 회의를 시작할 수도 없는 상황이 몇 달째 되풀이 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회의를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한 번 묻고 싶어요.
 

이밖에도 지금은 밝힐 수 없는 일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요. 이런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사노신이 재능지부 해고자들과 함께 하는 회의를 하지 않았던 것을 ‘오만과 독단’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회의를 할 수 없었던 과정과 맥락이 있다는 말씀인거죠.


그렇죠. 그래서 저는 그때 재능교육지부 해고자회의를 해소했던 것이 노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어요. 투쟁의 원인을 제공하고 계속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속이다 사퇴요구를 받고도 악착같이 8개월 동안 버티다 천막농성 8일 만에 총사퇴를 한 자들이 종탑 쪽에 4명이 있어요. 자신들이 해고되기 전까지는 아예 투쟁에 결합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때마다 문제제기를 하고 노조 지침을 거스르기까지 했지요. 해고된 후에도 농성과 집회에 제대로 결합하지도 않았고요. 그러던 자들이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게 노조 민주주의 인가요? 그런 자들과 야합하고, 투쟁 초기부터 노골적으로 이현숙 집행부를 지지하며 우리 투쟁에 결합하지 않다가 말도 안 되는 양보안을 들고 와서는 그 안을 강요하다 안 되면 다시 사라지고 투쟁의 발목을 잡던 서비스연맹과 한 편이 된 자들이 노조 민주주의를 말 할 자격이 있나요? 한진과 쌍차의 기업노조가 다수이니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노조 민주주의라는 주장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거지요.
 

종탑에 올라간 이후는 더 했어요. 자신들도 동의한 투쟁계획마저 모조리 폐기시킨 채 오로지 지도부 교체에 올인 했지요. 그나마 그것도 노조 규약, 규정을 모조리 어겨가면서요. 중재도 일체 거부했지요. 오히려 중재에 나섰던 동지들을 비난하고 겁박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어요.
 

합의 시점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지요. 학습지노조는 산별노조예요. 교섭권과 교섭체결권 모두 당연히 본조에 있지요. 위원장이 산하 조직의 교섭단위에 교섭권을 위임할 수 있지만 여전히 교섭 체결을 위해서는 본조 중앙위의 사전 승인을 거쳐야 해요. 그런데 잠정합의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교섭권을 재능교육지부에 위임했나?"라는 질문에 대해 황창훈이 이렇게 말했어요. "전 위원장인 강종숙 당신이 하지 않았냐?" 너무나 황당한 나머지 강종숙이 "언제 어느 회의에서 했냐?"라고 되묻자 "본인이 교섭 한 번 안 들어가고 한 게 교섭권을 위임했다는 증거 아니냐?"라고 황창훈이 답을 했죠. 그렇다면 제가 교섭권을 위임받았다는 건데 저는 그런 적이 없거든요. 11차례 교섭 때마다 위원장에게 보고를 했고, 당시 교섭간사였던 유득규도 재능교육지부 해고자 신분이 아니라 본조 사무처장 자격으로 교섭위원으로 임명된 거였고요. 황창훈의 말을 뒤집으면 결국 재능교육지부에 교섭권을 위임조차 하지 않은 거예요. 교섭체결을 위한 본조 중앙위 사전 승인도 엉터리고요.


당시 종탑 쪽의 주장대로 해도 중앙위원이 황창훈과 오수영 뿐이었어요. 게다가 오수영은 종탑에 있었고요. 재능교육지부 총회를 한다는 날에서야 부속합의서(검토) 안을 들고 온 황창훈이 그 날 종탑에 올라가서 중앙위를 했다고 하는데 시간상으로도 전혀 앞뒤가 맞지도 않아요. 백번 양보해서 중앙위를 했다고 쳐도 문제는 남아요. 학습지노조 역사상 이번처럼 졸속으로 절차를 진행한 예는 없거든요. 같은 날에 중앙위와 지부 총회를 하다니요? 2007년에 이현숙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2천일이 넘는 투쟁, 그것도 타 지부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의 힘이 없었으면 꿈도 못 꿨을 투쟁을 진행했는데 달랑 재능교육지부 소속 해고자 두 명이 30분도 채 안 되는 동안 본조 중앙위를 해서 통과시켰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요?

