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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포기 현장가보니…"우리가 매국노냐"되레 큰소리

비겁, 비굴한 쌩 양아치들... 조용히 포기하면 됐지 뭔 말이 많은지...

부동산 투기하기도 여의치 않은데 뭐하러 대한민국에 사냐

 

 

국적포기 현장가보니…"우리가 매국노냐"되레 큰소리
[세계일보 2005-05-13 18:51]
지난 12일 서울 양천구 목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내 국적업무출장소는 온종일 시끌벅적했다. 출장소는 이른 아침부터 붐볐다. 지난 4일 새 국적법이 통과되기 전만 해도 방문객이 뜸해 넉넉했던 20평 남짓한 출장소가 비좁아 보일 정도였다.

출장소 주차장 역시 평소 볼 수 없었던 링컨 컨티넨탈과 벤츠, BMW, 에쿠스 등 국내외 고급 차가 빽빽해 이중 국적자들의 전반적인 경제수준을 엿보게 했다.

바쁜 손놀림으로 ‘국적이탈 신고서’를 접수하던 출장소 관계자는 “평소 하루 한두 명 하던 이탈 신청이 4일 이후 갑자기 늘었다”며 “이틀 전부터는 150건 안팎에 달했는데 오늘도 그 수준은 될 듯 싶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예상대로 국적 이탈 신청자를 포함 국적회복이나 귀화신고서를 접수하는 ‘증명 기타’ 창구에만 오후 1시 현재 벌써 255명이 대기했다.

“몇몇 젊은 엄마들의 원정출산이 화근이다.” “병역기피는 별개다. 교육문제 때문이다.”

여기 저기서 자녀들의 국적 포기 문제로 출장소를 찾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이들 대부분은 ‘병역의무 종료 후 국적포기’를 뼈대로 한 새 국적법 제정의 취지를 애써 외면했다. 대신 교육문제를 앞세우며 마치 원정출산의 피해자인 것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주위 눈치를 보며 국적 이탈 신고서를 작성하던 사람들은 “졸지에 매국노로 몰린 기분”이라며 한결같이 ‘억울하다’는 반응이었다.

유학생활 중 낳은 초등학교 6학년 아들 때문에 왔다는 오모(37·여·서울강남구대치동)씨는 “이렇게까지 (한국국적을 포기)해야 하나 싶은데 아이 미래를 위해서 결정했다”면서 “고의로 외국에서 낳은 것도 아니고 군대문제는 별개일 뿐이다. 교육문제 때문으로 아무래도 미국에서 교육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불안한 마음에 이른 아침부터 인천에서 왔다는 이모(39·여·미국유학 중 출산)씨는 “아이가 주체적으로 결정하게끔 현행대로 18살 이전에 (결정)하면 될 것을 원정출산 자녀와 도매금으로 취급해 당장 결정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불평했다.

자녀 국적이탈 문제로 집안에 분란이 일어난 가정도 적지 않았다. 한 주부는 “유년시절을 미국에서 보낸 아들은 성인이 되면 미국에서 살길 원하는데 남편이 ‘군대가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니냐.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야 한다’고 국적포기를 반대해 한바탕 싸웠다”고 전했다.

지난 10일과 11일에는 시부모 몰래 자녀 국적 포기 신청서를 낸 사실이 탄로난 주부 2명이 시부모로부터 “자손의 국적을 함부로 바꿨다”며 혼쭐이 나 다시 취소 신청을 하는 풍경도 벌어졌다.

일부 국적이탈 신고 민원인들은 현실적 보완 장치 없는 법을 정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고 성토했다. 국적 이탈 신고서를 작성하던 한 남성은 “미국 여권에 보면 타국에서 군 복무할 경우 자동적으로 미 시민권이 박탈되는데 새 국적법에는 군 복무 후 2년 내에 국적을 결정하라고 한다”며 제도적 보완을 요구했다.

국적회복 신청을 하러 온 60대 재중동포는 “우리야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어쩔 수 없이 외국 국적자가 됐지만 일신의 안위를 위해 조국의 국적을 버리는 사람들을 보니 안타깝다”고 씁쓸해했다.

오후 5시가 지나자 ‘증명 기타’ 창구 대기자 순번은 1000번이 찍혔고, 12일 하루 출장소가 문을 닫기까지 국적 이탈 신청건수는 모두 141건이었다.

이강은·정진수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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