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129호/동향]독일:반핵운동을 배반한 녹색당

 
    뉴스 > 전체기사
[129호/동향]독일:반핵운동을 배반한 녹색당
picis picis@jinbo.net
반핵운동을 배반한 녹색당
[주간녹색좌파] 4/11 짐 그린

3월 26-29일 동안 있은 프랑스에서 독일 도시 고어레벤으로의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수송을 지지함으로써 독일 녹색당은 자신의 원래 강령의 네 원칙-환경 지속가능성, 탈무
장, 사회정의, 민주주의-을 저버렸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지만
전선에 서 있다"는 그들의 주문(呪文)에 내재하는 보수주의와 기회주의 뿐이다.

프랑스 라아그에 있는 원자력기업 코제마(Cogema)사의 재처리 공장에서 기차와 트럭
에 실린 여섯 개의 '캐스터(Castor, 방사능 물질 저장·수송용 용기-옮긴이)' 컨테이너-
각 캐스터에는 원자로에서 사용후 연료의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결정(結晶)화된 폐기
물 10톤씩이 들어 있다-는 소금 광산이 '임시' 저장소(재활용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이
곳에 반영구적으로 보관된다-옮긴이)로 사용되고 있는 고어레벤으로 운송되었다.
핵폐기물의 수송 몇주 전 동안 수만 명의 시위대가 독일 전역에서 일련의 시위에 착
수하였다. 폐기물 수송 열차의 진행로를 따라 수천 명이 시위를 벌였으며 철로에서 연
좌농성을 벌이고 시멘트를 붓고 철로에 쇠사슬로 몸을 묶는 등 열차 운송을 지연시켰
다. 진압 작전에는 2만여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으며 수천 명의 시위대가 단넨베르크 역
으로 진입을 시도하자 물대포가 사용되기도 했다.
독일에서 나온 사용후 연료와 재처리 폐기물 수천 톤이 여전이 라아그에 남아있으며 독
일과 프랑스 정부는 매년 두 차례의 수송을 계획하고 있다.
여섯 개의 캐스터 폐기물 컨테이너가 종착지에 도착하긴 했지만 독일 정부가 부담한
정치적, 재정적 비용-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 3월 28일자에 따르면 경찰 작전 비용
이 천만 마르크(930만 달러) 이상 소요되었다고 한다-으로 인해 앞으로의 수송이 위태
롭게 되었다.
고어레벤으로 재처리 폐기물을 이송한 것은 독일 원자력 기업들이 직면한 문제, 즉
한계에 다다른 사용후 연료 저장 능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방편이었다.
코제마사 또한 독일 원자력 기업들의 동기와 유사하다. 앞으로 운영을 계속하기 위해
서는 재처리 폐기물을 없애야만 하는 것이다.
고어레벤으로 폐기물을 수송한 결과 독일 원자력 기업들은 얼마 안가 코제마로 사용
후 연료를 다시 수송하게 될 것이다.
폐기물 수송에 대한 대중적 반대는 환경 및 공중보건 상의 위험에 기인하는 것이다.
1998년, 캐스터 컨테이너가 10여년 동안 유럽 전역을 왔다갔다 하면서 허용치보다 많은
방사능을 방출해왔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많은 경우에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
가 권고하는 방사능 허용치를 초과했으며 때로는 100배를 넘어서기도 했다.
오염 스캔들과 이에 대한 대중적 반응의 결과로 당시 기민연(CDU) 정부는 폐기물
수송을 계속할 수 없었으며 캐스터의 철도 운송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3월 26-29일
의 캐스터 수송은 98년 이래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세계에너지정보서비스(WISE)의 2월 16일자 뉴스 성명에서 요헨 슈타이는 다음과 같
이 말하고 있다. "지금 수송 금지가 종언을 고하고 있지만, 현 환경장관이 녹색당 당원
증을 갖고 있다고 해서 캐스터가 이제 보다 안전해졌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터무니없는 합의'

