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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가슴 속의 임금을 지워라

  • 분류
    문화
  • 등록일
    2012/02/20 14:28
  • 수정일
    2012/02/20 14:46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정치의 계절에 <한성별곡-正>과 <뿌리 깊은 나무>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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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월3일에 발간된 사노신 뉴스레터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편집자]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이하 ‘뿌나’)가 지난 12월22일 막을 내렸다. 세종의 한글창제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는 최근의 정치현실과 겹쳐지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 묘하게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2007년 KBS에서 방영된 8부작 드라마 <한성별곡-正>(이하 ‘한성별곡)이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놓은 상황에서 방영된 두 드라마는 비단 궁중을 중심으로 한 역사추리물의 외양을 취하고 있다는 점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유사점을 보였다. 하지만 <한성별곡>이 보기 드문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저주받은 걸작이 된 반면 <뿌나>는 20%가 넘는 시청률을 보이며 명품드라마라는 호평과 함께 대중적인 성공도 함께 거머쥐었다.
 

비슷하나 다른 두 드라마


<추노>로 유명해진 곽정환이 연출한 <한성별곡>은 드라마 상에서 그냥 ‘임금’으로 나올 뿐이지만 여러 가지 설정으로 볼 때 정조임이 분명한 조선의 임금을 등장시키고 있다. <뿌나>와 마찬가지로 <한성별곡>에는 기득권층에 맞서 개혁을 추진하는 임금과 그런 임금을 신뢰하지 않는 백성, 임금의 개혁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기득권층인 보수신료들, 그리고 정체불명의 기괴한 음모조직과 연쇄살인 사건이 나온다.

이런 면들에서 <한성별곡>과 <뿌나>는 상당히 많이 닮아있다. 다만 차이라면 <한성별곡>의 임금은 실패하고 좌절하는 반면 <뿌나>의 세종은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루어내는 데 성공한다는 점이다.

<한성별곡>의 임금은 자신을 믿지 않는 개혁세력과 기득권을 지키는데 급급한 보수 세력 사이에서 좌절한다. 믿었던 신하들이 알고 보니 배신자들이거나 자신의 이해만 추구하던 자들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그는 결국 “나의 신념은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은 안타까운 희생을 키워 가는데 포기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라고 부르짖으며 쓰러진다. 임금이 죽자 보수 세력이 집권하고 그가 추진하던 개혁은 몽땅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한성별곡>의 주된 정서는 안타까움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일체의 희망을 느끼기 힘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데 임금의 선의를 알아주지 않는 우매한 백성들에 대한 작가의 분노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한성별곡>은 소수의 시청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동시간대에 방영된 <커피프린스>에 밀려 시청률은 6%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드라마가 인기를 얻기에는 노무현 정권 말기의 대중은 너무나 정치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고, 결국 이런 정치에 대한 불신은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는 MB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오히려 MB정권이 들어선 뒤에 현실 정치상황을 빗댄 사극드라마들이나 정치드라마들이 다수 제작되고 그 대부분은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뿌나>를 쓴 김영현-박상연 콤비의 전작 <선덕여왕>은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곽정환이 연출한 <추노> 역시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이는『닥치고 정치』나 『정치가 우선한다』 같은 서적들이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정치의 대중화를 모토로 내건 <나는 꼼수다>가 큰 인기를 누리는 최근의 정치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뿌나>의 인기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성별곡>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깊은 실망감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었다면 <뿌나>는 MB정권에 대한 실망감에 더해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보여주면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임금에 대한 환상


