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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전망][총론]2012 권력재편기, 정치태풍에 휩쓸리지 않고 대중투쟁의 싹을 지켜야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2/03/14 13:53
  • 수정일
    2012/03/14 13:54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2011년은 대중투쟁의 해였다. 2009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불러온 세계 공황의 여파로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투쟁이 벌어졌다. 특히 작년에는 아랍 민주화 투쟁과 Occupy 투쟁이 일어나면서 몇 년 동안 산발적으로 지속되어온 반정부 투쟁이 정점으로 치닫는 듯했다.

권력재편 국면

하지만 올해는 국제적으로 대중투쟁이 작년처럼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세계경제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미국경제는 최근 일시적인 호조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경제의 회복은 미국의 소비력에 의존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게도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동 불안으로 인한 유가폭등의 위협이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인 낮으며 미국과 이란 양국의 집권세력 모두 선거를 앞두고 위기의 조성하여 재집권에 유리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은 유라시아 양쪽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한다는 ‘두개의 전쟁’ 노선을 폐기하고 동북아시아의 군사력을 강화하여 중국 견제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군사·경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구상은 제주도 해군기지나 MD체제 구축 등에서 나타나듯 훨씬 전부터 추진되어 왔으며 장기적으로 이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이라는 돌발변수에 더해 주변 국가들의 권력재편기를 맞은 올해 한반도 주변 정세가 단기적으로 급박해질 가능성은 낮다.
2012년은 미국·한국 뿐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동시적인 권력재편기를 맞고 있다. 때문에 각국에서 선거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대중운동이 이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작년 말 이후 미국의 Occupy 운동은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봄이 되고 메이데이가 가까워오면서 Occupy 운동 속에서 성장한 운동 단체들이 활발히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이 운동이 다시 작년과 같은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대중의 불만은 높지만 반MB전선으로 귀결

한국 역시 올해 4월 총선과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대두되고 있고 이를 반영하여 ‘정치’를 다룬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MB정권과 집권여당에 대한 정치폭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나는 꼼수다’ 열풍이 일기도 했다.
정권 교체의 열망이 높으면서도 동시에 현재의 야권 세력에 대한 기대도 그리 크지 않다. 참신한 인물 혹은 세력에 대한 갈증은 지난해 안철수 바람과 같은 해프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기존 정당들에 대한 불만이 높으나 이것이 아직까지 체제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까지 상승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대중의식의 현재적 한계인 동시에 이를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끌어나갈 주체의 부재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따라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대중의 정서는 야권연대를 압박하고 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올해 대선에서 집권세력이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집권 말기 경제 성적이 썩 좋지 않은 것도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높이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그동안 이명박 정권은 상대적으로 건실한 재정에 기대어 경기부양으로 세계적인 공황의 여파를 피해 왔으나 그것도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본격적인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인 지금도 물가불안 등 경제적 불안이 계속되고 있으며 심화된 양극화로 인해 사회구성원 다수의 생활조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은 다음 정권으로 그대로 넘어갈 것이다. 때문에 차기 정권이 대중의 불만을 체제 내로 흡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FTA라든가 복지문제 등에서 구여권과 민주당의 차이는 별로 없으며 민주당의 보수성과 무능력함에 대한 불만은 이미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촛불투쟁 등을 거치며 왼쪽으로 돌아선 대중의 정서가 노무현 말기처럼 급작스럽게 우선회할 가능성도 그리 높아 보이진 않는다.
집권세력이 바뀌고 그 무능력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면 대중의 의식은 보다 급진화 될 가능성이 높으며 새 정권에 대한 대중의 이반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민주주의적 대중운동의 부상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개인들이 연대하고 그것이 집단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작년 한 해 세계적으로 뚜렷이 나타났다.
이는 기존의 제도 언론과 제도 정치가 대중의 욕구와 이해를 표현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점자 명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9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반(反)세계화, 반전과 같은 민주주의적 요구들이 주요한 요구로 떠오른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운동들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공안정국이 조성되고 2003년부터 경기호황이 지속되면서 가라앉았다가 최근 경제공황의 여파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90년대 이후의 운동이 60·70년대보다 비조직적 성격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최근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대중운동의 흐름은 SNS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발전을 타고 더더욱 개인들의 연대라는 성격이 강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엄혹한 탄압과 사회적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국내 반정부 조직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중동이나 시민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기존의 조직운동이 노쇠화하고 제도권에 포섭되어 변혁운동으로 성격을 잃은 서구국가들에서 공히 SNS를 매개로 대중운동이 조직되는 양상이 뚜렷하게 등장했다.
세계적인 상황과 맞물려 한국에서도 SNS와 연동된 민주주의적 투쟁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이 발전한 한국의 특성상 이런 움직임은 오히려 서구보다 먼저 촛불투쟁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트위터 바람을 타고 홍대 시설관리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와 희망버스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 운동들이 어느 정도 반체제적인 성격으로 나아가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경향과 달리 한국의 경우 아직 투표격려 운동이나 기존 정당에 대한 압박으로 나타나는데 머무르고 있다. 이는 한국의 경우 경제공황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비해 경제적 불안이 그만큼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홍대 시설관리노동자 투쟁, 한진중공업, 현대차 성희롱 사건 등에서 나타나듯이 이러한 운동이 과거와 달리 노동운동 사안에 연대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이 운동은 아직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혜적인 성격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경제 침체의 후과가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 도래하고 이로 인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경제적 불안과 민주주의의 후퇴는 대중운동을 더욱 급진화 시킬 가능성이 높다.