 

재능교육지부는 전국사업장이기에 잠정합의안에 가서명하기 전에 그 안을 들고 전국에 있는 조합원들을 직접 찾아가서 설명회를 개최했어요. 대의원대회를 통해서나 지회, 분회 집체 설명회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조합원 설명회를 하고 의견수렴과 조율을 한 후, 추가로 교섭할 것이 있으면 하고, 결렬해야 할 것 같으면 결렬하고 했죠, 2007년에 이현숙 집행부에 대해 문제제기 했던 것도 잠정합의하고 설명회도 거치지 않고 바로 총투표를 강행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조합원들이 납득할 수도 없는 안을 내놓고 당일 곧바로 찬반투표로 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이게 바로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고 조합원들을 거수기로 만드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투쟁 내내 전 집행부를 문제 삼았던 거예요.
 

또 있어요. 투쟁이 장기화되고 서비스연맹이 노골적으로 양보안의 수용을 강요하다 투쟁에서 철수하기를 반복하면서 내부에서도 계속 동요가 있었어요. 이현숙을 중심으로 하나의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해서 결국은 종탑 쪽이 모두 한 통속이 된 거죠. 그래서 교섭이 한창 진행되던 2012년 6월에 있었던 학습지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선(先)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유예기간 없는 동시 일괄복직'이라는 노동조합의 요구안을 재론하려면 학습지노조 대의원대회 또는 총회를 소집해야 한다라고 대의원 만장일치로 결정까지 해야 했어요. 이번 합의는 이러한 대의원대회 결의사항을 정면으로 뒤집은 거예요. 본조 하급 단위인 재능교육지부 해고자 몇 명이 '재능교육지부 총회'를 통해 본조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내팽개친 거죠. 저들이 말하는 노조 민주주의의 본질이 이런 식이예요.


출처 :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홈페이지 (gonan.or.kr)


앞으로 환구단 농성장은 유지하고 월요일 1인 시위, 목요일 기도회, 금요일 집회가 투쟁계획의 축인데요. 이후 투쟁전술의 변화라던가, 환구단 농성장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계획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은데요. 어떤 고민을 가지고 계신지요.

 

방금 말씀하신 투쟁들은 지난 2천여일 동안 해오던 투쟁들이에요. 물론 다른 투쟁사업장들도 비슷하고요. 지금 자본에게 알맹이까지 다 보여준 우리 상황에서 기존과 다를 바 없는 투쟁만으로 요구안을 쟁취할 수 있을까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는 것은 알아요. 지난 9월 30일 기한 내에 재계약서를 안 쓰고 농성투쟁을 계속 이어간다고 결정하기까지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있었어요. 투쟁을 지속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투쟁하는 방식에 대해서요. 결론은 여전히 지금까지 해 왔던 투쟁들을 중심에 놓고 투쟁을 더 확장해 나간다는 것이었어요. 이미 공정위와 국세청을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내부 일감몰아주기 처벌촉구 투쟁이 진행 중이에요. 투쟁장소도 재능교육 시청사옥 농성장을 벗어나 혜화동 본사는 물론 타워팰리스, 가산동 사옥 등으로 확대해 나갈 거고요. 회사는 이미 우리가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대해 머리 굴리고 압박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대단위의 확장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2월 종탑농성이 시작된 이래 우리들의 투쟁에 등을 돌린 수많은 단위와 개인들 모두에게 우리 투쟁의 중요성과 정당성을 다시 한 번 설득하고 투쟁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에요. 쉽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작은 변화가 감지되기도 해서 마냥 비관적이지만은 않아요. 특히 지난 6년 가까이 음으로 양으로 지지하며 함께 해 오고 있는 동지들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함께 굳건하게 싸워나가고 있어서 더 힘을 내기도 해요.
 

사노신에게도 조만간 투쟁에 동참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게 될 거예요.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텐데요.