그런데 문제는 최근 부쩍 늘어난 정치적 관심과 여기에 편승한 책과 드라마들이 대개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지도자에 대한 환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성별곡>의 임금이 노무현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면 <뿌나>의 세종 이도는 현재 국민들이 품고 있는 지도자 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도처럼 능력 있는 엘리트이면서도 뭔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줄 것 같은 이미지의 지도자를 바라는 기대는 사실 그대로 안철수 붐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MB정권에 대한 실망 때문에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외면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런 환상과 기대는 사실 민주주의 자체와 모순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되돌아 볼 때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통령은 누구 하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는 보수든 지유주의든 어떤 정부도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구성원 사이의 이해 갈등을 봉합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소위 민주정부가 들어서기 시작한 90년대 중반부터 불어 닥친 세계화 바람은 이를 더욱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지도자의 능력이나 인격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실질적인 문제는 항상 해결되지 않고 늘 비리나 부패와 같은 주변적인 문제로 정쟁이 일어났고 이는 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귀결되곤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히려 민주화 이후 유능하고 강한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정조에 대한 우상화 담론이었다.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이 불을 붙이고 이덕일의 대중적 역사서들이 퍼트린 정조 우상화는 정조가 죽지 않고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었으면 조선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고 이후 나타난 혼란과 식민지 시대를 겪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가설에 기초한다. 이런 담론들은 또한 정조는 일찍 죽은 게 아니라 서인-노론이라는 기득권 세력에 살해당했다는 별 근거 없는 음모설을 유포시키기도 했다. 이런 정조 우상화는 사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 기댄 매우 퇴행적인 담론에 불과했다.

비록 박정희 대신 노무현을 정조에 빗대고 있긴 하지만 <한성별곡> 역시 근본적으로 이런 정조 담론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유의 정조 우상화는 민주주의에 역행할 뿐 아니라 실제 역사적 사실에도 맞지 않는다. 최근 발견된 정조의 어찰은 정조가 표면적인 모습과는 달리 노론의 수장과 은밀히 야합하며 국정을 운영한 능수능란한 음모정치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적 연구는 세도정치 시대가 아니라 이미 영·정조 시대의 조선사회가 동시대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사회경제적으로 뒤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한성별곡>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절절한 아쉬움의 표현이었고, 그러한 정서는 MB 정권 등장 이후 향수로 변했다. 그 속에서 MB정권이 추진한 많은 정책들이 이미 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빨리 망각되고 있다. 이렇게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실망의 끝없는 반복은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고유한 것이면서 체제 자체가 문제되지 않도록 하는 방어막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대부들의 민주주의


<뿌나>가 선의지를 가진 왕과 탐욕스러운 사대부 관료들의 대립을 묘사하는 데 그쳤다면 <한성별곡>처럼 이상적인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향수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는 정조 우상화 작업에서 보듯 퇴행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뿌나> 역시 임금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상 이런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촛불투쟁과 희망버스 등 다양한 대중운동 이후에 등장한 <뿌나>에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세종의 가장 강력한 적대세력으로 등장하는 정기준과 밀본(密本)은 사리사욕만을 추구했던 <한성별곡>의 음모조직과 다른 이념집단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세습되는 전제군주의 자의적인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대부 관료들의 집단적 논의를 통해서 정책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정조 담론처럼 개혁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군주의 전제를 옹호하는 입장에 비해 삼권분립 같은 근대적인 민주주의 정치사상에 오히려 훨씬 가까워 보인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물론 서양에서 나온 개념이고, 언제나 정치(政治)라는 개념이 군주에 의한 다스림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지녔던 동양에서는 찾기 어려운 개념이다. 서양에서 민주정치의 전통은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 그중에서도 특히 아테네에서 기원했다고 여겨진다. 데모크라틱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데모스(demos)의 지배(cratic)라는 뜻이다. 데모스란 아테네에서 노예를 제외하고 재산을 기준으로 나눈 신분에서 최하층, 생산수단을 거의 가지지 못한 최극빈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따라서 어원적으로 (비록 그 시대적 한계로 말미암아 노예, 여성, 외국인은 참여하지 못하였지만)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정치의 본질은 가장 극빈층까지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하는 직접적인 민주주의를 의미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최초로 체계적인 정치론을 펼친 플라톤은 이런 민주주의가 혼란과 무질서만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하며 지적, 육체적으로 우수한 자들이 다스리는 질서정연하고 엘리트주의적인 국가를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 사이의 자질의 차이는 타고 나는 것이며 따라서 자질이 떨어지는 자들은 생산을 하고 힘이 센 자들은 군인이 되어 외적을 방어하며 그 위에 똑똑한 자들이 통치를 하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했다.