 

 

조직노동운동의 해체는 더욱 명확해져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운동의 몰락은 명확해졌다. 전반적인 우경화 속에서 국민파의 장기집권이 이어지고 있으며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무능력함은 놀라울 정도다.
금속노조는 희망버스 운동에 밀려 한진중공업 투쟁에서 구경꾼 노릇을 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은 당연하지만 쌍용차 희망텐트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그런 운동을 만들어낼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실제로 조직노동운동의 중심인 공공·금속의 대공장들이 투쟁전선에서 이탈한지 오래됐으며 사회적으로 중간이상의 생활조건을 누리고 있는 이들의 위치 상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대규모 공공사업장과 금속사업장 일부는 이미 어용노조가 고착화되고 있으며 민주노총 소속 금속대공장들은 올해도 무파업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조직노동운동의 언저리에 있는 소규모 투쟁사업장들은 여전히 노동운동 속에 고립되어 장기 투쟁에 지쳐가고 있다.
조직노동운동의 전반적인 해체와 더불어 전투적 조합주의 운동도 몰락도 뚜렷하다. 한때 노동운동의 일각을 장악했던 전투적 조합주의는 이제 현실운동이 아니라 현장 외곽으로 밀려난 활동가들의 이데올로기적 경향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럼에도 전투적 조합주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희망텐트촌’ 투쟁을 계기로 몇몇 전투적 노동·정치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꾸린 ‘쌍용차 희망텐트촌 노동자참가단’은 처음에 Occupy 운동을 모델로 내세웠지만 실제 진행과정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노동자참가단의 활동은 쌍용차 투쟁을 주요 전선으로 제기하며 총파업을 주장하고 주요 대공장을 순회하는 등 여전히 조직노동운동의 언저리를 맴도는 활동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참가단이 주최한 집담회에 대공장 정규직의 참여는 미미했다.
물론 이런 활동이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세력의 전투적 조합주의적 경향은 오히려 대중운동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노동자참가단이 주도한 집담회의 분위기나 금속대공장 중심의 순회사업 은 참가할 수 있는 대상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사회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다양한 운동의 흐름과 접속하지 못한 채 고립될 위험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장기투쟁 사업 중심으로 진행된 희망 뚜벅이 사업이 규모에서는 오십보백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일반인들도 참여하는 열려진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과 대조적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후퇴