솔직히 투쟁해 오면서도 “이렇게 싸우는 것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지난 6년 솔직히 너무 힘들었어요. 일단은 몸이 너무 힘들죠.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힘든 것은 과연 지금 우리를 투쟁사업장으로 인정하는 곳이 얼마나 있느냐는 거예요. 가끔 우리가 운동사회에 짐이 된 듯 한 기분이 들 정도로요.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 이렇게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재능교육은 제 청춘을 모조리 바친 회사이고 노동조합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친 곳이에요. 학생운동도 전혀 하지 않았던 제가,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고가의 사진기를 마련할 돈을 벌려고 들어왔던 재능교육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33일 간의 총파업에 앞장서고, 노조 간부를 거쳐 지부장을 하면서 삭발에 단식까지 하며 2천일 넘는 거리농성을 하도록 내몬 것이 있어요. 인간의 양심과 상식에 도전하는 재능교육이라는 괴물에 대한 분노, 함께 노동조합원이 돼서 싸웠던 동료들에 대한 믿음과 그 희망, 단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아보리라 다짐하며 앞서 싸웠던 열사와 동지들, 민주노조에 대한 자부심…….
 

아마 강종숙, 박경선 동지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래서 별다른 이견 없이 자연스럽게 저들의 거짓 합의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게 됐죠. 쉽지 않은 결심이었지만 서로를 확인하며 그렇게 많이 고민하지 않고 더 열심히 투쟁하자고 결심한 거라고 생각해요.


환구단 농성에 결합하는 단위가 줄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동지들의 투쟁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많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신다면요.


항상 얘기했지만 투쟁이 장기화되어서 끝나면, 사실은 그 주체들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주체들도 서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생기고. 너무 심신이 피폐해져서 서로에게 조심스러워지다보면 연대단위가 하고 싶은 말들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반대로 민주노조 운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분명한 입장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몇 년 전부터 우리 집회 때 얘기한 것이 “동지들이 여기 우리 투쟁에 연대를 한다면 마지막 마무리를 할 때에도, 조합원들이 양보를 하거나 후퇴를 하거나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그것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갖고 말해 달라.”였어요.
 

종탑농성을 할 때에도 종탑에 있는 여성노동자 2명이 부담스러워서, 이들이 다른 생각할까봐 입장을 못 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한테도 그랬어요. “그렇게 계속 저 쪽을 건드리는 입장서 내다가 그들이 혹시나 잘못 생각하면 (어떡하냐).” 그 얘기 듣고. 우리를 지지하는 연대 동지가 열 받아서 이렇게 말했대요. “땅 위에서는 못 죽나?”라고. 저는 운동진영이 종탑농성에 대해 가장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어야 했던 때를 8월 23일 잠정합의안이 나왔을 때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부분, 아니 모두 침묵했어요.
 

특히 원칙을 고수하고 민주노조 운동에 대해 방향을 제시한다고 자부하는 사회주의 세력들, 선진활동가 세력들이 침묵하거나 종탑을 옹호했어요. 비단 이 때만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투쟁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났는데도 침묵 속에 숨어버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참 많이 절망스러웠어요. 말 따로 행동 따로. 민주노총이나 산별연맹들의 관료주의를 비판하고 그들의 타협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일삼던 세력들이 정작 그들과 손잡고 단위사업장 현장투쟁을 자본에게 갖다 바친 행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거나 오히려 그들 편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한심스럽고 암담했죠.
 

그래서 재능교육지부 투쟁은 절대로 이렇게 끝나서는 안돼요. 재능교육 시청사옥 농성자 3인은 물론 다수의 침묵을 뚫고 투쟁에 함께하고 있는 동지들은 투쟁 요구 쟁취를 위해 질기게 투쟁하는 것과 동시에 이번 사태의 문제점과 그 교훈에 대해 운동진영 전체가 공론화하고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투쟁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의 투쟁을 바라만 보지 말고 더 많은 동지들이 힘을 보태주실 것을 부탁드려요. 저희들도 지난 6년여의 투쟁을 밑거름 삼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대신 할게요. 투쟁!


인터뷰 : 박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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