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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극우폭력의 현상과 그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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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극우폭력의 현상과 그 뿌리
장광열 jjagal@yahoo.co.kr
독일 검찰은 9일 외국인을 집단구타해 숨지게 한 프랑크 미트바우어(16) 등 신나치주의 청소년 3명을 살인죄로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 6월11일 옛동독지역 데사우에서 모잠비크 출신 아드리아노(39)를 무차별 구타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극우파의 폭력이 종잡을 수 없이 번지는 악성 종양처럼 독일 전역을 위협하고 있다.

◇ 확산되는 극우폭력bm=지난 8주 동안 극우폭력으로 4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중경상자가 생겼으며, 망명인 기숙사 방화, 유대인 공동묘지 파괴시도 등이 행해졌다. 지난달 29일 아이젠나흐에서는 20명의 극우파 청년들이 두명의 아프리카인을 몰이사냥하며 괴롭혔다.

1990년 독일 통일 직후 옛동독지역 소도시 에버발트에서 앙골라 출신 노동자가 극우파의 몰매로 살해당한 사건과 그 이후 이어진 망명인 기숙사 방화사건으로 극우파문제는 동독의 현상인 것으로 간주돼왔다. 통일에 따른 사회 격변과 높은 실업률로 비전을 잃은 동독 청년들이 불만을 외국인 증오로 해소한다는 것이 당시 전문가들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이제 극우폭력은 동독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달 27일 옛서독지역 뒤셀도르프 전철역에 설치된 폭발물로 대부분 러시아계 유대인인 9명의 외국인노동자가 중경상을 입자 독일 전역은 화들짝 놀랐다.

◇ 대응=극우폭력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자 정계에 비상경보가 걸렸다.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극우파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오토 실리 연방 내무장관은 폭력에 짓밟히는 외국인을 외면하지 말자며 시민들에게 용기를 호소하고 나섰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및 주요 정치인들은 극우폭력 단속강화책으로 연방국경수비군 동원을 검토 중이며, 바이에른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구체적인 극우정당인 독일민족민주당(NPD)의 불법화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신나치주의자를 모든 공직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범죄행위를 저지른 극우파에 대한 처벌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민주당 불법화 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극우정당을 불법화할 경우 이들이 지하로 숨어들어 통제가 어려워지고 더욱 극렬한 폭력을 행사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경악과 공포'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로 극우테러를 다룬 시사주간지 <디차이트>는 민족민주당 금지로 극우폭력이 근절되기에는 이들의 최근 조직형태가 너무 유동적이고 복합적이라고 지적했다. 극우폭력은 중앙조직에 의해 계획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충동적이고 돌발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 극우파의 뿌리와 실태=극우파는 90년대 중반에 인가된 각종 극우단체가 불법화된 뒤, 폭력을 일삼는 스킨헤드와 결합해 이른바 동우회를 곳곳에 결성했다. 동우회는 공식적으로 인가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극우파의 동우회에 가입하려면 보증인은 물론 특별한 의식과 힘겨루기를 통과해야 한다.

전국에 산재한 약 150개의 동우회(총 회원 약 2200명)가 극우폭력의 주역이다. 이들은 민족민주당과는 공생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민족민주당이 공식적인 시위를 추진하고 홍보물을 제공하면, 극우 동우회원들은 거리에서 `실질적인 활동'을 벌인다. 대부분의 스킨헤드들은 민족민주당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지만 당원은 아니다.

극우파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인터넷과 스킨헤드음악(나치록)이다. 스킨 시디를 통신판매하는 회사가 50개, 신나치 밴드는 약 100개에 이른다. 세계적인 활동망을 확보하고 있는 `피와 명예'라는 신나치 동우회는 스킨헤드 콘서트 조직에 핵심을 두고 있다. `사이클론B' `게슈타포' `터키인 사냥꾼' 등 섬짓한 이름을 단 스킨밴드의 콘서트는 갈색(극우를 상징하는 색) 물이 아직 들지 않는 청소년들을 낚는 터전이기도 하다.

극우파들의 이데올로기는 나치시대의 민족혁명주의와 동일하여 `순수하고 건전한 독일 민족국가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유색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편협한 세계관에 비춰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공격 대상이 된다. 좌파, 동성애자, 장애인, 진보파, 노숙자, 비독일적인 문화, 심지어 오스트하르츠에서는 미혼모에게까지 폭력을 가했다.

이들의 유혹에 휘말리는 동독인들 가운데는 하층 소시민이나 실업자 등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많다. 이들은 뚜렷한 이념보다는 극우조직의 끈끈한 연대감에 취한다. 그러나 철부지들의 소행이라고 간주하기에는 극우폭력은 너무 극렬하며 정치적으로도 위협적이다.
<한겨레 프랑크푸르트/양한주 통신원 hanju.yang@t-online.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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