반MB전선의 강화, 통합진보당의 등장으로 조직노동운동에 근거한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크게 뒷걸음질 치는 형국이 되었다. 통합진보당은 이제 노동자정당이라기 보다는 부르주아 정치세력과 연합한 민주노총 관료들의 운동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오히려 진보신당은 정치적 불명확성에도 불구하고 촛불투쟁 이후 민주적 대중운동의 급진적 분파들에게 하나의 거점이 되고 있다. 출세욕에 눈먼 심상정, 노회찬의 이탈에도 독자적인 정당으로 남은 것은 어느 정도 평가할 만한 일이다. 이들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진보신당 당원의 이탈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 수년 간 대중의식의 발전이 일정하게 반영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진보신당이 의회정당으로 존재하는 한 당장 총선에서 3% 득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중의 관심은 야권연대에 쏠려있는 현실에서 진보신당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투표에서는 야권연대 후보에 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진보신당이 3% 이상을 득표하여 당을 유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마나 만 여 명 규모의 당원을 유지하며 향후 대중투쟁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한 진보신당과는 달리 이보다 규모가 작은 정치단체들은 정치바람과 노동자운동의 붕괴 속에서 생존의 기로에 서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운동이 실패한 작년 하반기부터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몇몇 소규모 단체들에서 총선이나 선거에 대한 대응이 제기되었다가 모두 내홍을 겪은 듯하다. 늘 하던 대로 대중투쟁으로 부르주아 선거를 돌파하자는 구호가 이제는 공문구라는 것이 뚜렷해진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무언가 의미 있는 변화가 있고 그것을 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답답함과 조급함이 뭔가 다른 돌파구를 찾는 데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표면적으로 이런 움직임들은 현장에서의 전투적 조합주의에 머물렀던 과거에 비해 한 걸음 전진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지난 몇 년 동안 이 단체들이 추진하던 통합운동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기반하고 있는 운동의 쇠락으로부터 나타나는 퇴행적 양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현실적 가능성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이런 논의들은 통합운동과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들이 선거 정책으로 내놓고 있는 내용들이 아직도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요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문제이다.
조직노동운동이 포괄하는 영역에서 대중운동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거나 대중운동이 등장할 가능성의 희박한 현실에서 전투적 조합주의와 단절하지 못한 채 여기에 집착하는 태도는 현실적인 대중운동으로부터 고립된 폐쇄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집단으로 퇴락하거나 “전투적”이라는 포장지마저 떨어진 조합주의 운동으로 빠져 들어가게 될 공산이 크다.

 

 

 

미래를 바라보며 대중운동과 접속해야

2009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는 대중투쟁은 더 큰 규모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전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지난 몇 십 년 간 세계, 특히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조직노동운동이 제도적으로 포섭되어 혁명성을 잃어온 반면 불안정 노동자층은 꾸준히 늘고 그들의 불만 역시 증대하고 있다. 한국 역시 90년대 중반이후 제조업의 고용은 줄어들고 있으며 흔히 비정규직이라고 불리는 불안정 노동자층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소수의 대공장 정규직이 아니라 조직되지 않고 노동자라는 정체성도 갖지 못한 채 무정형의 운동으로 자유주의 세력에 이끌리고 있는 이들이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본격적으로 실망하게 되는 때가 오면 민주적 대중운동에 눈뜬 이들은 다양한 요구를 걸고 직접 대중운동에 나설 수 있다. 이 속에서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층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요구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이들이 전면에 나설 때 이 운동은 보다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획득하고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사회경제적 재편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운동을 정치적·이데올로기적·실천적으로 누가 대변하게 될 것인가가 미래의 운동을 좌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조합 요구 몇 개 내걸고 정치운동을 한다고 포장하는 방식으로는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대중의 불만을 조직할 수 없을 것이다. 정규직의 이해를 내세워서는 이미 정규직과 이해가 충돌하는 이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다.
이러한 투쟁의 전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비록 당분간은 부르주아 정치일정이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휘둘리겠지만 이들이 새로운 주체로 자각할 역사적 발걸음은 벌써 시작된 상황이다. 사회주의 운동은 지금부터라도 낡은 전투적 조합주의와 단절하고 이러한 새로운 주체들과 만나는 운동으로, 이들에게 다른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기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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