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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라도 사투리, 그 찰진 맛좀 볼텨?"

 

즌라도 사투리, 그 찰진 맛좀 볼텨?"
[서평] 전라도 사투리 실감나게 소개한 <전라도 우리 탯말>
텍스트만보기   안소민(bori1219) 기자   
▲ <전라도 우리 탯말> 겉그림
ⓒ 소금나무
그간 탯말(사투리)의 중요성이나 활용을 적극 주장하는 책들은 많이 나왔으나 정작 그것 자체의 모양과 쓰임에 대해서 근접한 책은 드물었다. 기껏해야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 정도가 될까. 간혹 생소한 탯말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해당 지역 토박이들이나 주위 어른들에게 물어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감으로 지레짐작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마디로 탯말의 뜻과 의미를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변변한 길라잡이 하나 없었던 게 우리네 현실.

이러한 분위기에 이번에 출간된 <전라도 우리 탯말>은 전라도 탯말에 궁금증을 가졌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희소식임이 분명하다. 탯말을 연구하는 모임인 '탯말두레' 회원들이 지난 1년여동안 발품을 들이면서 모은 전라도의 주옥같은 탯말이 하나의 결실로 태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사전에서만 존재하는 죽은 언어로서가 아닌 실생활에서 부대끼고 팔딱팔딱 살아숨쉬는 생명력있는 언어로서의 탯말 모음집인 것이다. 봄날 산자락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이름도 없고 화려하지 않지만 원시적 순수함을 가득 품은 들꽃을 하나하나 거두는 마음으로 전라도 탯말을 수집했을 저자의 정성어린 노고가 그대로 가슴에 전달되는 책이기도 하다.

즌라도 사투리요? 일단 한번 맛보시랑께요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이 참 재미있다. 전라도 탯말의 성격과 특징, 발달이나 변천사와 같이 어렵고 머리 아픈 이론은 건너뛰고 곧바로 한상 가득 푸짐한 잔칫상을 벌려놓듯 전라도 탯말의 성찬을 '턱허니' 보여준다. 일단 맛부터 보라는 것이다. 말맛은 직접 말하고 읽어보아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입말일 때야 더 말할나위 없다. 이 책은 따라서 소리 내어 읽어야 제 맛이다.

제1장 '문학 작품속의 우리 탯말'에서는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우뚝 솟은 두 작품,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최명희의 <혼불>에서 전라도 탯말이 어떻게 쓰였고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살펴보았다. 그 외 전라도 맛 말이 구성지게 드러난 김영랑 시인의 작품 몇 편과 차범석의 '옥단어'에 나타난 전라도 탯말을 통해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작품의 읽는 기쁨을 한층 더 해준다.

2장 '탯말 예화'는 전라도 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날 법한 소박하고 재미있는 풍경을 드라마 형식으로 꾸민 것이다. 걸쭉하고 구수한 전라도 탯말로 쓰인 이 단락은 반드시 소리 내어 장단과 고저를 알맞게 구사하며 읽어야한다. 그 밑에는 전라도 탯말에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부가로 설명을 해놓았다.

여기에 중간중간 전라도 탯말의 특징도 함께 소개해놓았다. 음운현상과 같은 언어학적 특성이야 그만두고 전체적인 특징을 크게 잘라보면 '강조'(허벌나게, 겁나게, 징허게, 환장하게, 당최 등)의 표현의 다양성과 걸쭉한 입담 표현이 그 대표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3장 '탯말 독해'에서는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잊혀져가는 탯말들을 발굴해내어 소개했다. '독해'라는 작업이 꼭 필요할 만큼 생소하고 낯선 낱말들이 많다. 전라도 토박이인 기자가 읽어보아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 그러나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 조상들이 흔하게 쓰던 우리말이다.

술취해서 아모에게나 개기던 짓꺼리가 개덕도 안나냐
(독해) -> 술취해서 아무에게나 시비 걸던 짓거리가 생각도 안나냐

공거래 장시가 고벵이에 앙근 포리를 쫓고 있다
(독해> -> 소의 내장과 뼈의 장사가 소 무릎뼈에 앉은 파리를 쫓고 있다

쪼깐 해찰하믄 져태있는 것도 돔바간에 징해서 못살긋소
(독해) ->조금 정신 팔면 곁에 있는 것도 훔쳐가니까 징그러워서 못살겠소


이쯤이면 아무리 전라도 토박이라도 독해가 필요한 지경이다. 4장 '탯말 사전'에는 이러한 탯말 초보자를 위한 전라도 탯말이 ㄱ,ㄴ,ㄷ 순서로 등재되어있다. 가끔 모르는 전라도 탯말을 마주했을 때 찾아보기도 쉽고 그냥 책읽듯 한번 쭉 훑어내려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탯말, 우리 말살이의 원천

책을 다 읽고나서 독자는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봉착한다. 왜, 뭣 때문에 이렇게 고집스럽게 탯말을 보존해야 하는 것일까. 그나저나 '탯말'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이 책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책뒤에' 잘 나타나 있다.

