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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편집자의창]노동귀족과 프롤레타리아트

 

노동귀족과 프롤레타리아트

4월 재보선은 예상대로 소위 ‘민주대연합’의 승리로 끝났다. MB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힘을 얻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노동운동은 상설연대체 건설논란에서 나타났듯이 민주대연합 꽁무니를 쫓고 있을 뿐, 한때 노동운동의 중심 화두였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슬로건은 이미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상황은 정치운동의 기반이 되어야 할 조직노동운동의 붕괴와 무관하지 않다. 재보선에서 현대중공업노조와 미포조선노조는 한나라당 후보 지지를 표명했다. 메이데이를 며칠 앞두고 서울지하철노조는 민주노총에서 탈퇴했다. 이 노조들이 밞아온 행적을 보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이는 민주노총의 양축을 이루어온 금속대공장과 공공부문 노조운동이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귀족 노조들

 

최근 현대차지부 이경훈 집행부가 단협에서 정규직노동자 자녀 우선채용을 요구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연대하지 않는 현대차지부가 이러한 요구를 했다는 것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 현대차 정규직노조는 이제 진보진영에서도 지위를 세습시키려는 노동귀족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고 있다.

노동귀족이라는 말은 엥겔스가 1880년대 영국 노동운동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당시 그는 영국에서 사회주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를 노동귀족의 등장으로 설명했다. 엥겔스는 노동귀족으로 두 개의 집단을 지적했는데, 하나는 직업별 노조로 조직되어 있는 숙련공과 다른 하나는 대공장 노동자였다. 엥겔스는 이들의 노동조건이 20년 동안 중단 없이 개선되어 왔으며 그것은 세계시장에서 영국 산업의 독점적 위치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남한에서 대공장 정규직의 노동조건 역시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997~1999년 사이 구조조정 시기를 제외하고 최근 20여 년 동안 후퇴한 적이 없다. 현재 자동차와 조선소 등 대공장 정규직의 연평균 임금은 6천만 원 정도이다. 물론 법정 노동시간에 기초한 기본급 수준은 130~150만 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대와 기아 등 완성차 공장을 기준으로 하면 평일 8시간에 2시간 잔업, 주말 특근 14시간을 해야 이 ‘평균적인’ 임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 해도 연봉 6천만 원은 남한사회에서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사실 장시간노동이 일반화되어 있는 남한에서 주 64시간의 장시간노동은 그다지 특수한 현상도 아니다. 이런 고임금이 가능한 기반은 남한의 자동차와 조선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독과점적 위치와 광범위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존재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정규직은 점점 보수화되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투쟁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 해고대상이 아니었던 다수의 노동자들과 다른 대공장 노동자들이 바로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해고자들의 투쟁에 거의 연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되고 있다. 이 정도 쯤 되면 엥겔스의 기준으로 볼 때 남한의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을 노동귀족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좌절한 비정규직노조운동

 

대공장 정규직이 상대적으로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지위를 빼앗기게 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박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때문에 해고대상자들은 격렬히 투쟁하지만 해고를 모면한 노동자들은 심각한 보신주의에 빠지는 이중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이런 양상은 비정규직에 대한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신들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오로지 고용형태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규직은 비정규직문제에 대해 더욱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인원 구조조정이 현장에 들어올 때, 정규직은 대의원 체계를 중심으로 한 상시적 합의구조를 통해 고용을 전환배치 정도로 보장 받는 대신 비정규직을 자르는 데 동의한다. 이 체계 속에서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의 이해는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2003년 이후 대공장에서 건설되었던 비정규직노조들은 대부분 대중적 노조로 발전하는데 실패한 것은 무엇보다 조직노동운동의 벽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노조가 건설되어 투쟁에 나섰을 때, 대공장 정규직노조는 오히려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 속에서 자본의 탄압을 정면으로 맞은 비정규직노조는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대중적 기반을 갖췄다고 평가받았던 기아차비정규직지회는 금속노조와 정규직노조의 1사1조직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독자성을 박탈당한 채 정규직노조에 종속되었다. 그 결과 현재 기아차사내하청분회는 독자적인 투쟁을 하지 못하는 식물노조가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은 비정규직투쟁과 같이 대공장에서 안정적인 교섭구조를 흔드는 불안요소가 발생했을 때, 자본과 정규직노조가 함께 그 요소의 발전을 원천봉쇄하고 필요한 때는 멀쩡한 노조를 깨면서까지 통제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조합운동으로서 비정규직운동은 실패했으며, 당분간 회생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대공장 정규직노조는 높은 노동조건과 고용을 보장하는 합의구조를 통해 사측에 포섭되어 현장을 통제하는 사측의 대리자가 되어있다. 이러한 양상은 복수노조 시대가 되면서 더욱 강화될 것이며, 더 큰 문제는 정규직노조의 이런 노선이 정규직조합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은 성과급에 기반을 둔 임금체계와 상당한 양의 회사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자본의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많은 사안에서 자본의 이해와 자신의 이해를 동일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사회주의자들이 이제 대공장 정규직, 조직노동운동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90년대 후반 남한 사회주의자들은 조직·전술·강령적으로 대공장을 중심지로 설정해 왔다. 하지만 대공장노동자들의 조합적 이해를 급진화시키고 이를 통해 정치의식으로 나아간다는 전술은 사실상 실패했다. 대공장에서 해고자 투쟁을 제외하고 전투적 투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그 투쟁을 통해 정치의식의 고양으로 나아간다는 구상은 관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의 10%도 되지 않으며, 거의 대규모 작업장 노동자들과 일치하고 있다. 문제는 80%에 달하는 미조직노동자들, 조직노동운동의 저변에 깔려 사회 하층을 이루고 있는 미조직 노동자들이다. 촛불투쟁과 같이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운동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는 이들이야 말로 생산수단이 박탈당하고 자본의 이해를 공유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구성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전술·강령은 소수의 조직노동자가 아니라 이러한 다수 노동자들, 전체 프롤레타리아의 이해에 맞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 있어 사회주의자들의 전술은 여전히 조직노동자에 맞추어져 있으며, 이런 모습은 아직도 조합주의와 단절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주의자들의 전술에, 1사1조직과 같이 비정규직운동의 독자성을 파괴하는 관료적 통합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에게 안녕을 고할 것인가? 물론 아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가 누구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2011년 4월30일
사회주의노동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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