흥미롭게도 조선은 많은 면에서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국가와 상당히 가까웠다. 플라톤 철학과 성리학은 유사점이 많은데 이 둘은 모두 현상 이면에 본질적인 진리의 세계가 있고 이 진리를 아는 것은 지성적 훈련과 수양을 통해 단련된 지식인 지배계급뿐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정기준이 자부하는 대로 조선의 사대부들은 본래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 엄격한 시험을 통해서 지배계급이 되었다. 실제로 정기준의 정치관은 플라톤과 비슷한 면이 꽤 많다.

정기준의 논리는 어떻게 보면 군주 1인의 독재에 대해서 훈련된 사대부들에 의한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주장했다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플라톤이나 정기준의 논리를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극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원래 역사적으로 매우 한정적인 민주주의, 남성 부르주아들로 제한된 민주주의였다.

보통선거제의 확대와 함께 노동자와 여성들도 투표권을 얻게 되었지만 이러한 엘리트주의로 말미암아 근대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는 투표행위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권력을 열어두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치적·경제적 엘리트들이 결탁한 과두지배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가슴 속의 임금들을 지워내야


결국 이런 과두정치는 국민을 위한 통치를 약속하지만 결국 그 자체가 지배계급, 이익집단이 되어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할 위험성을 항시적으로 갖고 있다. 극중에서 이도의 지적대로 사대부들의 통치 역시 결국 사대부들이 이익집단화하면서 고려의 문벌귀족이나 마찬가지의 세습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 양반은 고려의 문벌귀족들과 별 다름이 없었다.

정기준은 임금 한 사람의 전제정치의 위험성에 대해 신료들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부르주아 정치원리와 유사한 것을 제기하지만 이런 원리들은 오히려 체제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버팀목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에 대해 이도는 개혁적 임금의 왕권 강화라는 손쉬운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글과 지식이라는 무기를 백성에게 직접 쥐여 주는 보다 근본적인 방식을 제기한다. 이런 이도의 논리는 제도화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며 정기준이 당황스러워하는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기준이 끝까지 한글 창제를 막으려 드는 것은 이것이 사회 질서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 역시 1인 독재정치에 대해 제도적으로 보장된 엘리트들의 제한된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이를 뛰어넘는 대중들의 정치에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백정으로 살아가되 뼛속까지 지식인이자 엘리트인 정기준에게 모든 사람들이 글을 알고 자신을 표현하는 세상, 그래서 그 결과 스스로 자신들을 통치하고자 나서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정기준의 우려를 전근대 시대 지배계급의 한계로만 보기에는 그런 논리가 우리 자신들 속에도 깊이 내면화되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보다 똑똑한 사람, 보다 능력 있는 엘리트들이 사회의 운영을 담당해야 한다는 사고는 현대를 사는 우리 역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1%에 맞서는 99%라는 슬로건은 정치엘리트와 자본가들이 결탁한 기득권층의 과두정치가 더 이상 형식적 민주주의로 포장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사고의 족쇄들은 또 다시 새로운 임금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흘러가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지도자에 대한 환상은 결국 언제나 다시 더 큰 실망으로 귀결되고 말았으며, 어떨 때는 지난 정권의 말기 때처럼 정치 자체에 대한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소설가 이청준은 박정희 시대에 쓴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소설에서 마음속에 동상을 품은 지도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 의하면 나병 환자들이 사는 소록도에 부임하는 소장들마다 환자들에게 천국을 만들어주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그 약속은 자신의 동상을 남기겠다는 소망일뿐이었고 환자들의 천국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상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지도자는 가슴 속에 임금을 품고 있는 백성들과 잘 어울리는 짝이다. 가슴 속에 품은 임금을 지우지 않으면 동상을 품은 지도자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가슴 속의 “임금”을 지워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정인 wjddls@jinbo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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