'탯말'이란 단어는 우리 '탯말두레'가 만든 신조어로서 각 지방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언, 이른바 어머니의 태속에 있을 때부터 듣고 배우며 사용해온 사투리를 말한다. 따라서 이 방언이야말로 그 지방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혼이 담겨있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고향이 정해지며 그 뱃속에서 어머니가 들려주시는 고향의 말을 듣고 자란다. 따라서 탯줄을 달고 배우기 시작한 말, 그것이 탯말이다. 고향의 언어이자 어머니의 언어인 것이다.(329쪽)

KBS <해피투게더 프랜즈>란 프로그램이 있다. 연예인들의 어릴 적 친구들을 찾는 것인데 방송에선 한결같이 표준어를 쓰던 연예인들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구수한 사투리를 사용한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푸근하게 만든다.

비단 그뿐이랴.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났을 때 절로 나오는 사투리는 멀고 힘든 나그네 길에서 돌아와 제 집에 안긴 듯한 편안함을 준다. 이것이야말로 탯말이 지니고 있는 가장 강한 힘이며 그것을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까닭이 아닐까.

"유난히 구성지고 표현이 풍부한 전라도 탯말"
[인터뷰] 탯말두레 간사 박원석

이 책은 '탯말두레'의 회원 5명이 주축이 되어 쓴 것이지만 더욱 엄밀히 말한다면 오늘도 전라도 시골 한곳을 묵묵히 지키는 순박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탯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누리꾼(네티즌)들의 공동작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제보와 가르침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은 그 비중을 짐작케 한다.

이 책을 쓴 5인의 지은이는 한새암('탯말두레' 회장), 조희범(시인), 최병두(시인), 박원석(방송작가), 문틈 (시인)이다. 이중 탯말두레의 간사직을 맡고 있는 박원석씨와 인터뷰를 했다.

- 왜 하필 전라도인가?
ⓒ 박원석
"우선 이 책을 쓴 저자들이 모두 전라도 출신이다.(웃음) 또한 전라도는 탯말의 고향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감성이 유난히 뛰어난데 이는 판소리나 그 밖의 노동요나 문학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가사문학이 태동한 곳도 전라도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라도 탯말이 한때 우리 현대사에서 왜곡되고 은폐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전라도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탯말이 점차 애써 잊혀지고 자취를 감추게 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러나 각 지방의 탯말을 연구하고 발굴하는 과정에서 그것은 비단 전라도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다."

- 자료수집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어떤 방법으로 취재를 했나?
"전라도의 판소리와 민요는 물론, 토박이말 사전과 여러 인터넷 사이트나 홈페이지, 블로그 등을 오가며 정리를 했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수시로 광주와 목포, 화순 등지를 오가며 나이 드신 어른들을 만나 수집했고 향우회와 동창회 등 고향사람들과 만나 자리를 함께하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누리꾼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 내 고향이 전남 보성인데 보성과 벌교, 해남은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그 언어가 전부 다르다. 이러한 미묘하고 세세한 차이를 네티즌들이 지적해주었고 또 나도 미처 모르고 있던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아마 미처 발굴하지 못한 탯말을 수집하는 작업에도 누리꾼들의 역할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 이러한 시도가 자칫 지역감정을 조장하거나 시대역행적이라는 우려는 없는지?
"작은 나라에서 탯말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고 마뜩해할 지 모르지만 지역특산물이 특산품으로 사랑받는 것처럼 탯말 또한 그런 맥락에서도 이해되고 존중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방언'이니 '사투리'니 하는 것은 중앙 집권적 사고체계의 소산이다. 서울말은 표준어이고 그 밖의 말은 사투리라는 사고를 전화시켜야 할 때다."

-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경상도 탯말을 위한 책을 준비 중이다. 그를 위해 경상북도 안동과 대구, 밀양 등지의 탯말과 문화를 연구 중이다. 특히 안동의 제례문화는 제주 사투리와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기에 충분한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경상도 뿐 아니라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탯말에 대한 책도 준비할 예정이다.

또한 5월 9일에는 표준어 일변도의 음운정책에 반대하는 헌법소원을 신청할 예정이다. 그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우리 민족의 숨결과 얼이 담겨있는 탯말을 사용함으로써 우리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한편 우리의 언어생활이 보다 풍성해지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전라도 우리 탯말/ 한새암, 최병두, 조희범, 박원석, 문틈 지음/ 도서출판 소금나무/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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