독일 녹색당은 1998년 후반 사회민주당의 하위 파트너로 연정에 참여하였다. 녹색당
과 사민당 모두 원자력의 단계적 축소를 주창했으며 정부 구성 100일 안에 이를 입법
화하겠다고 약속했었다.
600여일이 지난 작년 6월 14일 사민당-녹색당 정부는 입법화는커녕 원자력기업들과 '합
의'에 도달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 녹색당의 상원의원 봅 브라운은 이 합의가 '커다란 승리'라고 환호했
지만 대부분의 논평가들은 이를 원자력기업들의 커다란 승리로 간주하면서 '터무니없는
합의'라고 조롱하였다. 이 합의에 힘입어 독일 원자력기업들의 주가는 4-5% 상승하였
다.
과거에 독일 녹색당은 "원자력 종식을 위한 분명한 일정표"를 요구했었다. 그러나 6
월 14일의 합의는 '단계적 축소'를 위한 시간표를 명기하기는커녕 19기의 원자로 모두
에 대해, 32년인 원자로의 평균수명에 상응하는 생산치를 설정하였다.
녹색당은 협상 과정에서 2002년 총선 전까지 가장 노후한 2기의 원자로를 폐쇄하라
는 요구를 빼버렸다. 녹색당과 사민당 지도자들은 또한 핵연료에 대한 투입세 신설이라
는 녹색당의 제안을 기각시켰다.
1999년 1월 사민당-녹색당 정부는 2000년 1월 1일부터 독일의 사용후 연료 재처리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녹색당은 이 결정이 "핵에너지의 180도 선회"라며 환호하였다.
그러나 이는 결국 또다른 거짓 약속임이 드러났다. 이번 합의로 2005년 7월 1일까지 재
처리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민당-녹색당 정부는 입법을 통해서든, 프랑스와 영국의 재처리 공장들로 사용후 연
료를 수송하지 못하도록 금지함으로써든 원자력의 신속한 종식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
러나 정부는 오히려 합의를 선택했으며 그 결과 프랑스와 영국으로 사용후 연료를 수
송하고 재처리 폐기물을 독일로 되가져오는 과정을 재개하고 있다.
3월 10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당대회 표결에서 녹색당의 압도적 다수는 3월 26-29
일의 폐기물 수송 저지에 반대하였다. 당대회에서 통과된 결의안으로 인해 녹색당은
"원자력 합의에 반하는 행동이나 시위, 봉쇄"를 구축하거나 지지할 수 없었다.
반핵운동에 대한 녹색당의 배반은 환경 지속가능성, 탈무장, 사회정의, 민주주의라는
자신들이 선언한 원칙을 배신한 것 가운데 최근의 일에 불과하다.
녹색당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녹색으로 치장하는 놀랄만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1999년 2월, 독일 제2의 은행의 수석 경제학자인 마르틴 후프너는 녹색당이 "수많은 영
역에서 경제적 합리성의 목소리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프너는 녹색당이 경제 정책 및 사회 정책에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고 있
다고 말했다. 그는 "세대간 평등"-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허황된 말들 가운
데 하나이다-과 관련하여 정당화된, 녹색당의 연금 증대에 대한 반대를 예로 들었다. 녹
색당은 연금을 확대함으로써 미래 세대에 경제적 부담을 더 지우는 건 현명치 못한 처
사라고 주장했다.
1999년에 도입된 연료세 및 전기세 증가는 "환경세"라고 선전되었지만, 기업들은 크
게 감면시켜주면서 저소득층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녹색당은 국가 지출의 대량 삭
감-연금생활자와 실업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을 지지해왔으며 절약, 변통성,
자율 등과 같은 녹색 캐치프레이즈로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탈무장과 비(非)-비폭력
탈무장과 비폭력이라는 녹색당의 원칙 또한 탈선을 거듭하고 있다. 1998년 선거 직전
에 발표한 녹색당의 선거강령은 "정치의 탈군사화-군대의 폐지와 나토 해체-"를 목표로
선언했었다.
선거 몇달 후 녹색당은 세르비아와 코소보에 대한 나토의 군사공세를 지지하였다. 아
이러니하게도 1999년, 몇몇 녹색당 인사들은 사민당으로부터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겠
다는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치뤄야 할 필수적인 대가라고 당의 군사주의를 옹호했었
다.
일부 녹색당 인사들은 또한 1998년 이후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을 지지하였다. 한
예로 지난 2월 외무장관이자 녹색당 지도자인 요시카 피셔는 미국과 영국의 폭격을 비
난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정부는 그들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녹색당은 또한 현재 군사계획참모부와 정치안보위원회를 신설하고 6만여 명으로 구
성된 강력한 '신속대응군' 창설을 준비 중인 유럽연합의 군국주의화를 지지하고 있다.
코소보와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의 폭격이 끝나고 석 달이 지난 후 녹색당 의원단 방
위 대변인인 앙겔리카 베어는 문서 하나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녀는 독일 군대가 "기
동성과 기술, 작전상의 우월성, 갱신된 지도력을 통한 규율, 다국적, 국제적 작전들에서
의 유연한 배치 능력 등"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출(庶出)로 간주되는 녹색당의 개념들은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라는 제목
의 베어의 문서 전체에 걸쳐 맹렬하게 비난받고 있다. 그녀의 문서는 녹색당의 절약과
변통성을 독일과 유럽연합, 나토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이해를 좇을 수 있는 "높은 작전수행 능력과 보다 비용효율적인 군대"에 대한 지지로 변환시키고 있다.
베어에게 "해방"이란 독일 군대를 잠에서 깨우는 것을 뜻한다. "구조적 개혁의 불충
분함으로 말미암아 군대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로부
터 해방되어야만 한다."
1999년 5월 13일 열린 당대회에서 피셔는 녹색당의 마지막 원칙인 민주주의에 관해
이렇게 언급했다. "여러분이 시한 없이 [세르비아와 코소보에 대한
나토의] 폭격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라고 호소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킬 경우 저는 이에 따
르지 않을 것입니다."독일 연방선거는 내년에 치러진다. 1998년 연방 선거 이래 많은
주 및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의 득표율이 하락했으며, 원내 진출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5%를 얻을지조차도 불확실하다.
녹색당이 원내 진출에 실패하는 게 독일인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퇴보를 의미
할런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녹색당은 -풍력 에너지의 상당한 성장 등- 몇몇 성과를
획득했다. 그러나 -세르비아 전쟁 개입과 원자력 정책의 대실패 등과 같은- 일련의 중
요한 이슈들에서 녹색당은 진보운동을 적극적으로 가로막아왔다.
녹색당의 대차대조표는 부정적인 면이 압도적이며 지배계급의 품에 안겨버린 당의
정치적 궤적 또한 분명하다. 독일사회생태연구소(GISE)의 페터 슈타우덴마이어의 말을
빌자면, "과거에 활동가들이 이끌던 '당에 반대하는 당'이 풀뿌리운동과의 연계를 상실
한 채 경력을 좇는 직업 정치인들의 사교집단으로 움츠러들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