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킹 케이스
1990년대 초 내가 유럽 체재 중 나를 찾아 온 고교 동창녀석이 유럽서 수입할 만한 여성 제품이 없겠느냐고 갑작스레 묻는다. 당시 한국의 원화가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을 때이므로 수출만 하던 무역업자들이 수입으로 방향을 선회하던 중이고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지만 당시 해운물류 다국적 기업에 있던 나는 여러 방면의 업자들을 두루 알고 있었으니 내게 질문을 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질문에 마땅히 대답을 못하다가, 며칠 후 비 오는 파리 길거리에서 앞서 걷던 파리 아가씨의 종아리를 보자 번개같은 아이디어가 떠 올라 즉시 친구에게 전화하여, 프랑스제나 이태리제 여성 스타킹을 수입하여 보라고 권유하였다.
가격은 물론 프랑스제 여성 스타킹이 적어도 수배 비싸다. 그러나 십수 년전 한국의 비너스 등 여성 스타킹은 너무 댄싱이 잘 나서 깔끔한 아가씨들은 핸드백 속에 서너 개를 지참하고 댄싱이 가면 재빨리 화장실로 가 스타킹을 갈아 신곤 하였고, 그러지 못하는 아가씨들은 댄싱이 가서 지저분해 보이는 스타킹을 신은 채 걷고 있는 아가씨들이 길거리에 수도 없이 많았던 반면, 파리에서는 댄싱간 스타킹을 신고 다니는 아가씨들을 거의 발견하지 못해 뭔가 비밀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친구에게 알아보라고 권유한 것이었다.
친구는 내게 프랑스에서 가장 대중적인 여성 스타킹을 보내 달라고 하고, 국내의 제품과 비교해본 결과 우선 스타킹 만드는 실부터 차이가 있고 프랑스제가 직조의 밀도가 수배 더 조밀한데 커다란 기술의 차이는 아니지만 가격의 차이는 확실히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과연 수입하여 팔릴 것인지는 확신이 안 간다고 대답한다.
결론을 말하면 그 친구는 결국 수입하여 크게 히트를 쳤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후 그 친구가 국내 스타킹 시장에서 어느 정도 점유율을 기록하자, 국내 제조업자들이 수입산 보다 가격이 싸면서도 질긴 새로운 제품을 선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제 다른 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하여 주었다. 제조자가 아닌 수입자는 순발력있게 다른 시장으로 넘어 갈 수 있다.
그런데 당시 비너스 스타킹을 만들던 남영 나일론이 기술이 없어서 프랑스제 스타킹만큼 질긴 스타킹을 만들지 못한 것인가?
나중에 국내에 들어와서 남영 나일론 간부에게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모든 품질 개발이 회사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몬 말인고 하니, 스타킹의 품질이 좋아져서 하루에 두세 개씩 스타킹을 갈아 신던 아가씨들이, 예로서 일주일에 한개씩 갈아 신는다면, 품질 향상으로 인해 남영 나일론은 오히려 이익상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나 소비자들에게는 이익이 된다. 당시 국내 스타킹 시장은 비비안의 남영 나일론과 비너스의 신영 회사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경우 두 회사는 서로 타협하여 고급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아이디어로 외국 제품이 수입이 되어 시장을 잠식해 오니, 그때서야 국내 시장을 독과점하였던 두 회사는 수십 년간 스타킹을 저질로 묶어 놓고 아가씨들의 지갑을 훔쳐오던 철밥통을 포기하고, 품질향상을 하고 대신 여성용 속옷 시장에서 새로운 제품을 선 보여 이익을 보전하는 것을 시도한 것이다.
독과점은 이런 폐해를 낳으며, 여담으로 필자는 국내 여성 소비자들에게 표창장을 받을 만큼 뜻 깊은 일을 했는데, 누가 여성 단체에 전화 좀 해 주었으면 좋겠다.....^^
면도날과 가위
국내의 절삭도구 체계적 생산 시설을 갖춘 제조업체는 도루코인가 하는 회사가 전체 점유율의 60%이상을 점하고 있으며, 그 회사도 면도날 하나로 수십 년을 울궈먹다 럭키 드봉의 생활 사업부가 질레트를 수입 판매하면서 가정용으로는 잊혀졌으나 일회용 면도칼로 모텔등지의 덕용 제품으로 주력을 옮겼다.
이 회사의 문제점도 안정된 시장을 가진 제품을 변화시키지 않고 더 이상의 개발을 포기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출은 아예 꿈도 안 꾼다. 세계 시장으로 도전을 거의 하지 않고 좁은 국내 시장에서 안주하는 형태이니 기술을 가지고도 도전하지 않는 케이스이다.
유누스의 가위론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국내 시장에서 1년에 한개씩 바꾸어야 하는 가위가 팔리고 있다면 그 회사가 품질을 향상하여 십년에 한개씩 팔리는 가위를 생산할 것 같은가? 절대 NO 이다. 국내의 가위 제조업체는 십년간 쓸 수 있는 가위를 제조하여 그 것이 팔린다면 판매수요가 줄어들어 더 큰 시장을 향해 수출에 성공하지 않으면 망해 버리고 만다는 결론이 된다.
일제 제조업체는 이미 세계 시장에서 판로를 가지고 있는 업체일 것이다. 그 경우 국내 제조업체들은 품질이 향상된 제품을 들고도, 이미 알려진 브랜드들이 선점한 시장에서 싸워야 하는데, 많은 경우 그 것이 회사에 이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확보하고 있는 기술도 제품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런 상황은 시장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며, 그 것은 회사 경영진의 철학과 시장 환경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다른 경우
반면 777이라는 손톱깍기 제조 회사는 이미 그 제품으로 세계를 석권하였다. 세계 시장에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러시아산 초음파 진찰기 경우이다. 러시아에서 초음파 진료기를 만드는 회사에 근무하는 러시아 친구가 내게 한국의 의료기 업자를 소개해 달라고 하여 소개하여 내가 한 친구를 소개하였으나, 그 친구는 몇달 시도 해보더니 시장성 없다고 이야기한다.
성능과 해상도는 국내산보다 훨씬 뛰어나고 가격도 저렴하나, 러시아제 잠수함 소나 기술을 응용하여 만들었다는 그 제품은 우선 너무 크고 무거우며 사용하기 번거롭고 성능은 의료용으로는 너무 요구성능 이상이라 그다지 많이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싸고 성능 좋은 제품이 반드시 시장서 성공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제품의 상업성에 관한 문제이다. 경제성과 상업성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맺는 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느 나라에서 시장에서 현재 일반적으로 팔리는 제품의 수준이 그 나라의 그 분야 기술 수준을 나타내 주는 척도는 결코 아니라고 하는 것이고, 유누스에게 불만스러운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 옳은 것이 많이 있는 반면, 예로서 드는 것들이 너무 엉뚱하고 오류가 많은데다, 그의 광팬들이 너무 집요하여 별로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그의 절삭공구 이야기나 베아링 이야기는 좀 그만 하였으면 좋겠다. 필자도 베아링에 대해서 할말은 많이 있으나 너무 지엽적이라서 자제하고 싶다.
또 한가지 여러가지 경제 현상을 일반화한 모델로는 실제 시장에서 벌어지는 실물 경제의 변화무상하고 백태만상인 경제 현상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제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시장서 성공하겠지만, 상업성을 기준하여 경제이론에 접목하는 척도는 현재로서는 없다.
따라서 경제학의 이론은 실제 현상에서는 거의 오차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프에서 추구하는 시사성 있는 세상평가와 분석에서 너무 이론적이고 교조적인 가치 기준에 얽매일 필요는 없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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