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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은 왜 보수정당에게 표를 던질까?

왜 계급대로 투표 안하냔 말이다.

 

 

서민들은 왜 보수정당에게 표를 던질까?



[프레시안 여정민/기자]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그렇게 큰 해를 끼치는 부시에게 투표할 수 있는 거지요?"
 
  사람들은 투표장에서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던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기 마련이라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다. 그러나 실제 선거 결과는 때때로 전혀 엉뚱하게 나타난다.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사람들
 
  2003년 주지사 선거가 한창이던 캘리포니아주. 당시 현임 주지사였던 그레이 데이비스(민주당) 후보와 새롭게 등장한 아널드 슈워제네거(공화당) 후보가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노동조합들은 현 주지사였던 데이비스가 슈워제네거보다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좋은 정책을 내걸고 있다고 홍보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조합원들은 "데이비스와 슈워제네거 중 누구의 입장이 당신에게 더 유리한가?"는 질문에 "데이비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투표할 예정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엉뚱하게도 "슈워제네거"라는 대답이 똑같은 사람들로부터 튀어나왔다. 결국 승리는 슈워제네거의 것이었다.
 
  비슷한 일은 세계 곳곳에서 종종 일어난다. 한국만 하더라도 그렇다. 서민들은 노동자ㆍ농민이나 빈민층보다는 재벌에 더 친화적인 정당에 자신의 표를 던진다. 쌀 개방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성난 농민들은 투표일이 되면 쌀 개방을 주도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표를 던지고, 늘 갑작스런 해고의 공포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을 더욱 늘리자는 정당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한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그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삼인 펴냄)에서 이 당혹스런 현상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 이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정체성에 투표합니다."
 
  또 저자는 번번이 보수세력에 맞서 패배하는 미국의 진보 세력의 패인에 대해 그들이 굳건하게 믿고 있는 '신화'의 오류를 지적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신화를 믿고 있다는 것. "사람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이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그들은 옳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가정은 단지 실재하지 않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진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에 부합해야 합니다. 만약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버려집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 들어가면서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금은 '악'이고, 그것을 없애주는 것이야말로 '선'이라는 이 공화당의 감세 프레임을 상징하는 용어는 곧 민주당과 <뉴욕타임스>까지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미국의 공론을 지배하게 됐다.
 
  프레임, 다시 말해 '생각의 틀'이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방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우리는 바로 최근 소위 '황우석 사태'를 통해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황우석과 그의 논문을 둘러싼 진실공방의 결론이 내려진 다음에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한국사회는 아직까지 홍역을 앓고 있다.
 
  "우리는 사실을 접할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 그것이 의미를 지니려면 그것은 우리 두뇌에 존재하는 시냅스와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은 우리 머릿속으로 들어왔다가 그대로 밖으로 나갑니다. 그것은 우리 귀에 아예 안 들어오거나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아니면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집니다. 그러고는 그것이 비합리적이거나 미쳤거나 어리석은 것이라고 딱지를 붙여 버립니다."
 
  저자는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걸 기억하라"고 충고한다. 상대 후보의 거짓말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한 길 사람 속'이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해답은 진실이 튕겨져 나가지 않도록 해주는 프레임에 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코끼리를 떠올려야 한다"
 
  저자는 버클리 대학에서 '인지과학 입문' 수업을 진행할 때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내 준 과제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과제에 성공한 학생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코끼리'와 같은 단어는 그에 상응하는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어떤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는 크고, 펄럭이는 귀와 긴 코가 있고, 서커스와 연관되어 있고… 등이지요. 이 단어는 그러한 프레임에 의거하여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
 
  미국의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한 '코끼리'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미국의 진보세력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이유를 설명함과 동시에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말하고 있다. 하나로 단결되어 '엄격한 아버지' 모델을 표방하는 공화당에 맞서 제각기 자신들의 관심사가 가장 진보적이라 믿는 '자상한 부모'를 지향하는 미국의 진보 진영이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를 존중하라. 프레임을 재구성함으로써 대응하라. 가치의 차원에서 사고하고 발언하라. 자신이 믿는 바를 말하라."
 
  어설픈 눈속임을 통해 자신의 정책이 유권자들의 이익과 동일한 것인 것처럼 위장하지 말고, 상대방 후보의 정책에 대한 '깎아내리기'나 '진실 폭로'가 아닌 자신만의 가치관과 프레임을 통해 스스로 믿는 바를 말하라는 저자의 충고는 5.31 지방선거를 앞둔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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